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반값 등록금② `국립대-그랑제콜`의 조화 이룬 프랑스 ~ 국가 역할 바탕, 평등–경쟁 병존

[갑돌]

윤석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프랑스는 대학 수준의 고등교육을 사실상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맞고, 다른 한편으로는 틀린 이야기다. 프랑스 대학교는 대부분 국립인데, 국립대에 등록하면 일반적으로 학비는 없고 매년 소액의 등록금만 내면 된다. 하지만 이는 프랑스 고등교육제도의 반쪽만 말한 것이다. 프랑스 고등교육제도는 대학교와 그랑제콜로 이원화되기 때문이다. 다른 서구 국가들의 국립과 사립의 이원화와는 조금 다른 체계다. 굳이 국립과 사립의 틀을 프랑스에 적용하면, 프랑스에서 대학은 대부분 국립이지만 그랑제콜은 사립·국립·공립이 공존한다.

이원화 시스템의 프랑스 고등교육
국내에서 프랑스 고등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평등을 강조하 사람은 프랑스 국립대학의 낮은 학비만을, 반대로 경쟁을 강조하는 사람은 프랑스 국립대학의 경쟁력 저하만을 강조하며 각각 아전인수 격으로 시사점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 고등교육제도에서 대학교와 그랑제콜의 양 축을 함께 바라보지 않고서는, 한국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시사점을 찾기 힘들다. 특히 프랑스에서 대학교와 그랑제콜이 국가의 적극적인 구실을 전제로 서로 상반된 역할을 ‘평등’과 ‘경쟁’, 혹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교육에 대한 상이한 인식과 수요를 한 사회 안에서 소화해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09년 2월 프랑스 파리에서 학생과 강사들이 경쟁을 강화하는 교육개혁에 반대하는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대학교, 특히 그중 다수를 차지하는 국립대학은 공화국 시민이면 누구나 지닌 교육권이 실현되는 평등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12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이어 서구에서 두 번째로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 교육이 태동했는데, 68혁명 이후 서열화한 국립대학 구조가 해체되고 오늘날의 평준화된 국립대학 체제를 갖추게 된다. 해마다 고등학교 졸업생 60만여 명이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 응시해 이 중 80% 이상인 50만여 명이 합격한다. 이들은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자격과 권리를 갖는데, 전국 90여 개 국립대학 중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지망해 이 선호도를 고려해 학부과정을 이수할 학교가 배정된다.
국립대학에서는 사실상 무상교육 원칙이 적용된다. 학생은 고액의 학비 부담 없이, 학위 과정에 따라 연 174유로(약 25만원)에서 564유로(약 82만원)의 등록금을 낸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 국립대학 재학생 1명에게 들어가는 평균 교육비는 7840유로(약 1200만원)다. 학생이 부담하는 등록금은 사실 대학 운영에 필요한 경비의 약 3%에 불과한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국가가 부담한다. 프랑스는 국립대학 학비뿐 아니라 학업 기간 중 대학생의 일반적인 삶도 상당 부분 국가가 책임진다.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국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급 기준은 우수한 성적이 아니라 경제적 약자인지의 여부다. 대학 식당과 기숙사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데, 민간 위탁으로 인한 가격 상승을 예방해 대학생들의 생활고를 덜어준다.

국립대학, 무상교육으로 평등 교육권 보장
그랑제콜은 프랑스 사회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철저한 시장논리와 ‘경쟁’이라는 가치에 기반해 운영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국가 귀족’ 양산 공간으로 해석한 그랑제콜은 나폴레옹 시절 정부와 공기업에 필요한 핵심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공학·행정·경영 분야의 소수정예 교육기관으로 설립한 것이 모태가 되었다. 해마다 고등학교 졸업생 60만여 명 중 우수한 성적의 학생 3만8천여 명이 ‘프레파’라고 부르는 그랑제콜 진학 준비반에 들어가고, 이곳에서 1~2년 동안 집중적으로 그랑제콜 입학시험을 준비한 뒤 이 중 2만8천여 명이 그랑제콜에 최종 진학하게 된다. 그랑제콜은 국립대학과 달리 서열화돼 분야별 상위권 그랑제콜에 진학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랑제콜, 가정형편 따라 학비 차등화
그랑제콜은 국립대학과 달리 일반적으로 무상교육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국립대학의 1인당 평균 교육비는 7840유로(약 1200만원)이지만, 그랑제콜의 1인당 평균 교육비는 2만유로(약 3천만원)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랑제콜의 1인당 평균 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상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 대학 1인당 평균 교육비보다 높다. 일부 국립 그랑제콜은 국립대학 학비와 비슷하지만, 대부분의 사립 및 공립 그랑제콜은 최소 4천유로(약 600만원)에서 최고 3만유로(약 4500만원)까지 학비를 낸다. 고액의 학비를 부과하는 그랑제콜이라도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비를 달리 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같은 그랑제콜을 다니더라도 부모의 연소득이나 재산에 따라 학생들이 내는 학비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 고등교육제도의 특징은 국립대학에 의해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고, 그랑제콜에 의해 경쟁의 가치가 실현되는 병존적 구조이다. 고등교육 정책에서 평등과 경쟁을 양자택일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사회적 수요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게 병존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단, 여기에는 최고 수준의 교육보다는 최대 다수의 교육이라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국립대학의 존재가 전제된다. 그래서 프랑스 국립대학이 미국 사립대학과의 대학 순위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이런 모델의 실패를 지적하는 국내 일부 언론들의 지적은 무의미하다. 이런 주장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보니 자가용의 편안함이 없다며 ‘대중교통은 실패했다’고 말하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시장의 원리가 중시되고 경쟁의 가치가 실현되는 그랑제콜에서도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랑제콜이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세습화하는 새로운 ‘국가귀족’ 양산의 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평등 논리에 기반한 국립대학 체제가 그대로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의 논리와 경쟁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랑제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단, 국가의 역할이 양쪽 모두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경제·사회적 약자들의 그랑제콜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입시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편하고, 입학 뒤 부모의 소득에 따라 학비를 전액 면제 혹은 감면해주고, 생활비를 위해 국가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국립대, ‘최대 다수의 교육’ 임무에 충실
최근 한국 사회의 ‘반값 등록금’과 관련된 주장의 근거 중 하나로 프랑스 국립대학의 낮은 등록금을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보다는 국가 고등교육 정책에서 단순히 ‘평등과 경쟁 사이의 선택’이 아닌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전제된 ‘평등과 경쟁의 공존’이 오히려 프랑스에서 얻을 수 있는 유효한 근본적인 시사점이다. 국립대가 국가의 역할이나 평등을 고민하기보다 사립대가 추구하는 시장이나 경쟁의 논리를 따라잡기에 급급하고, 사립대가 국립대의 역할을 어설프게 대신 수행하도록 요구받는 한국의 현실에서,  상반된 두 가치와 지향이 각자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공존하는 프랑스 고등교육 제도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이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