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운명을 거론하는 대화들이 유난히 가슴을 후빈다. 요즘 들어 내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들과 비슷한 것들이어서 그런지 극장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한없이 터덕거린다.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서운한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내가 좀 힘들어도 맏이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끝까지 밀고 나가면 좋으련만 이제 와서 이리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늘 아픈 치레를 하느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약골이어서 동생들을 다스리기에 나는 너무 허약한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의 기대치는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동생들 틈바구니에서 잘못한 일들은 대부분 내가 야단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에서 데려온 아이 아닐까 싶어 홀로 서러운 눈물을 짓기도 했다.
내 성격 형성은 건강하지 못한 신체에서 비롯된 후천적 영향이 더 많다. 몹쓸 병 때문에 남 앞에 나서기 싫어서 한때는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그 후유증이 평생 나를 옭아맸다. 성격이 강인한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런 내가 마뜩찮으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와 나는 살가운 모녀간의 애정 표현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어느 땐 다른 사람들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 표현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 관계를 만들어 볼까 싶어도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억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맏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혼자 된 어머니를 내 곁으로 오시게 했다.
그렇게 그저 그런 날들이 흘러갔다. 그러나 남 보기엔 잔잔한 물결이었지만 밑바닥에선 가끔 용솟음치는 격렬한 용트림이 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절대 가까이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며 어머니 모셔 오는 걸 극구 반대했던 어느 스님의 말씀이 되새겨졌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내 어머니인데 그런 운명 같은 것에 매달려서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스치고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곪아서 흐르는 진물이 또 다른 종기를 만들어 갔다. 그래도 그런 것들을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애써 잘해보려고 모시고 와선 내가 불만을 토로한다면 그것은 내 자존심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신히 버텼다. 아니, 애써 태연한 척하느라 가슴속엔 늘 무거운 돌 하나가 얹혀 있었다.
나이 탓일까. 어느 날부터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후회가 되었다. 내 어찌 어머니를 모셔왔던가. 아들과 함께 사시게 가만히 놔두었으면 사이가 이리 나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나도 어쩌다 한 번씩 얼굴 비치면서 귀한 자식 대접받고 살았을 텐데. 무슨 오지랖으로 맏이 노릇을 한다고 모셔 와서 결국은 이런 상황이 되어 버렸는지, 왜 그리 간곡히 말리는 스님의 말씀을 거역했는지 모를 일이다.
운명이라는 걸 거부하고 싶었다. 그런 것은 나약한 인간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렸다. 그 스님의 말씀에 얽매이지 않으리라고, 피하지 않고 부딪혀 당당히 운명에 맞서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운명이라는 단어가 집요하게 나를 붙들고 늘어진다.
왜 나는 맏이라는 덫을 걸고 살려고 했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는 책임을 지려고 부단히 몸부림을 치고 살았을까. 어머니와 나는 정말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에 얽혀 있는 것일까. 그런 걸 거부하려고 한 것이 바보 같은 짓이었을까.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철벽 앞에서 통곡을 한다. 눈물 한 방울 없는 통곡이다. 어릴 적 숨어서 울던 때의 눈물이 그립다. 그때는 어머니의 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서러운 눈물이었고 이제는 어머니의 딸이 아니고 싶은 독한 통곡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있다는 악연이, 그런 딸이 아니고 싶은 처절한 통곡이다.
운명은 정말 거역할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