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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구유에 뉘었으니 ~ 목자 탄생
26.01.31(토)
오늘은 누가복음 2장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깨닫는 지혜와 응답받는 기도의 은총이 우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2장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굉장히 웅장하게 기록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선포하는 것처럼 모두의 시선을 끌면서 그렇게 예수님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왕을 맞이하라 하면서 족보로 시작이 되죠. 이것이 예수님의 족보다 이렇게 시작을 하고요.
마가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다 라고 하면서 이것이 복음이다. 당당하게 시작을 하지요
요한은 한술 더 뜨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다 라고 엄청난 선언을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은 정말 복음의 핵심 중에 핵심이죠.
그런데 누가는 이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 예수님이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권세가 예수님께 있지 않아요.
권세 잡은 자는 도리어 로마의 황제이고 총독이에요. 예수님을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와 정혼자 요셉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힘이 없어 보여요.
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고 그 권력자들의 명령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죠. 순종하는 것처럼 보여요. 왜 그럴까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소개하는 누가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다른 복음서와는 소개하는 내용의 핵심과 접촉점이 다르기 때문이다는 거죠.
마태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나왔잖아요. 별을 보고 찾아오죠 왕이니까. 별이 뜨죠
그래서 예수님을 집에서 만나요?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동방박사가 안 나옵니다. 왜냐하면, 왕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보편적인 이들을 위한 그리스도 낮은 자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힘없는 자들을 위해 오신 예수임을 증거하기 때문에 누가 보면은 동방 박사가 안 나오구요.
대신 누가 나오냐 목자들이 나옵니다. 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 흙냄새 나는 사람들 요즘으로 말하면 88만 원 세대 밤새도록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들 이 서민들 민중들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사람도 다르고 예수님을 경비하는 장소도 다른데 마테가 집에서 만났다면 누가 어디서 만납니까 구유에 놓인 아기를 보고 경배합니다.
구유 이렇게 달라요. 그래서 복음소의 저자들이 관점이 다르고 시선이 다른 것입니다. 사실이 다른 게 아니라 시선이 다르다 관점이 다르다 소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라고 하는 관점이 다른 것인데요.
보겠습니다. 오늘 2장 1절입니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데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렇게 시작을 해요.
여러분 가이사 아구스도가 누구냐하면 역사적인 이름으로 보면 옥타비아누스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옥타비아누스는 줄리어스 시저의 양아들입니다.
근데 줄리우스 시저가 얼마나 대단한 황제였냐하면 자기의 이름 줄리우스라는 이름을 달력에 넣을 정도였어요.
그러면 달력 7월을 보시면 줄라이라고 되어 있죠. 줄라이가 줄리우스 시저의 이름입니다. 내가 7월의 주인이다 라고 하는 거죠.
그랬더니, 옥타비아누스도 양아들이잖아요.
자기도 달력에 이름을 밀어 넣었습니다.
바로 아구스투스 자기 이름 어거스트라는 이름을 8월에 밀어 넣었어요.
그래서 7월과 8월이 줄리우스 시저와 이 아구스투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로마에서 원래 쓰던 달력은 10달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두 권력자가 이렇게 두 달을 밀어 넣으면서 8을 의미하는 옥토버가 10월로 밀려나게 되죠. 그 정도로 그 정도로 이렇게 힘이 셌던 존경받던 이 옥토비아누스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립니다. 그런데 뭐라고 영을 내렸냐면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어요.
자 천하가 다 내 거예요. 그러니까 호적하라는 이야기는 뭐냐면 호적을 해서 고향에서 호적을 다 점검해서 내가 세금을 걷겠다. 그리고 필요하면 징집을 하겠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내 거니까 자 그렇게 했구요. 그것이
2절에 보시면 이 호적은 구례뇨가 수리와 총독이 되었을 때 처음 한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죠.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말씀드린 것처럼 굉장히 세밀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누가는 의사이면서 동시에 역사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고 있어요.
자 그래서 이렇게 호적하라 합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세상에 황제가 호적하라 그러면 우리 예수님이 호적을 해야 맞나요? 아니면 야 난 싫어 라고 하셔야 맞나요?
볼게요 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메
자 모든 사람들이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뭐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이렇게 전산 처리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호적을 하려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이게 이제 문제인 거죠.
전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이 다 고향을 돌아간다
고향 떠나서 살던 사람들이 일하면서 뭐 여러 가지 이 인생 자기 삶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니까 대이동 대혼란이 일어난 겁니다.
4절입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자 갑니다.
자 가는데 여러분 이렇게 원치 않는 대이동 권력자에 의해서 이동이 일어날 때 제일 불편하고 힘든 사람들이 누굴까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뭘까요? 바로 출산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억지로 먼 길을 가야 되는데 애를 낳게 되는 일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요셉과 마리아가 그런 일을 맞이하죠.
5절입니다.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자 잉태한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끌려가는 거잖아요. 사실 가기 싫은 길 안 가도 되는 길을 생업을 멈추고 지금 호적하로 가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진짜 아니 예수님이 온 천하의 만왕의 왕이신데 이런 세상적인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게 맞나 할 정도로 너무너무 힘이 없어 보이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 무엇을 이룹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그렇죠. 요셉이 다윗의 집 족속이에요.
그래서 원래 고향은 어디예요. 베들레햄이에요.
그런데 지금 어디서 살고 있어요.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살고 있어요.
자 그런데 나사렛 동네에서만 살면 사실 예수님이 거기서 태어나 버리시면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질 않아요.
왜 그런가요? 자 한번 볼까요?
성경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이미 예언을 해놨어요.
그래서 예언된 말씀대로 예수님이 오셔야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무 데서나 태어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일단 나사렛 동네에서 태어나야 될 이유가 뭐냐 나사렛 사람이어야 되는 이유는 뭐냐 바로 이사야 11장 10절이죠.
한번 우리 한번 가볼까요?
이사야 11장 10절 자 거기서 뭐라고 이사야가 예언을 했냐면 이렇게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10절 구약 982쪽에 있네요.
그날의 이세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며 만민의 빛으로 설 것이오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자 여기서 이세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 이 한 싹 이 한 쌍이란 말이 노쓰리라는 말인데 이 노쓰리라는 말이 바로 나사렛 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한 싹 이 싹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인데 이세의 뿌리 자 이세의 뿌리니까 그 집안 사람인 다윗 다윗의 자손이 예수님이잖아요.
그래서 그 예수님이 만민의 빛으로 설 것이다. 멸망이 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울 것이다.
그분이 메시아라는 얘기죠 그래서 이 한 쌍 노트리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찬들을 지금도 노트리라고 부르는데 나사렛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사렛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기 위해서 한 쌍이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있었고, 이뿐만 아니라 미가서 5장 2절로 가볼까요?
미가서 5장 2절 우리가 유명하게 잘 알고 있는 예언이긴 한데 자 미가서 5장 2절은 예수님이 태어나는 장소를 예언했죠.
예 구약성경 1294쪽에 있습니다.
미가서 5장2절
시작 베들레 메브라다야 너는 유다족 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내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의 영원에 있느니라 라고 하죠.
자 베들레헴 에브라다 같은 지역인데 유다족 속속의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예수 그리스도죠 그분이 내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해 있느니라 즉 그분은 태초부터 계셨고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다 라고 하는 거잖아요.
자 그런데 그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라고 하는 걸 어떻게 보여주냐면 그다음 3절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두시겠고 자 여인이 거기서 해산한다는 거잖아요.
누가 마리아가요 그 후에는 그 형제 가운데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자 예수님이 거기서 태어나셔야만 남은 자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오구요.
그 다음 4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에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죽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다.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치리라 라고 말해요.
즉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에 위엄을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서서 목축하신다 그가 먹이신다는 거죠. 그가 기르신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백성 남은 자들이 거주할 것이고.
그가 창대하여 땅끝까지 미친다라고 하는 예언을 하신 바로 그 예언자가 미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와 미가의 선지자가 선지자 예언을 다 맞으려면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면서 동시에 베들렘에서 태어나야 되죠.
그런데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바로 가이사 아구스도 옥타비아누스의 호적하라는 명령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저 멀리 북쪽에 갈릴리 나사렛에서 저 남쪽의 유대 베들렘까지 약 150km가 되거든요. 근데 150km가 그냥 걸어가도 힘들지만 예수님과 마리아 잉태한 여인을 데리고 이 정원 한 두 사람이 힘들게 오기엔 너무나 먼 거리잖아요.
그런데 남편의 고향을 따라서 베들렘까지 온 이 여행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냐 아니면 사랑의 명령이냐 하나님의 거리냐 세상의 거리냐 이걸 따져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구별이 됩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게 정말 신앙적인 결단인지 상식적인 결단인지 이게 여러분 딱 구별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면에서는 세상의 명령을 따르는 것 또는 세상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길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때 마리아와 요셉이 다 알았잖아요.
천사가 알려줬잖아요. 가브리엘이 지금 니가 잉태한 것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고. 그분이 구세주 예수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다 알고 있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야 나는 구세주를 잉태 했으니까 나는 저런 세상적인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어 그러고 안 갔다면 어떻게 됐어요. 하나님 말씀이 이뤄질 수가 없는 거죠.
오히려 이 세상의 방식에 따라서 그 상식대로 움직였더니,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졌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면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우리는 신앙의 결단을 강조하면서 세상에 생각들을 부정하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죠.
특별히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모이는 것이 지금 어 경계를 받는 상황이 됐어요. 모이면 아무래도 전파될 위험이 높고 바이러스가 옮겨질 위험이 높고 전염이 되면 또 이 사회적 거리 두기는 더 멀어지고 더 힘들어지고 그런데 이럴 때 교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 예수님 믿으니까 우리는 병에 안 걸리고 우리는 깨끗한 공기가 내려오고 우리는 모여도 괜찮고 이렇게 밀어붙일 수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을 따라서 호적하러 갔던 힘든 150km의 길을 걸어갔던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 가운데 펼쳐진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고 볼 수 있고 그것을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자 그런데 보세요. 6절입니다.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찼어요.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누였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었더라
자 중요한 것은 구유의 뉘였다라고 하는 거예요. 구유의 뉘였다. 여러분 베들레햄이라고 하는 지역의 이름 뜻이 뭔가요 벳이라고 하는 것은 집이란 뜻이고 레햄은 떡입니다. 그러니까 뱃 레햄은 떡집입니다.
예수님이 떡집에 태어나신 거예요. 떡집 사람이에요. 왜 예수님은 떡집에서 태어나셨겠어요. 예수님이 떡이시니까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고 굶주려 그 영혼이 굶주려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죠.
그분이 어디서 태어났어요. 구유에 태어났어요.
구유 구유는 여러분 베들레헴은 이 당시에 양치는 것으로 유명한 동네입니다.
베들렘에서 양을 길러서 그 양을 예루살렘에 납품을 했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쓰이는 제사에 쓴 양들은 다 베들레헴에서 길렀단 말이죠.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구유도 우리는 흔히 말구유라고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말구유가 더 많죠 그런데 이스라엘의 베들레임 지역에는 양구유가 많습니다.
양이 구유일 거라고 우리는 참 우리는 예상을 하는데 자 양 밥그릇 아닙니까 양 밥그릇 양의 털 양의 뭐 음식 똥 다 섞여있는 정말 지저분하게 이를 데 없는 구유의 예수님이 있었다는 거예요.
양 밥통에 밥그릇에 있었다. 뭐를 막 상징합니까? 예수님이 밥을 오셨다는 거죠. 밥은 어떤 존재입니까? 먹히기 위한 존재입니다. 남에게 먹힘으로 그 남을 성장시키고 살게 하는 존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은 구유에 뉘었음이라는 말은 예수님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권세를 휘두르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고 예수님이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고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이 백신으로 오신 거죠.
다들 죄의 바이러스 속에서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아집이라는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는데 유일한 먹고 회복되는 백신 치료제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기사를 적고 있는 오늘 본문을 보면요 구유에 누워 계셨다는 표현이 3번이나 등장을 해요.
7절에 나오고 12절에 나오고 16절에 또 나옵니다.
계속 나오는 것은 강조하고 있는 거죠.
양의 먹이통 양의 배를 채우고 양을 기르는 스스로 자기를 내어줘서 양을 기르는 여물통을 채우시는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한 사람들이 목자들이었다는 것은 같이 연결되죠.
목자들이 누구예요? 양에게 먹이 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목자들이 가보니까 구유의 아기가 놓여 있다. 즉 구유의 놓인 아기 아기는 그들에게는 이전에 찾던 양들의 단순한 먹이가 아니고 단순한 풀이 아니고 우리 모두를 먹이고 살리기 위한 참으로 하늘의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땅에 죄를 이기고 이 땅의 잘못된 사회를 개혁시키고 새롭게 하늘의 나라를 끌어오시는 참된 영의 양식 영원한 진리를 먹지 못해서 기진한 모든 백성에게 하늘의 꼴 하늘의 떡으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지금 구유가 증언하고 있고 예수님을 맞이했던 목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약한 모습으로 오셨어요.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약하고 가난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점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도리어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의 증거를 구유해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고 계세요.
예수님은 낮은 자로 오셨지만 기수님은 힘없는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자기를 내어주시고 자기를 먹으라고 나를 먹고 너희들이 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렇게 낮은 모습으로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진정한 부유한 분이고 진정한 강한 분이었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부유해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더 강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더 가난해지려고 하시고 더 약해지려고 하세요.
그래서 예수님은 왕궁이 아니라 구유에서 나셨고 예수님은 그것도 모자라서 더 십자가를 향해 가시죠. 그래서 더 약해지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자초하셨고 더 가난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다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바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종료 주일 이제 고난 주간 한 주일 지나고 나면 부활주일이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우리를 위해서 더 가난해지시고 더 약해지신 예수님을 우리는 기념합니다.
왜 그렇게 낮아지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자 과연 우리는 오늘 하나님이 이끌어 예수님에게로 우리를 데려가셔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산 떡이신 그 예수를 먹은 자로서의 기쁨과 평안으로 살고 있습니까?
양의 구유에 누워서 인간들에게 영원한 양식이 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진정 나에게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아니면 여전히 나의 기쁨은 내 자아를 만족시키는 이 땅에 정과 욕심들 내 마음대로 되는 것 내가 권세를 잡는 것이 유일한 내 기쁨은 아닙니까
내게 영원한 양식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참된 양식인 그분이 구유로 오신 그 사건이 없다면 지금 나는 여전히 내 욕망이 최고고 내 권세와 내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면서 내 자아를 만족시키는 것 그거 하나만을 목적으로 여기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목적은 바뀌었습니다.
우리 삶의 의미는 새로워졌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바로 나를 살리는 하늘에는 영광이고 이 땅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놓인 평화의 사건이라는 것 온전한 샬롬의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한마디로 정의해 주는 말씀이 있어요. 바로 우리가 어제 봤던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데
1장 53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같이 볼까요? 누가복음 1장 53절 바로 전 절에 있는데,
여러분과 함께 같이 읽습니다.
시작 줄이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 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아멘 이것이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자 줄이는 자를 좋은 것으로 되불리셨다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다 이것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오시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예요.
줄이는 자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갈급해하는 자 진리에 의해서 체험받고 싶어 하는 자 즉 줄이고 목마른 자 이러한 자들에게는 배불릴 것이다.
좋은 것 좋은 것이 뭐냐면 아가도스란 말인데 아가도스는 하나님의 완전한 선이라는 뜻이에요.
즉 하나님은 이 땅에 줄이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평안을 갈급하여 기갈하며 헤매는 우리에게 결코 지나지 않으시고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무시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완전한 선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선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채우시고 배불리실 것이다. 온전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에요. 줄이는 자들이에요.
줄인 영혼을 가지고 갈급한 심령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들 그런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대요 부자는 어떤 사람이에요. 예수님이 뭐가 필요해 나 충분한데 나 예수님 없어도 돼 라고 만족하는 사람들이죠.
자기의 힘과 자기의 소유와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런 자들은 빈손으로 보내실 것이다.
즉 그런 교만한 사람들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권세와 권력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코 예수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도리어 가난한 심령 주린 영혼에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만족을 주시는 하늘의 양식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예수님이 정말 진정한 해답이 되십니까
정말 예수님이 내 인생의 백신이십니까
내 인생의 치료제가 되십니까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건입니다.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자리를 노립니다. 힘 있는 황제가 되고 싶어 하고 종교의 주도권을 쥐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리어 가장 낮은 자리로 말의 밥그릇으로 여불통으로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무엇이 진정한 사람을 살리는 삶입니까?
무엇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종교입니까?
낮아져야 됩니다. 낮아져서 가장 낮은 곳에서 더 가난해지고, 더 나누어주고 더 약해져서 결국은 나를 내어주는 헌신의 삶 사랑의 삶 오직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도리어 세상을 구하는 진정한 왕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 교회가 이제 살아가야 될 모습 우리 가정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다시 한번 고민하면서
오직 나를 위해서 오신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양식 예수님을 다시 한번 내 마음속에 모셔드리고 그 예수님으로 내 삶을 새롭게 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누가가 보여 주는 예수님은 낮고 천한 곳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말 밥그릇 여물통 속으로 벳 레햄 떡집에 떡으로 오신 예수님 먹히기 위해서 나누어주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님이 나를 살리셨고 우리를 살리셨고 이 땅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예수님 본받아 약하지만
그러나 그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그 약함으로 남을 품어안고 남을 섬기고 남을 높여주고 사랑하면서 결국 모두를 살려내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 영혼의 양식이신 그분을 우리 모두 제대로 영접하고 받아들여 우리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24:13
이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때에 예수님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만나 우리 모두 변화되고 새로워지고 온전케 되는 복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겐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영혼을 살리는 온전한 양식이 되시고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백신이신 줄로 믿사오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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