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伯娶婦(하백취부)
매년 처녀를 취하여 장가드는 장수(漳水)의 물귀신
그때 위문후는 비어있는 업도(鄴都)의 태수직을 맡길만한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황이 말했다.
"업도는 상당(上黨)과 한단(邯鄲) 사이에 끼어 있어 한나라와 조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땅입니다. 이곳에는 필히 강단있고 정사에 밝은 사람을 보내 지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서문표(西門豹)라면 능히 지킬 수 있습니다."
문후가 즉시 서문표를 불러 업도의 태수로 임명했다. 서문표가 평복 차림으로 업성에 당도하였으나 성안의 거리가 한산하며 왕래하는 백성들이 많지 않았다. 서문표가 태수부로 들어가 성안의 부로들을 불러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불려온 노인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백이 부인을 취하는 바람에 우리가 이렇듯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서문표가 듣고 말했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로다! 하백이 무슨 방법으로 부인을 맞이해 간단 말인가? 노인장들은 혹시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부로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장수(漳水)는 첨령(沾嶺)에서 발원하여 사성(沙城)에 이르러 동쪽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 업도(鄴都)를 지나면서 장하(漳河)로 이름이 바뀝니다. 하백(河伯)은 맑은 물이 흐르는 장수(漳水)의 수신(水神)입니다. 하백(河伯)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여 매년마다 여인을 한 명 씩 골라 부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만약 여인을 가려 하백에게 보내주면 해마다 풍년이 들어 곡식의 낟알을 잘 여물게 할 수 있도록 비를 골고루 적당히 오게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인을 부인으로 보내지 않으면 격노한 하백께서 파도를 일으켜 인가를 덮쳐 잠기게 합니다."
"이 일은 누가 먼저 시작하자고 했습니까?"
부로가 계속 대답했다.
"이 읍에 사는 무당이 하는 말을 따라 옛날부터 물을 두려워하고 있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누가 감히 무당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매년 동네의 호족들과 관청의 하급 관리들이 무당과 같이 모의하여 백성들에게서 수백 만 전의 부세를 걷어 그 중 2-3십 만 전은 하백의 부인을 찾는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서문표가 물었다.
"백성들이 그렇게 착취를 당하고 있으면서 어찌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노인들이 말했다.
"무당은 하백에게 축원을 드리는 일을 주관하고 삼로(三老)와 아전들은 비용을 거두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 다녀 수고로움이 적지 않으니 비용으로 나누어 쓴다 해도 그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초봄에 들에 종자를 뿌리는 시기에 무당이 사방의 민가를 찾아다니며 하백의 부인을 구한다고 하면서 제법 미색을 갖추고 있는 처녀를 발견하면 즉시 ‘이 처녀는 마땅히 하백의 부인으로 보낼 만하다.’라고 말합니다. 그 처녀의 부모가 자기 딸을 하백의 부인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많은 재물과 비단을 무당에게 바쳐 면하면 무당은 다시 다른 처녀를 별도로 찾습니다.
다시 하백의 부인으로 지명된 처녀의 집이 가난하여 재물과 비단을 주지 못해 면하지 못한 백성은 할 수 없이 자기의 딸을 무당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강물 위에다 지은 재궁의 침소 주위에 장막을 치고 그 안에 이부자리를 새롭게 장만한 무당은 처녀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재궁의 안에서 묶게 합니다. 점을 쳐 잡은 길일이 되면 갈대로 엮어 만든 배에 처녀를 태우고 강물 위에 띄어 보냅니다. 처녀를 태운 배는 강물에 떠내려가 몇 십리를 흐르다가 이어 가라 앉고 맙니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고통이 적지 않고 또한 딸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기의 딸이 하백의 부인으로 점지될까봐 두려워하여 딸을 데리고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성안이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서문표가 다시 물었다.
"그 동안 하백이 노하여 홍수의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습니까?"
노인들이 말했다.
"매년 처녀를 부인으로 바쳐오고 있는 덕분에 아직까지 하백의 노여움을 사지 않아 홍수의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만, 그 것은 단지 여기 업 땅은 지세가 높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이라 강물이 덮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매년 한해를 만나 가뭄으로 곡식이 말라죽은 재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부로의 말을 듣고 업 땅의 상황을 대충 짐작한 서문표가 말했다.
"하백이 진정 있다면 처녀가 시집을 갈 때 내가 마땅히 참석하여 전송하고 백성들을 위해 축원하리라!"
이어서 처녀를 하백에게 바치는 날이 되자 그 노인네들이 서문표를 찾아와 알렸다. 서문표가 의관을 정제하고 의식이 행해지는 강가로 나갔다. 고을의 모든 관속, 삼로(三老), 호족(豪族), 이장(里長), 그리고 마을의 부로(父老) 등이 이미 참석하여 서문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이곳저곳에 모여 자리를 잡았는데 그 의식을 구경하려고 나오는 사람은 수천 명이 넘었다. 삼로와 이장 등이 대무(大巫)를 데리고 와서 서문표에게 인사를 시키는데 대무의 행동거지가 매우 거만했다. 서문표가 대무를 살펴보니 바로 늙은 노파였다. 소무로 여자 제자를 20여인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옷차림을 정결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소무들은 수건이나 빗, 그리고 향로 같은 제기들을 손에 들고 대무의 뒤서 서서 수행했다.
서문표가 대무를 향해 말했다.
"대무께서 번거롭겠지만 하백의 부인이 될 처녀를 불러와 주시오. 내가 한 번 보리라!"
대무가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하백의 부인으로 뽑힌 처녀를 불러오라고 시켰다. 서문표가 대령시킨 처녀를 보니 아름다운 옷에 허리에는 하얀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얼굴은 그런 대로 중간 정도는 되었다. 서문표는 대무와 삼로 그리고 의식에 참석한 여러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하백은 고귀한 신이라 부인으로 바친 처녀는 반드시 그 자색이 고와야만 비로소 우리의 성의를 고맙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이 처녀의 자색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니 대무는 번거롭겠지만 나를 위해 하백에게 가서 태수의 말이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다시 날짜를 정해 바치겠습니다.’ 라고 전하라!"
서문표가 즉시 수행 군졸들을 시켜 늙은 대무를 들어 강물에 던져버리게 하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삽시간에 벌어진 뜻밖의 일에 대경실색했다. 서문표가 시치미를 떼고 정중한 자세로 서 있다가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늙은 노파라서 우리의 급한 사정을 전혀 개의치 않는구나! 강물 속의 하백을 만나러 가서 오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돌아와 하백의 뜻을 전달하지 않으니 너희 제자들이 가서 나를 위해 너의 대무를 재촉하여 빨리 오라고 전하라!"
다시 군졸들을 시켜 제자 한 사람을 끌고 가서 강물에 던지게 했다. 서문표가 다시 엄중한 자세로 서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다시 얼마쯤 지나자 입을 열어 말했다.
"제자가 물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 되었는데도 그 역시 빨리 돌아와 고를 하지 않는구나!"
서문표가 군졸들을 시켜 제자 중 한 사람을 더 끌고 가서 강물에 빠뜨렸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이 늦게 온다고 성화를 부리며 군졸들로 하여금 다시 제자 중 한 명을 안아다 강물 속으로 던지게 했다. 모두 대무의 제자 세 명을 던져 물속에 가라앉게 하고는 다시 여러 사람들 향해 외쳤다.
"하백에게 간 사람들은 모두가 여인네들이라서 나의 말을 분명하게 전하지 못한 듯 하다. 아무래도 하백에게 가서 나의 말을 정중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삼로가 수고를 좀 해 주어야 하겠소! 삼로는 하백에게 가서 나의 말을 분명하게 전해주기 바라오."
삼로가 사양하려고 하자 서문표가 큰소리로 외쳐 꾸짖었다.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빨리 가서 하백에게 나의 뜻을 전하고 즉시 돌아와 그의 뜻을 받아 오라!"
군졸들이 달려가 한 쪽에서는 밀고 다른 쪽에서는 끌고 해서 삼로가 미처 변명도 하기 전에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삼로는 강물의 파도 속으로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서문표의 뜻을 짐작하게 된 주위 사람들은 모두 속으로 혀를 깨물며 괴로워했다. 서문표가 관에 비녀를 꽂고 땅에 엎드려 강을 향해 절을 하며 공경의 뜻을 표하면서 삼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시 대략 한 시진을 그런 상태로 있었다. 서문표가 땅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삼로가 나이가 많아 그들 역시 하백이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한 것 같다. 할 수 없이 나이가 젊은 아전이나 마을의 호족들이 가서 나의 말을 전해야 되겠다."
아전과 호족들이 서문표의 말을 듣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흐르는 땀으로 등을 적시더니 일제히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머리를 땅에 부딪쳐 나온 피로 얼굴이 피범벅이 된 아전과 호족들은 땅에 엎드린 채로 결코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서문표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잠시 더 기다려 보기로 하겠다."
하백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전전긍긍했다. 시간이 다시 한 시진쯤 경과하자 서문표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하수의 물은 도도히 흐르건만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하백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함부로 민간의 여자를 죽게 만들었으니 너희들의 죄는 죽어 마땅하다 하겠다!"
아전들과 호족들이 다시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자기들이 지은 죄의 용서를 빌었다.
"원래 이 일은 모두 죽은 대무가 꾸민 사기행각이지 우리들이 지은 죄가 아닙니다."
"대무는 이미 죽었으니 이후에 다시 하백이 부인을 맞이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즉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하여 하백에게 보내리라!"
그리고 나서 아전, 호장 및 삼로의 재산들을 몰수하여 그들에게 착취당한 백성들에게 다시 돌려 주도록 했다. 다시 마을의 부로들을 시켜 백성들 중 나이가 찼으나 장가를 들지 못한 사람과 소무들을 결혼을 시키게 하여 무속의 뿌리를 뽑아 버리게 했다. 잘못된 무속으로 인하여 고향을 등지고 도망친 백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일을 두고 지은 시가 있다.
하백이 어떻게 그 부인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는가?
어리석은 백성들이 무식하여 무당에게 속고 있었음을
어진 사람의 한번 영으로써 의심의 그물을 걷고
근심스럽던 처녀들이 안심하고 잠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
河伯何曾見娶妻(하백하증견취처)
愚民無識被巫斯(우민무식피무사)
一從賢令除疑网(일종현령제의망)
女子安眠不授亏(여자안면부수우)
업도의 민심을 안정시킨 서문표는 업도의 지형을 상세하게 살펴 장수가 흐를 수 있는 곳을 정하여 백성들을 동원하여 큰 물길을 파도록 하였는데 모두 12 군데가 되었다. 이어서 장수의 물을 새로 판 물길로 끌어들이자 장수의 물살이 완만하게 되었다. 다시 물길의 앞쪽에다 전답을 일구게 한 후에 그 물을 끌어들여 잠기게 하니 그 후로는 가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윽고 벼농사가 잘되어 그 수확이 두 배나 늘어나게 되었다. 백성들은 모두 즐거운 마음이 되어 생업을 열심히 했다. 오늘날도 임장현(臨漳縣)에 가면 서문거(西門渠)라는 관개시설이 있는데 바로 서문표가 미신을 타파한 후에 백성들을 위해 굴착한 구거(溝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