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에서 문경시 이화령까지 걸었다
제 17차 백두대간
1) 일시 : 2016.10.29일
2) 어디 : 은티마을~시루봉~이만봉~곰틀봉~백화산~황학산~조봉 ~이화령.
.....17.15km.....(백두대간 누계 338.27km)
3) 누구와 : 나 , 강쌤
4) 산행이야기 : 오늘 산행은 어제에 이어 두번째 산행을 마치고 광주까지 운전을 하고 가야 하므로 이른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문경 온천지역 모텔에서 4시에 일어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절반쯤 먹고 삶은 계란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서 출발했다.문경온천 물이 좋아서 피로가 빨리 날라 갔을까?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컨디션이 좋아서 다행이였다.은티마을로 갔다. 마을 주차장은 버스가 여러대 주차 할 만큼 넓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는데 동내 개들이 짖어댄다.나는 새벽녁에 동내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거나 새벽에 밥 짖는 굴뚝연기를 보면 불현듯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어린시절 어머니는 새벽밥을 지어 우리 형제들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시고 당신은 남광주시장으로 가시기 위해 새벽열차를 타러 나가시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나의 어린시절 새벽밥은 늘 가족중에 누군가가 남광주로 가는 열차를 타기위해 새벽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나고 어머니가 생각이 나는 거다.어머니! 오늘 은티마을의 동내 개가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새벽공기는 으시시 매섭다.나는 이번 산행 날씨가 이 정도로 매서울지 몰랐다. 얇게 준비한 옷차림이여서 빨리 몸이 달구어지기를 바랬고 추위와 조바심에 잰 걸음으로 들머리를 찾아 들었다. 오늘도 이화령까지 무념무상으로 걷고 이 가을을 즐기리라 다짐한다.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은티마을 앞 이정표)
새벽 5시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제 봐둔 시루봉쪽으로 들머리를 잡아 오늘의 산행을 시작한다.
본 등산로는 그리 많은 산객들이 지나 다니지 않았나 보다.
(은티마을 상수도 울타리에 메어 달린 리본들)
등로는 소로이며 길에 가을낙엽이 쌓여 길을 잃기를 여러번 더듬더듬 확인하며 서서히
진행해야 했다.그렇게 한참을 오르니 마을 상수도 경계 철책에 많은 리본이 있어
이 길이 맞는것 같아 안심이 된다.새벽의 찬공기를 가르고 거친숨을 내 품으며 한참을 걸었더니
어느덧 어두운 하늘도 열리고 시루봉과 이만봉 갈림길에 다 다른다.
잠시 쉬면서 지도를 보고 지형과 방향을 확인하여 주변의 산들을 이해했다.
대간길을 갈때는 수시로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더우기 어두운 밤에는 더 그렇다.
잠깐의 방향 실수로 한참을 알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만봉으로 가는 길에 리본들이 가지런하게 메달려 날리고 있다.
나도 리본을 제작 해 볼까? 리본은 너무 많으면 보기 흉하지만 적당히 있으면서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이 되기도 하여 요긴할 때가 많다. 이때까지 나의 리본은 없었다.
이만봉 아래 820m봉까지는 완만한 능선이다.날도 밝아 한적한 오름을 즐기며 걷고 있었다.
이만봉을 앞에 두고 820m 봉을 지난다. 5월에 피는 철쭉이 10월에 꽃망울 머금었다.
날씨가 변덕스럽고 수상하여 제철로 착각했나 보다. 꽃망울 머금은 철쭉은 마치 내가 인생을
사는게 서툴러 허둥댔던 젊은시절과 닮은듯 하다.
(곰틀봉에 올라 조망하는 강쌤)
한참을 걷다가 전망좋은 터을 만나 곰틀봉 아래 분지리 마을을 내려다 본다.
햇살받는 한쪽은 양지밭이고 반대편 계곡은 찬공기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해발 990m의 이만봉에 도착한다. 이만봉은 충북 괴산군의 명산 백화산과 희양산 사이 능선에
있는 아담한 봉이다. 이만봉 아래는 넓다란 평지이면서 주변은 산들이 둘러 쌓인 분지가 있었다.
임진왜란때 2만여 가구가 이 산골짜기에 피난를 왔고
화전을 하며 산 생활를 해서 이만봉이라 이름이 붙혀졌다는 말이 있다.
친구야! 여기서 물 한모금 하며 쉬어가자.이만봉 아래 분지 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곰틀봉 지나 사다리재에 이른다. 좌측으로는 분지리 안말 방향으로 등산로가 있다.
이만봉에서 곰틀봉과 사다리재를 지나는 구간은 닭벼슬 같은 뾰쪽한 바위를
여러개 넘는데 바위의 양옆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구간이였다.
등산로 정비는 거의 전무한 상태이며 위험구간 이여서 조심스럽게 넘고 천천히 걸어야 했다.
스스로 조심하고 전진 할 뿐이다. 밧줄구간을 내려서며 평천지를 지나 11시 30분
백화산(1,063m)에 도착한다. 백화산에 올라 행동간식을 먹었다.
점심대신 행동식으로 간식를 먹고 일어 서려는데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한부부가 올라 오신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부산에 사는분이시다.
이분들도 틈나는데로 백두대간를 조금씩 나누어 종주중이라 하셨다.
이분들은 빨리 가지 않고 우리보다 더 쉬엄쉬엄 더 짧게 북진중이시다.
이런 힘든 여정을 같이 하시는 부부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제 이화령까지는 6.9km 줄 곧 내리막이며 작은 봉우리 몇개을 넘어야 한다.
(황학산 분지)
황학산을 지나는데 넓은 분지가 나온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카톨릭신자들이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었던 살았던 은신처였다는 기록이 있었다.
내리막 편한 길임에도 오후에는 산행후반부라서 지친다.
몸은 서서히 지쳐오기 시작할 즈음 새의 부리를 닮았다는 조봉(673m)을 지난다.
조봉은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였다.
조봉를 지나면서의 나머지 마루길은 편안한 길이였다. 어떤 습지 연못이 있었고
그 습지 연못은 멧돼지가 물놀이 하고 목욕하며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산 아래 이화령 도로가 보이니 조급함을 가질 필요가 없다.
편안하게 걸어 오후 2시 이화령에 도착한다.
친구야 다 왔다! 강쌤! 오늘도 수고 했제!
이화령 절개지에 동식물 이동통로 터널 있었다.
지금은 통행량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차량통행 많았다고 한다.
"철쭉 같은 칡꽃같은
핏덩이 울컥 치받치거든
토해 내어야 할 사랑의 첫고개입니다"
~라 새겨 놓은 귀사랑고개 시(詩)탑 있었다.
나는 글을 행서체로 내려쓴 시를 읽는데 불편했다.
이제 그만큼 나이든 난독증임을 알고 서글펏다.
(이화령 돌탑에 서서)
어제에 이어 오늘은 은티마을에서 이화령까지 걷고 백두대간 돌탑 앞에 섰다.
이화령은 충북 괴산에서 경북 문경을 잇는 고개이다. 옛이름은 "이우릿재"였는데 1914년
조선총독부가 " 근세 한국 지형도"를 제작하면서 이름이 바뀌어져서 현재에 이르럿다고 한다
문경시는 2007년 "이화령" 지명을 폐기하고 "이우릿재"라고 사용하기로 바로 잡았으나
대부분 이화령으로 알고 있으니 잘못 된것이 진짜가 되어 버린 형국이다.
이 고갯길에 배꽃이 많아서 부르게 됐다는 이화령이라는 이름도 좋은 이름 같았다.
오늘은 5시에 새벽산행을 시작하고 오후 2시에 완료 했으니 9시간 산에 머물다 내려 왔다.
예약한 문경택시를 이용하여 은티마을로 가서 차를 회수하여
이틀간의 산행을 마무리 하고 광주로 이동 하였다.
동행하는 강원서친구의 둘째 아들이
오늘 발표한 2016년 국가 행정 재무고시에 최종 합격했다.
강쌤의 둘째아들이 과거에 급제한 것이다.
친구야! 축하한다.
대간을 걸으면서 기도을 하고 괘방령 과거급제의 탑에서
아들의 입신양면을 위해 기도를 하더니 아빠의 그 기도가 먹혔나 보다.
친구의 아들이 공복으로서 훌륭한 공무원이 되어
이 나라의 큰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됐으면 좋겠다.
2016년 10월 30일(일) 걷고 11월 9일 썼다.
* 동량지재(棟梁之材)란 초한지에 나오는 말로
소하가 한나라 왕에게 한신을 대원수로 등용할것을 추천하면서
한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을 만한 재목이라고 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