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숭재(任崇載)
(?∼1505(연산군 11). 조선 중기의 간신.
본관은 풍천(豊川). 아버지는 사홍(士洪)이며, 성종의 사위이다.
1491년(성종 22) 휘숙옹주(徽淑翁主 : 성종의 庶女)와 혼인, 풍원위(豊原尉)에 봉해졌다.
성질이 음흉하고 간사하기가 그 아버지보다 더하였으며 충신들을 추방하고 남의 첩을 빼앗아 왕에게 바침으로써 총애를 받았다.
창덕궁 곁에 저택을 두고 왕과 음란행위를 같이 하는 등 비행을 일삼았고, 미복(微服)으로 궁중을 출입하였다. 가무에 능하여, 1504년(연산군 10)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가 되었는데 특히 처용무(處容舞)를 잘 추었다.
1505년 채홍준사(採紅駿使)에 임명, 경상도의 미녀·준마(駿馬)를 구할 때 도내 사람들이 놀라 모두 피신하였고, 그가 수레를 타고 다닐 때에는 마치 왕의 행차와 거의 같았다. 그가 임무를 마치고 상경할 때에는 연산군이 승지를 시켜 강상(江上)에서 맞게 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일찍이 휘숙옹주와 혼인한 날 밤에 집에 불이 나 옹주가 인근 민가에 피신하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당시 사신(史臣)은 “임사홍은 소인(小人)으로서 불의로 부귀하게 되었는데 복이 지나쳐 재앙이 생겼다.”고 적고 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관직을 추탈당하고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휘숙옹주(徽淑翁主)
생졸년 미상.
성종(成宗)의 서녀로 모친은 숙의김씨(淑儀金氏)이다. 휘숙옹주는 풍원위(豊原尉) 임숭재(任崇載)에게 하가(下嫁)했는데, 임숭재는 임사홍(任士洪)의 아들이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