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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남기고 왔네(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다정다감한 토니 베넷의 저음이 돋보이는 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서스펜스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무대이며, 1990년대 배우 샤론 스톤의 출세작 《원초적 본능》의 촬영지였고, 1960년대 사랑·반전(反戰)·평화를 외쳤던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의 산실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고전음악에 관한 한 뉴욕 필하모닉과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빅 파이브(Big 5)'가 버티고 있는 동부 지역과 비교하면 미 서부는 미개척지이자 신천지가 분명했습니다. '서부 개척'의 깃발을 들고 1995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클래식 음악계의 보안관'이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Michael Tilson Thomas)입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고 자라서 남가주대에서 공부한 이 '서부의 음악인'이 서부로 돌아온 건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토머스는 25세 때인 1969년 보스턴 심포니의 부지휘자로 데뷔한 뒤, 뉴 월드 심포니를 창단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로 금의환향한 뒤에는 21세기 들어서 오케스트라의 이름 약자를 딴 'SFS 미디어'라는 음반 레이블까지 출범시키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바로 말러 교향곡 전곡(全曲) 녹음 계획이었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에 이어 1971년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청소년 콘서트'를 7년간 진행한 틸슨 토머스는 대선배 번스타인의 선례를 참조했음에 분명합니다. 번스타인은 두 차례나 말러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면서, 20세기 말러 부활의 주역으로 떠올랐지요. 번스타인이 미 동부의 뉴욕 필에서 거두었던 성과를, 틸슨 토머스는 미 서부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2002년 첫선을 보인 말러 교향곡 6번 음반이 그래미상의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 부문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교향곡 3번과 2006년의 교향곡 7번까지 그래미상을 연거푸 4차례 타면서 지금까지 모두 13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최근 '천인(千人)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8번과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10번의 아다지오 악장을 묶은 11번째 음반이 나오면서 말러 대장정도 종착점에 이르렀습니다.
틸슨 토머스의 지휘봉에 따라 울리는 교향곡 10번의 아다지오는 눈부실 정도로 투명하기 그지없습니다. 미 서부에서 그가 새로이 써나가는 오케스트라 성공 신화를 보면서, 우리 시대의 음악가는 훌륭한 예술가인 동시에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