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김장생문학상 운문부문 당선작] 유다인 / 지경희
아버지의 집 / 유다인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의 몸 위에 한 삽 한 삽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둥근 봉분이 쌓아지는 중이다
바람에 몸을 틀어 태양을 감추는 구름도,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가 허공에 부딪는 소리도,
너무 많아서 나는 기록할 수 없다
혹시 집에 비가 샐까
나는 봉분 근처를 배회하며
물방울의 크기와 그늘의 각도를 잰다
사방으로 뻗은 산맥처럼
아버지 발등 위에 불거진 핏줄은
끊임없이 흐르던 세월이었다
누가 이 산맥을 읽을 것인가
문패 대신 세워진 비석
아버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젖은 소매로 닦는다
올갱이국 / 지경희
빗방울 튀어 오르듯
보글보글 끓는 정오
나만의 특별비법
한 옥타브 올라간다
태양초
고추장 넣고
허기가 풀릴 때까지
소나기 부른 열탕
통째로 삶은 유월
단단한 껍데기에
제 살 꼭꼭 숨겼어도
남한강
푸른 물줄기
확 빨아서 비워낸다
제11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심사평
"논리의 시대가 몰락하고, 수사(修辭)의 북(Book) 콘서트 시대가 부활했다."
- 김장생 문학상 대상 수상 유영애 시조집『산수유는 피어』
- 본상 운문부문 유다인의 시「아버지의 집」, 지경희의 시조「올갱이국」,
본상 산문부문 김대일의 수필 「달의 기억」 선정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일명 메르스 MERS) 때문에 온 국민이 온통 메르스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행을 취소하는 일련의 사태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여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그런데 중동호흡기증후군의 정확한 감염 경로 및 백신개발에 대한 당국의 논리적 설명이 미흡하다는 것이 큰 문제다. 콕 집어 말하면 메르스 치료제(신약)가 아직 개발 전이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의약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르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논리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해 차분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국민 행동강령을 전파해야 할 선점시기 또한 놓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로 인한 공포와 불안으로 얼룩져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수사(修辭)의 시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간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김장생 문학상>이 그 ‘수사의 시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장생 문학상>은 조선 중기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는 사계 김장생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시대정신을 계승하고 21세기 문학 치료에 부응할 수 있는 역량 있고 참신한 인재 발굴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기성과 신인에게 '창작'에 대한 결실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김장생 문학상>이 올해로 벌써 11회째로 접어들면서, 국내외 어느 문학상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문학상임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김장생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유영애 시조집『산수유는 피어』중 「등긁기나무 아래서」의 시적 울림 속에는 메르스 예술 치유의 신선한 메신저 역할을 천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메르스 공포로부터 신음하고 있는 ‘국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줄 나무’가 되어 주려는 시인의 고결하고 고매한 활어(活語)가 파도치고 있어 ‘수사의 북(Book) 콘서트 시대’ 의 서막을 알리는 감동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배려한 말, 상대방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할 때, 비로소 상대방을 최고로 코디한 명품의 옷을 선물한 것과 같고, 심지어 상대방에게 명품의 옷을 코디한 화자(話者) 자신도 부메랑 효과처럼 고품격의 명품 옷을 동시에 입게 된다.”
문학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지향한다. 메르스 한파로 인해 대중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위로’의 말이며, ‘힐링(Healing)’의 따뜻한 말이다. 바로 지난해 세월호 여파 이후, 또 다시 메르스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는 대중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치유할 '수사(修辭)의 북(Book) 콘서트'가 필요한 것이다.
오랜 논의와 검증 속에 '대상' 부문의 마지막까지 거론된 작품집들은 유종인 시집『혜초의 사랑』, 김옥중 시집『금강초롱 꽃』, 구광렬 시집 『슬프다 할 뻔했다』, 유영애 시조집『산수유는 피어』, 송명숙 동시집『버스 탄 꽃게』, 김은의 동화집『막막골 훈장님의 한글정복기』, 곽흥렬 수필집『여자와 함께 장보는 남자』등을 들 수 있다. 저마다 장인정신과 비유할 수 있는 세련된 자기 미학과 독특한 컬러를 가진 우수한 작품 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번 작품집들 중에, ‘휴머니티의 부활과 인간 탐구’라는 선 굵은 테마를 많이 다뤘다는 점이다.
유종인 시집『혜초의 사랑』은 역사적 인물의 발자취를 공유하는 실크로드 기행을 통해 철학적 사유(思惟)와 인간애의 자각, 깨달음의 여정을 수준 높은 언어의 질감으로 우려내고 있었다. 구광렬 시집 『슬프다 할 뻔했다』는 자아해체라는 인간본연의 모습을 발현시키면서, 자전적 체험과 라틴적 리듬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흡입해 내는 미적 감각이 탁월했고, 흥겨운 음악과 감미로운 속삭임 그리고 자아해체를 통해 인간의 황홀한 도취를 유도할 만큼 치열한 작가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영애 시조집『산수유는 피어』는 여성 특유의 정제된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서정의 집 한 채를 축조하고 있었다. 특히 작금의 메르스 한파와 같이 공포와 불안에 노출된 민중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등긁기나무’를 격조 높은 시조미학으로 형상화시키면서 민중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 역할뿐 아니라, 또한 민중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고 있었다. 이른바 수사의 시대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치유문학’, ‘문학 치료’의 핵심근간을 구비하고 있었다. 김옥중 시조집 『금강초롱 꽃』은 단시조의 정수를 선보이면서 아울러 시조시인의 풍류와 멋이 어우러져 전통적 정서를 발아시키고 있었다. 이는 한국현대시조문학사에서 장형시조, 사설시조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전환기적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현대시조의 시대정신을 단수(單首)에서 찾고자 하는 신고전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송명숙 동시집『버스 탄 꽃게』는 도심 속에서 외롭게 크는 어린이를 찾아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을 통해 작은 위안과 따뜻함을 반추해내고 있었다. 김은의 동화집『막막골 훈장님의 한글정복기』는 한글 문맹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소통을 통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친구가 되어가는 스토리 설정 자체가 돋보였다. 한문(漢文)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지만 한글의 문맹자인 할아버지의 변화 과정을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는 가슴 뭉클한 감동 동화였다. 곽흥렬 수필집『여자와 함께 장보는 남자』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빛깔 연한 꽃이 향기가 짙다’는 어록을 남기면서, 일상에 대한 사색과 명상을 꽃피우고 있었다. 흠결 없는 문맥의 흐름, 건강한 문체가 어우러져 산문 정신 또한 적극 구현하고 있었다. 선자(選者)의 손에 남겨진 어느 것 하나하나 문학적 향기가 그윽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각 장르별로 종합하면서, 언어의 정제미, 완결미와 테마를 다루는 역량이 산문 보다는 운문 쪽에 훨씬 더 비중 있게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언어탐구의 최종 지향점인 휴머니티를 통해 대중과의 끝없는 소통의 예술치료와 감동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생산해내고 있는 유영애 시조집『산수유는 피어』를 이번 11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한다. 대표작 「등긁기나무 아래서」, 「유월 수국」두 편을 싣는다.
옷자락 얼룩덜룩 칠칠하게 자란 나무
캄캄한 몸통가시에 발길이 멈칫한다
가려운 물소 등허리 긁어대는 저 몸짓
자연의 섭리 앞에 무슨 말을 내놓으리
내 영혼 깊은 잠을 눈물로 씻어 본다
이대로 끓는 무릎에 두 손 가만 얹는다
- 유영애의 시조, 「등긁기나무 아래서」 전문
동두천 쇠목계곡 소헌산방 울타리에
지난 밤 뜨다만 달이 한 소쿠리 피어 있다
소요산 뻐꾸기소리 달빛에 젖는 저녁
- 유영애의 시조, 「유월 수국」 전문
본상 수상 작품은 운문(시, 시조, 동시)부문에서 2명, 산문(수필, 동화, 소설)부문에서 1명, 총 3명을 4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선정하였다. 본상 각 부문 수상자는『계룡문학』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동시에 인정되기 때문에, 문인 등단의 영예까지 주어진다.
운문부문에서는 유다인의 시「아버지의 집」, 지경희의 시조「올갱이국」을 선정하였다. 산문부문에서는 김대일의 수필 「달의 기억」을 선정했다. 유다인의 시「아버지의 집」은 돌아가신 선친의 엄숙한 하관식(下棺式) 장면을 통해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직조해내고 있는 가운데, 사후(死後) ‘신(神)의 집’인 선친의 봉분(封墳) 작업과정을 섬세한 감성으로 갈무리시키고 있었다. 이는 탁월한 시적 역량을 감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서 독특한 미학적 경지를 넘나드는 수작(秀作)으로 평가되었다. 지경희의 시조「올갱이국」은 선명하고 격정적 어조로 시적 대상을 형상화시키는 시안(詩眼)이 남달랐다. 더욱이 특별 요리비법으로 차려진 올갱이국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맛깔스런 장면 또한 연상될 만큼 활달한 이미지 전개 능력이 뛰어났다. 김대일의 수필「달의 기억」은 깔끔한 문장, 탄력 있는 구성력, 눈길을 끄는 테마 선정 등을 통해 깊은 문학적 성찰과 기초·기본에 충실한 언어미학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에 밝힌 당선작 이외에도, 당선작 후보로 오랜 숙고의 대상이 되어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던 작품은 운문에서 원갑분의 시 「달팽이관의 밀물과 썰물」, 장윤희의 시「거미줄」, 황재윤의 시「왜가리」, 최선주의 시조「바람을 읽다」, 여운택의 시조「겨울 의암호」, 김순희의 동시「나비처럼」, 김완수의 동시「별자리」등이었다. 기교와 서정성을 고루 갖춘 가작(佳作)임에 틀림없으나 시선을 압도하는 시적 긴장감, 활달한 이미지 전개 역시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임을 밝히고자 한다. 또 산문에서는 최의영의 소설「꽃무덤」, 이환임의 수필「푸른 소금」, 김현지의 수필「멍」, 김완수의 동화「하늘 리모컨」등이 끝까지 논의되었다. 이들 작품마다 일정한 틀의 풍부한 미적 감성을 담보하고 있었으나, 시종일관 주제를 부각시키며 독자들의 마음을 흡입할 수 있는 독보적인 캐릭터(Character)와 독특한 문체 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공모 규정에 의해 아깝게 선외 처리된 분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제11회 김장생 문학상에 당선된 대상, 본상 수상자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정유지(문학평론가), 이황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