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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서
사회 : 민변 장주영 사무총장
□ 참석자 소개
□ 인사말
□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민변, 민주법연 의견 발표
□ 국가보안법에 대한 각 정당 국회의원 입장 발표
□ 국회의원 및 인권시민단체 인사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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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자료. 국가보안법 폐지 해설서 요약
▣ 일시 : 2004년 8월 9일 오전 10시 30분
▣ 장소 : 국회 귀빈식당 3호실
▣ 주최 : 민주주의 법학 연구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을 없애라!
- 국가보안법 폐지 해설서
Ⅰ. 국가보안법 폐지의 역사적 의미
Ⅱ.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개정, 그 오욕과 굴절의 역사
Ⅲ. 국가보안법, 법률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Ⅳ. 국가보안법은 무슨 해악을 끼쳤나?
Ⅴ. 국가보안법 폐지로 얻을 수 있는 이점
Ⅵ. 국가보안법 폐지론 비판에 대한 반론
Ⅶ. 국가보안법 개정론과 대체입법론에 대한 비판
Ⅷ. 국가보안법 7조, 10조를 통해서 본 적용사례
Ⅸ. 외국에도 국가보안법이 있는가?
Ⅹ.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I. 국가보안법 폐지의 역사적 의미
20세기 전반이 식민시대였다면 후반은 분단시대였다. 식민시대를 상징하는 법이 치안유지법이라면 분단시대를 상징하는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결국 두 법은 ‘극단의 시대’의 한국적 산물이고 또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법이었다. 이 두 법은 단순히 무수한 법률 중의 하나라는 차원을 넘어 식민체제와 분단체제의 정수(精髓)와 같은 것이었다. 이 법을 핑계로 권력은 자의적으로 불령선인과 빨갱이를 규정하고 단죄했다. 심지어 불령선인과 빨갱이를 고문하고 죽이는 것조차 널리 인정되었다. 정반대로 친일파와 독재자를 암살하는 것이 영웅시되기도 했다.
친일파와 빨갱이라는 말은 20세기 최고의 주홍글씨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불령선인이 아니라 친일파가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그것은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그러했을 뿐이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종식된 지 6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진상규명법안이 제출되고 논란이 되는 어이없는 양상을 국외자나 관찰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친일진상규명법과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시대적 과제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집단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또 그 집단의 구성이 거의 동일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치안유지법의 계승자라는 것 또한 공지의 사실이다. 결국 친일파진상규명과 국가보안법 폐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역사청산의 두 핵심과제이다.
분단은 식민과 냉전의 산물이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식민과 냉전의 시대는 갔지만 예외적으로 한반도는 아직 식민과 냉전의 시계바늘이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이라크파병 국면에서의 찬반논거들과 대립진영의 구성에서도 그러한 측면을 살필 수 있다. 적어도 전지구적 차원에서 냉전시대가 종식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분단이 냉전의 산물이지만 온전한 분단극복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지구적 차원의 냉전시대와 한반도 차원의 분단시대란 말은 이미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보안법은 분단시대의 산물이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전시대의 한국적 산물이다. 따라서 비냉전의 분단시대에 접어든 현재 국가보안법은 이미 시의성마저 상실했다.
식민과 냉전의 시대, 치안유지법과 국가보안법의 시대는 극단적․적대적 대결의 시대였다. 식민과 해방, 친일과 반일, 반공과 용공, 친미와 반미, 독재와 민주 등의 적대적 대립구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적대적 대립구도는 최근 대선과 탄핵국면에서도 그대로 재연되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또한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 한다. 첨예한 대결 과정에서 편가르기와 상호 불신․적대와 증오심이 만연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휘둘리면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만을 터득해야했다. 국가도 사회도 개인도 가위눌렸고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공감하는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법조문과 적용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법정신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개정론이나 대체입법론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60여년이 지나서야 친일진상규명법안을 제출해야하는 현재의 비극을 되풀이할 것인가. 냉전시대의 한국적 상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시대적 과제를 앞두고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적대적 대결을 강요했던 구시대의 마지막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구시대와 완전한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 구태와의 단절과 청산없이 새로운 시대의 창조는 있을 수 없다. 부끄러운 과거의 청산, 그리고 새시대의 창조적 건설, 그것은 국가보안법의 폐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은 하나,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이다.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간단한 법률 하나만 만들면 된다. 이름 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조문도 단 하나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Ⅱ. 국가보안법의 제정과 개정, 그 오욕과 굴절의 역사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부터 악용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많던 법률이었다. “속담에 고양이가 쥐를 못 잡고 씨암탉을 잡는다는 격으로 이 법률을 발표하고 나면…정치적 행동 하는 사람은 다 걸려 들어갈 수 있는 이런 위험이 있는 것”이라는 기우는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1949년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던 13명의 국회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소위 ‘국회프락치 사건’은 그 악용의 역사가 이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그 개정과정에서도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정치권력이 정권유지를 위하여 처벌의 대상을 확대함은 물론 그 강도를 높여갔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강압적․기습적으로 통과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내용과 절차의 양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1. 국가보안법 제정(제정 1948.12.1. 법률 제10호)
(1) 한시법에서 영구법으로
국가보안법은 1948년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아울러 남로당 등 세력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형법보다 5년이나 앞서 급조된 법률이다. 더욱이 비상시기 임시적 성격을 갖는 한시법이었다. 당시 권승렬 법무장관도 제헌국회에서 국가보안법안이 “평화시기의 법안은 아닙니다. 비상시기의 비상조치니까 이런 경우에 인권옹호 상 조금 손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불 건국에 이바지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의 한시법적 성격을 인정하였다.
1953년 형법을 제정할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이 ‘국가보안법은 한시법이고 형법으로 규율할 수 있으므로, 보안법을 폐지하자. 보안법을 폐지하지 않으면서 형법을 제정하면 법률의 중복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형법 제정 과정에서 그 중복성으로 인한 해당조항의 사문화를 우려하면서 형법 부칙에 국가보안법 폐지 조항을 두었다. 하지만, 표결 결과 단 10명만이 폐지에 찬성함으로써 부결되었고 결국 국가보안법은 목숨을 연명하였다.
(2) 일제 강점기 대표적 악법, 치안유지법의 계승자
국가보안법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일제 강점기 민족운동의 탄압기제로 악명을 떨쳤던 치안유지법을 계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보안법과 치안유지법의 유사성은 국가보안법 제1조 “국헌을 위배하여 정부를 참칭하거나 그에 부수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 자”와 치안유지법 제1조 “국체변혁을 목적하여 결사를 조직한 자”의 표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양자간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행위는 물론 사상 그 자체를 처벌하는데 있다. 그런데, 처별 형량에 있어서는 국가보안법이 치안유지법보다 중했다.
2. 국가보안법 개정사
(1) 제1차 개정(전문개정 1949.12.19 법률 제85호)
당시 법무당국자가 ‘좌익공산분자를 박멸하는 소재로 국가보안법을 활용했다’고 토로했을 만큼 국가보안법은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였다. 1949년에만 118,621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거․투옥되었고, 같은 해 9-10월 사이에는 132개 정당․사회단체가 해산당했다. 전국의 형무소에 80% 이상이 좌익수로 넘치는 등 사건과 재판이 폭주하자, 이승만 정권은 반인권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삼심제 아닌 단심제의 채택, 최고법정형으로 사형제 도입, 교화와 사상전향을 위한 보도구금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1차 개정법률은 시행일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였는데, 대통령령이 제정되지 않아, 시행되지 않았다.
(2) 제2차 개정(일부개정 1950.4.21 법률 제128호)
제1차 개정 국가보안법이 단심제를 채택하고 법제정 이전의 과거행위까지 처벌하는 소급효를 인정하는 등 형법원칙에 반하는 규정이 많아 이를 환원하려는 취지에서 개정이 이루어졌다. 국가보안법 제2차 개정은 제1차 개정 이후 국내외에서의 인권유린법률이라는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유화책이었다.
(3) 제3차 개정(폐지제정 1958.12.26 법률 제500호)
자유당 말기인 1958년 국가보안법 개정이 다시 추진되었다. 그 목적은 자유당은 1954년 이승만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강행한 사사오입개헌 이후 1956년 대통령선거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의 이반이 거듭 확인되면서, 야당과 언론에 족쇄를 채워 정권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언론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민주주의자를 탄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봉쇄하기 위한 개정’이라며 비판여론을 주도했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도 의원총회 소집과 특위 구성을 통해 전면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의원 지하감금과 날치기 수법을 동원해 통과시켰다(소위 2․4파동).
(4) 제4차 개정(전문개정 1960.6.10 법률 제549호)
1960.3.15.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은 강압적으로 통과된 국가보안법을 개폐해야 한다는 여론을 배경으로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1960.5.30. 국회는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독소조항의 제거라는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불고지죄를 신설하는 개악이 이루어지는 등 제4차 개정은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었다.
(5) 반공법(제정 1961.7.3 법률 제643호) 제정과 제5차 개정(일부개정 1962.9.24 법률 제1151호)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남북문제와 관련된 혁신적 주장과 요구를 봉쇄하기 위해 반공법을 제정하려다가 좌절하고 말았다. 반공법은 1961.5.16. 군사쿠데타 직후 부활하였다. 반공법 제정 당시 국가보안법과의 관계가 문제되었으나, 정권은 국가보안법보다 반공법을 더 선호하였다. 이처럼 군사쿠데타 세력은 반공법을 제정함으로써 쿠데타의 정당화 근거인 반공주의를 강요하는 법적 수단을 갖춤으로써 장기독재체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6) 제6차 개정(전문개정 1980.12.31 법률 제3318호)
신군부세력인 전두환 정권 역시 국가보안법에 의존하여 정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1980.12.30.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국가보위입법회의 본회의는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가결하였다. 상정․제안 설명․가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때 반공법의 처벌조항들은 고스란히 국가보안법으로 흡수되었으며 형량이 강화되고 처벌이 확대되었다.
(7) 제7차 개정(일부개정 1991.5.31 법률 제4373호)
1987.6.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마침내 ‘6․29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고 대통령선거시 각 후보자들로부터 악법개폐의 공약을 받아냈다. 이후 노동계․대학가․종교계․문화계․법조계 등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요구가 고양되었다. 1990.3.14. 여당인 민자당 의원 214명은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제출하였고, 야당인 평민당은 대체입법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1991.5.7. 민자당은 수정안을 제시했고, 5.10. 다른 법안과 함께 국가보안법을 날치기로 처리하였다. 즉 국회의장이 법안에 대한 제안 설명과 심사보고, 수정제의 보고 등 모든 절차를 서면으로 대체하면서 표결절차까지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가결을 선포했던 것이다. 불과 35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Ⅲ. 국가보안법, 법률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
1. 위헌성 : 대한민국 헌법에 반한다
평화통일조항(헌법 전문, 제4조, 제66조, 제69조)과 죄형법정주의(헌법 제12조)에 정면으로 반하고, 사상․양심의 자유(헌법 제19조), 표현의 자유(헌법 제21조), 평등원칙(헌법 제11조), 인간의 존엄성(헌법 제10조), 법치주의와 과잉금지원칙(헌법 제37조 제2항)을 침해하고 입법권(헌법 제40조)의 한계를 벗어난 위헌법률이다.
2. 상충성1 : 국제인권조약과 충돌하는 모순벌률이다.
대한민국이 당사국인 국제인권조약, 특히 「시민적⋅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은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자동적으로 국내법적 효력을 가진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은 규약 제9조, 제18조, 제19조와 양립할 수 없어 단계적으로 폐지되어야 될 법률이라는 것이 국제인권기구, 특히 국제연합 인권이사회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3. 상충성2 : ‘남북교류협력법’ 및 남북간의 각종 교류․협정과 충돌하는 모순법률이다.
평화통일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의 적대관계를 전제로 한 국가보안법을 존치시키는 것은 법논리적인 충돌을 일으켜 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즉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중 어느 것을 적용할 것인지 현재의 법체계는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법집행․적용기관의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최근 들어 정부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대등한 당사자의 일방으로 인정하여 교류하고 수많은 합의서를 만들어내면서 국민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니, 국민들은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는 법적 아노미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4. 중복성 : 형법규정과 중복된다.
국가보안법상 각 조항을 형법과 비교해 보면, 형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국가보안법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행위란 국가안보를 위하여 꼭 형사처벌해야 할 행위라기보다는 인권침해를 통한 독재정권의 유지수단에 불과한 것들이다. 즉 국가안보용 처벌규정은 이미 형법에 담겨 있어 국가보안법의 고유성은 정권안보용의 독소조항만이 남는 것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더라도 국가안보에는 전혀 허점이 생기지 않으며, 국가보안법이 처벌하는 행위는 형법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아니다. 즉 진정으로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위는 형법상 내란죄, 군반란죄, 외환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예) 제3조 반국가단체의 구성․가입죄 :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경우, 내란이나 외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단체라면 형법상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형법 제114조)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폭동을 직접 목적으로 하지 않는 내란예비․음모단체이면 형법의 내란예비․음모목적 범죄단체 조직․가입죄로 처벌할 수 있다.
Ⅳ. 국가보안법은 무슨 해악을 끼쳤나?
1. 정권 안보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전시와 같은 국가비상사태에서 폭동 등을 진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태생한 법으로 비상사태의 종료와 함께 폐지되어야 했으며, 또한 실제로 형법이 제정되면 폐지할 것을 예정하고 만든 법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분단현실을 빌미로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그 목숨을 연명시켰다. 그 후 수십 년간 독재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정권안보법’으로 악용해 왔다. 이들 독재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워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이고 도전적인 모든 표현과 행동을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매도했다. 민주화운동세력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곧 빨갱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2. 인권 피해자를 양산했다.
국가보안법은 독재 권력의 ‘정권안보법’으로 악용되면서 민주화 운동세력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기본권까지 침해했으며, 결과적으로 양심수로 상징되는 인권 피해자를 양산했다. 또한 독재정권하에서는 수사기관의 실적 올리기, 공안 수사기관의 유지 확대, 반공 이데올로기 강화 등을 목적으로 국가보안법이 악용되면서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와 인권침해에 대한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국가보안법 적용과정의 인권침해는 수사과정 뿐만 아니라, 재판과정에서도 발생하였다. 형사사법 기본원칙에 반하는 자백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문제가 항상 지적되었고, 정치적인 사건에서는 사형 등 잔혹한 적용실태가 문제되었다. 형이 확정된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복역과정에서 끊임없는 전향공작과 처우상 차별, 장기·독방 구금 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감옥을 나와서는 보안관찰법에 묶여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를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비극은 국가보안법 위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 연좌제와 사회적 냉대․차별이라는 세대에 걸친 불행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3.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
민주주의 정신은 사회의 다원성․개방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공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분단의 특수성을 내세워 국가보안법으로 반대파를 탄압하기 일쑤였고, 국민들의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와 그 실현 행위를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몰아 감옥에 가두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 폭력적 국가기구를 탄생시키고, 그 가공할 유형적 폭력의 행사, 즉 고문과 가혹행위를 가능하게 하였다.
4. 평화통일의 걸림돌이었다.
국가보안법은 분단의 산물로 탄생하여, 이후 자유로운 통일 논의와 남·북간 화해의 노력을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우리 사회 내부에서마저 적대와 증오감을 조장하는 분단법제로 기능해 왔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통일의 한 주체일 수밖에 없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분단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평화적인 남북 교류의 장애물로 기능하면서, 통일의 희망을 가로막고 있다.
Ⅴ. 국가보안법 폐지로 얻을 수 있는 이점
1.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민주화의 진전이 이루어져왔다. 지금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가 구시대 수구냉전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과감히 진행 중이다. 냉전과 분단의 상징으로 독재정권의 시녀노릇을 했던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바로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는데 있어 그 진정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 남북교류협력의 획기적 진전을 가져올 것이다.
6․15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대립과 불신을 해소하고, 한반도 냉전구조를 종식시키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이후 특히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의 획기적인 남북관계 진전은 우리 경제의 안정에 기여했으며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을 상당부분 일소시켰다. 이러한 남북간의 회담과 협약은 남북이 상호 신뢰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국제사회에 대한 하나의 약속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우리 국민이 이러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진정으로 이행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이행의 첫 단계인 것이다.
3. 사회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자는 아직도 국가안보를 빌미로 ‘이념적 혼란’, ‘남남갈등’ 등을 거론하며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분단현실을 이유로 이러한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요소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래 대북적대정책에 편승해 사회 내부 갈등을 촉발하여 이를 통해 민족의 화해, 교류, 협력,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고 여론을 호도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일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적대적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남남갈등이 해소되면서, 상호공존의 원리에 입각한 논쟁과 대안 경쟁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Ⅵ. 국가보안법 폐지론 비판에 대한 반론
1. 헌법 제3조(영토조항)에 반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있다. 국가보안법 옹호론자는 위 영토조항을 대한민국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남한정부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남한 정부에 반하여 휴전선 이북을 불법점령한 북한을 견제·대처할 수 없게 되므로 헌법 제3조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헌법 제3조에 대한 그릇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1) 남한정부만이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라는 주장은 불법단체인 북한을 무력으로 수복하여 남한에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과거 이승만 정부시절 북진통일론의 핵심적인 근거였다. 헌법 제3조는 이 주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악용되어왔다. 또한 이러한 남한 유일합법정부론이나 북진통일론은 북한의 국제법상 국가로서의 지위와 변화된 국제관계·남북관계에 부응할 수 없다. 그러므로 헌법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위 영토조항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개정·삭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자국의 영토를 헌법에 규정하는 것은 국제적인 분쟁의 빌미만 만들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과 충돌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이 규정을 둘 필요가 없으며,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자국의 영토가 어디까지라고 규정을 두는 예가 거의 없으며, 영토는 여러 국가간의 합의 문제이므로 이를 헌법에 두는 것은 적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2) 헌법 제3조의 현실규범력을 인정하더라도 이로부터 남한 정부만이 유일합법정부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과도한 논리비약이다. 영토는 시대와 주변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것이고,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헌법 제3조는 한반도 전체의 통일국가건설이라는 미래에 달성하여야 할 목표를 제시하는 규정이며, 미래지향적·미완성적인 성격을 갖는 조항이다. 헌법 제3조는 제4조 ‘평화적 통일정책’과 함께 해석해야하며, 평화적으로 통일하여야 할 공간적·영토적 범위가 한반도 전체라는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헌법 제4조가 통일의 방법으로써 ‘평화적 통일’을 규정한 것이라면, 제3조는 평화적 통일이 되어야 할 영역이 ‘한반도 전역’이란 의미인 것이다.
2.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주장에 대하여
북한은 휴전선 이북지역을 불법점령한 반국가단체이며,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는 이상 반국가단체로서 성격은 유지된다는 논리이다.
(1) 북한은 국제법적으로 공식 인정된 독립국가이며 더구나 남한과 함께 199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유엔에 동시가입하였으며, 유엔동시가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북한 당국을 설득하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남한 정부이다.
(2) 1972년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사상, 제도, 이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평화적 방법에 의한 민족통일’을 하기로 합의한 이래 2004년 6월까지 정치·경제·군사·사회 분야에서 각종 남북총리회담, 남북고위급회담이 총 468회 진행되었고, 특히 2000년 6월 15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마당에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관료들이 반국가단체의 수괴 및 간부들과 회합통신, 지원행위 등을 한 것이므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3) 1991년 국가보안법 제7차 개정당시 중국을 비롯한 국외공산계열 국가와의 교류를 처벌하는 조항을 삭제한 이유는 냉전적 상황이 없어졌고, 국제관계도 대립과 갈등상황에서 화해와 협력의 상황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사회주의 적화통일노선을 유지하고, 군사적 대결이나 긴장관계가 여전하므로 반국가단체로서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중국 현행헌법은 공산당의 유일지배, 노동자 계급지도하의 인민민주주의 독재, 사회주의 체제를 천명하고 있으며, 제3조에서 ‘사회주의 제도를 파괴하는 조직과 개인은 모두 국가와 인민의 적이다’라고 규정하여 인민해방군을 날로 강화하고 있고, 지금도 수시로 대만에 대한 무력통일을 주장하면서 대만상륙을 위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여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정부는 중국을 교류 협력의 대상이라고 보고 있을 뿐 안보위협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은 중국을 동북아시아의 동반자로서 교류·협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에 규정되어있던 국외공산계열 국가에 대한 처벌조항을 삭제하기까지 하였고, 나아가 한국 정부는 북한의 배후지원국으로 한국전쟁에서 서로 전쟁까지 치른 적성국가인 중국과 1992년에 정식수교를 한 이래 지금까지 활발한 교역을 확대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 또는 적성국가로서 한반도의 안보를 위협하는 성격은 북한보다 오히려 중국이 훨씬 더 강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나 한국 정부는 중국을 적국으로 보아 그 교류를 처벌하지 않는다. 법률의 해석 적용에 있어서 국가보안법은 이미 일관성을 상실한 것이다.
3. 북한의 이중적 지위관련
존치론자들은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대남적화노선을 고수하는 반국가단체라는 이중적 성격이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시를 인용하면서 북한의 반국가단체로써 성격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북한은 국제법상 공인된 국가이지 더 이상 반국가단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위 주장은 그 자체로 이미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위 주장은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행동할 때는 물론이고 동반자로 행동하더라도 처벌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적’이라는 반북주의적 전제에 기반해 있다. 결국 북한의 동반자로서 성격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북한이 붕괴되지 않는 한 어떤 변화를 보이더라도 국가보안법은 필요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4. 안보가 약화된다는 비판에 대하여
존치론자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국가안보의 위협을 방치하고, 북한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안보가 어떻게 해야 보장되는지, 국가보안법이 지금까지 국가안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재평가해 본다면 진정한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가안보는 국내외에 정치·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완화시킴으로써 국가의 법질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사상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함으로써 다양한 이념과 사상이 교류하여 사회주의 사상마저도 비판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통해 보장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안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군비삭감과 정치적 갈등요소를 제거하는 등을 통해 대결과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은 독재 정권의 유지·안보를 위해 기능한 한편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북한과 관련되는 모든 행동을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북한과의 정치적 대립·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사상의 자유를 형사처벌로 제한하여 사상적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군사적·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켜왔으며, 사상통제를 통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위 주장에 따르더라도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국가안보를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에서 규율하는 주된 내용은 모두 형법에서 중복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북한에도 국가보안법에 상응하는 법체제가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북한은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체제유지법이 없다. 북한의 헌법이나 형법에는 남한자체를 부정하거나 반국가단체로 보는 규정이 없으며, 사회주의 건설도 북한지역에만 한정시키고 있다. 북한헌법은 제166조를 개정하여 북한의 수도를 서울이라고 한 종전 규정을 평양으로 바꿔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라는 주장도 포기하였다. 북한 형법에 공화국 전복, 폭동, 테러, 간첩행위 등 '국가주권을 반대하는 범죄'와 '민족해방에 반대하는 범죄'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들은 우리 형법의 내란, 외환, 간첩죄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이고, 민족반역행위자에 대하여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나 그 규정에서도 남한이나 남한 국민을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으로 몰아세우지는 않는다. 결국 북한의 위협 또는 전체주의체제를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유지한다는 것은 북한의 존재를 이유로 우리도 과거와 같은 군사적 전시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6.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기상조라는 주장에 대하여
존치론자들은 북한의 대남전략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북한의 대남 안보위협이 상존하므로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1)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해서라면 국가보안법은 가능한 빨리 폐지되어야 한다. 국가안보는 긴장완화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형법에도 있는 내용을 불필요하게 중복적으로 두고 있으며, 북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폐지요구를 받는 가운데 남북간 긴장관계를 고조시킨 대표적인 장애물이었다.
(2) 현재 남북관계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르게 변화하였다. 남북의 정부당국자 접촉은 이미 최고책임자까지 높아졌고, 민간의 교류는 훨씬 폭넓고, 빈번해졌으며, 올림픽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국제 체육문화행사에서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하고 있다. 햇볕정책으로 표현되는 남한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변화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이래 대남전략을 수정하였음을 공포하면서 날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3)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지금 폐지한다고 해도 너무 늦었다. 애초에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 당시 형법이 제정되면 폐지하기로 합의가 되었던 것이며, 1953년 형법제정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과 법무부장관까지도 해방직후의 혼란상황에서 한시적으로만 적용하기로 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며, 그 이후 정권안보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국회 내에서도 끊임없이 폐지주장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7. 악용의 소지를 없애면 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존치론자들은 이 법의 '악용의 소지'만 없애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악용소지는 어디서 나타나는 것인가. 첫째는 법률 그 자체의 문제이다. 법률이 매우 추상적이고, 광범하여 자의적인 법적용의 여지를 두고 있다면 언제든지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법 적용주체의 문제이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모순 덩어리라도 이를 적용하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현실에 맞게 제한적으로 해석·적용한다면 악용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수사기관과 법원의 공안담당자들은 수십년 동안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루면서, 과거20 ~30년 전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문구나 표현 하나 바꾸지 않고 판결문과 공소장을 작성하고 있다. 공안담당자에게 국가보안법의 자의적 해석 적용은 이미 관행과 선례가 되었다. 공안담당자들의 자의적 법적용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보안법의 폐지와 형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악용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다.
8. 공안기관의 엄격한 적용으로 최근 악용사례가 대폭 줄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해방직후 국가보안법 시행초기에는 형사범의 80%이상이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당시의 혼란스런 전시상황과 비교하여 악용사례가 줄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지금도 여전히 공안기관은 국가보안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는 자의 숫자가 줄었더라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자의적인 법해석을 통해 엄혹하게 적용되고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은 그 자체가 자의적 해석적용이 가능한 것이므로 언제든지 악용사례는 다시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악용되고 있고, 법률 자체에 악용의 소지가 존재하는한 그 적용사례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만 한다.
Ⅶ. 국가보안법 개정론과 대체입법론에 대한 비판
1. 개정은 폐지 주장에 대한 수구적 대응논리에 불과하다.
개정론의 핵심은 국가보안법이 우리의 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보형사법이나, 남북교류가 빈번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고 지금까지 인권침해의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이와 관련된 조항인 ‘정부를 참칭’(제2조), 불고지죄(제10조)와 찬양고무죄(제7조 제1항) 등 몇 가지 조문을 삭제하거나 구성요건을 엄격히 하면서 국가보안법을 존치시키자는 것이다.
개정론은 ‘북한의 적화야욕’ 운운하며 안보현실을 빌미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시기상조를 주장한다. 이는 ‘여전히 국가안보상 필요하다’는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존치론과 동일한 현실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국가보안법에 제3조 반국가단체 규정을 유지하여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한, 그 어떤 조문을 삭제 또는 변경하거나 구성요건을 엄격히 한다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의 적용 현실에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 반공이념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국가보안법의 존치를 주장했던 보수언론조차 일부조항의 개정에 동조하고 있다. 이는 어느 때보다도 폐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여론을 주시하면서, 결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존치론적 입장으로 폐지론에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개정론의 다양한 진의와 무관하게 일부 개정 주장은 폐지론에 대한 ‘수구적’ 대응논리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공산이 높다.
2. 대체입법은 신국가보안법의 제정을 의미한다.
대체입법론 역시 개정론과 마찬가지로 존치론과 동일한 현실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즉, 대체입법론 역시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과거와 달리 냉전적 대치상태가 아니라 평화공존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한계를 갖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핵심내용이 그대로 온존된 채 법명만 바꾼다고 현실이 달라질 것은 없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을 기정사실화하며 이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국가보안법이 아닌 다른 이름의 대체법안을 만든다고 하여 대체입법이 적용되는 현실과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입안이 시도되고 있는 대체입법안 역시 그 본질적 내용과 적용 현실에서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과거 사회안전법을 폐지하고 보안관찰법을 제정한 사례를 통해 역사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사회안전법은 수형자가 형벌을 마친 이후에도 ‘사회안전‘이란 미명하에 다시 사회와 격리수용하는 법으로써 이중처벌과 정당한 재판절차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법률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리하여 국회는 이를 폐지하고 보안관찰법을 제정하는 대체입법을 하였다. 하지만, 사회안전법의 폐해는 보안관찰법에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현실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Ⅷ. 국가보안법 7조와 10조를 통해서 본 적용사례
1. 제7조
제7조 (찬양, 고무 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삭제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 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⑥ 제1항 또는 제3항 내지 제5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⑦ 제3항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⑴ 해설 : 이 조문은 국가보안법에만 있는 고유한 처벌규정으로서, 역대 정권에 의해 반공주의의 선전무기로, 그리고 민주화세력에 대한 처벌 수단으로 빈번히 효과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그만큼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의 사례도 많은 조문으로 국가보안법 개폐가 논의될 때마다 뜨거운 쟁점이 되어 왔다.
이 조문은 ①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거나, ② 이른바 이적단체를 구성하는 행위, ③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하는 행위, ④ 이른바 이적표현물 소지 등 행위 등을 처벌하고 있는 바, 이 규정들은 헌법상의 사상·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조문에 등장하는 찬양·고무행위, 이적단체, 이적표현물 등의 개념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로 인한 부당한 인권침해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사상의 자유·양심의 자유는 최대한의 보장을 하도록 하는 것이 헌법 원칙이므로, 이 조문은 삭제되더라도 국가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하등 영향이 없으며, 오히려 자유로운 사상이 보장되고 표현의 자유가 신장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보다 발전할 수 있고 이념적으로 훨씬 건전한 사고를 배양할 수 있으므로 국가안전보장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조문 각 항의 요건 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찬양, 고무 등의 죄 (제1항): 이 항의 행위는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등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찬양, 고무, 선전, 동조 등 각각의 용어의 의미 하나하나가 모두 추상적, 포괄적이어서 자의적으로 적용될 소지가 많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들 행위 유형 하나하나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하여 어느 행위가 어느 범죄유형에 해당하는가를 특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용어의 추상성과 포괄성 때문에 사실상 자의적 해석의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법원이나 수사기관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장 등에 찬성하거나 이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찬양, 고무, 선전, 동조 중 어디에 해당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구별 없이 이 죄의 성립을 인정함으로써 쉽사리 이 항의 적용을 확대하여 왔다.
이적단체 구성 또는 가입의 죄 (제3항): 이 항은 제7조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이른바 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미 제7조 제1항에서 찬양, 고무 등의 행위가 범죄로 규정되어 있어, 이러한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구성, 가입행위의 경우는 형법상의 범죄단체조직죄에 의해 충분히 처벌할 수 있으므로 이 항과 같은 별도의 규정을 둘 필요가 없다. 또한 이 항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원칙에 반한다. 어떠한 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범죄는 아니다. 문제는 범죄행위를 하는 것이므로, 형법상의 범죄단체조직죄는 각 해당범죄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이 죄는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의 찬양고무행위죄의 형보다 높은 법정형으로 처벌받도록 되어 있다. 이 항의 자의적인 적용에 의해 그간 많은 학생운동단체와 노동운동단체 등이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처벌되어 왔고, 이로 인해 헌법이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아 왔다.
허위사실 날조, 유포의 죄 (제4항): 이 항의 입법취지는 이적단체의 활동 중 일정한 행위를 별도의 규정으로 처벌하는데 있다. 이미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하는 여러 가지 행위, 특히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제4조 제1항 제6호). 그러므로 이 죄를 별도로 처벌하는 규정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죄를 별도로 정한 것은 권위주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반정부적 발언과 활동을 특별히 탄압하고, 가중처벌하기 위해서이다.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죄 (제5항): 이 항은 위와 같은 제1항 내지 제4항에 열거한 행위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서, 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 소지, 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하는 죄를 처벌한다. 무엇보다도 이 항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제21조), 특히 언론, 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하였다.
⑵ 적용례 : 우리 사법기관에 의한 그간의 적용사례들을 살펴보면, 제7조는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탄압 도구로서 남용된 대표적인 조문이다. 이 조문의 방대한 적용례 가운데 나타난 그 주요 사례를 항목별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찬양, 고무 등의 죄 (제1항): 찬양, 고무 등을 인정하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장,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다. 법원은 특정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통일방안 등) 중 어느 하나와 일부라도 일치하거나, 어느 맥락에서든지 북한이나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가 좋다는 취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북한을 찬양, 고무하거나 이에 동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찬양 혹은 고무라는 개념의 사전적 의미와도 다르게 해석·적용되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방대한 적용사례 중 몇 사례를 열거하였는바, 법원이 과거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 죄를 남용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 술자리에서 북한군가를 제창한 행위
- "김일성을 모르느냐. 김일성을 모르는 놈들은 모두 죽여 버려야 한다. 김일성이 무엇을 잘못하였느냐" 등의 말을 고성으로 반복한 경우
- 북한의 우표를 매수, 취득한 행위
- 시위 도중 성조기를 소각하고 반미내용의 유인물을 살포한 행위
- 책의 내용 중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발표, 토론한 경우
- 종교적 형식의 학습모임에서 계엄철폐, 정권타도 등의 의제를 가지고 토의한 행위
- 군부대 내에서 전우들에게 북한을 동경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경우
- 반상회를 마치고 담소 중 마을 사람들에게 북한이 전기가 풍부하다거나 양곡보관시설이 잘 되어 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경우
- 대학축제행사 중 강연초청을 받고 대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이제 미국은 혈맹과 우방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외세의 대표적 상징이다"는 등 강연을 한 행위
- 일부 언행에 찬양, 고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부분이 들어 있거나 북한의 일부 정책에 반대하는 견해가 나타났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찬양, 고무에 해당하는 경우
한편 이 죄의 주관적 요건과 관련해서는, 국가보안법이 1991. 5. 31. 법률 제4373호로 개정되면서 금품수수 (제5조 제2항), 잠입, 탈출 (제6조 제1항), 찬양, 고무, 동조 (제7조 제1항), 회합, 통신 (제8조 제1항) 등의 경우, 그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행한 경우에만 처벌하도록 수정되었다. 이러한 개정은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에 따른 것이나, 법 개정 이후에도 이 조항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이적단체 구성 또는 가입의 죄 (제3항): 판례에 의하면, 어느 단체가 정부 참칭이나 국가의 변란 그 자체를 직접적이고도 1차적인 목적으로 추구할 때에는 반국가단체에 해당하고, 별개의 반국가단체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그 반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것을 직접적이고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이적단체에 해당한다(대법원 1999. 9. 3. 99도2317 외 다수). 이적단체에 대한 인정은 국가보안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목적 및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정신에 비추어서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 해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항 역시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적용되면서 많은 피해사례를 양산했다.
이적표현물 소지 등의 죄 (제5항) : 이 항에 있어서는 , 우선 표현물의 이적성에 대한 일반적인 기준이 무엇이냐가 문제되는데 이에 대한 판례의 경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991.5.31. 국가보안법 개정 이전까지 법원은, 어느 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구체적, 객관적으로 이익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 추상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개연성”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보았다(대법원1984. 11. 27.선고 84도2310). ② 1991. 5.31. 국가보안법이 개정되어 제7조에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추가됨에 따라 법원은, 대한민국의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이 있으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이적성을 갖는다는 다소 강화된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법원 1992.3.31. 선고, 90도2033). 이러한 판결의 경향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엄격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상의 원칙에 반한다.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 개정 이후의 적용례들을 살펴 볼 때 법원은 친북, 반자본주의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보아 처벌하였으므로 실제로는 과거의 기준에 비하여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이적표현물에 관한 적용사례는 매우 많으나 대표적인 경향만을 지적한다면, 법원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등 이미 세계적으로 고전이 된 서적들을 포함한 다수의 학술서적을 이적표현물로 보아 그 출판, 소지 행위 등을 처벌하였고, 북한서적 『꽃파는 처녀』를 출판한 행위도 북한의 활동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아 처벌하였다.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거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의 논문들도 이적표현물로 보았다. 나아가 분단극복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홍성담씨의 「민족해방도」나 신학철씨의 「모내기」 등의 그림도 이적표현물로 인정하였다.
한편 법원은 이 죄의 주관적 요건인 '이적 목적’에 관하여는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없고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으로도 족하다는 전제 하에 이적표현물을 취득 소지 또는 제작 반포하는 행위가 있으면 이 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행위자가 위와 같은 표현물을 소지하면 이적 목적에 대한 미필적 인식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 까지 한다.
2. 10조
제10조 (불고지) 제3조, 제4조, 제5조 제1항, 제3항(제1항의 미수범에 한한다), 제4항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정을 알면서 수사기관 또는 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본범과 친족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⑴ 해설 : 이 조문은 국가보안법 제3조, 제4조, 제5조 제1, 3, 4항의 죄를 범한 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이를 신고하지 아니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 불고지죄 규정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제19조)와 사회의 건전한 인륜도덕(본조 단서는 친족관계가 있을 경우 불고지자의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친족의 행위를 수사기관 또는 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않은 행위도 원칙적으로 처벌하면서 다만 법원의 임의적인 형 감면만을 인정할 뿐이다.)에 명백히 반하는 규정이다.
⑵ 적용례 : 이 규정은 법원 및 수사기관에 의하여 빈번하고 폭넓게 사용되어 왔는바, 특히 과거에는 간첩사건이 발생하면 해당자의 주변 친척, 친구들은 이 조항에 의하여 다수 입건되어 처벌받았다. 1960년 제4차 개정 당시 신설된 불고지죄로 최초로 처벌받은 대표적 사건의 당사자는 바로 부산지검 정보부(공안부) 부장검사였던 한옥신이었다. 그는 이종사촌간인 남파간첩 김종섭을 만났으나, 신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1989년에는 취재도중 서경원 의원의 방북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가 구속되었다. 최근사건으로는 1995년 간첩 김동식의 자백을 유일한 증거로 그를 만나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상호, 이인영, 함운경, 허인회 등이 불고지죄로 체포된 사례가 있다.
Ⅸ. 외국에도 국가보안법이 있는가?
이른바 ‘선진’ 외국에도 국가보안법 유사법률이 있음을 들어 국가보안법 존치근거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독일, 대만, 미국 그리고 일본에 국가안전과 체제수호를 위한 국가보안법 유사법률이 있는가 여부가 아니라 관련 법률이 어떤 내용을 지니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1. 독일
독일에는 국가보안법에 해당하거나 그와 유사한 법률이 전혀 없다. 다만 형법에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정당의 활동금지를 겨냥하여 헌법상의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를 방어하기 위한 몇 가지 조항이 남아 있을 뿐이다.
2. 대만
대만에도 국가보안법에 해당하거나 그와 유사한 법률이 전혀 없다. 대만이 세계 최강의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그리고 오랫동안 계엄상태에서 일당집권체제 아래 있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다만 명칭만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국가안전법」이 있는데, 그 내용은 국가보안법과 전혀 관계가 없다. 모두 10개 조항인 이 법의 핵심내용은 ‘공공집회와 결사의 제한’(제2조), ‘출입국 신청과 검사’(제3조, 제4조), ‘통제구역 지정’(제5조) 등이다. 그 중 처벌조항은 제4조와 제5조에 대해서만 두고 있다(제6조, 제7조). 1990년 이후 대만에는 정치범 혹은 양심수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의 국가안전법이 국가보안법의 정당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교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3. 미국
미국에도 국가보안법에 해당하거나 유사한 법률이 전혀 없다. 일부 법전에 남아 있는 조항들도 사실상 무효이다. 왜냐하면 이 조항들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은 것이어서 모든 국가기관에 대해 이 법조항은 적용불능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 사상통제법의 대부분은 폐지되거나 사실상 효력을 상실한 상태이다. 가령, 파괴활동금지법은 형식적으로는 『미연방법령집(United States Code)』에 실려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연방대법원의 위헌판결로 적용불능상태에 있어 실질적으로는 사문화되었다. 국내안전법 또한 1967년 연방대법원의 위헌판결로 사실상 사문화하였으며, 파괴활동통제에 관한 조항은 1968년, 비상구금에 관한 조항은 1973년에 각각 의회 입법으로 대부분 폐지되고 극히 일부 조항만이 남아 있다.
4. 일본
일본에는 국가보안법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그와 다소 유사한 파괴활동방지법이 있다. 하지만, 법의 명칭에서 보이듯 이 법은 사상․이념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체제를 부정하는 파괴활동이 명백할 때만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국가보안법과 그 적용범위가 판이하게 다르다.
Ⅹ.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위하여
국가보안법은 분단과 전쟁의 혼돈 속에서 한시법의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서 제정 당시보다 훨씬 무거운 갑옷을 입고 반공주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과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점차 그 칼날은 무뎌지고 갑옷은 누더기가 되어가고 있다. 곧 국가보안법은 민의(民意)의 요구에 의해 마지막 숨을 헐떡이게 될 것이다.
지난 56년간 국가보안법 존립의 명목은 소위 ‘안보현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국가보안법은 남북과 남남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불씨이자 정권안보를 위한 탄압기제의 역할을 하면서, 그 위용을 스스로 갉아먹어왔다. 그러므로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정권안보를 위해 이용당했고, 오남용으로 인권유린의 족적을 남기기는 했으나, 국가안보를 위해 여전히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잃어버렸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이 이제 반공주의보다 더 협소한 반북주의에 기대어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고자 하므로, 처지는 더욱 궁색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민족화해협력과 민주주의의 시대를 맞아,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56년간 미루어왔던 숙제를 끝낼 수 있는 호기다. 국가보안법을 금과옥조로 받들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십분 활용했던 과거 집권세력과 보수언론마저 강력한 폐지 여론에 대응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개정에 동조하거나 대체입법안에 기웃거리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북한을 ‘반국가단체’라 주장하며 안보를 빌미로 국민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주면서, 이미 뇌사상태인 국가보안법의 목숨을 연장하려 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아무리 손질해도, 설령 개명한다고 하더라도 참혹한 과거의 기억을 덮을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은 냉전과 분단, 그리고 독재의 산물로 이제 과거청산의 대상이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탈냉전의 시대에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고 분단을 넘어 통일로 나아가는데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한 독재의 긴 터널을 지난 지금, 실질적으로 이념과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있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유일한 선택은 국가보안법 폐지다. 더 이상 우리의 미래가 국가보안법의 덫에 갇혀 희망을 잃게 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의 폐지! 제17대 국회가 ‘제2의 제헌국회’를 꿈꾼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역사적 과업이다. 제17대 국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산고를 겪으며 국민들의 ‘선거혁명’을 통해 탄생했다. 그들이 진정 오점투성이로 점철된 과거 국회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제2의 제헌국회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1948년 12월 1일 제헌국회가 잘못 끼운 첫단추, 국가보안법부터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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