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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2009년 경주 일요산악회를 따라 낙남정맥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한남금북 완주와 금북 정맥, 한남정맥, 한북정맥의 몇구간을 진행을 했었다.
이후 백옥회와 백두대간, 낙동정맥, 호남금남, 호남, 금남 정맥을 거쳐
오늘 다시 한남금북정맥의 끝자락인 칠장산에 도착하게된다.
나 개인으로서는 내년 여름 전에 완주를 할 것 같고,
백옥회 전체로도 내년을 넘기지않고 1대간9정맥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산길따라 한발한발 걷다보니 대업의 완성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
남은 정맥길 또한 무탈하게 열심히 걷자.
"화이팅 ~ 나의 인생, 나의 산길."
◀ 산행도우미 ▶
▶ 건설전문공제조합 기술교육원이라는 입간판이 서있는 곳에서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한다.
네비정보 충북 음성군 금왕읍 금일로 487
▶ 잠시후 기술교육원 정문을 지나 좌측 길로 진행을 한다.
▶ 이리저리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보면 삼아물산 간판이 있는 곳에서 잠시 산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도로를 헤맨다.
▶ 주(건원) 입간판이 있는 곳에서 583번 도로를 한번 더만난다. 우측으로 50여미터 진행을 하다가 시그널이 걸린 길로 접어든다.
▶ 아스팔트 도로인 대정고개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으로 접어들게된다.
▶ 그러나 다시 대야고개를 건너자 밭둑길이 이어진다.
▶ 푹 파진 안부를 지나 잠시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만난 망이산성 남문터.
▶ 남문터를 지나 잠시후 마이산 정상석이 있는 곳이 나오지만, 좀더 진행을 하다보면 또 하나의 마이산 정상석이 나오게 된다. 두곳의 높이는 거의 똑같다.
▶ 마이산에서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오다보면 보이는 산이 황색골산이다.
▶ 중부고속도로 위 화봉육교를 지난다. 이제 경기도 안성 땅으로 접어들게된다.
네비정보 충북 음성군 삼성면 금일로 1387 /충북 음성군 삼성면 대사리 350-6
▶ 육교끝에서 우틀 좌틀하다보면 시그널이 산으로 안내를 한다.
▶ 화봉육교에서 20분거리에 있는 황색골산은 해발 352.9미터 준희표지기가 부착되어있다.
▶ 돌탑이 있는 곳이 저티고개로 옛성황당터이다.
▶ 잠시후 365봉이 나오고 2차선 도로인 당목고개를 지난다.
▶ 당목고개를 지나면 새로운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도로 절개면을 따라 내려서면, 아직 개통하지 않은 4차선도로로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있다.
▶ 우측 시멘트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산으로 이어진 시그널이 있으며, 몇개의 봉우리를 지나다 만나는 봉이 도솔산 비로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봉우리이다.
▶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며 길은 남쪽으로 급하게 휜다. (알바주의)
▶ 안성 c,c 입구가 있는 곳이 걸미고개이다.
▶ 원 정맥길은 우측 능선이지만 안성c.c에서 조경을 해놓아 정문을 따라 진행을 한다.
▶ 좌측으로 클럽 상단 주차장이 보이면(하부 주차장은 클럽직원용으로 추정된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산아래쪽으로 진행을 한다.
▶ 시그널이 달린 나무가지 아래로 진행을 하면 흙과 나뭇잎에 묻혀버린 배수관을 따라 길은 이어진다.
▶ 안성 c.c 홀을 따라 정맥길은 이어진다. 멀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홀 옆이다. 그러다가 좌벼울 고개에 도착을 한다.
▶ 이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70봉이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30분정도 진행을 하면 3정맥분기점이다. 이곳에서 한남금북정맥의 끝이 난다.
▶ 칠장산에 잠시 올랐다가 칠장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 칠장사는 유래가 많은 절이다. 곳곳에 볼거리가 숨어있으니 잘들 찾아보시길.
네비정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031-673-0776
대구를 출발한 차량은 경부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이름도 생소한 평택제천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음성i.c를 거쳐 잘 트인 국도를 지나더니 금새 지난번 도착지점인 고갯마루에다
회원들을 내려 놓는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건설업을 영위하는 조합원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건설업의 건전한 발전을 목적으로
1988년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되어
각종 건설 보증과 자금의 융자, 어음할인, 공제상품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ㆍ임대ㆍ투자 사업을 수행하는 건설전문 금융기관입니다."
라는 소개글이 있고,
산하단체인 듯한 기술교육원의 홈페이지는 따로 만들어져있다.
이런 취지를 가지고 운영하신다고.
등산화 끈을 메고
등산 스틱의 높이를 조절하고,
몸속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애들 배출시키고,
긴장된 근육을 쭈욱 펴는 것으로
출발전 준비운동을 대신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것도 찍사의 본분.
"사진은 모르게 찍는 것이 잘 나온다."
어설픈 아마츄어 사진가인 감포의 시덥지 않은 말에도 맞장구를 쳐주는 친구같은 이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걷는다. 그리고 오늘도 찍는다.
자랑스럽게 펼쳐진 플랭카드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칠장산을 향하야 출발 ~
중간 출발하는 세명의 대원들은 버스를 이용하여 수레티고개로 이동을 한다.
화봉육교 아래로는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중부고속도로는 원래 하남에서 청원까지였으나
대전통영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이와 통합됨으로써 하남에서 통영까지 총연장 332.5km의 길이를 가지게 되었다.
이곳 수레티고개는 제법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는데
수레티고개를 한자로 바꾸면 수레 車, 재갈 峴 이라하여 차현고개라 불리운다.
왠지 귀에 익숙한 지명이 아닌가?
그렇다
고려의 왕건이 나라를 세우면서 나라의 안녕을 위해 지켜야 할 항목을 열가지를 만드는데
훈요십조라고 불리운다.
그중에
차현(車峴 : 車嶺) 이남 공주강(公州江 : 錦江) 밖은 산지(山地)의 형세가 모두 거슬리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으니, 그곳의 인심도 또한 그러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등용하여 권세를 쥐게 하면 혹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궁예는 변란을 피해 10살 까지 칠장사에서 자라게 된다.
그런 연유로 청주지방 인근사람들을 매우 우대하여 귀족으로 철원으로 이주케하여 정치적 기반으로 삼으나
왕건일파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궁예의 추종세력들은 크나큰 분노와 반감을 가졌고,궁예의 정치적 고향이자 왕조의 기반이었던 청주지방을 중심으로
임춘길, 이흔암, 선장 형제 등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서
왕건이 그 지방 호족들에게 동물의 성씨를 내리면서까지 탄압하였고
일부 세력은 후백제에 투항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청주 위쪽 차현고개 아래의 진천은 고구려/백제 멸망에 앞장선 김유신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태조 왕건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김유신을 안 좋게 평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훈요십조에 차현이 등장하게 된다.
또 한가지 더.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산맥을 이루던 산맥 중에 차령산맥이라고 기억들 나시는가?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태백산맥의 오대산(五臺山)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을 남서 방향으로 뻗은 산맥.이라고 버젓이 기록이 되어있다.
차령산맥이라는 어원의 유래는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에 의해 현재 산맥 체계를 만들면서 차령산맥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인 차령[240m]에서 이름을 따 차령산맥이라 불린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1대간 9정맥의 산 체계와는 전혀 다른 산맥의 이름을 우리는 배워왔던 것이다.
사연많은 수레티고개를 뒤로하고
산으로 향한 걸음을 시작했다.
3월이면 가장 먼저 숲속에서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으니 바로 생강나무이다.
생김새가 산수유와 비슷하여 혼동을 하기 쉽다.
가지를 꺽으면 생강내음이 난다해서 생강나무로 불리우는데 연한 잎은 먹을 수 있다.
타박상이나 산후풍에 이용하는 민간요법이 있는 모양이다.
바람이 고요한 날에 생강나무가 많은 곳을 지나다보면
생강나무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향수 비슷한 내음이 나는데
남성용 스킨 내음 비슷하다고 하면
냄새에 관한 센스가 떨어진다고 뭐라 하실련가.
황색골산은 출발히고나서 땀이 약간 날듯 말듯 한 지점에 위치한다.
도고리봉이라고도 불리우는 모양이다.
이어서 나오는 356봉은 삼박골산.
고만고만한 길이 이어지다가 2차선도로인 당목고개를 지난다.
당목고개를 지나자 두릎나무가 많은 임도와 시그널이 달린 산길이 나온다.
순간 갈등하다가 임도길을 택했는데
산길로 붙는게 옳은 선택이다.
새로난 죽산면 두교리와 진천을 이어주는 도로가 아직 개통전이다.
2011년 개통예정이었으나 하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게된 것으로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4차선도로이다.
도로를 건너면 좌측 절개면으로 시그널이 붙어있으나 무시하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다 시그널이 붙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
4차선 도로를 지나면 역시 고만고만한 길이다.
높지도 않고 걷기 참 좋은 그런 길이다.
깔비가 조금 덮혀있고
하늘은 맑으며, 약간 바람이 있는 봄볕을 쐬면서 걷기 좋은 딱 그런 날이다.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람이 적게부는 봉우리 한모퉁이를 차지하고 라면을 끓인다.
무거운 버너, 코펠, 물 등을 지고다니는 일구월심님의 고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적당함(?)과 타협을 즐기는 산행을 하는 해피조의 점심시간은 여유가 있어 좋다.
씹고 뜯고 마시고 즐기는 여유있는 점심시간이 끝나자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시그널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4년을 버텨 주었구나."
4년전 같이 걸었던 동료들이 떠올랐다.
수월당 형님, 도름바우님, 손병희 은사님, 묵언님 등
아직 4년전 모습 그대로 가슴 속에 기억되어 있었다.
여유있는 점심후 다시 걸었다. 최대한 여유있게 걷는다고 걸었는데...
개불알꽃은 겨울에도 자주 피어있는모습을 보인다.
나즈막하게 땅에 엎드려 차가운 바람을 피하는 방법을 배웠다.
양지바른 곳 제법 세를 갖춘 개불알꽃을 찍은 곳이 걸미고개 근처였다.
안성컨튜리클럽 정문 앞.
속도를 높힌 채 오가는 차량들의 숫자가 제법 많았다.
안성c.c의 조경으로 변해버린 정맥길을 포기하고,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길게 늘어선 정문으로 곧장 걸어갔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산으로 난 길을 향하는 산꾼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대한 늦게 진행을 하고자 다리 쉼도 많이 하였건만
모두 같이 기념사진을 찍기는 어려워보였다.
벤치가 놓여진 나무아래서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과일까지 몽땅 털어 넣고서야 일어섰다.
3정맥 분기점까지는 은근히 오르막이다.
도착한 3정맥 분기점에는 사진 촬영중인 분들이 있었다.
형색으로 보아서는 정맥하시는 분들은 아닌것 같았고, 일반 등산객으로 보였다.
3정맥 분기점에서 칠장사까지 내려온다.
중간중간 꼬맹이들 손잡고 올라오는 분들도 보이고
새가 쪼았는지 벌레가 파먹었는지 마른 나무에 속이 들어난 곳을 지나
산죽들이 울창한 비탈을 지나자 칠장사 경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한전은 공사중.
칠장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나한전의 위치로 보아 확장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막걸리 두병이 놓여진 샘터 옆
나한전 탱화 한점에 삼천만원이라는 기부 안내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통상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제자를 모신 16 나한전이지만
칠장사는 혜소국사와 칠곱명의 산적을 모시고 있다.
조금은 특별한 이곳의 나한전이 더욱 특별하게 된 것은 어사 박문수와 관련이 있는데
박문수는 과거 3수생이었다.
거푸 2번낙방하고 이번이 세번째 과거였다.
집을 떠나 올 때 어머님이 하신 당부가 귓전에 맴돌았다.
"얘야. 이 찹쌀유과로 칠장사 나한전에서 꼭 기도를 올리거라."
정성스럽게 기도를 올린 박문수는 깊은 잠이 들었고
꿈에 나타난 혜소국사에게서 과거 시제인 낙조와 여덟행인 답안 중에서 일곱행을 받아들었고
과거 시험에서 나머지 한행을 자신이 채우게 된다.
이것이 몽중등과시인데 (뇌물(?)주고 정답을 산 것이 되나?)
이 설화 덕분에 시험을 앞둔 전국 학부모들의 등쌀로 칠장사 나한전은 비좁아지게된다.
나한전 조금 아래에 혜소국사비가 있는데,
비신의 옆면에는 용이 조각되어있다.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는 보물 488호이다.
건립시기는 고려때인 1060년(문종 14)인데
재미난 설화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적장인 가토(加藤淸正)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크게 꾸짖자,
화가 치민 가토가 칼을 빼서 베니 홀연히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으므로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한다.
혜소국사의 비신(碑身)은 가운데가 갈라져 있는데 그때 갈라진 것이란다.
칠장사 대웅전은
건립연대는 미상이나 여러번의 중수를 거쳤고
조선후기 소규모 사찰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단다.
고등학생 학부모인 경희씨는 안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신발을 주섬주섬 벗고서는 절을 하러 들어간다.
아마 산행중에 들었던 박문수 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익(?)했나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이다.
지장전, 시왕전, 쌍세전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지장전이라 함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셔서이고,
시왕전이라 부름은 사후의 죄과를 판단하는 열명의 왕을 모시는 곳이여서이고,
쌍세전이라함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전각이여서이다.
주로 대웅전의 우측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나
칠장사의 명부전은 좌측에 위치를 하고 있다.
명부전의 벽에는 궁예의 설화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궁예가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활쏘기를 배웠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
태조왕건 드라마로 유명해진 관심법은
미륵관심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초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는 수행방법의 일종이었다.
혜소국사와 선인으로 거듭난 일곱명의 도적과 관련된 설화도 그려져있고,
벽초의 소설의 주인공인 임꺽정도 칠장사에서는 전설이 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안목을 키웠주었던 스승 병해대사와 10여년을 머물던 곳이 이곳이었고,
병해대사 사후 극락전에 꺽정불을 모신 곳도 이곳이었다.
요사채 한쪽 벽에는 임꺽정 촬영 당시 찍었던 사진이 색바란채 걸려있었다.
세기의 부도가 서있는 앞쪽 너른 공터가 궁예가 활을 배웠던 공터라고 하는데...
글쎄올시다.
삼층석탑옆 몸의반쪽은 햇볕에, 나머지 반쪽은 그늘에 담근 시커먼 개 한마리가 누워있다.
털복숭이 개는 짖지도 않고, 제를 부르는 사람들마저 귀찮다는 듯
꼬랑대기 한번 털썩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하는 꼬라지가 웃겨 다시 한번 불러보니 이번에는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세상꼬라지 보기 싫어 돌아 앉은 부처가 너로구나.
합장한번 해주고 쿨하게 돌아섰다.
임진왜란이 끝이 나고 1600년 선조의 첫번째 비인 의인왕후가 승하한다.
그 뒤를 이어 인목왕후가 선조의 계비(두번째 부인)이 되고, 1606년 선조의 적자인 영창이 태어난다.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의 입지가 좁아진다.
선조의 뒤를 이어 광해군이 임금이 되자
영창대군은 죽임을 당하고,
인목대비는 영창대군의 위패를 칠장사로 모셔와 제를 지내고(그때 넘어온 고갯마루가 바사리열두고개 之라고 마지막 구간에 보셨으리라)
궁궐로 돌아가서
호국삼부경 중의 하나인
금광명최승왕경을 베껴쓴다(이 글은 현재 극락전 벽에 붙어있다고 한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목대비가 복원이 되자
영창대군과 아버지인 김제남을 위한 원찰로 삼아 중수하고
직접 쓴 칠언절구를 주지스님에게 하사하니
그 글이 바로 위의 글이다.
"늙은 소는 힘을 다한 지 이미 여러해 /
목은 찢기고 길마는 뚫려 잠만 자고 싶어하네 /
밭갈이는 이미 끝나고 봄비는 충분히 오는데 /
주인은 어이하여 괴로워하며 또 채찍을 드는가"
삼불회 괘불탱은 1710년작으로 보물 125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오불회괘불탱은 국보 296호
오불은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불·약사불·아미타불의 오불(五佛)을 가르키며
괘불은 외부에서 사용할수 있게끔 불상을 걸수 있도록 만든 그림이고,
탱은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나 행위를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절 이곳 저곳을 뒤지고 있는데
등산 배낭을 멘 누군가가 있어 돌아다보니 재호형님이다.
10km 뒤에서 출발을 하였고
중간에 알바까지 했다더니 벌써 도착을 했다.
참 대단하신 분. ^^;;
뭐 이제 대충 둘러보았으니
술익는 냄새 맡으러 주차장으로 이동.
술익는 냄새는 커녕.
막걸리파는 변변한 집도 없다.
물어물어 막걸리 집을 찾았더니
영천서 시집왔다는 아지매라면서
고향까마귀라고 반가워하신다.
두부김치 한접시에다 막걸리 몇병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있는데
한분두분 도착을 하신다.
그냥 돌아설려고 했더니
칠장사 쇠당간이 내 눈길을 잡는다.
칠장사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와 갑사(甲寺)에서만 볼 수 있는 드문 문화재이다.
칠장사의 풍수가 행주형(行舟形)이므로 배의 돛대를 상징한 이 당간으로 강한 추진력을 얻어야 절이 잘된다나.
앞으로 몇번은 더 보아야 할 칠장사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자.
오후부터 바람이 세차게 분다고하더니
정확했다(빗나가길 바랬는데)
오랫만에 야외에서 준비해 온 음식으로 막걸리 한잔하려고 했더니 날씨가 안 도와준다.
어쩔 수 없이 바람이 잔잔한 곳을 찾아 이동.
광혜원 어느 모통이에다 차를 세우고서는
두치와 돼지머리 누른 것을 안주로 하산주 한잔.
길어진 봄날의 오후에
경기도 남부 어느 곳을 걷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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