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5일 오후 2시. 오늘은 나무자람터로 바로 올라갑니다.
오늘의 활동은 처음 시작하는 <개미문학회>입니다.
주제는 내가 노을공원에 오는 이유/다른 존재를 마주한다는 것이었는데요.
계속 생각해오기도 했지만 공원을 조용히 걸어올라가는 20분 동안 더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나무자람터에 가니 원두막 가운데에 전기히터를 들고 개미님들이 옹송그리고 앉아서 조용히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고 계셨습니다. 김수영, 강병훈 부부개미님, 박인아 신입개미님, 조준형 개미님, 김성민 개미님, 추정림 활동가, 이지송 활동가님이 계셨어요.
지난번에도 뵈었던 김수영 강병훈 개미님은 거의 매주 오시는 것 같았는데요. 오늘 김수영님이 노을공원에 오시는 이유를 잘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원래 기업재무일을 하시다가 지금은 학생신분이고 시민정원사가 되어 활동을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정원에서 식물을 관리하는 방법과 기준에 대해서 수많은 의견이 있다고 하네요. 어디까지가 잡초인가, 가지치기를 하는 방식, 낙엽을 얼마만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등등 고민을 하시면서 식물과 생명을 대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그 과정에 노을공원에도 오시고요. 그리고 정원사분들은 대체로 어르신이지만 노고시모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셔요. 태블릿에 그리신 그림은 참 사랑스러웠어요. 데님 오버올을 입고 전지가위를 들고 물음표를 띄운 수영님.. 다음 화면에는 뜰보리수를 전지작업했던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뜰보리수에 맹아지가 많이 났는데 정원수업시간에 배운대로 맹아지를 모두 잘라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맹아지가 난다는 것은 그 나무가 어떻게든 살기 위한 시도이고, 어딘가 불편하다는 신호인데 과연 이런 작업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생기셨다고 해요. 강병훈님과 좋아하는 일을 나누고 싶어서 같이 오신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남편이라니 너무 부러워요...)
박인아님은 처음 오신 날에 동물 사진도 찍고 문학회 참여도 하시게 되었다고 해요. 원래 낯선 곳, 새로운 곳에 가시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해요. (이것도 너무나 부럽고 신기합니다. 저는 처음 가는 곳에서는 일단 길을 잃을까봐 긴장이 되거든요) 새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날아가서 못찍었지만 기러기똥 흔적을 보아서 신기하셨다고 해요^^
제가 노고시모에 오는 이유도 여럿 적어보았어요. 처음에는 한강조합에서 조합원 활동을 하다보니 전설 속의 노고시모와 강덕희 사무국장님 이야기를 여러번 듣게 되었고, 숲의 향연 2회 때 만나뵈니 꼭 또 만나고 싶은 분들이라서 계속 오게 되었답니다. 첫 개미활동때 지난 번 숲향때부터 미소지으며 조용히 일하시던 여성분께, ‘그런데 뭐라고 호칭해야 할까요? 활동가이시죠?’ 했더니 ‘저는 그냥 자원봉사자예요’하고 웃으시며 간식을 챙겨주시던 분은 김성란 박사님이셨어요. 책을 건네주실 때도 ‘이건 제가 쓴 책이에요’라고 한마디도 말씀을 안하셔서 나중에 박사님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사려깊고 겸손한 박사님에 비해 제가 얼마나 얄팍한 인간인지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젠 OB가 안계신데도 계속 오게되는 이유는 역시 처음부터 근저에 있던 저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우주는 광활하고 지구 속의 나는 티끌이고 삶은 사실 너무나 짧고 하찮은 것이지만, 저는 저의 삶이 의미있기를 바라고 의미있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도시인으로 살면서 제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야 태반은 쓰레기입니다. 제가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산과자연의친구, 지구행동 등 비교적 소규모의 여러 생태지향적 단체에 드나들고 있는데요. 한곳에만 집중하지 않는 이유는, 한줌밖에 안되는 듯 보이는 우리편끼리라도 서로 연결되고 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런데 사실 각 단체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사업을 확보하기 위해서 평소에 연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아요. 사회의 거대한 자본 흐름에 맞서기에는 모래알처럼 보입니다. 각자 너무 열심히 하고 있지만 힘들어요.
노을공원시민모임에 올 때면 그냥 나무와 나만 생각하면 됩니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반대해야 할 정책 사업도 없어요. 누군가가 정성들여 싹틔운 집씨통을 땅에 심어주고 어린나무를 꺼내주고 김을 매줍니다.
다른 존재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른 존재를 마주하려면 일단 저를 비워야 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소음과 눈앞을 압도하는 광고를 피해 방안으로 들어가면 카톡이 오고 중요한 메일에 답신을 해야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독서를 하다가도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고 싶어지고, 검색을 하다보면 결국은 또 카톡을 확인하고..
김수영님도 말씀하셨지만 그 자리에도 존재하는 무엇인가가 있지만 지각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쇠딱따구리가 드러밍을 너무 가까이에서 열심히 하는데 두분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했다고 하셨어요.
추정림 활동가님이 예전에 김성란 박사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우리가 씨앗이 되어서 노을공원 안에서부터 다른 존재를 마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고 노을공원 안에서 실컷 펼쳐보자고 하셨다고 해요.
추정림 활동가는 곤충의 하루를 분절된 단어들을 연결해서 시로 써주셨어요. 추정림 활동가는 생태에 대해서 엄청나게 끊임없이 공부하고 직접 보고 기록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심지어 자기 전에 상상하면서 잠들고는 한다고 해요. (카프카의 변신이 생각나는 건 무엇때문이죠..;;) 곤충의 의지와 생각, 느낌을 묘사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부적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곤충의 하루 행동 변화를 쭉 적어보고 그 안에서 각자 상상해보는 수밖에요. 언어로 표현하면 벌써 의인화된 나의 느낌으로 좁아질 수 밖에 없으니, 추정림 활동가의 시는 적절한 방법인 것 같아요. 옆에 있던 김성민 개미님도 애기장대와 애벌레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데 애벌레를 식물로 옮겼다가 실험도구로 옮겼다가 하는 등 계속 조건을 바꿀 때 애벌레가 어떻게 느끼는지 정말 알고 싶다고 합니다.
김성민 개미님은 다른 존재를 마주하는 일은 어렵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다른 존재를 보는 것과 마주하는 것은 다르고, 마주하면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우리가 어째서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싸우고 분쟁이 생기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마주하기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결국 주변만 마주하고 있지만 넓히고 싶고 세상에 서야하는데, 노을공원에서는 쉽고 기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고 해주셨어요.
.조용히 그림을 그리시던 이지송 활동가님. 반대편에 앉아서 무얼 그리시는지 사실 짐작도 못했는데 열어서 보여주신 건 통통한 삼색고양이였어요. 복슬복슬하고 여유롭고 웃고 있는 듯한 고양이..이름은 후글이라고 합니다. 후글 컬처는 강덕희 활동가님께서 알려주신 개념이라고 해요. 집에 와서 찾아보니 퍼머컬처 개념 중 하나인데 썩은 나무로 만드는 자연퇴비언덕이더라고요. 후글이는 늘 느긋하지만 땅바닥에 엎드려있곤 하나봐요. 이지송 활동가님이 노을공원에 오는 이유는 늘 마주하는 나무들과 동물들에게 필요한 걸 해주고 싶어서라고 하셨어요. 이지송 활동가님을 늘 스치듯이 만나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왠지 믿음직스러운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조준형 개미님은 존재를 마주한다는 것을 회피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어요. 진실한 이해보다는 피상적인 관계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하지 않는 사람들, 관심사에 맞추어 알고리즘에 따라 편향되게 제공되는 정보들 속에서.. 진짜 존재를 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이지만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세연이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새에 고라니를 그려놓고는 잠이 들어버렸어요. 지난 여름에 신기하게도 두 번째 왔던 날 바로 마주쳤던 고라니 이야기를 그려놓았어요. 아이 마음에는 그 고라니와 놀고 싶었던 아쉬움이 남았나봐요^^
살아온 배경과 살아가는 방법이 모두 다른데도 다들 고민하고 생각하는 결이 비슷한 것이 신기했어요. 또 개미님들이 입을 모아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요. 우리는 비교적 쉽고 즐겁게 참여하고 돌아가지만 활동가님들은 오랫동안 끈기를 가지고 관찰하고 일하고 실패하고 다시 또 하는 모든 과정을 다 해내시는 것에 대해서 존경한다고 했어요. 빛나는 우리 활동가님들 정말 아름다워요. 도시인과 일상에서 저 멀리, 생성과 소멸 주기에 긍정적인 역할을 더해주고, 희귀하고 젊고 진심을 다하기에 아름답고 슬픕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얼마간의 슬픔을 반드시 담고 있지요. 아름다운 모임을 끝내고, 심지어 식사를 만들어주신대서 컨테이너로 다시 갔습니다. 이지송 활동가님이 자전거에 싣고 먼저 가서 요리를 하신대요.
인덕션에서는 순식간에 카레떡볶이와 차돌육개장+누룽지가 완성되었어요. 김밥도 조금, 계란도 조금. 음식은 조금도 남지 않았고, 정말 맛있었어요. 조리하느라도 설거지가 많이 생겼는데 세척이 편리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아는지라 다들 미안해했지만 이지송활동가님은 얼른 가시라고 하셔서 그냥 두고 나왔습니다. 노고시모에서 먹는 건 뭐든 맛있어서 세연이도 정말 열심히 먹었습니다.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어요.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공감하기보다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이런 모임도 드물지요. 개미문학회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듣고 내 생각도 더 키워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대화하면서 살면 이 세상에는 평화뿐일텐데요..
곧 또 뵙겠습니다.
덧붙여서.
이번 달 문학회에서 기록하셨던 내용은 자율적으로 개미문학회 카테고리에 업로드하기로 하셨어요. 또한 현장 참여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아무 때나 자기 생각을 올릴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첫댓글 와~ 어제 모임의 내용을 상세하게 작성해주셔서 나중에 열어봐도 기억날 것 같아요 ㅎㅎ 후기 작성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