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의 누명
대부분의 탄수화물 식품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것은 밀가루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정말 밀가루를 끊어서 체중이 빠졌을까, 아니면 그 안에 든 지방이나 설탕을 안 먹게 되어서 빠진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밀가루 음식을 먹고 비만이 되는 원인은 그 속에 든 계란, 우유, 버터, 설탕 때문이지, 밀가루 자체로 인해 초래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1970년대의 우리나라 1인당 밀가루 섭취량은 152g이었는데, 2011년 142g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오히려 더 많은 밀가루를 먹었던 과거에는 거의 없었던 비만이 오늘날에는 큰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1970년대엔 밀가루를 주로 칼국수, 수제비, 술빵 등으로 먹었다. 당시 밀가루 반죽에는 밀가루, 물, 약간의 소금 외에 들어가는 게 없었다. 그리고 호박, 감자, 쑥갓 등 다양한 채소를 넣어 끓인 국물에 국수나 수제비를 삶아 먹었다. 계란이 귀하던 시절이라 계란을 반죽에 넣거나 국물에 푸는 일은 드물었다. 술빵도 마찬가지였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다음 쪄서 만들었다. 빵 맛을 도우기 위해 설탕을 넣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밀가루 음식은 어떤가?
빵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빵 반죽에는 밀가루, 설탕, 버터, 식용유가 거의 같은 양이 들어가고, 계란도 필수로 들어간다. 오히려 이 정도만 들어가면 다행이다. 여기에 치즈나 햄 등이 들어간 빵도 부지기수이다. 라면, 과자, 피자, 빵 등 소위 밀가루 음식이라 불리는 음식들 치고 순수하게 밀가루 음식인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이런 음식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밀가루가 아니라 밀가루와 함께 먹는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식용유, 설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만 문제라고 생각하면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채식빵이라는 게 있다. 빵을 만들 때 계란, 우유, 버터 등의 동물성 재료를 일절 넣지 않기 때문에 일견 건강에 유익할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대부분의 채식빵은 동물성 재료를 넣지 않았을 따름이지 식용유나 설탕을 듬뿍 넣어서 맛있게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빵이 건강에 좋을 리 만무하다.
글루텐 프리 빵도 마찬가지이다. 밀가루 대신에 옥수수가루나 아몬드 가루로 대체해서 글루텐은 없겠지만, 맛을 내기 위해 버터, 우유, 계란, 설탕, 식용유 등을 넣기 때문에 결코 건강식이라 말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유, 계란, 식용유, 설탕 등의 불순물만 없다면 밀가루 음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채식빵이라고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다. 건강한 채식을 해야 한다.
자료제공 / 파인힐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