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기형적이게 모든 정신과 노력을 여성혐오에 집중하는 나라도 없다.
OECD 국가 중 성차별 지수 1위, 임금 차별 1위, 전세계적으로 봐도 최하위권에 머문다.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모두 당연한 듯이 용인되며 사회 최약자인 여성을 지킬 제도 또한 후진국 수준이다.
자료로서 예를 들지 않는건 이미 우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그게 계속 되지는 않을 듯 하다. 왜? 이렇게 만 8천명이 모였으니까.
"너 메갈이냐?"
"메갈, 웜마드 남자 일베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정도를 넘었다"
"왜이렇게 예민하냐? 아주 프로 불편러네"
"다들 그러고 살아 왜이렇게 혼자 튀려고 그래?"
등등 한국남자의 가스라이팅(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조종하기 위해 가해자는 말로서, 주변사람들을 이용해 피해자가 결국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믿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학대. 정말 중요한 개념이니 꼭 검색해 알아보기를 추천)에 쇠뇌당했던 한국여자들은 더이상 참지 않고 미투 운동, 낙태죄 반대 시위 등 여러 여성혐오 이슈에서 시위하고 청원하고 SNS로 공유하는 등 목소리를 내왔다.
그동안 곪고 썩어가던 한국 여성들의 분노가 이제는 터지고 있다.
여기 모인 만 8천명의 사람들은 모두 불법촬영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에 분노해 모였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보자.
현실을 보자.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미투 운동, 낙태죄 폐지 시위, 계속 되왔던 청원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처벌되고 해결된 것이 하나라도 있었나?
한국남자들이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알탕연대(고용 차별, 임금차별)
룸싸롱가서 술마시고 성매수 하고 성폭행하고
집에서 몰카보고 핀셋자위 할 때
우리의 목소리를 비웃을 때(미투 운동 희화화, 남소방관 한호식의 피싸개 및 피해자 비하발언)
한국여성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나?
왜 우리의 목소리는 이렇게 힘이 없나?
9할이상이 한국남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정부는, 언론은 한남민국 반의 목소리를 듣지않았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사회 요추에 한국남자만 넣어주는 알탕연대를 넘어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이미 백래쉬(여성인권을 신장을 위해 힘쓰는 여성들을 억압하기 위한 남성중심사회의 공격)는 시작되었고 여기서 멈추면 시대를 퇴보하는 이란 등 중동의 나라들과 같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싸워 고쳐야 할 여성혐오는 이번 불법촬영 편파수사, 성범죄, 낙태죄 뿐만이 아니다.
임금 차별, 고용 차별, 실생활에서 행해지는 당연한 차별들,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도덕적, 심리적 책임들, 사회에서 여성을 다루기 쉬운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행해져 온 수많은 가스라이팅.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와 셀 수도 없던 차별들.
우리가 2등 시민에서, 노예에서 사람이 되려면 고쳐야 할 것들이 아직도 무수하게 남아있다.
Kvennafrídagurinn 24. október 1975 (이미지출처:; fjallkonan.is)
아이슬란드 여성총파업(영어: Women's Day Off, 아이슬란드어: Kvennafrídagurinn)
은 1975년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기해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이 하루 동안 직장일과 가사노동을 전면 거부하여,
아이슬란드 경제와 사회에 여성이 공헌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남성들에게 체감시킨 사건이다.
아이슬란드 여성 90%가 참여했다.
이날 하루 직장인은 출근거부, 가정주부는 육아와 가사를 쉬었다.
오후 2시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의 도심 스퀘어에서 열린 집회에는 2만 5천여 명의 여성이 참가했다(당시 아이슬란드 인구는 22만 명 수준이었다).
아이슬란드 역사상 최대규모 집회였다.
광장에는 "Equality at Once" 한번에 평등
"Development, Peace, Equality of Pay 발전, 평화, 임금평등
"More Day Nurseries."
" One of the posters asked, "A Day Off - and Then?" 파업 하루, 그 다음은?
등의 피켓이 등장했다.
모인 여성들은 돌아가며 발언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브라스밴드가 그 해 아이슬란드에서 방영됐던 BBC 드라마 'Shoulder to Shoulder'(서프러제트 이야기) 테마곡을 연주했다.
집회 후에는 파업 위원회가 준비한 오픈 하우스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공연을 구경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이날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집회가 열렸다.
대부분의 교사가 여성이었기에 보육원, 초등학교, 중학교가 휴교했다.
마트와 수산물 공장이 대거 휴업했다.
전화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식자공이 모두 여성이었기 때문에 신문발행도 중단됐다.
여자배우들이 출연을 거부해 공연이 취소되었다.
여자승무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항공기 운행이 취소되었다.
은행에서는 임원들이 나와서 창구업무를 해야 했다.
한편 아버지들은 직장을 쉬거나 애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 뉴스 보도 중 뒤에서 애들이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퇴근 후엔 아빠들이 애들 씻기고 밥 먹이고 재워야 했다.
아이들이 잘 먹고 요리하기 쉬운 소시지가 곳곳에서 매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총파업은 그 날 밤 자정까지였고,
남자들은 힘겨웠던 그 날을 '길었던 금요일(long Friday)'이라고 부른다.
이후 매 10주년 기념일마다 '여성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지속적인 성평등 추구를 위해' 여성들이 일을 일찍 끝내고 기념행사를 갖는다.
여파
이듬해인 1976년 남녀 고용평등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5년 후인 1980년 유럽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성 대통령으로는 세계 최초.
1983년 새 정당 the Women's Alliance가 당선자를 내어 의회 진입에 성공했다.
2000년 남성 유급 육아휴직 도입.
2010년 아이슬란드 최초 여성 총리 탄생. 세계 최초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총리다.
2009년부터 아이슬란드가 세계 성별차 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 한국 여자들도 지금 다 길거리로 뛰쳐나가야 한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설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실제로 시위에 참여하면 에너지가 엄청나다.
그런데 한국 인구의 반이 힘을 모은다면? 결코 무시 할 수 없다.
목소리를내지 못하도록 억압받던 우리는 더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머릿수가 힘이다. 정치인들은 이 많은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다.
+ 시위와 함께 우리가 지금 당장,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한국남자를 만나주지 않는다.
결과 => 한국남자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남.
데이트 폭력의 위험에서 벗어남.
결혼의 위협 벗어남.
가정폭력,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대리 효도 안해도 됨.
혼자 돈 벌어서 여유롭게 살 수 있음.(적게 벌어도 둘이 벌어 애까지 키우고 양가 식구 챙기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움.)
남자에게 가는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에너지 나한테 투자.
내가 하고싶은 거 하면서 커리어 쌓기 가능.
사회적 성공 가능.
경제적 자립 가능.
내가 원하는 삶 꾸리기 가능.
2등 시민 취급으로 인한 공허한 마음을 애정결핍으로 착각해 한국남자한테 학대받아가며 해소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 가능.
꾸밈노동 하지 않는다.
결과 => 건강 망치지 않고 건강하게 한 평생 살 수 있음.
경제적 시간적 노력 나한테 투자 가능.
2등시민의 조건 벗어냄으로서 가시적인 여권상승 가능.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한다.
결과 => 한국남자의 빻은 소리 들어주지 않음으로서 내 정신건강 지키기 + 한남 나댐지수 죽이기.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나를 정말로 위하는 사람과 사귀게 된다.
세가지 예를 들어 봤는데 이 외에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모두 혼자 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 8천명의 사람들이사람답게 살고 싶어 모이지 않았나?
같이 해보자.
같이 목소리 내보자.
같이 시위에 나가보자.
같이 나에게 있던 족쇄를 하나씩 벗어보자.
잘 생각해 보면 위의 결과들 모두 한국남자는 당연하게 얻는 것들이다. 요즘에는 트위터니 인스타니 책이니 페미니즘에 관한 정보가 너무 많다. 더 알아갈 방법이 정말 많다.
페미니즘 실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옷 편한 거 입고 다니고
한국 남자랑 결혼, 연애, 섹스 안해서 가부장제 부수고
현생 열심히 살아서 성공 한 후에
후임으로 똑똑하고 유능한 여자 뽑아서 연대하고
심심할 때는 댓글 보력가고, 시위 나가고 하면 된다.
나는 더이상 윗 세대들처럼 내 한몸 갈아 한국남자한테 잘살게 해주기 싫다.
열등감과 찌질함으로 더 저열해진 1020세대 한국남자들의 여혐범죄 해소대상이 되기는 더욱더 싫다.
나는 내가 나를 위해 내 삶을 살것이다.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그렇게 살거다.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제한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거 하고 그렇게 살거다.
남성중심사회에 무릎 꿇지 않을 거다.
당신의 삶, 당신이 만들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살고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