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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목자
(2019. 9.1. 신중식 목사)
* 본문 :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찬송 :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통 1장),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통 102장),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통 411장) 헌금송 50장 1절(통 71장),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통 453장)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선한 목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삽시다.
인생의 지팡이 되는 시편 23편의 축복을 받으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베트남 전쟁 당시에 미군 전투기 안에는 서바이벌 키트라고 불리는 생존 장비가 실려 있었습니다. 이 생존 장비에는 만약에 전투기가 적진 한가운데에 추락했을 때에 조종사가 생존하는데 꼭 필요한 지도, 나침반, 비상식량, 권총 등 100여 가지의 물품들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품들 가운데 카드 한 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카드는 과연 어떤 카드였을까요? 그 카드는 세계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도 아니었습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한 도박카드도 아니었습니다. 그 카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성경 카드였습니다. 그 성경카드에 적힌 말씀이 바로 시편 23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쓴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이는 신구약 66권 1189장의 말씀 가운데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모든 성도님들이 이 시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암송하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시편 23편은 목회자들이 가장 자주 설교하는 본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면 슬픔과 절망과 불안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하늘의 기쁨과 소망과 능력과 평안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프레드릭 마이어 박사는 한때 깊은 좌절과 우울과 절망 속에 빠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23편을 읽는 가운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무려 20년 동안이나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시편 23편을 암송하고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고(故) 문준경 전도사님의 복음의 씨앗인 내적 치유상담의 전문가이신 정태기 목사님은 하루에 50번씩 암송한다고 합니다. 반드시 강의하기 전에 5번 정도는 암송하며 기도한 후 강단에 선다고 합니다.
또한 정태기 목사님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좋습니다."라는 말을 하루에 300번 정도 6개월에서 3년 동안 스스로 말하라. 그러면 자율신경은 허상과 실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작동하여 자연스럽게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3년 후에는 고백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고 역설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은 폐암말기의 환자인 성도님이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교회에 찾아와서 상담해왔을 때, 베드로전서 2:24절의 말씀을 1,000번 쓰고 큰 소리로 읽고 믿게 함으로 환자가 치료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빛이요, 능력이요, 생명입니다.
히브리서 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대로 믿고 읽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며 살 때, 우리의 상상과 이성을 초월하는 이적과 치유와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광주대암교회에서 그렇게 고백하면서 기적을 이루어 왔습니다.
우리는 시편 23편을 인생의 지팡이, 삶의 지팡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팡이는 사람이 쓰러졌을 때에 짚고 일어서는데 큰 도움을 주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시편 23편은 거칠고 험한 인생길을 가다가 지쳐서 쓰러졌을 때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23편을 순례자의 하룻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여정을 인생의 새아침이라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시편 23편의 시를 읽어보십시오. 반짝이는 눈물처럼 청조하고, 진주이슬처럼 영롱한 영감적인 시성(詩聖) 다윗의 아름다운 노래는 시편의 다이아몬드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우는 사람에게는 치료를 주실 것입니다. 불안해 잠 못 자는 사람에게는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을 던지는 생명의 찬가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시편의 유명한 119편을 하나님의 낙원에 심기워진 생명나무라고 비교한다면, 이 시편 23편은 생명나무 주변에 만발한 아름다운 꽃들과도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헨리 비춰 라는 유명한 설교가는 “이 시는 시편의 나이팅겔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 시는 이 세계의 공기 전체를 희열에 넘치는 기쁨의 노래가 되게 한 시(詩)입니다.
“사람이 낳을 수 있는 시 가운데 이 시보다 더 아름답고 위대한 시는 지상에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은 이 시를 가리켜 “신음하며 슬퍼하는 고통의 한밤중에 더할 수 없이 부드럽고 감미로운 사랑의 음성으로 소망과 기쁨을 싣고 오는 종달새의 합창과 같은 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을 제외하고는 성경의 한 부분이 이 시(詩)만큼 성도님들의 생애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인생의 석양이 깃든 황혼의 들녘에서 젊은 날의 고통에서 건져주셨던 목자 되신 야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드려지는 감사와 감격의 시요, 찬미이며, 간증의 노래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눈을 감고 지나온 여러분들의 인생 여정을 묵상하면서 이 시를 읽어보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그의 신앙의 새아침에부터 완성의 저녁까지 놀라운 은혜와 영감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목자는 우리들의 주님이요, 양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의의 길은 성도들이 주님을 따라 행진하는 인생순례의 여정이며, 하룻길 같은 삶의 행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십자가 아래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광의 위대한 미래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생활이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그 때문인지 시편 23편의 앞에 있는 시편 22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언덕에서 시작하여 천국까지 걸어야 할 성도들의 생애 여정이 지나고, 승리의 하룻길에 동터 오르는 새벽이 오면 성도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하고도 흥겨운 감격의 노래가 있습니다.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둔 밤이 지나고, 동터 오르는 새아침의 여명이 밝아옵니다. 이 처음 한 구절에서 구원의 새아침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둡고 지루하고 캄캄한 흑암의 한 밤 중에 사망의 잠을 깨고 눈을 떠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과 밝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임을, 아버지임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최초의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 영원하시며, 목자이신 여호와, 이 여호와란 말은 구약 성경에 6,000번 이상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가장 특징적이고 유일무이한 신적인 명칭입니다. 이 여호와를 개인의 목자로 삼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I Want nothing).
하나님은 결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우리들의 목자가 아닙니다.
다윗과 하나님과 관계는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한 개인적으로 친숙하고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우리도 만물을 운행하시는 만유의 주 하나님 여호와를 개인의 목자로 삼고 살 때, 그분이 우리 각 사람의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시고 계심을 발견하는 그 순간 다윗처럼 “(1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는 만족의 찬미가 저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부족한 것 투성이고 불만족한 광야입니다.
아프리카를 보십시오. 물도 부족합니다. 식량도 부족합니다. 사랑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합니다. 건강도 부족하고 부족한 것투성입니다. 불만족한 광야 같은 벌판입니다. 지금 북한을 비롯한 지구촌 여러 곳에서는 물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해서 아비귀환하며 울부짖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족함으로 기갈과 궁핍의 아우성만이 가득차 있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족을 채우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의 참 목자가 되시기 전까지는 행복의 파랑새는 잡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은 성취되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 선한 목자를 만나야 합니다. 행복한 동산교회 좋은 교회, 좋은 성도님들, 좋은 목사님이라고 소문만 나면 부흥하게 됩니다.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잘못된 성도를 만나면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보아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하루아침에 붕괴되어 버립니다.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모시고 살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지 않는 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져 버린 바벨탑의 숙명에 처하여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주님 한 분만 우리 안에 계시면, 우주를 창조하신 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라면 오히려 부족함이 없는 만족함을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고백했던 한 성도는 다음과 같이 찬송하고 노래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찬송가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 다 버렸네 영 죽은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라고 찬송합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국민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45%가 자신을 하층민으로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자기는 상위계층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국민은 57%에 달했습니다. 대학생들은 대학 졸업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위기(危機)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희망이 없음에 당혹해하고 이런 현실에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사람, 희망 없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사회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철마다 희망을 보장해 주겠다는 데 자주 기만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념적인 희망 제시에도 실망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희망은 오직 세상의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제자들이 선뜻 “나를 따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와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선 것도 그분에게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도, 마가도, 누가도, 요한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세무서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준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소망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나 갚아주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새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사람을 약속하시고, 새 하늘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에 절망과 실망할수록 온 인류의 참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주님 안에 희망과 참 소망과 내일이 있고, 구원이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어찌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수많은 직업 가운데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이 목자로서 친히 양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곰이나 사자와 같은 짐승들과 싸우면서 양들을 지킨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자가 양을 돌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친히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기에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침의 식탁
아침의 식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2절 전반 절, 그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 도다.”
거기 싱싱하고 신선한 꼴들이 호흡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식탁입니다. 이제 우리는 편히 누워서 즐거운 회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축복의 교제를 원하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오십니다.
요한 사도는 계시록 3:20절에서 목마름이 없는 생명의 식탁으로 우리를 이렇게 초청합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식탁 위에는 여러분이 일찍이 맛볼 수 없었던 별미의 떡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거기에는 각양각색의 싱싱한 과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패할 줄 모르는 제일의 소금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 5:13)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준비된 풍요로운 주님의 식탁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만족한 생의 풍요한 회식을 즐기는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니 마침 이 식탁에는 음료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생수의 물은 신기하게도 주님의 식탁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목마름을 단번에 해갈해주는 놀라운 생명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물에 대해서 증언하시기를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식탁에서 예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즐기는 것입니다.
아침의 휴식과 산책
푸른 초장의 회식이 끝나면 마냥 즐겁기만 한 새아침의 산책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2절 후반절 ...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목자로 삼는 주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새 아침의 휴식과 산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을 이제 여호와 목자 되시는 주님은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인도한다’는 히브리 원어의 동사는 ‘우리를 한 곳으로 급하게 몰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의 참 의미는 “서서히 자율적이며 기쁜 심정으로 가도록 권유하시며 우리의 앞에 서서 정다운 안내자가 되어 이끌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쉴만한 물가란 다른 말로 “잔잔하고 고요한 물가”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되시는 목자는 우리를 물살이 격류 하는 물가나, 썩은 물이 고인 호수나, 분노한 바다나, 성난 폭포수와 같은 물가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주의 백성들인 양들은 만족할 만한 물을 먹습니다. 거울처럼 투명하며,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고,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곱고 싱싱한 원색의 물을 마시고 평안과 안식을 체험합니다.
이제 우리는 출발을 위한 준비해야 합니다.
3절.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지나간 밤사이에 우리가 입을 상처는 너무도 컸습니다. 너무도 피곤하였습니다. 모든 용기와 위로와 능력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회복이 필요하고, 새로운 길을 떠나가기 위한 준비와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이란 단어는 때때로 ‘자아’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전인격 존재 전체를 뜻합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저 타락한 세상에서 죄악된 우리의 영혼만 죽어 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도 매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려졌던 실낙원 된 우리들에게 어느 날 선한 목자 되셔서 행복한 동산을 준비하신 예수님과 만나는 순간 놀라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를 그리스도께서 살리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위대한 체험이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할 오후의 행군과 전투를 생각하며 주님의 양된 우리의 전존재를 소생시켜 주는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분주한 새아침의 준비가 우리를 위하여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준비는 은총이요, 축복이요, 선물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여호와 하나님, 위대한 목자의 도움으로써 비로소 모든 것은 소생되어진 것입니다. 회복되어진 것입니다. 이 소생의 능력은 풍성한 아침 식탁에서 배불리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시1:2)이라고 고백합니다.
영혼의 소생과 회복과 생명의 성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믿고 지킴으로써 찾아옵니다. 시 1:3절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삼고 사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복을 주십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ex) 제가 어렸을 때에 살았던 별량 하림에 저희 집 뒤 동산과 앞산에 소를 먹이러 올라가면 푸른 풀밭이 있습니다. 소는 풀을 먹고, 저는 그 푸른 풀밭에 누워서 높푸른 창공의 하늘을 바라보며 다윗과 같은 부푼 꿈을 꾸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내려가면 운천 저수지로부터 내려오는 냇가에 가서 목욕도 하고, 쪽대로 붕어와 미꾸라지와 매기를 잡으며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자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행복한 삶을 사는 푸른 풀밭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셨습니다.
목회란 무엇입니까?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며 자행자지하며 살던 사람들이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함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소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작년 9월부터 매주 광양을 왕래하며 영혼을 소생시키는 생활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절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늘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賞)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셨습니다.
잔이 넘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세력들이 대적하여 달려들어도,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은 우리를 위해 축복과 은총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기적과 치유의 기름으로 머리에 부어주심으로 내 잔에 주님의 은혜가 차고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한 목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보살펴 주시는 분(6절)이십니다.
다윗은 “나의 평생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영원히~ 평안을 누리며, 샬롬을 누리며, 살아가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 신앙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인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절망과 불안과 슬픔의 자리에 쓰러져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지팡이가 되는 시편 23편 축복의 기도문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시기를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23편 1-6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
2.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3.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4.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5.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 기도 >
선한 목자 되시고 인생의 지팡이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삼고 살아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절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곳에서 건져주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원수의 목전에서 상(賞)을 차려주시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심으로 소원을 만족하게 하옵소서. 잔이 넘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윗처럼 여호와의 집에서 평강(平康)을 누리며, 영원히 사는 강복을 내려 주옵소서.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통성기도제목>
1. 주님, 인생의 지팡이 되는 시편 23편의 선한 목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2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 좋은 배우자, 좋은 스승, 선한 목자를 만나게 하소서.
3. 주님, 우리 모두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 시편 23편 [공동번역] 야훼는 나의 목자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수험생의 시편 23편
주는 나의 조력자시니 내가 두려움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조용한 시험장에 들게 하시며, 나의 머리를 총명하게 만드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지식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 시험지와 문제들이 실로 어렵게만 보일지라도 나는 걱정하지 않으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평화와 고요함이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감독관 앞에서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주께서 나를 침착한 마음으로 채워주시고, 내 생각을 흐르게 하시나이다. 선생님들의 선의와, 그들이 가르쳐 준 모든 것이 이제 결실을 보리니, 내가 영원히 주의 이름을 찬양하기 위해 살리라.
- 남아프리카 픽톤 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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