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배움이 애물단지
돌샘 이재영
허구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뒤늦게 시작한 배움이 자유를 막고 쉴 틈조차 없어 애물단지이다. 30대 초반에 현직에 있으면서 봉강 서실에 등록한 것이 서예와 첫 인연이다. 당시에 대구서예계서는 해서에 소헌 김만호 선생, 행초서엔 효대 죽농 선생을 제 일인자로 꼽았다. 봉강 서실은 소헌 김만호 선생이 운영하는 곳으로 입회가 까다로운 것을 뚫고 들어갔다. 잘 쓴다는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겨우 일 년을 하다가 말았다. 갑상선 기능 저하란 병으로 중단한 것이 애석하여 퇴직을 하자 어느 서실에 입회한 지 8년이나 출품한 번 못했다..
퇴직 1년 후 중앙도서관에서 실시하는 성인 교육프로에 박정남 시인의 시 강의를 신청하고 들으면서 2년 후에 장호병 교수님의 수필 강의를 또 신청했다. 수필은 청강 후 3년째 되던 해의 중반에 운 좋게도 2007년도에 서울에 있는 문학미디어 신인상으로 등단을 했지만, 서예와 시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했다. 모두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니 쉴 틈조차 없다. 버리자니 투자한 세월이 아깝다. 내 스스로 뛰어들었으니 배우는 기쁨에 한 가지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등산을 좋아하여 산행을 하면 나는 듯이 정상을 제일 먼저 밟았다. 삼 년 전 젊은 산악인들을 따라 무리한 산행으로 무릎 관절염을 앓은 후류 증으로 산행을 못하는 나에게 문학과 서예가 유일한 낙이기 때문이다. 애물단지이긴 하지 만, 이젠 어찌할 도리 없이 죽는 날까지 같이 가야 할 운명이 되었다. 1주일에 4일 공부하는 날을 제하고 10여 개가 넘는 모임에 참가하려면 늘 쫓기는 생활이다. 그러나 몇 년간은 욕심 없이 세월을 즐겼다. 등단과 자신의 책을 쓰고 싶은 욕망과 명작을 한 편 남기고 싶은 것은 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욕심이다. 서예도 마찬가지다. 인정을 받자면 국전에 입선, 특선, 대상을 받아야 하니, 나에겐 모두 맨머리에 해띵격이다. 그래서 나의 갈 길이 태산이요 가시밭길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세월과 건강이 내 마음을 한없이 초조하게 조여 온다.
시 강의를 신청한 것은 교과서에 시들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박두진 시인의 해, 이은상 작, 봄처녀. 조지훈 작, 승무. 김소월 작, 초혼. 서정주 작, 국화 옆에서. 박목월 작, 나그네와 윤사월, 청노루, 박화목 작 보리밭 등등 이런 시들이 좋아서 외우면서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시는 이해가 힘들고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인정은 못 받아도 누구나 싶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수필도 백설부, 청춘예찬, 생활인의 철학, 산정무한 등등 교과서의 글이 좋아서 시작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문학도 변하여 이젠 따라가기조차 힘든다. 이런 상황에 내 욕심이 무리인 줄 아나 나의 운명이니, 가는데 까지 가볼 수밖에 없다.
사람은 여행과, 운동과, 산행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만 할 수는 없다. 움직이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늙어갈수록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임도 가고, 다정한 친구도, 애인도, 지인도 다 떠나가고 혼자 남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극도로 외롭고 삶이 허무하여 슬퍼진다. 그때는 문학과 서예가 친구요, 가족이요, 애인이 될 것이다. 모임이 10여 개가 넘지만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문학 동호인과 서예 동호인 모임만큼 즐겁고 보람 있는 모임이 없다. 아무리 처음 만나도 그 사람이 쓴 글 한 편에 지기(志氣)가 상통한다. 서예도 마찬가지다. 글씨 한 자만 보면 작자와 뜻이 통하기 때문이다.
수필 등단 후에 나에게 열린 세계는 더 아름답다. 시의 세계와 서예의 길도 마찬가지리라. 내 꿈이 과욕이나 절차를 거쳐 꿈을 이루고 싶다. 그러나 꿈을 이루려는 과정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고행길이다. 그 목표를 이룰 때 찬란한 황금기로 한 걸음 씩 다가가는 과정은 고통이 아니라 금방으로 들어가는 기쁨일 수도 있다. 그런 고로 즐거운 마음으로 첩첩 쌓인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넘고 어려움을 극복하리라
고행의 산이 높을수록 기쁨도 크다. 인생의 금방을 넘나드는 길에 넘기 힘드는 산이 없다면 성취의 기쁨이 어찌 기쁘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고통은 그 자체가 기쁨이요, 희망이다. 그러므로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나의 기쁨이며 행복이다. 수필 등단으로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왔듯이 또 새로운 길을 연다면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보람을 한없이 느끼리라.
꿈을 이루고 못 이룸은 나의 몫이다. 지금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맨땅에 해띵 격이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도중에 생이 끝날지라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큰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전진하는 그 삶이 바로 희망이요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끊임없는 도전이요,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 하리라. 그래서 만 시에 시작한 배움이 애물단지가 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끝까지 달려가리라.
첫댓글 돌샘 선생님, 선생님의 글에 대한 사랑, 의지가 대단하십니다. 선새님을 대하면서 저는 그 연세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햇습니다. 등단하시고도 또 신청하여 배우고자하는 그 의지를 꼭 배우고 싶습니다. 항사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귀한 글이 한더위에 지처 누운 풀같았던 제에게 힘을 주네요.
또 한번 희망을 품어 봐야겠습니다.
너무 좋은글 득탬하고 힘이 보태집니다.
감사드려요 . 행복한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