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齒說(빠진 이를 아쉬워하며)
김창흡
숙종 44년 무술년은 내가 예순 여섯 살이 되던 해이다. 갑자기 앞니 하나가 빠져버렸다. 그러자 입술도 일그러지고 말도 새고 얼굴까지도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 같았다.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니 놀랍게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려했다. 그렇게 한 참을 바라보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림은 짚자리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늙은이가 되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절차를 밟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갓난아이로 죽으면 이도 나보지 못한 채 죽게 되고 예닐곱 살에 죽으면 젖니도 갈지 못한 채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여덟 살을 지나 육 칠십까지 살면 새 이가 난 뒤이고 다시 팔구십 살이 되면 이가 또 새로 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나이를 따져보니 거의 4분의 3을 산 셈이다. 영구치가 난 뒤로 벌써 환갑이 되었으니 너무 일찍 빠졌다고 하여 한탄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금년은 크게 흉년이 들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니 그러한 정상을 생각해 보면 나처럼 이 빠진 귀신이 된 이가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나는 일러한 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넉넉하게 먹기로 하였다. 그렇지 않고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사람이 체력을 유지하고 기르는데는 음식 만한 것이 없는데 음식을 먹으려면 이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가 빠지고 나니 빠진 이 사이로 물이 새고 밥은 딱딱하여 잘 씹히지 않으며 간간이 고기라도 씹으려면 마치 독약을 마시는 사람처럼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책상 앞에 앉아도 빠진 이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나이 신세가 걱정된다. 그렇지 않아도 쇠약한 몸이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매미의 배에 거북의 창자 꼴이 될 것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어쩌겠는가. 그러니 먹고 마시는 일은 되어 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입에 올리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다. 이제부터라도 아침저녁으로 시골풍경을 바라보면서 책이나 흥얼거리는 것으로 말년을 보내려 했다. 그리하여 캄캄한 밤에 촛불로 길을 비추듯 인간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고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가 빠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치 깨진 종소리 같아서 빠르고 느림이 마디지지 못하고 말고 탁한 소리가 조화를 잃고 칠음(七音)①의 높낮이도 분간할 수 없으며 팔풍(八風)②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낭랑한 목소리를 내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으나 끝내 소리가 말려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내 모양이 슬퍼서 책 읽는 일을 그만두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더욱 게을러져 갔다.
결국 인간의 근본을 찾으려 했던 최초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것이 이가 빠지고 난 뒤에 나이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다.
나의 일생을 돌이켜볼 때 내가 비록 늙었다고는 하나 몸이 가볍고 건강하다는 것만은 자신했었다. 걸어서 산에 오르거나 종일토록 먼길을 말을 타고 달리거나 때로는 천리 길을 가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등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내 또래들과 비교해 볼 때에 나만한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하며 자못 기분이 좋았다. 이미 노쇠한 것도 잊고 오히려 건강하다고 잘 못 생각하고는 어떤 일을 당해도 겁내지 않고 달려들어 처리했으며 신바람이 나면 아무리 먼길이라도 달려갔다가 반드시 녹초가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벌려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수습할 수 없게 되면 스스로 타이르기를 이 뒤에는 시골에 몸을 숨겨 다시는 문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잃은 마치 버릇처럼 되어서 저녁이면 후회하면서도 아침이면 다시 그 일을 되풀이하곤 했다. 이는 아마도 나이에 따라 분명히 체력의 한계가 있는데도 그 것을 모르고 겁 없이 살아온 데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얼굴이 일그러져 추한 모습으로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모두들 놀라고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 내가 아무리 늘었음을 잠깐만이라도 잊으려 한다 해도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나는 노인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겠다.
옛날 선인들의 예법에 사람이 예순 살이 되면 마을에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고 군대에 나가지 않으며 또 학문을 한다고 덤비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일찍이 <예기>를 읽었으나 이와 같은 예법에는 동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곤 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그 동안 내가 한 행동이 잘못 되었음을 크게 깨달았다. 앞으로는 조용한 가운데 휴식을 찾아야 할까보다. 결국 빠진 이가 나에게 경고해준 바가 참으로 적지 않다 하겠다.
옛날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朱子)도 눈이 어두워진 것이 계기가 되어 본심을 잃지 않고 타고난 착한 성품을 기르는데 전심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자 더 일찍 눈이 어두워지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이가 빠진 것도 또한 너무 늦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얼굴이 일그러졌으니 조용히 들어앉아 있어야 하고 말이 새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고 고기를 씹기 어려우니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고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지 못하나 그냥 마음속으로나 읽어야 할 것 같다.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정신이 안정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오래 서는 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글을 읽으면 조용한 가운데 인생의 도를 터득할 수 잇을 터이니 그 손익을 따져본다면 그 이로움이 도리어 많지 않겠는가.
그러니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스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자는 속된 사람이다. 경망스럽지도 않고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마음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이리하여 답답한 마음으로 세상을 조화롭게 살다가 아무 미련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감각의 세계에서 벗어나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이 곧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길이며 근심을 떨쳐버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노래를 짓는다.
이여, 이여!
그대 나이 얼마인가.
60년이 돌아오니
온갖 음식 갖추어 맛보았지.
공을 이루면 물러나고
보답이 극진하면 사양하는 법
나는 나의 빠진 이를 보고
세상의 조화를 깨달았지.
하늘에 빛나는 찬란한 별도
떨어지면 한낱 볼품없는 돌
여름내 무성한 나뭇잎도
서리 내리면 떨어지는 법.
이 것은 절로 그리 되는 일
딱하다 애처롭다 할 것 없다네
나는 조용히 자취를 감춘 채
침묵 속에 내 마음을 지키려 하네.
편안한 잠자리 하나면
온갖 인연이 부질없는 일
배를 채우는데는 고기가 필요 없고
얼굴은 동안이 아니어도 상관없네.
정신이 깨어있는 이여!
그대는 오직 이 이의 주인이로세.
주: ① 동양음악의 국(宮) 상(商) 각(角) 치(緻) 우(羽)의 다섯 음에 반상(半商) 반치(半緻)를 더한 일곱 음.
② 여덟 가지의 악기 곧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을 팔음(八音)이라 하는데 이 팔음을 팔풍(八風)이라 한 듯 하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
조선 중기 학자.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본관은 안동(安東). 김창집(金昌集)·김창협(金昌協)의 아우이다. 15살 때 이단상(李端相)에게 배우고, 1673년(현종 14) 진사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사양하고 유불도 삼가(三家)에 심취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김창협과 함께 형제가 이이(李珥) 이후의 대학자로 명성이 높았다. 신임사화(辛壬士禍)로 유배된 형 창집의 일로 지병이 도져 이듬해 석교(石郊) 촌사(村舍)에서 죽었다. 영조 즉위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서에《삼연집(三淵集)》《심양일기(瀋陽日記)》《문취(文趣)》등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 화악산(華岳山) 북쪽에 화음동정사(華陰洞精舍)란 터를 마련하고 한 세상을 보낸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의 조카이기도 하다. 그의 시문이 곡운구곡도(谷雲九谷圖)에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