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캘리포니아 배일(排日) 문제에 집착하는 내막(日爭加州問題之內幕)
2024년 8월 21일 번역
1918년 11월 11일에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1월에 전승국들은 파리 강화회의에서 독일의 산동성 이권을 일본이 계승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중국 북양(北洋) 군벌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여 외교 실패를 초래하였습니다.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반영한 베르사유 조약이 1919년 6월에 체결되었고, 생제르맹 조약, 트리아농 조약, 세브르 조약, 뇌이 조약이 체결되어 패전국들은 많은 영토가 민족별 국가로 나눠 독립하였다. 1920년 1월 런던에서 첫 국제연맹 회의가 개최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위키, 제1차 세계 대전)
이 시기에 중국의 혁명인사와 지식인은 일본과 미국의 외교적 담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일본은 만주와 몽고 지역을 경제적으로 침략하려고 미국과 외교 담판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중국 북양 군벌 정부와 혁명인사들은 다만 일본이 독일의 산동성 이권을 계승하려는 것에 반대하고 북양 군벌 정부의 외교 실패를 전국에 널리 알려 시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54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아래 기사는 1919년 10월에 게재하여 이런 관심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국제환경이 바뀐 것을 독립에 가장 좋은 기회를 보고 국제외교에 치중하였고 중국의 정부(북경과 광주의 군벌 정부와 참의원 중의원 및 손문)에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하였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혁명인사와 지식인은 몇 가지 이유 가운데 일본의 동북아시아 침략을 막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대하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요구한 독립의 외교적 지원과 국가 승인을 추진하자는 여론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손문과 당소의(唐紹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자는 여론을 이끌었습니다. 여기에는 신규식 선생이 10년 가까이 쌓은 개인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아래 기사는 당시 일본이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전개한 외교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담판 전략을 보면 상대방 국가의 약점을 잡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자신의 이익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상대방 국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문제를 일본이 계속하여 제기하기에 마치 중요한 문제처럼 만들어가고 여기에서 이권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 누군가가 일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발언이고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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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캘리포니아 배일(排日) 문제에 집착하는 내막(日爭加州問題之內幕)」︰
(목적은 아시아 침략의 자유권을 얻는 것이다, 意在取得侵略亞洲之自由權)
『진단(震壇)』,제6호 (한국 기원 4253년, 대한민국 2년 11월 14일)
중미통신사(中美通信社) 워싱톤에서 소식이 전하길 :
일본 정부가 비록 국민 여론을 격렬하게 고무시키면서 캘리포니아 안건과 일본인의 미국 이민권리에 집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일본과 미국이 서로 다투는 근본적인 안건은 이민의 토지권 또는 민족 평등이 아니고 더 중요한 문제는 일본이 앞으로 극동아시아에서 가지려는 지위이다. 미국 관원과 일본대사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郎,1872-1951,1919年 駐美大使)의 협상을 보면 양국 외교 쟁점의 초점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갖는 지위이며 일본 교민이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받는 지위가 아니다.
이러한 견해는 근래의 양국 담판을 보면 이민문제를 담판하면서 큰 문제 없이 평온한데 쌍방은 이것이 큰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조만간에 반드시 제기될 것인데 일본이 경제로써 아시아를 침략하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외교관들은 진정한 근본문제를 잠시 제기하지 않고 먼저 캘리포니아 문제와 민족 평등 문제를 제기하여 국내 여론 감정을 통일시키고 진정한 근본문제가 나타나면 일본인이 잘 해결하는 것이 일본의 침략에 유리하며 민족 평등의 선언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근래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어떤 방문객이 뉴욕의 모 신문에 게재한 글이다. 그의 글은 평탄하고 조용하며(平靜) 외교가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말하길 “일본은 이민문제에 대하여 미국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 없고 실제로는 일본이 미국 먼로주의(Monroe Doctrine)의 해당 지역을 선포하고 미국이 이유 없이 간섭한다면 최대한 막겠다는 것이다.”고 한다.
일본 외교관과 미국 관원의 담판은 처음부터 각기 가진 생각을 공개하지 않는데, 이민문제를 교섭하는 이면에는 쌍방 모두 더 중대한 문제는 정치적 개척, 실업(산업)의 확장, 동아시아 편벽한 지역(만주와 몽고 지역)의 무역 셋이라고 인정하였다. 따라서 미국 워싱톤은 일본 동경이 귀찮게 하는 것에 대하여 별다르게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냉정하다. 미국 정부에서 교섭에 나온 관원들은 양국의 충돌이 결코 현재 표면상의 문제(캘리포니아 문제와 이민 문제)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일본이 미국에 대하여 민족 불평등 문제를 이용하여 외교적 승리를 거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에 대하여 제기한 민족 불평등 문제는 사실상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영토 침략에 이용하려는 미끼이다. 또 일본이 파리 강화회의에 나간 목적은 독일이 산동성 지역에서 가졌던 이권을 빼앗은 일본이 계속 지키겠다는 것이며 이것을 이용하여 마음대로(自由) 중국을 잠식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민족 불평등 문제에 관한 쟁론이 뜨겁게 되면 오히려 일본과 미국의 민족 불평등 문제 부각보다는 거꾸로 동맹국들의 민족 불평등까지도 인정할 것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뒤에 호주(Australia) 총리 휴즈(William Hughes, 재임 기간 1915-1923년)가 영국 식민지의 자치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일본 외교관은 민족 불평등 문제를 끝까지 고집하지 못하였다. 일본 정부 안에서도 일본이 미국에 민족 불평등 문제 제기를 이용하여 어느 정도의 양도권(讓與權)을 얻어 중국의 부유한 지역 가운데 한 지역(산동지역)을 점거하겠다고 말하였다.
현재 일본이 파리 강화회의에 참여하였는데 일본의 진정한 국제정책(외교정책)은 아시아에서 영토와 상무(商務) 지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토가 가장 큰 러시아 영토의 절반 정도를 점거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반대하여 일본이 실패하였으나 일본은 그냥 끝내지 않으려고 한다. 미국 관원은 일본이 연합위원회를 캘리포니아에 파견하여 연구하는 방안을 주장한 것은 시간을 끌려는 의도라고 본다. 동경은 잘 알고 있는데, 첫째, 앞으로 미국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반드시 조약을 체결하여 캘리포니아 지위와 이민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현재 민주당 윌슨 대통령 재임 기간에 조약을 체결한다면) 공화당 당수는 윌슨 대통령(Woodrow Wilson, 민주당 대통령, 1916년 재임 성공) 퇴임 이후에는 체결한 조약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은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 현재 조약의 권리 조항에 급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바라는 것은 미국 민주당의 친선우호적인 선언이며 다음 정권(민주당 집권)이 올라섰을 때 양당의 조약 비준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양국의 표면적인 쟁점을 해결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실제적인 진정한 관계(근본문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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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壇』(星期刊),第六號,中華民國九年十一月十四日,韓國紀元四千二百五十三年,(大韓)民國二年
「日爭加州問題之內幕」︰
(意在取得侵略亞洲之自由權)
中美通信社華盛頓消息云︰日本政府雖竭力激勵人民,爭持加州排日案,及日人在美國之移徙權。其實日美所爭根本之事,並非移民土地權,或種族平等,較重要之問題,即日本在遠東將來之地位耳。據美國官吏,與日使幣原(幣原喜重郎,1872-1951,1919年駐美大使)磋議者,言兩國所爭外交之焦點,在日本在亞洲之地位,而不在其僑民在加州等地之地位。
此種見解,非(非,誤字)根據于近來之談判,並談判移民問題,尙稱平順,雙方皆覺此非大問題。根本問題,遲早終必提起,即日本用經濟侵略亞洲也。目下日本外交家將眞正問題,暫不提出,先提加州問題,及種族平等問題,以統一國內之感情,迨眞問題發現時,日本人將能解決此事,其有利於日本侵略家(家,者之誤字),必較種族平等之宣言爲大。凡抱此意見者,令人注意,近來舊金山日本某訪員,登載於紐約某報之文。其議論之平靜,非外交界所能得,其言曰︰日本對於移民問題,實無與美國爲難之意。惟日本宣布孟祿主義(Monroe Doctrine)之地,美政府如無故干涉,日本將竭力抗制之云云。
日本外交家與美國官之談論,從不宣布所懷之宗旨,移民交涉之背面,雙方皆承認有較大問題,即政治之開拓、實業之發展,及東亞僻區之貿易。故美京對於東京之擾攘,不甚注意,頗爲冷靜,因美政府方面交涉之人,深知二國衝突,決不因目前表面之問題而起。
凡抱此見解者,謂日本用種族問題,以勝制外交已非一次。種族問題,實領土侵略之餌耳。日本在巴黎之目的,爲保存德國在山東之權利,以便自由蠶食中國。然至爭論劇烈時,反沒而不彰,反要求承認盟約中之種族平等。
後因澳洲胡基總理,爭英國屬地之自治,故日本外交家不能堅持到底。惟東京政府中人謂種族問題不過用以取得一定之讓與權,以佔據中國富饒之一者耳。
今與巴黎和會時間,眞正之國際政策,在擴張其領土與商務之區域於亞洲。此可於佔據極大俄國之一半見之。美國爭而無效,日本不欲速了此事。美國官以爲日本主張派聯合委員會研究加州案,實爲有心遷延。東京知共和黨掌權時,必能締結條約,解決加州地位及移民問題。該黨領袖,必不贊成威爾遜時(時,氏之誤字)下野時所訂之條約。日人頗關心政局,今不亟亟於條約之權利。所望者民主黨親善之宣言,待下次政府成立時,即有二黨之批約。然此不過解決二國表面之爭端,實際之關係並未議及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