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가슴이 메입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닮은 분이 계신다는 것은 기쁨중의 기쁨이였습니다,
나를 테스트 하셔야 합니다,함께 함은 뜻의 바램입니다,
67년 12일간의 수련기간은 내 인생의 문을 연 결정적인 시간이였습니다,
박동화형님이 아버님을 찝차로 모시고 오셨습니다,
그때주신 말씀은 가슴속에 묻고 평생을 말씀의 실체가 되기위한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너가 Gp(God President)다,
인류전체가 Gp의 가치를 지녔다는 말씀이였습니다,
말씀을 먹자 有의 형님은 자기뜻을 어겼으니 동생이 아니라는 선언을 했습니다,
슬프지만 기뻤습니다,내길을 갈수있게 되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겁없이 개척전도를 결심했습니다,
12일 수련을 마치자 발영지 산청을 향해가는 도중 진주교회에서 하룻밤을 묶기로 했습니다,
그날저녁 교구장님이 순회를 오셨습니다,
나를 보시자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산청으로 발령받았습니다고 했드니
그리 가지말고 부산교구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가족들이 머무는 곳이니 교회생활은 어렵다고 말씀드렸드니
막무가내 내 뜻은 간곳없고 고삐잡힌 망아지가 되어
부산으로 와서 옹두산 공원앞에 있는 예화산탄 공기총 사업장을 책임맡았습니다,
끼니 때마다 교회를 갈려면 보수동 사거리 매형이 근무하는 병원앞읋 지나 다녀야 했습니다,
항상 가족에게 들킬까봐 마음을 조아려야 했습니다,
7일금식을 시도 했습니다,하필이면 그때 조카가 예화산탄 공기총 사업장에 나타나서 나를 발견했습니다,
염여했던 사건이 터저버렸습니다,
형님이 달려왔습니다,나를 어머니 앞으로 데리고 갔습니다,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음식상을 차려 오셨지만,
나는 금식중이라 음식을 멀리하자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나하고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차 영리한 형님은 교구장님을 찾아갔습니다,
가정생활 하면서 교회를 다니게 교구장님의 허락을 받아 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가정생활 하면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마음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매형한분이 경남도청운수과에 근무를 하셨기에 나를 엔지니어로 성장시키기위해
김해동신버스회사에서 정비를 배우게 했습니다,
보통1종 대형1종운전면허증을 소유하게되는 계기가 되어 군입대를 하고 포병대대 대대장을 모실수있는 기회를 얻어
운전을 마스터 했습니다,
매형의 믿음 덕분에 개인택시,4.5톤복사를 소유하면서 전국을 누볐지만,마음은 항상 원리에 꼿혀 있었기에
75년 구국세계대회를 계기로 사업은 친구에에 맏기고,
21일 40일 수련을 마치고,경남하동악양으로 6개월 개척전도 발령을 이요한 목사님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목회가 꿈이였기에 기쁨생활을 했읍니다,
본격적인 목회를 하게되면 트랙터1대를 구입하여 농촌계몽을 필두로 일손을 도우면서
현장목회를 해야겠다는 야무진 꿈도 꾸었습니다,
6개월 기간이 끝나자 협회에 내뜻을 전했습니다,
대형운전면허를 소유하고 있으니 순회전도단과 합류하여 목회수업을 더 하고싶다는 뜻이였습니다,
협회가 허락해 순회전도단 7기부터 전국을 누비며 신바람나는 목회수업이 진행되었지만,
다음기에 영동에서 협회로 다시불려 왔습니다,
영동에서 협회로 오는 도중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습니다,협회장님을 모시는 길보다 목회수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협회장님을 모시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였지만 총무부장님께 내뜻을 분명히 전했습니다,
총무부장님은 놀라시면서 본인의 뜻이 그렇다면 뜻대로 할수있도록 협회장님께 허락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러자 대학원리연구회 국제순회전도단이 발족되어 한남학사에서 합숙생활을 하면서 목회수업을 재개했습니다,
전국대학 캠버스를 누비며 언어장벽이 가로놓인 이들과 강연를 준비하며 아마추어 관광을 했던 시간들은
부족함을 느낀 정통목회에서 사업을 겸한 현장목회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습니다,
觀光은 빛을 보여주는 사업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호롱불도,태양도,보이는 빛이지만 마음의 본심은 하나님과 연결된 진짜 빛이였기에.
보이지 않는 작가가 만든 자연이란 작품을 통해 작가인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동기가 된것입니다,
원대로 만날수 있었던 청평성지와 수련을 겸한 만4년간의 청파동 협회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1980년 현장목회의 꿈을 안고 부산을 향했습니다,
관광회사에 입문하여 1988년 88가정 축복을 받고 동방의 빛이란 뜻으로, 현장목회 시발점, 동진고속관광 (주)간판을 달았습니다,
97년 IMF를 만나기 전까지 10년간은 신용을 기반으로 사회와 원리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의미있는 시간들을 만들었습니다,
부산고속대표이사,동아대경영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부산대학 국제사회지도자과정,부산시가 주관하고 관광협회가 앞장섰던 일본,동남아,상해.항주,알래스카등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맺는 장소에는 항상 동행했습니다,
국제승공연합조직국장,세계일보조사위원회장,세계평화청년연합부산시초대회장
웨딩,장의,유학,관광학원, 이밴트 팜프렛에 아버님의 사인을 받은 것은 현장목회 사업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97년 OK관광(주)버스 30대를 만들어 부곡하와이 쑈무대를 빌려 축복행사와 오픈행사를 겸한 연출로서 IMF로 말미암은
20c나의 행보는 끝을 보고 말았습니다,
영업이 제로가 되자 곧바로 버스15대를 반값에 처분하여
나를 믿어준 60명의 보증인들을 모두 구한 일은 지금도 참잘한 일이였다고,기억합니다,
2,000년 밀레니엄 새시대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재기의 꿈을 안고 유통의 밑바닥을 쓸고 다녔습니다,ㅣ
회사 만드는 일은 자신이 있었기에 이번엔 유통회사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1명이 2명 4.8.16으로 이어지니 결국은 한국국민을 다 책임져야하는 그림이라, 확실한 기술이나 제품이 없으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2004년 MoGen발명자를 만났습니다,
불변의 관심사는 메시아의 선택받은 모국은 반드시 일등국가가 될것인데 무엇으로 될것인가?였습니다,
동력인 모터와 에너지의 결합인 초효율 모젠이라면 가능 하겠다는 생각을 한것입니다,
미국에서 세계최초로 전기자동차 컨소시엄을 형성한 칼스타트에서 Bldc Motor부분에서
세계최고모터를 인정받은 발명자의 이력은 나를 매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모타사랑하는 모임의 (주)모사모 대표이사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시간표를 맞추지 못하자 회사는 어려움을 겪고 말았을때
한국은 개인이 외환시장에 참여할수 있도록 금융시장 개방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하루에 3.5조 달러가 움직이는 세계최대 외환시장의 그림을 만났습니다,
기뻣습니다,
세계IQ 일등국가인 한국의 인재들이
먹이가 큰만큼 세계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시장에서 일대일 게임을 할수있는 길이 열린것입니다,
월수익10%는 쉽게 보였습니다,
10억이면 월1억 년12억 순수익이면,
중소기업 100억매출을 일으키는 회사와 맞먹는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융선진화를 꿈꾸며 FX백만대군 양성이란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그당시로선 금융으로 한국의 위치는 아프리카수준과 맞먹는 세계82위 였습니다,
신바람이 났습니다,
Fx초보 카페를 만들고 교육자료를 모았습니다,
2.000명이상의 회원들이 모이자 전국을 쏘다니며 필요로 하는곳에 FX 지도를 했습니다,
지금 뒤돌아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행보였습니다,
Fx대통령 카페를 만들어 나만의 자료실을 만들었습니다,
외환시장의 매력을 느낀. 특히 복리가 가능한 상품은 유일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꿈을 포기할수 없었습니다,
자동프로그램을 만드는 연구원들을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시장을 넘볼수 있었고 해아그룹의 젊은 부회장과 인연이 되어
합작회사를 만들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분기별250억 년간 일천억원의 거래자금을 약속받은 독점 계약을 성립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나를 단련시킨 불변의 뜻을 지원하는 필수요건이였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돌고돌아 Gp손실제로 복리의 마법 게임을 손에 쥐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금융은 모든 사업의 꽃입니다,
금융을 손에 쥐어야 뜻을 완벽하게 뒷바침 할수있습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금융이 자리잡고 있음을 쉽게발견할수있습니다,
금융은 양날의 칼입니다,
잘쓰면 행운의 열쇠요, 잘못쓰면 독이 됩니다,
미숙한 인간에게 들어가면 모순이 동행하기 때문에 순수한 목회자들의 시각은 경제를 멀리하게 됩니다,
하늘의 섭리는 일점일획도 어긋남이 없이 창조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전환기에 Gp손실제로 복리의 마법게임이 분리의 모순을 내속에서 제거했습니다,
▶Gp손실제로 복리의 마법게임의 특징1
생애 최고의 기쁨입니다,
2024.1114 Gp金通
▶부자될 놈
▶나 하나 성장시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