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병선(宋秉璿) 1836년(헌종 2)~1905년(고종 42)
淵齋先生文集卷之二十三 / 序 / 安義鄕約案序
鄕之約。古制也。周禮有月朔讀約之文。而三物八刑。蓋其大綱矣。呂氏藍田之約。實倣於此。而朱夫子又增損之。凡化民成俗之方。無不纖悉。可行於天下萬世者也。是以。退溪修之於禮安。栗谷行之於坡州。蔚然有成效。而厥後則寥寥無聞矣。安陰諸君子。慨然有志於斯。建立條約。講明藍田以來所行之規。欲使一鄕之人。觀感而興起焉。噫。人性無古今之異。則草偃于風。其孰能禦之。况今邪說誣民。棄禮義。捐廉恥。流而爲夷狄禽獸之歸。諸君子之講行此法者。其無乃陽復之期耶。雖然。事若有初而無終。名與實歧。約法徒爲告朔之羊。傍觀者諉以古道不可行。則此豈爲一鄕一時之不幸而已哉。願諸君子。以此惕念。古之淳風美俗。能回於今日。則聖人所謂觀於鄕而知王道之易易者。尤可驗矣。胡不相與之勉乎。
《예기》 〈향음주의(鄕飮酒儀)〉에서 공자가 “내가 향음주례를 보고서 왕도가 퍽 간이함을 알았다.〔吾觀於鄕而知王道之易易也〕”라고 하였는데, 한(漢) 정원(鄭元)의 주에 “이이(易易)란 교화의 근본은 어진 이를 존중하고 나이 많은 이를 존숭하는 것뿐임을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강한집 제7권 / 서(序) / 홍 정주자 를 송별하며 쓴 서〔送洪定州 梓 序〕
주리(州里)에 술이 없으면 향음(鄕飮)의 예를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향음은 술이 없다고 하여 폐할 수 없습니다. 옛날에 천하에 왕도(王道)를 행하고자 하였던 이들은 향음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륜에 근본을 두어 헌수(獻酬)의 절차를 행하였으니, 고깃국을 끓인 연후에 빈(賓)과 개(介)를 맞이하고 빈과 개를 맞이한 연후에 허파를 조(俎) 위에 놓으며 허파를 조 위에 놓은 연후에 생황(笙篁)을 연주하고 생황을 연주한 연후에 여수(旅酬)를 거행하는 것은 어른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經)에 이르기를 ‘중빈(衆賓)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라고 하였으니, 향인(鄕人)들로 하여금 어른이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왼쪽 어깨에 슬(瑟)을 메고 앞부분이 전면(前面)을 향하게 하지 않는 것은 대부(大夫)의 예이며, 계단 사이에 경(磬)을 걸고 종(鐘)을 걸지 않는 것은 사(士)의 예입니다. 무릇 대부와 사는 감히 제후의 예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연주를 마칠 때에 악공이 이남(二南)을 부르고 〈녹명(鹿鳴)〉이나 〈어리(魚麗)〉를 부르지 않으니, 이는 향인들로 하여금 임금이 계심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향음주례의 제일 처음에 선생에게 나아가 빈(賓)과 개(介)를 선정하는 것을 의논하니, 선생은 향로(鄕老)를 말하는 것입니다. 장차 조(俎)를 거두려 할 때에 반드시 제자에게 명하니, 제자는 빈 가운데 나이가 어린 자입니다. 주인이 조를 가져다 제자에게 주면 제자는 그것을 가지고 내려가 예를 마칠 때쯤에 붕우를 부르고 또 선생에게 고하니, 이는 향인들로 하여금 스승이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즉 향음은 그를 통해 어른을 섬기고 임금을 섬기고 스승을 섬기는 도를 가르칠 따름이지, 술을 숭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禮)에 방(房)과 호(戶) 사이에 두 개의 병〔壺〕을 두는데, 단술〔酒醴〕은 경(經)에 보이지 않고 다만 물〔明水〕이 동이〔尊〕의 서쪽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經)에 이르기를 “현주(玄酒)가 서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현주라는 것은 물입니다. 아마 향음주례에서 단술을 숭상하지 않고 물을 숭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후씨(夏后氏)는 물을 숭상하고 은(殷)나라는 단술을 숭상하였으며 주(周)나라에서는 술을 숭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나라의 예는 혹 단술을 숭상하기도 하고 혹 물을 숭상하기도 하였지, 술만 숭상하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주나라 사람들이 향음에서 물을 숭상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경에 다만 ‘현주’라고만 쓰고 ‘청주(淸酒)’나 ‘단술’이라고 쓰지 않았겠습니까.
사관례(士冠禮)에서는 단술을 숭상하고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에서는 음주(飮酒)를 숭상하였으니, ‘음(飮)’이라는 것은 ‘청(淸)’과 같은 뜻입니다. 향음의 예에서 물을 숭상하는 것은 사관례에서 단술을 숭상하고 공식대부례에서 청주(淸酒)를 숭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준(尊)에 현주가 있으니 그 질박함을 귀하게 여긴다.”라고 한 것은 이를 이른 것입니다.
홍후 양지(洪侯養之)께서 정주(定州)를 맡아 다스리심에 장차 향음의 예를 거행하려 하는데, 나라에서 백성들이 술을 쓰는 것을 금하니 벼슬아치가 되어 감히 범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향음은 인륜의 시작입니다. 비록 술을 쓰지 않을지언정 어찌 그 예를 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양지께서 만약에 정주 사람들을 거느리고 상서(庠序)에서 향음하게 된다면, 곧 물을 쓰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자공(子貢)이 곡삭(告朔)의 예에 쓰는 희생양〔餼羊〕을 없애고자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예를 아까워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대저 향음의 예는 곡삭의 예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곡삭의 예도 오히려 아까워할 만한데, 향음의 예를 어찌 아까워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선왕(先王)의 제도를 헤아려 밝혀서 양지에게 주어, 정주에 가서 빈(賓)을 초청하고 조(俎)를 베풀어 물을 따라 마시게 하려 합니다.
[주-D001] 홍 정주(洪定州) : 홍자(洪梓, 1707~1781)를 가리킨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753년(영조2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정언ㆍ호남 어사ㆍ헌납 등을 역임하였다. 1757년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이후 대사간ㆍ승지가 되었다. 1769년에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한성부 좌윤ㆍ대사헌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문필에 능하였다 하며, 북청의 〈이지란 신도비(李之蘭神道碑)〉와 경주의 〈삼강묘비(三綱廟碑)〉가 남아있다.[주-D002] 향음(鄕飮)의 예 :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말한다. 향음주례는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主賓)으로 모시고 학교나 서원 등에 모여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향촌의례(鄕村儀禮)의 하나로, 어진 이를 존중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데 주안을 둔다.[주-D003] 헌수(獻酬) : 손님과 주인 간에 서로 술을 주고받는 예를 뜻한다.[주-D004] 인륜에 …… 행하였으니 : 이에 대해 《예기(禮記)》 〈향음주의(鄕飮酒義)〉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였다. ‘내 향음주례를 보고 현자(賢者)를 높이고 장자(長者)를 숭상하는 것이 왕도의 근본임을 알았다. 주인이 친히 빈과 개를 초청하면 중빈이 그를 따라 문밖에 이르고, 주인이 빈과 개에게 절하면 중빈이 모두 들어오게 되므로 귀천의 도리가 분별되는 것이다. 주인이 세 번 읍하고 계단에 이르면 주빈이 세 번 사양하고 당에 오른다. 주빈이 이르기를 기다려 절하고 헌수하니, 사양하는 절차가 번성하도다.〔孔子曰:“吾觀於鄕, 而知王道之易易也. 主人親速賓及介, 而衆賓自從之, 至于門外, 主人拜賓及介, 而衆賓自入, 貴賤之義別矣. 三揖至于階, 三讓以賓升. 拜至獻酬, 辭讓之節繁.〕”[주-D005] 고깃국을 끓인 : 주인이 빈(賓)을 초청하고 맞이하는 절차의 하나로, 《의례(儀禮)》 〈향음주례(鄕飮酒禮)〉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육고기를 넣은 탕국이 다 끓으면 주인이 빈을 초청한다. 빈이 주인이 몸을 낮추어 찾아준 데 대해 절을 하며 감사의 말을 하면 주인이 빈에게 답하여 절을 한다.〔羹定, 主人速賓. 賓拜辱, 主人答拜.〕”[주-D006] 빈(賓)과 개(介) : 빈(賓)은 정빈(正賓)을 뜻하며, 개(介)는 빈객이 예를 행하는 것을 보좌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에 대해 중국 한나라의 유학자 정현(鄭玄)은 “빈과 개는 향중의 처사나 현자로 충당한다.〔賓介, 處士賢者.〕”라고 하였으며, 역시 한나라의 유학자인 가공언(賈公彦)은 그의 소(疏)에서 “도예에 있어 좀 더 뛰어난 사람이 빈이 되고, 그만 못한 사람이 개가 된다.〔道藝優者爲賓, 秘劣者爲介.〕”라고 하였다.[주-D007] 허파를 …… 놓으며 : 주인이 헌빈(獻賓)하는 절차 가운데 하나로,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유사가 말린 고기와 젓을 자리 앞으로 가져와 놓는다. 빈(賓)이 서쪽으로부터 자리에 앉는다. 이에 유사가 자리 앞에 절조(折俎)를 놓는다. 주인이 동쪽 계단의 동변에 단정하게 서 있는다. 빈이 자리에 앉아 왼손으로는 술잔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말린 고기와 젓을 제사 지낸다. 술잔을 말린 고기와 젓의 서변에 놓고는 서 있는다. 오른손으로 허파를 잡고 왼손으로 허파의 아랫부분을 받치고 자리에 앉는다. 허파의 위쪽으로부터 아래쪽에 이르기까지 손으로 매만진 다음 오른손으로 허파의 끝을 뜯어내어 허파를 제사 지낸다. 왼손을 위로 들어 허파를 맛보고는 서 있는다. 그리고는 허파를 조(俎) 위에 놓아둔다. 자리에 앉아 손을 비벼 깨끗하게 한 뒤 술을 제사 지내고는 서 있는다.〔薦脯醢. 賓升席自西方. 乃設折俎. 主人阼階東疑立. 賓坐, 左執爵, 祭脯醢. 奠爵于薦西, 興. 右手取肺, 郤左手執本, 坐. 弗繚, 右絶末以祭. 尙左手, 嚌之, 興. 加于俎. 坐挩手, 遂祭酒, 興.〕”[주-D008] 여수(旅酬)를 거행하는 것 : 여(旅)는 차례, 순서와 같은 뜻으로, 여수는 식이 끝난 뒤에 의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잔을 돌려가면서 술을 마시는 예이다. 이에 대해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정(司正)이 당 위에 올라가 여수의 의식을 주재한다. 말하기를, ‘아무개 선생은 술잔을 받으십시오.’라고 하면 술잔 받는 사람이 자리에서 나온다. 사정이 뒤로 물러나 서(序)의 끄트머리에 동쪽을 바라보고 선다. 술잔을 받는 사람이 개(介)의 동쪽에 서서 개가 따라주는 술을 받는다. 뒤를 이어 술잔을 받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술잔을 받은 사람의 서쪽에서 술잔을 받는다. 절을 하고 일어서서 술을 마시는데, 모두 빈(賓)이 주인에게 술을 권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다. 여수가 모든 빈(賓)들에게 미치면 맨 마지막으로 잔을 받은 사람이 치를 들고 당에서 내려온 다음, 앉아서 치(觶)를 대광주리 안에 넣는다. 사정이 당에서 내려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司正升相旅曰:某子受酬. 修酬者降席. 司正退立于序端, 東面. 受酬者自介右. 衆受酬者受自左. 拜, 興, 飮, 皆如賓酬主人之禮. 辯, 卒受者以觶降, 坐奠于篚. 司正降復位.〕”[주-D009] 중빈(衆賓) …… 어른 : 주인이 중빈 및 중빈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어른에게 술을 올리는 절차에 대해 기술한 내용 중 나온 말이다. 이에 대해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주인이 서남쪽을 바라보고 서서 중빈에게 세 번 절을 하면 중빈이 모두 주인에게 답하여 한 번 절한다. 주인이 읍을 하고 당에 올라가 서쪽 기둥의 아래에 앉아 작을 들고 일어선 다음 당에서 내려와 작을 씻는다. 그런 후 당 위로 올라가 술을 따르고 서쪽 계단의 위쪽에서 중빈에게 술을 올린다. 중빈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세 사람이 당 위로 올라가 절을 하고 작을 받으면 주인이 작을 배송한다. 이 세 사람이 앉아서 술을 제사하고는 일어서서 술을 마시는데 절을 하지는 않는다. 다 마신 후 작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당에서 내려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이 그 외의 중빈에게 술을 올리면 중빈은 절을 하지 않고 작을 받아 앉아서 술을 제사하고는 일어서서 술을 마신다.〔主人西南面三拜衆賓. 衆賓皆答壹拜, 主人揖升, 坐取爵于西楹下, 降洗. 升實爵, 于西階上獻衆賓. 衆賓之長升拜受者三人, 主人拜送. 坐祭, 立飮, 不拜. 旣爵, 授主人爵, 降復位. 衆賓獻則不拜受爵, 坐祭, 立飮.〕”[주-D010] 왼쪽 …… 것 : 향음주례에서 음악을 연주할 때의 예에 관해 말한 것으로, 이에 대해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당의 측변에 자리를 깔아놓는데 동쪽을 위쪽으로 하여 놓는다. 악공 네 사람이 있는데, 이 중 두 사람은 슬(瑟) 연주를 담당하며 앞자리에 앉는다. 이들을 보조하는 사람이 두 사람인데, 모두 왼쪽 어깨에 슬을 메어 들되 슬의 머리가 뒤로 가게 한다. 손가락을 슬 아래의 공(孔)에 넣어 받쳐 드는데 슬의 줄이 안쪽을 향하게 한다.〔設席于堂廉, 東上. 工四人, 二瑟, 瑟先. 相者二人, 皆左何瑟, 後首. 手夸越, 內弦.〕”[주-D011] 계단 …… 것 : 《의례》 〈향음주례〉에 “생황을 부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당 아래의 경(磬)을 치는 자리 남쪽에 서서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다.〔笙入, 堂下磬南, 北面立.〕”라고 하여 경에 대한 언급만 있고 종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한 〈향음주례기(鄕飮酒禮記)〉에서 “경은 동쪽 계단과 서쪽 계단 사이에 설치하며, 북쪽을 바라보고 경을 친다.〔磬, 階閒縮霤, 北面鼓之.〕”라고 하여 경을 두는 위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주-D012] 이남(二南) : 《시경(詩經)》 국풍(國風)의 제일 앞에 있는 〈주남(周南)〉ㆍ〈소남(召南)〉의 시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주-D013] 녹명(鹿鳴) : 《시경》 소아(小雅)에 실려 있는 시의 편명으로, 임금과 신하 및 사방에서 온 손님이 잔치를 열어 도(道)를 강구하고 정사를 닦는 데 쓰이는 악가이다.[주-D014] 어리(魚麗) : 《시경》 소아에 실려 있는 시의 편명으로, 시절이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물자가 풍요로움을 노래한 시이다.[주-D015] 악공이 …… 않으니 : 향음주례의 절차 가운데 치(觶)를 내와 진설하고 술을 차려 내면 그 다음에 악공들이 나와 음악을 연주하는데, 《의례》 〈향음주례〉에 의하면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처음에 노래 부르는 이 2명과 슬(瑟) 연주자 2명 등 악공 4명이 나와 〈녹명(鹿鳴)〉ㆍ〈사모(四牡)〉ㆍ〈황황자화(皇皇者華)〉를 연주하며 노래한다. 이들은 모두 《시경》 소아에 실려 있는 시이다. 2. 생황을 부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와 〈남해(南陔)〉ㆍ〈백화(白華)〉ㆍ〈화서(華黍)〉를 연주한다. 이들은 모두 《시경》 소아에 제목만 있고 내용은 전하지 않는 편목들이다. 주희는 이들이 원래 생황 연주곡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가사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3. 슬을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것과 생황을 연주하는 것이 번갈아가며 이루어진다. 〈어리(魚麗)〉를 연주하고 노래하면 생황으로 〈유경(由庚)〉을 분다. 〈남유가어(南有嘉魚)〉를 연주하고 노래하면 〈숭구(崇丘)〉를 분다. 〈남산유대(南山有臺)〉를 연주하고 노래하면 〈유의(由儀)〉를 분다. 이들은 모두 《시경》 〈소아〉에 들어있는 시의 편명이다. 4. 마지막으로, “이에 노래를 부르고 슬(瑟)을 뜯고 생황을 불고 경을 치면서 《시경》 〈주남〉의 〈관저(關雎)〉ㆍ〈갈담(葛覃)〉ㆍ〈권이(卷耳)〉와 《시경》 〈소남〉의 〈작소(鵲巢)〉ㆍ〈채번(采蘩)〉ㆍ〈채빈(采蘋)〉을 합주한다. 악공이 악정에게 보고하기를 ‘정가(正歌)가 이미 모두 연주되었습니다.’라고 하면, 악정이 이를 빈(賓)들에게 알린 후 당에서 내려온다.〔乃合樂周南關雎、葛覃、卷耳, 召南鵲巢、采蘩、采蘋. 工告于樂正曰:正歌備. 樂正告于賓, 乃降.〕”라고 하였다.[주-D016] 제일 …… 의논하니 : 주인이 향선생(鄕先生) 등과 상의하여 정빈(正賓)과 개(介)를 선정하는 과정으로, 《의례》 〈향음주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주인이 선생을 찾아와 상의하여 빈을 정하고, 주인이 예를 행하는 것을 돕는 사람인 개를 뽑는다.〔主人就先生而謀賓介.〕”[주-D017] 선생은 …… 것입니다 : 정현(鄭玄)이나 가공언(賈公彦)의 주소(註疏)에 의하면, 여기서의 선생은 벼슬을 그만두고 향중(鄕中)에 물러나 있으면서 향학(鄕學)이나 주학(州學)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주-D018] 주인이 …… 내려가 : 향음주례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즐기는 절차이다. 이에 대해 《의례》 〈향음주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인이 조(俎)를 치울 것을 청하면 빈이 허락한다. 사정(司正)이 당에서 내려와 서쪽 계단의 앞에 이르러 제가에게 조를 치울 준비를 하라 명한다. …… 주인이 조를 들고 몸을 돌려 제자에게 이를 건네주면 제자가 조를 들고 서쪽 계단을 통해 당에서 내려오며 주인이 동쪽 계단을 통해 당에서 내려온다. 개가 조를 들고 몸을 돌려 제자에게 이를 건네주면 제자가 조를 들고 당에서 내려오며 개 역시 그를 따라 당에서 내려온다.〔主人請徹俎, 賓許. 司正降階前, 命弟子俟徹俎. …… 主人徹俎, 還授弟子, 弟子以降自西階, 主人降自阼階. 介取俎, 還授弟子, 弟子以降, 介從之.〕”[주-D019] 방(房)과 …… 두는데 : 《의례》 〈향음주례〉에서 “방(房)과 호(戶) 사이에 두 개의 병을 놓고 병 아래에는 술병 받침을 받쳐둔다. 현주(玄酒)가 서쪽에 있다.〔尊兩壺于房戶閒, 斯禁. 有玄酒在西.〕”라고 하였다.[주-D020] 현주(玄酒) : 물을 의미한다. 먼 옛날 아직 단술〔醴酒〕이 발명되기 전에 술 대신 물을 사용하였는데, 물 색깔이 검은색〔玄色〕이므로 물을 ‘현주(玄酒)’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후한(後漢)의 유학자 정현(鄭玄)은 이에 대해 설명하기를, “현주는 새로 길은 물이다. 비록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진설하는 것은 옛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玄酒, 新水也. 雖今不用, 猶設之, 不忘古也.〕”라고 하였다.[주-D021] 현주(玄酒)가 서쪽에 있다 : 《의례》 〈향음주례〉에서 “방(房)과 호(戶) 사이에 두 개의 병을 놓고 병 아래에는 술병 받침을 받쳐둔다. 현주(玄酒)가 서쪽에 있다.〔尊兩壺于房戶閒, 斯禁. 有玄酒在西.〕”라고 하였다.[주-D022] 사관례(士冠禮)에서는 단술을 숭상하고 : 《의례》 〈사관례〉에 이르기를 “찬자가 방 안에서 치(觶)를 씻고 다만 단술만을 따른 후 술국자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게 하여 치 위에 올려놓는다.〔贊者洗于房中, 側酌醴, 加柶覆之.〕”라고 하였다.[주-D023] 공식대부례(公食大夫禮)에서는 음주(飮酒)를 숭상하였으니 : 《의례》 〈공식대부례〉에 이르기를 “가장 위쪽에 진설되어 있는 두 개의 굽접시 사이에서 음주(飮酒), 즉 청주(淸酒)를 제사 지낸다.〔祭飮酒於上豆之閒.〕”라고 하였다.[주-D024] 준(尊)에 …… 여긴다 : 《예기》 〈향음주의〉에 “향인ㆍ사ㆍ군자는 방(房)과 호(戶) 사이에 준(尊)을 두니 빈주(賓主)가 이를 공유하는 것이요, 준에 현주(玄酒)가 있으니 그 질박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鄕人、士、君子, 尊於房戶之間, 賓主共之也, 尊有玄酒, 貴其質也.〕”라고 하였다. 또한 “준에 현주가 있으니 백성이 근본을 잊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尊有玄酒, 敎民不忘本也.〕”라고 하였으니, 옛날에는 술이 없고 물만을 썼기 때문에 준에 물을 두어 인간의 근본을 일깨운 것이라고 한다.[주-D025] 곡삭(告朔) : 매년 섣달에 천자가 다음 해 12개월의 월삭(月朔)을 제후들에게 반포하면 제후들은 이것을 받아서 조상의 사당에 보관하였다가 매월 초하룻날에 희생양 한 마리를 가지고 사당에 고유(告由)하고 청하여 시행하니, 이것을 ‘초하루를 고한다.’ 즉 ‘곡삭’이라고 하였다.[주-D026] 자공(子貢)이 …… 하셨습니다 :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오는 내용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박재금 이은영 홍학희 (공역) | 2015
江漢集 卷七 / 序 / 送洪定州【梓】 序
州里無酒,不可爲鄕飮之禮。然而鄕飮不可以無酒而廢也。古之欲行王道於天下者自鄕飮始。故獻酬本之人倫而爲之節,羹定然後迎賓介;迎賓介然後加俎;加俎然後進和笙;進和笙然後擧旅,敬其長也。故《經》曰 “衆賓之長”,欲使鄕人知有長也。
左何瑟,不面鼓者,大夫之禮也;階間懸磬,不懸鐘者,士之禮也。凡大夫、士不敢從諸侯之禮。故其終也,工歌二南而不歌《鹿鳴》、《魚麗》,欲使鄕人知有君也。
始謀賓介就先生,先生鄕老也。將徹俎,必命弟子,弟子賓之少者也。主人取俎,授弟子,弟子以降,及禮之終,徵朋友,又告先生,欲使鄕人知有師也。然則鄕飮將以敎事長、事君、事師之道而已矣,非尙酒也。
禮尊兩壺于房戶間而酒醴不見于經,獨明水在尊之西。故《經》曰 “玄酒在西”,玄酒者,明水也。豈鄕飮不尙酒醴而尙明水歟?
夏后氏尙明水,殷尙醴,周尙酒。然周之禮或尙醴、或尙明水,不獨尙酒而已也。誠使周人於鄕飮不尙明水,則《經》何以唯書玄酒而不書淸酒、醴酒也?
士冠禮尙醴酒,公食大夫禮尙飮酒,飮者,淸也。鄕飮之禮尙明水,猶士冠禮之尙醴酒、公食大夫之尙淸酒也。故《記》曰 “尊有玄酒,貴其質”,此之謂也。
洪侯養之知定州,將擧鄕飮而國家禁民用酒,爲吏者不敢犯也。然鄕飮人倫之始也。雖不用酒,烏可以廢其禮乎?今養之如率定人飮于序,則用明水也宜矣。
子貢欲去告朔之餼羊,孔子曰 “爾愛其羊?我愛其禮”。夫鄕飮之禮無以異於告朔之禮也。告朔之禮尙可愛也,鄕飮之禮豈不可愛邪?
乃推明先王之制以贈養之,使之州,速賓設俎,酌明水而爲之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