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백의종군길 이음 도보 대행군 참가기(13)
23. 수곡 거쳐서 예닮촌 지나다(옥정 청수 – 산청 원지 28km)
9월 5일(화), 전날처럼 구름 끼어 걷기 좋다. 아침 6시, 숙소에서 가까운 직전꽃천지마을에서 미리 준비 해 놓은 아침식사(마을 공동체 경영의 식당이어서 직원 출근 전)를 들고 승합차로 출발지점인 옥산서원 쪽으로 향하였다.
오전 7시, 전날 도착지점인 옥정 청수를 출발하니 곧장 교차로, 남해 방향으로 세종태실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전날 저녁에 들은 세종과 단종의 태실이 이 지역에 있다는 말을 확인하는 셈, 잠시 후 옥정면 법대리에 들어선다. 전날 차편으로 답사를 했는데도 갈림길에서 잠시 혼선을 일으켜 주춤한다. 한참 걸어서 다른 동네로 들어선줄 알았더니 아직도 법대리, 이정표 표지판에는 산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 안내했던 군 관계자가 산길은 사유지가 포함되어 통행할 수 없다며 도로를 이용하도록 권고한다. 그길 따라 가는 도중 가슴에 명패를 찬 할머니를 만났다. 적힌 내용은 노노캐어 참가자, 건강한 노인이 편찮은 노인을 돌보는 프로그램인 것을 짐작케 한다. 연꽃이 활짝 피고 벼가 잘 자란 들 지나 고갯길에 이르니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들판이 온통 온실재배지다. 딸기가 주된 품목, 모종하는 일꾼들의 손길이 바쁘다.

연꽃 활짝 피고 벼가 잘 자란 들판길이 아름답다
고개 아래 다리 앞에서 하천 쪽으로 들어선다. 잡초 우거진 길을 걸어가니 풀숲에 막혀 길이 안 보인다. 한참을 해매다 가까스로 풀숲을 해쳐 나아가니 산길에서 내려오는 길목과 만난다. 산성 마을, 병천 마을 지나 한동안 걸으니 10시 경 운암마을 지나서 운암교 다리에 이른다. 다리 앞에 정자가 있다. 이정표 표지판에 '강정 - 회의장소'라 적혀 있다. 난중일기에는 1597년 7월 26일, 운암바위를 의지하고 동남쪽으로 덕천 강을 굽어보는 이곳에서 진주목사와 만나 전략을 논의했다고 적혀 있다.
운암교를 지나며 바라보는 주변 지세가 아름답다. 강 건너서는 진주시 수곡면 원계리, 사흘간 걸은 하동 길이 이곳에서 끝난다. 다리건너 진주방향으로 10여분 올라가니 진배미 훈련장, 이충무공 군사훈련유적비가 크게 세워져 있고 1597년(선조 30년, 정유년) 손경례의 집에 머물면서 군사를 점검하고 말을 달리던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난중일기(정유년 7월 29일)에는 권율 원수가 보낸 군대는 말도 없고 활에 화살도 없어 크게 소용이 없었다고 기록하였다. 진배미 가까운 곳에 손경례집(이순신이 통제사로 재수임 받은 사적지) 입구라는 표시가 있으나 정작 어느 집인지 찾기 어렵다.(돌아 나오는 길에 주민에게 물어서 확인)
진주 방향으로 들어갔던 길을 되돌아서 동월마을 지나니 수곡면이 끝나고 11시 20분 경 산청군 단성면에 들어선다. 한 시간쯤 걸으니 단성면 금만마을 입구, 면 관계자가 일행을 맞아 인사를 나눈 후 그 동네에 사는 산길 안내인을 붙인다. 그의 인도로 금만마을을 지나 고개를 두 개 넘어서 내려온 곳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고 내세우는 남사 예닮촌의 이사교이다. 산길 걷느라 꽤 많은 시간이 경과, 오후 1시 반에 예닮촌 흙돼지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메뉴는 흙돼지두루치기)을 들었다. 진주에 사는 강호감 대원의 큰 형님(강호종 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딸기 원예의 최고권위자)이 이곳까지 와서 점심을 대접하는 성의가 고맙다.
오후 2시 50분에 이사교를 출발하여 단성 쪽으로 향하였다. 한 시간여 걸으니 문익점면화시배지가 나온다. 고려조 문익점이 중국에서 면화씨를 가져와 처음 재배한 곳에 문익점유허비가 크게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10여분 휴식 후 단성면 소재지를 지나 경호강을 가로지르는 단성교를 건너니 원지삼거리, 오늘의 목적지다. 도착시간은 오후 4시 45분, 28km를 걸었다. 오늘로 22일째, 지금까지 약 610km를 걸었다.

꽃길이 아름다운 단성교
원지삼거리 강변 숙소(포유 모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서니 꽤 멀리 떨어진 오리요리 전문점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8시, 구름 많이 끼고도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남은 일정도 순조로워라.
* 서울에서 응원 겸 남은 일정 같이 걷고자 내려온 백희선, 문영식, 이장수, 손형권, 장정윤 씨 등이 저녁에 합류하였다. 멀리 찾아온 동호인들에게 감사. 산청군은 지리산을 낀 청정자연지대로 산하가 아름답고 격조가 느껴지는 고을, 강을 건너며 바라보는 경관이 적벽을 떠올리고 남사 예닮촌의 니구산과 사수는 공자의 고향 곡부의 지명을 차용하였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그럴 듯하다.
24. 문화의 고장 거쳐 합천에 들어서다(산청 원지 – 합천 삼가 31km)
9월 6일(수), 밤에 비가 많이 내리다 그쳤다. 아침 6시, 숙소를 나서 인근의 농장식육식당에서 꽃게탕으로 아침을 들고 출발지점인 원지삼거리로 향하였다. 신안면의 이병혁 면장과 성순용 문화해설사, 직원들이 일행을 맞아 관내를 함께 걷겠다고 말한다. 면장의 설명, 신안면 인구는 6천여 명으로 면 지역으로는 많은 편이고 출발지점인 원지가 예부터 교통요충으로 지금도 서울, 부산, 진주 등으로 내왕하는 교통편이 많고 물산이 비교적 풍부한 지역이란다.
오전 7시, 경호강변 따라 합천 방향으로 나섰다. 성순영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며 지역의 역사, 문화를 주고받는 대화가 유익하다. 신안면 중촌리 일대는 가야고분군지로 소가야가 세력을 떨친 곳, 산청이 한때는 검찬국이었다고 설명한다.
한 시간 넘게 걸어 농협 운대지점에서 휴식, 이장수 씨가 서울에서부터 만들어온 증편 떡과 집행부가 준비한 홍삼 즙 등을 간식으로 든다. 산중인데도 군데군데 넓은 들판, 세 시간여 걸어 신안면 지나 신등면 단계마을에 들어선다. 산청군 허기도 군수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김진환 신등면장과 직원들이 면계에서 영접하는 등 따뜻하게 환영해주어 감사하다.
면소재지인 단계는 문화재로 지정된 담벼락을 비롯하여 역사와 문화의 오랜 숨결이 담겨 있는 곳이다. 이 지역 김효영 문화해설사가 면소재지를 한 바퀴 돌며 이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단계천변 쉼터에서 단계가 한국 최초의 양반 주도의 민란발상지이고 임진왜란 때는 이곳 출신인 남명 조식의 문하 52명이 의병활동과 진주대첩의 후방지원활동을 벌인 일 등. 단계 쉼터에는 1997년에 세운 이순신 장군 추모탑과 장군상, 거북선 모형이 있고 고려시대의 물난리 예방의 전설이 서린 산청 단계 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29호)이 특이하다.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있는 단계 쉼터에서
단계초등학교 정문의 삭비문(數飛門, 참새가 자주 날개 짓을 하면서 연습하듯 연마하라는 의미가 담겼다)과 멋있는 학교, 멋있는 교육을 다짐하는 지표가 뜻깊다. 그 앞의 웅장한 정자 단계루(丹溪樓)에 새긴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섬긴다면 효도는 지극한 것이고(以妻愛子心으로 事親則曲盡其孝요)’를 비롯한 경구도 품격이 있다. 작은 고을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구나.
10시 반 경 단계교 건너 면소재지를 벗어나 합천 방향 도로로 접어든다. 한 시간 걸어 월평삼거리에 이르니 지역 관계자들이 당초 예정한 합천군 삼가면 가는 산길 코스는 일반인의 통행이 두절되어 길이 막혔다며 합천군 가회면으로 우회하기를 권한다. 집행부는 난처한 기색, 승합차로 현지답사를 한 후에 결정하기로. 답사 결과 두 조로 나누어 집행부는 산길 개척하면서, 서울에서 응원 차 참여한 일행은 가회면으로 우회하여 가도록 결정한다.(나는 서울 응원 팀에 합류)
집행부는 현지답사, 가회면으로 우회하는 팀은 그 쪽 방향으로 걷는다. 걷는 중 강호갑 대원의 초등학교 동창(서저자, 강학림 씨)이 점심을 대접하러 진주에서 일부러 찾아왔다. 떡도 한 상자 싣고 온 정성이 고맙다. 점심장소는 면소재지의 막창진주식당, 메뉴는 돼지전골이다. 갑작스런 손님들을 차분하게 맞아 솜씨 있게 음식을 차리는 조봉희 여주인을 치하하는 마음으로 실명을 적는다.
오후 1시에 서울 팀은 가회면에서 삼가면 쪽으로, 집행부는 승합차로 월평삼거리로 향하였다. 가회면소재지에서 두 시간쯤 걸으니 산길에서 삼가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삼가면 덕진리)에 이른다. 산길 걷는 집행부에 전화를 하니 절반도 답파하지 못했다며 길이 매우 험하여 진행이 더디다는 대답이다. 서울 팀은 삼가면의 숙소까지 직행하기로 결정, 오후 3시 경 괴정 회나무 당산에 이른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휴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곳, 500년 된 회나무가 그 증거로 우뚝 서 있다. 그곳에서 만난 김성인 백학산성보존회 사무장이 친절하게 지역상황을 일러준다.

500년 회나무를 배경으로 서울 팀과 함께
오후 3시 반, 하판마을에 이르니 조선시대 저명유학자 남명 조식(1501-1572)의 고향, 남명로라는 비석이 보인다. 비석에는 하판리가 그의 출생지며 서울과 합천을 무대로 활동한 이력이 상세히 적혀 있다.
4시 반, 삼가면 소재지에 들어서 양천을 건너는 가수교 지나노라니 낚시하는 태공이 월척의 붕어를 낚아 올리며 쾌재를 부른다. 덩달아 지나가는 행인도 기분이 좋구나. 숙소는 삼가초등학교 앞의 백악관 민박, 학생 등 단체가 이용하는 식당과 숙소를 갖춘 큰 규모다. 숙소에 도착하니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비가 올 기세였는데 도착 후라 다행, 두 시간 늦은 집행부는 산에서 내려온 후 쫄딱 비를 맞아 고생하였다. 산길이 험하여 여러 번 넘어지기도 하였다네.
6시 반부터 백악관식당에서 잘 차린 저녁을 들며 24일간 대행군의 마지막 전야임을 상기하였다. 저녁식사는 서울 응원 팀이 대접, 서울 팀의 성원에 감사. 배준태 단장이 지금까지 무사히 걸어 뜻깊은 전야를 맞은 것을 자축하며 건배를 제의한다. 모두들 건강, 무사히 유종의 대미를 거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