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사박 외 7편
윤의섭
집에서 한 이 리쯤 떨어진
남사박 저수지에서는 해마다 한 명씩 꼭꼭 익사했다
물 속으로 꼭꼭 숨은 뒤에 산 모습으론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해엔 시체조차 건져내지 못했고
검푸른 물 속에선 무얼 먹는지
커다란 잉어가 지그시 배 깔고 산다는데.
어릴 적 저수지에서 헤엄치고 놀던 마을 사람들은,
물풀을 물귀신으로 믿고
섬뜩 놀라 쥐가 나거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은
친구들 문드러진 살국물을 조금씩은 다들 먹었고
벼농사 밭농사가 밑천이니
매년 그 물을 논 밭에 대어왔다
익사한 사람들의 무덤은
다른 이유로 죽은 사람들 무덤 사이에 놓여져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특별한 사망 원인으로 취급되지도 않았다
그들을 찾는 술래도 없다
조용한, 아주 조용한 무덤이다
마을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인 만큼 개발도 퇴화도 더뎠다
마을은 자급자족했다
조용한, 무덤처럼 조용한 땅
남사박에선 예로부터 나물이 많이 났고
즐겨 먹는 먹거리이기도 했다
산에도 저수지 근처에도 무덤 사이사이에도
나물은 근근이 끼니 때울 때 무척 요긴했었다
남새밭, 이름 그대로 남사박은
무얼 먹고 자꾸 돋는지 시퍼런 나물이 매년 씨도 마르지 않고 있다
-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에서
천국유사(天國遺事)
어느 묘목에서 귀곡성이 들린다기에 베어봤더니
어린 아이가 웅크린 채 들어 있었다
나무 안쪽엔 손톱으로 새긴 듯한 불살계가 쓰였다
서녘으로 가는 벌판에서 이상한 빛이 솟아올랐다
그 곳에 가까이 간 사람들은 죄다 돌아오지 않았다
소문엔 황금 거울이 놓여 있어 다들 거울 속에 살 거란다
산자락을 타고 오르는데
볼을 스치는 바람에서 비린내가 났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늘을 나는 물고기였다
물고기 주둥이엔 편지가 물려 있고
지느러미를 흔들며 한 소식 전하러 지상으로 내려갔다
농부가 땅을 일구는데 낯 선 지붕이 묻혀 있었다
아무리 파헤쳐도 층을 알 수 없는 고층 아파트가
뿌리 내린 채 비상등을 켜놓았다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그들의 꿈이 꼭은 이 세상을 이룬다고 여겨졌다
하루는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냐고 물었다
어쩌면 이 여인은 먼 훗날 나를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추억은 떠오르지 않았고
아직은 현생(現生)이 그립기만 했다
- 천국의 난민에서
북벽 연대기
내 지향점은 늘 북반구로 향한다 자성에 이끌리듯이
그곳에 거대한 절벽이 서 있다 시간을 뚫고 솟은 망각의 벽
한 귀퉁이에 강의 흔적이 남아있다 은하를 탁본하여
남에서 북으로 천구를 가로지른 삼백 억의 태양이 흘러간 흔적이 새겨 있다
나는 안다 북벽의 뿌리와 마천루 사이는 고단한 영혼으로 채워야 할 여백이라는 것을
작은 틈바구니에 겨우 둥지를 튼 이 간빙기가 단 한 줄 그어진 퇴적층인 것을
북벽을 생각하면 이미 북벽에 이른다
미래를 꿈꾸자 모든 과거가 생겨나듯
1. 고생대
새벽에 일어난 P씨는 밭으로 나가 살충제를 뿌렸다
벌레는 죽여야 할 존재였다 P씨는 새참을 먹고 다시
흙을 다져주었다 오후에는 텔레비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P씨는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반지하에 사는 동생네가
반찬거리를 갖다 주었다 P씨는 밭을 김매다
죽은 배추벌레를 발견했다 저녁에 동생네 집에서 반주를 걸친
P씨는 어두운 계단을 걸어 현관 앞에 섰다
감지기로 자동 점등된 백열구 불빛이 P씨에게
뿌려졌다 신화 시대에서 그리 멀리 오진 않았다
2. 성스러운 시간
그녀를 안고 깊은 잠에 빠진다
삼십 년 전에도 그녀의 품에서 잠든 적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천 년 전에도 그녀와 깊은 잠에 빠진 적 있다
그녀와 잠에 든 순간만큼은 언제나 똑같다
깨어나보면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아침에 늘 혼자 깨어난다
하루 동안 새하얗게 늙어도
아침이면 생의 처음으로 돌아와 있다
늘 그녀의 품에서 죽었다 살아난다 불멸의 시대다
3. 미래계
산 너머 깊은 골에 손바닥만 한 땅뙈기가 있다
약초를 심어놓고 가끔 찾아간다
지나가는 바람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장소에
갈 때마다 영혼을 조금씩 떼어놓고 온다
비 피할 움막을 지어놓고 책도 한 권 갖다 놓았다
심심할 때 읽으라고
내 모든 기억까지 옮겨지면
거기서 느릿느릿 산보하라고
서툰 산길을 다져 놓았다
하루는 땅뙈기가 조금 움직인 듯했다
땅은 어디론가 흘러가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긴 여정이 끝나는 날
세상엔 손바닥만 한 땅뙈기만 남을 것이다
영혼이 거니는 신전만 남아
잊혀진 인류를 명상할 것이다
늙은 까마귀가 날아오길래 나는 약초 잎을 부리에 물려준다
4. 先캄브리아기
- 지구의 나이는 대략 47억 년 정도인데, 최초의 생명체가 야트막한 웅덩이 속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27억 년 전이다.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의 가장 오래된 화석은 약 25억 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헝클어진 머리는 가장 진화한 형태의 前頭葉이다
오랜 사색의 결과로 나무는 지층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로 결정했다
태어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나무의 몸을 입는다 나무는 죽음 이후에도 산다
25억 년을 그렇게 온통 빛을 빨아들이며
자신의 존속에 대해 계절마다 해탈하며
바람이 스치는 게 아니라 바람 속을 헤엄치는 거라네
그냥 서있는 게 아니라 몸속에선 억겁이 흐르고 있다네
5. 天長地久,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옥상에 올라 불타는 노을을 본다
옥상에 올라가 불타는 하룻저녁에 몸을 담근다
옥상에는 시들어 죽은 화초가 박제된 채 화분에 꽂혀있다
불사조처럼 죽어야 사는
불사조처럼
*
당신은 별빛의 화석이다
별은 죽을 때 가장 반짝이고/당신은
가장 빛나며 가장 먼 저편으로부터 간신히 찾아온
지울 수 없는 상흔이다/그러나 슬퍼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화석이므로
-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에서
石魚
계곡을 돌아 나온 바람 끝에 폭포 소리가 묻어 있다
예민해진 귀는 푸른 물빛을 느낀다
느지막한 휴일 오후에 걸려 온 전화의 목소리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외로웠느냐고 묻자 이번 생부턴 아니었을 거라며
수화기를 일 세기에 걸쳐 내려놓는다
물소리는 점점 커졌다
용케도 폭포가 메마를 철을 피해 찾아온 것이다
지난 가뭄에 다 말라붙었어도 물길은 지워지지 않아
사막의 와디 같은 산객들이 여기저기서 합류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류를 따라 세워진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쌓으며 소원을 빈다
자신들의 운명을 타고 난 별을 옮기는 중이다
사자자리 황소자리 처녀자리 물고기자리 물병자리가 지상에 그려지고
돌탑이 높아질수록 소원은 하도 간절하여
별을 얹는 동안 한 생애가 흘러간다
그 후로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는 알리는 것과 알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십 년을 헤어져 있다가도 한 번 보고 나면 다시 십 년을 견딜 수 있는 세속의 情理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마다 얼굴을 봐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니까 그럴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달을 주워 온다 달을 손바닥 위에 얹어 놓고 조금씩 사그라져 감쪽같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바라본다 가끔은 엄한 자리에 달을 놓아주기도 한다 미끄러져 달아나는 눈썹달의 지느러미가 흐릿하다 달을 들고 나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폭포 아래 용소에 石魚가 산다는 소문은 내게 간신히 전해졌다
실은 물속에 시퍼런 돌덩이가 잠겨있을 뿐이지만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石魚는 상류로 상류로 헤엄치고 있었다
수 세기를 거슬러 기원전으로
다시 제 나이만큼의 세월 건너 저 자리로 돌아와 외로운 회향을 거듭하는
石魚
온통 푸른 눈물에 잠겨 있는
石魚
- 마계에서
묵시록 Ⅰ
Ⅰ-ⅰ
이날 지상의 모든 잔존물은 한 권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그 문장을 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짐작컨대 지구력에 대한, 또는 인류에 대한 간략한 언급일 테지만 어제같이 달이 떠오르고 향기로운 미풍 귓불을 스쳐 가는데도, 어디선가 마악 꽃봉오리 터지려는 순간인데도 어떻게 종말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징조는 도처에서 가냘프게 떨거나 울고 있지만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징조는 그녀일 수도 있다
Ⅰ-ⅱ
이날 없던 별이 나타난다
Ⅰ-ⅲ
새벽 여섯시 육분육초 시계는 멎는다 떠오르던 태양이 지평선에 굳어 있다 승천하려다 절정의 순간을 간직한 채 곧추선 물안개 비늘처럼 흩날리다 하늘에 붙박인 꽃잎들 새소리 반쯤 들려오다 멈춰 버린다 육신 가운데 가장 먼저 정지하는 것은 방금까지 흐르던 기억이다 영혼은 폐쇄된다 다만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살아 있지 않다 밤새 텔레비전은 저절로 세 번 켜졌고 그때마다 부정되었다 화면을 비집고 나오려다 실패한 동물의 왕국과 사막의 모래와 메마른 강물을 맨발로 걸어간 자는 이천 년 전 지층으로 내려가 화석이 되었다 새벽 여섯시 육분육초 시계는 혼자 움직인다 세상이 시작되었지만 어디에서도 미동조차 없다 아무런 변화도 없으므로 아무런 절망도 없다 끝을 알지 못했으므로 구원도 없다 한없이 멈췄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한없이 멈췄다는 사실을 모른다
Ⅰ-ⅳ
이날 모든 문이 일제히 닫힌다
Ⅰ-ⅴ
그녀의 거리는 향기롭다 그녀는 몰약을 부어 줄 남자를 찾아다닌다 그녀가 예언자라면 눈이 먼 것이다 예언자가 아니라면 음부가 먼 것이다 노래를 부른다면 미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악기는 부서진 지 오래여서 절정을 부를 때면 늘 아프다 그녀가 걸음을 디디면 목련이 떨어졌다 잠시 앉을 때면 비가 내렸다 하늘을 바라보면 깨진 달이 떴다 그녀를 스쳐 볼 때마다 내게선 한 계절이 지난다 그녀는 유행가를 흥얼거린다 세상 끝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거리에 차오른다 이 마지막 세례는 처음이었다
Ⅰ-Ⅵ
이날 모든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 묵시록에서
감염
이건 몸에 쓰이는 후기 혹은 가장 오래 이어진 필사여서
아프기 전에 이미 아픔의 절정을 알고 마는 참어(讖語)
같은 증세로 저녁의 구름은 노을을 옮겨 적는다
꽃 내음은 바람을 적시고 바람은 멀리 한 계절을 끌고 간다
그러니까 나는 네게 복제된 증상이다
비접촉으로도 너의 고통과 결합하는 방식
물들기 쉬운 내력을 앓고 있었으므로 너는 다시 내가 불러낸 처음
어느 살점 속에 말없이 뿌리내리다 떠나가는 유목은 흔적을 남기지 않지
치명적이더라도 내게만 머물기 바라는 난치의 기억
내게서 자라나다 내 안에서 죽어야 하는 너라는 병
전이의 경로를 따라가 보면 달처럼 맴돌았다는 진단이 나올 것이다
한때 월식이 있었고 해독하기 힘든 천문이 새겨졌을 것이다
온몸으로 퍼지는 불온한 증여를 들여다본다
여기에 어떤 병명을 갖다 붙여도 가령
빗방울에 스민 구름 냄새라든가
단풍나무가 머금은 햇볕의 온기라든가
어쩌면 네게서 너무 멀어져 알아내기 힘들지라도
나는 지금 징후와 후유증 사이의 중간계를 통과하는 중이다
나는 아프기도 전에 감동했다는 것이며
물들었으므로 닮아 가야만 하는 의례를 따라
그리하여 면역이라는 영역에 들어설 때까지
-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에서
고비(苦悲)
비가 내리는데 실은 비가 오진 않아
내심으론 늘 낙하지점이 생겨났고 피할 수 없이 젖어드는
착각이라고 알면서도 비를 내리게 했다
한 번도 스스로 내린 적 없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기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긴 밤이 필요했다 내 알기로 물방울의 심장이 소진하는 비구름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나는 내리지 않는 비와 이명이 만들어낸 눈물 사이에서
여전히 너를 겪는 중이다 긴 밤이 필요했다 소진은 충분히 고통스럽다
이계를 사는 사람이란 이렇게 잊혀 있다 누군가 떠올린다 쳐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 비의 사막에 살며 유리창에 소라귀를 대 보는 사람
영역을 알 수 없다는 고비라는 사막도 있지 끝없이 번지는 중이기 때문이겠지 이 생존은 어떻게 죽지 않았을까라는 우문에는
미안해 나는 죽어 가며 사는데 이 말이 대답으로 들리면 도망쳐야 해 나는 아직도 비를 뿌리고 있어 메마를수록 잠기고 침몰하고 쓸리고 네가 종말처럼 사라져도 접시를 닦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라디오를 켜고 베개를 가누고 사막화는 격렬해지겠지 오지 않는 빗소리를 강제로 볼륨 높이고 영원히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는 거지
그런데 내가 미라가 되어 가도 비는 오지 않는다
지극은 어디까지 요구하나
-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에서
비몽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그는 한동안 말이 없다
그의 얼굴이 문득 아버지 얼굴과 겹치더니
다른 낯익은 얼굴로 보이다가
끝에 가선 모르는 얼굴로 바뀌어 있다
아무도 없던 거리였는데 골목에서 한두 사람이 걸어나오고
텅 빈 하늘이었는데 산 너머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온다
창밖 풍경이 팔십 년대처럼 보이는 건
그가 오랜 친구여서일 테고
전에도 이렇게 말없이 마주앉았던 적이 있어서였겠고
조용하던 카페에 갑자기 음악이 흐른다 상황을 눈치챈 듯
당황한 듯 관심을 돌리려는 듯
어느새 그는 그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한잔 하자 웃으며
카페가 서서히 멈추는 미동을 느낀다
그는 꾸는 사람 없이 돌아다니는 꿈이었다
자기가 꿈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였고
어쩌면 나 역시
옆집 살던 누나는 삼십 년 만에 나타났다
그녀는 스무 살 적 그대로였다
펫 숍에서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개가 있다
어렸을 때 키우다 죽은 개였다
공원 벤치에서 졸고 있던 노인
내가 아는 나이라면 졸음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아주 긴 장면을 잘라내고 편집된 영화가 상영 중이다
다큐멘터리인데 언제 찍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등장하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는 어떤 영원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르는
분명 아름다운 날들이었으나 믿지 못할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가급적 놀라지 않기로 한다
우린 신이 꾸던 꿈일 수도 있다
원래 꿈이었을 수도 있다
고양이도 나무도 바다도
꿈인 줄 모르니까 꿈인 줄 모른다
증거 하나 세상은 누가 죽어도 지워진 적 없다
증언 하나 너 어디 있다 지금 나타난 거니
증좌 하나 빈자리는 어떻게든 메꿔진다
부재
상처
그리움
모퉁이를 돌아가던 바람이 고개를 돌린다
이 한 줄기 가는 바람이 느껴지면 꿈이었던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안다
바람이 자리를 메꾸며 사람이었던 꿈이 소멸 중이다
그도 어머니로부터 태어났고 말을 배웠고 졸업하였으며 회사에 다녔다
살아있는 꿈이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꿈
이었다
거기 창가에도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겠지
같이 거닐던 도서관 길가에도 코스모스 피었겠지
다락에 잠들었어도 라디오는 최신가요를 수신 중일 테고
천막극장 사라졌지만
어느 마을에선가 천막 펼치고 옛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 것만 같은
보이지 않는 날
들리지 않는 거리
이상해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은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같아 보이고요
언제 적에 살다가 건너온 것일까요 복원된 듯
내일 창가에 빗방울이 흘러내렸지
내일 도서관 길가 코스모스는 조금 시들었지
이제 보니 나는 한평생을 다 가보았어요
무슨 계절이 끝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알 일도 없죠
좀 더 보고 싶어 달려봐도 노을은 빨랐다
영영 따라잡지 못하는 건 매일 꾸는 악몽에서도 그랬다
가까워질수록 좁혀지지 않는 거리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 여기서 할 수 있는 다다
깨어나도 깨어나는 꿈이었다
-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에서
윤의섭 시인 약력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전공 교수
199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4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로 등단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문학과 지성사, 1996)
천국의 난민(문학동네, 2000)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문학과 지성사, 2005)
마계(민음사, 2010)
묵시록(민음사, 2015)
어디서부터 오는 비인가요(민음사, 2019)
내가 다가가도 너는 켜지지 않았다(현대시학, 2021)
2009년 애지문학상 수상
2017년 계간 사이펀 우수작품상 수상
2018년 계간 딩아돌하 우수작품상 수상
2020년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1999년 대산창작기금 선정
2003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 선정
2005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 선정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지원 선정
2009년 경기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 선정
2017년 경기문화재단 기성작가창작지원 선정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계간 시와 편견 공동주간
계간 시와 경계 편집위원
계간 문학과 사람 편집위원
격월간 현대시학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