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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영 '비움과 채움의 논리' 중 발췌
시 창작에서의 문학성 문제
우리 시의 문학성과 현대적 감각의 문제
시 가운데는 별의 별 시가 다 많은 것 같다. 싱거운 시부터 너무 짠 시, 유행가류에서 보는 시, 푸념을 늘어놓은 시, 사춘기적 어설픈 사랑을 담은 시, 치기어린 시, 20-30년대의 타령 시, 아동시보다 더 아동스럽지 못한 시 등 색깔도 여러 가지다. 이승훈 님의 시 <시>에는 별의 별 시가 다 모여 있다. 반어적인 구사의 이 시가 의미하는 것은 세상에는 별의 별 시가 다 많다고 하면서도 진정한 좋은 시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우리 시단을 조롱하는 뜻으로 읽혀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나아가 느낌과 감정, 통찰, 사유 등 내용이나 형식에서 다양하게 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시는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시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무장해 나가야 하는 측면도 있다. 소재면에서도 착상면에서도, 사상적인 면에서도, 늘 새로운 것으로 도전받아야 한다. 시인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언어예술가가 아닌가.
2000년대의 시점에서 우리의 현대시는 낭만주의시도 아니고, 모더니즘시도 아니고, 주지주의시도 아니고, 포스트모더니즘시도 아니다. 아니 이런 여러 이즘ism)의 요소들이 서로 용해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전대의 외우고 노래하는 시, 배설과 설사의 시,치기어린 감상주의에 빠지는 시의 시대는 지났다. 말하자면 지금 2000년대의 시는 생각하는 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시, 혹은 새로움과 통찰을 주는 시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혹여 애송적 과거의 시 창작 방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시인은 예술가의 눈과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날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안주한다면 시인, 예술가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리라.
1. 새로움과 관련한 시 문학성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시인은 남들이 생각한 것을 다르게 드러낸다. 지각의 자동화와 같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고, 일반적으로 보는 시각, 생각의 방법을 달리한다. 견자(見者, voyant)의 착란(亂)과 같은 것, 곧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고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여기에 예술 존재의 당위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진달래 / 강윤후
진달래는 고혈압이다
굶주림에 눈멀어
우글우글 쏟아져나온 빨치산처럼
산기슭 여기저기서
정맥 터질 듯 총질하는 꽃
진달래 난장질에
온 산은 주리가 틀려
서둘러 푸르러지고
겨우내 식은 세상의 이마가
불쑥 뜨거워진다
도화선 같은 물줄기 따라
마구 터지는 폭약, 진달래
진달래가 다 지고 말면
風病 든 봄은 비틀비틀
여름으로 가리라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넓혀 새롭게 대하려고 하는 애정과 열정, 교감적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 위의 시에서 '진달래'는 고혈압이고, 빨치산처럼 산기슭의 정맥이 터질 듯 총질하는 꽃'으로 낯설게 장치되어 있다. 나아가 '주리가 틀려 서둘러 푸르러지는 시적 발전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결구에 가서 '폭약'처럼 번져가는 진달래 꽃산의 풍경 묘사를 보라. 얼마나 장엄하고 엉뚱한가. 바로 착란의 시작(詩作)이요, 낯설기하기의 (displacement)에서 빚어지는 상큼한 비유다. 시는 이렇게 새로움의 시각으로 충격을 주는 데서 긴장이 발동한다. 충만한 정신의 자유, 우리는 이를 상상력이라 말한다. 시인의 상상력은 부지런하고 자유스럽지 않으면 안 된다.
예시) 함기석 뷰티샵 낱말과일들
문학 작품에서의 새로움은 시만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낯익은 대상에 이름을 바꾸어 붙이거나 어떤 것을 마치 처음 본 것처럼,.처음 일어난 사건인 것처럼 새롭게 묘사한다. 어리둥절하게 혹은 다른 시점, 동물의 시점으로 바꾸어 친숙하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의 경우 의인화를 통해서 새로움이 탄생된다면, 그의 단편 <콜스토머Kholstomer>에 나오는 아래 예문에서의 화자는 말(馬)이 되어 작품의 새로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찐득한 교감의 서정
예시) 권혁소 곰배령
정영주 아버지의 도시
이대흠 발전기
풍부한 연상과 상상력의 전개
나의 부실한 연상력,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 우선 내 마음을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아집과 고집을 아낌없이 헐어내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각의 갱신화, 착란의 눈을 가진 견자가 되어야한다. 말하자면 시인으로서의 또다른 마음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곧 자기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차별화의 전략은 하나의 음식점을 새로 내는 것과 같다.
먼저 글 쓰기에서 소재의 차별화 전략이다. 시(글)의 새로움과 충격이 있는 독특한 시를 쓰려면 나만의 독특한 음식을 개발해서 명가로 만들어 뭇 식객들의 시선을 끌여들여야 한다. 요즈음 언론과 방송에서 보여주는 맛 기행집의 생리를 터득하라. 줄을 서서 기다리는 미식가들, 그런 독자 들을 심리를 파고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소재의 선택은 7~80% 작품의 성공률을 결정짓는다.
예시)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수명통장
복효근 어느 대나무의 고백
정호승 여름밤
임영조 성냥
제목은 참신한가?
제목은 시나 수필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독자들은 제목을 보고 소설을 선택하고, 수필을 읽으며, 또 제목을 통해 시의 맛을 만끽한다. 그러니 시의 제목도 남다르게 새롭고 신선한 맛이 있어야 한다. 가급적 제목도 이제까지 보지 못한 제목을 써야 한다. '유감 '실제(失)', '무제(無題)' 같은 제목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이 좋다. 제목은 곧 시의 내용과 독자의 상상력을 밀고 당기는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본문과 제목 사이의 상상의 탄력, 긴장감의 묘미, 시적 내용이 환기하는 힘 등이 바로 제목에서 큰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비유나 오브제(objet)의 언어 미학이 작용한다.
대체로 다음의 시편들은 좋은 제목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바람의 그림자> (정현종), <단단한 고요>(김선우), <구름의 사춘기> (최문자>, <부드러운 칼>(정호승), <자작나무 내 인생>(정끝별), <얼굴 반찬>(공광규), <별국>(공광규), <자연산 가수>(김선태), <긍정적인 밥><함민복), <달의 눈물>(함민복), <하늘 골목><손태수), <어느 대나무의 고백>(복효근), <고향을 염하는 시간>, <꿈꾸는 역>(황외순), 〈역에서 비발디를 만나다>(유영선), <쌀눈, 따뜻한 모서리>(유영선), <풍경 재봉사>(김민철), <그늘들의 초상> <최호빈),<수명통장>(이생진), <눈물은 어떻게 단련
되는가>(박해석), <고목나무의 리모델링><신순자), <여기는 구름세탁소에요>(심인경)
재미와 즐거움으로서의 시 문학성
실상 시에서의 재미나 즐거움은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이도 예기치 않은 신기함, 새로움과 결부되어 있다. 지금 우리의 현대 시단도 치기어린 사랑 타령이나 애상적 그리움이나 이별의 정한을 벗어버리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고상한 엄숙주의의 시풍으로부터도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영화의 경우, 재미나 즐거움이 없으면 거들떠보지 않듯이, 시나 수필, 소설이라는 것도 재미가 없으면 들여다보지 않는다. 시드니(P. Sidney)가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다"라고 했지만, 점점 '즐거움' 쪽으로 취향이 기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시의 즐거움과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원거리 비유에서 오는 장력(tension)의 힘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올린다
박성우 <콩나물> 전문
중의적 표현 기법의 언어유희
시에서의 즐거움, 재미는 비유적 상상력 외에도 여러가지에서 온다.
그 하나는 언어유희(pun)와 같은 대표적인 중의적인 표현이다. 시에서 즐거음을 수반하는 언어유희는 '동음이의어'나 발음의 유사성'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자동차들이
빵!
-한 개만 달라고 졸라댑니다.
빵빵!
두 개만 달라고 졸라댑니다.
빵빵빵빵빵!
-많이많이 달라고 졸라댑니다
문삼석 <네거리 빵집 앞> 전문
즉물적 체험의 재구성
시를 읽는 재미는 상대방 체험의 깊은 심리나 사유를 훔쳐본다는데 있다.
대개의 시인들은 체험에서 빚어진 상상력으로 변형된 현실, 또는 잠재된 내면에서 솟구쳐 나온 경험을 재구성하여 시를 만들어간다. 그러한 시작 행위에서 시인들은 저마다 다양한 카타르시스를 얻고, 또한 독자들도 자양분을 섭취하게 된다. 여기에서 시의 즐거움은 순간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힘을 갖는 이유는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면서 불가해한 삶과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해갈시킬 수 있고 욕망의 좌절이나 현실에서 오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학과 풍자, 위트
우리 시단에서 엄숙주의를 벗어나 시에서 웃음이나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노력은 8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이른바, 황지우, 장정일, 박상배,유하, 김영승, 박남철 등에 의해 주도된 일상시, 도시시,해체시류가 그러한데, 이들 시들은 기존의 시풍과는 달리 새롭고 다양한 '변모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 시들의 소재도 광범위한 소재를 다루면서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능란한 궤변으로 까발리거나 과장하는 등의 풍자(satire)를 쓰기도 하고, 현실을 익살스럽게 드러내는 해학(human)적인 면도 강했으며, 엉뚱한 표현의 아이러니(irony) 시풍까지 이제까지 없었던 다양하고 풍요로운 시작의 무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패러디 수법을 의식적으로 적용하기도 했고, 무협지 같은 대중문화를 시에 끌어 들여 위트(wit)의 미학을 살려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시선을 끌었다.
가치있는 감동과 시 문학성
봄은 오지만 나는 볼 수 없다' 는 감동 구사법
많은 시인들이 정서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다양한 수사적 장치나 남다른 표현을 구사한다
체험적 성찰의 진솔한 깊이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오세영 모순의 흙
정호승 밥그릇
교감적 합치의 열락
마지막으로 가치있는 감동은 자아와 세계의 합일에서 오는 것 같다.
시는 한마디로 감정의 표현이다. '서정'은 문자 그대로 감정의 감정 표현을 주로 하는 문학 양식이다. 이때 가치 있는 감정을 형상화한다. 감정속에 용해된 우리의 인간적 조건 전부를 통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느낌, 심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인간의 삼라만상 속에서의 삶이란 무수한 느낌을 쌓아가는 과정이고,그 느낌들을 바탕으로 해서 사고가 형성되고, 다른 특별한 일이나 어떤 극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거기서 강한 충격을 받게 되면서 가치 있는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한 감정은 사물에 동화되거나 투사의 방법으로 동일성을 지향하면서 자아와 세계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동일성이란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말한다. 시작품에서 자아와 세계가 서로 투사되거나 동화되어 자아와 세계는 하나가 된다. 이른바 객일체의 경지, 몽상의 경지라 할 수 있는데, 듀이는 이를 미적 체험이 라고 한다.
4. 통찰과 직관에 의한 시 문학성
'sprit sence'의 힘
통찰력(洞察, insight)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현상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자기를 둘러싼 내적, 외적 전체 구조를 새로운 시점, 새로운 관점(觀點)에서 고쳐보거나 꿰뚫어 바라보는 힘이다.
우뇌의 'sprit sence'의 힘은 노력 여하에 따라 지속적인 발달을 가져온다고 한다. 평소 음악이나 그림 등 예술방면에 관심을 갖게 되면 계속 길러진다는 것. 따라서.성인이 되어서도 'sprit sence'를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든가, 음악이나 시 등의 예술작품을 통해 깊은 감동을 느낀다
대상의 비밀을 캐내는 작업
상투성의 껍질을 벗겨가다 보면 맛깔스런 과육, 속살이 보인다. 이것이 통찰의 세계다. 사물의 겉핥기, 외피적, 피상적으로 보면 통찰의 세계는 드러나지 않는 법, 남다른 사유에 들어갈 수 없게 된다. 마중물을 아는가. 양질의 생명수를 얻으려면, 사물의 또다른 본질, 의미를 찾아내려 면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마중물을 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탁한 물이 나오게 마련, 관조와 몰입 ,상호텍스트의 관계짓기,스키마, 연상, 상상, 비유적 상상 등에 매진하다 보면 나중에는 맑고 차가운 생수가 나오기 시작한다.
통찰은 생수와 같은 대상의 비밀을 캐내는 작업이다..현실적, 실용적,일상적, 논리적 관찰을 거부하고 그 안에 잠재되어 있는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려고 하는 노력에서 비로소 그 대상은 자신의 비밀을 열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가령 '난초가 꽃을 피우는 것은 즐거운 것인가? 아니다. 서정주의 말대로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 몸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는 것이고,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란초)이라고.또다른 의미의 시적 진술을 이루어낸다. 그래서 시인은 시상을 계속 파고 들어가거나, 대상을 거꾸로 보거나, 뒤집어보는 힘, 존재를 확장해가는 능력이 늘 있어야 한다.
의미부여의 직관적 상상력
통찰과 감동적인 시를 얻기 위해서는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애정, 관심, 인격적 몰입, 의미부여의 상상력이 늘 수반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시인은 그 대상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가령 시가 의인법과 같은 비유의 세계임을 인정한다면, 나아가 시가 상상의 세계임을 인정한다면 정신을 사물로 연결하고, 사물을 다른 사물로 연결하여 인식을 확장해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가령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 것처럼, '몸짓' 이 '꽃'으로 바뀌는 새로운 의미를 전환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주변에 널려 있는 사물, 사람, 현상 등을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랬을 때 대상과 나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뮤즈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시인에게 있어 자연과 사물이란 우주의 섭리,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요. 인간의 지각과 상상력을 넓혀가는.통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지(형상)를 통해서 관념을 전달한다. 그래서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못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대못, 슬라브못, 압정, 녹이 슨 못,구부러진 못 등 그야말로 다양하다. 못대가리도 큰.것에서부터 대가리 없는 못가지 여러 종류다. 김종철은 자신의 인생사, 자신의 과오나 행위,그리고 묵상에서의 고해성사나 기원 등을 모두 못의 비유, 못의 상상력을 통해서 삶의 질료를 드러낸다.어떤 인간이든 현실(삶)과 이상(꿈)이라는 두 공간 속에 존재한다. 바로 김종철은 시집 못에 관한 명상에서 못의 생리, 못의 특질을 통해서 두 공간, 현실을 반추하고 이상을 노래한다. 곧 존재에 대한 성찰이며, 존재성에 대한 탐구라든지 세상사를 통찰해내는 것이다. 못이라는 사물이 생산해 내는 이미지는 영혼의 비밀과 존재의 사물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하, 그 존재의 본질을 넘어서 예수의 옆구리에 박힌 못에 이르기까지 원형적 삶을 두루 아우르는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가슴 굵은 못을 박고 사는 사람들이 생애가 저물어가도록 그 옷을 차마 뽑아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을 거기 걸어놓았기 때문이다.
윤효 <못> 전문 (물결』 다층, 2001)
조임과 풀림이 한 길이라니!
같은 길이라도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결합의 길과 해체의 길로 나눠지는구나.
풀림과 조임이 한 길이라니!
만남과 이별이 한 길이라니!
함민복 <나사못> 전문 산림문학>2011 봄,여름)
이러한 못의 이미지, 못의 의미를 통하여 화자 존재의 파편적 의식은 물론 사물의 속성을 꿰뚫어 사물 통찰의 또다른 시적 성과를 얻고 있다. 정호승의 〈못〉이나 윤효의 〈못〉은 못을 박고, 빼고, 구부러지고, 녹슬고 하는 옷이라는 사물의 속성을 통해서 비유적 상상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함민복의 <나사못>도 마찬가지다. 하찮은 나사못이라는 사물에서 시인은 "조임과 풀림", "만남과 이별" 이 한 길에 있다는 삶의 섭리를 발견케 하는 것이다. 순전히 사물 통찰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시적인 사물 현상을 통하여 "풀림과 조임이 한 길이라니!" 이라는 거시적인 참뜻의 의미를 도출해 낸다.
하찮은 사물에 대한 몰아와 예리한 관찰력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쓰려면, 삼라만상에 흩어져 있는 온갖 사물 중 시의 소재로 삼을 만한 것들을 발견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달리 말하면 대상에 대한 몰아(沒) 과정의 예리한 관찰력이다. 관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면 쓸거리는 무궁무진해진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아름다운 몰입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모든 예술창작 분야가 그렇지만 시는 무엇보다 착상이 중요하다. 예기치 않은 일,엉뚱한 생각, 하찮은 경험, 별 볼일 없는 일, 사시한.것에도 몰입하는 사유의 작업이 중요하다.
어떤 사물이던지 상식적, 고정적, 관습적, 피상적으로 접근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자이며, 사물의이다.
또다른 본래 모습, 즉 누구도 인식하지 못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내는 자이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몇 달 은혜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민복<성선설 전문)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정록<서시> 전문)
통찰이나 직관에 의해 드러나는 시편들의 소재를 보면 대개 사소하고.하찮은 것들이 많다. 바로 별 볼 일 없는 무가치한 대상에서 참다운 것을 발견해내는 과업이야말로 시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것,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쓰인다. 시인은 사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고, 사물의 또다른 모습을 현연시킨다. 그래서 사물(상황)들의 특성을 살려 정신의 힘을 부여하고, 가치화하려는 의미부여, 관계 맺기의 통찰이나 직관이 시의 힘이 되며, 시를 감동적으로 만든다. 가령 불이 났을 때 달려가는 자동차를 우리는 불자동차라고 하지만 실상은 물자동차인 것이다.
작가는 범상한 사람은 아니다. 우주의 본질, 사물 존재를 깨닫는 사람,곧 하늘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사람으로 시인은 무당의 '무(巫)'와 같이 세상의 온갖 비밀을.파헤쳐가는 사람들이다. 또한 통찰의 깊이로 보 이지 않는 세계까지 들추어내며,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것을 상상력을통하여 드러내거나, 상식이나 보편적 인식을 뒤집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