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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통(幻肢通)”, 마경덕 시인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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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2020. 12. 14. 17:56
"환지통(幻肢通)", 마경덕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입력 : 2020/12/14 [11:15]
© 시인뉴스 포엠
〔문단소식〕"환지통(幻肢通)”, 마경덕 시인과의 인터뷰
잘린 나무는 어떻게 긴 밤을 견디는 것일까 / 없는 가지가 사무쳐 온몸으로 벅벅 허공을 긁는다는 말, 허공이 욱신거려 / 손목이 돋는 봄을 기다린다는 말 / 이것은 손톱에 때가 낀 나무들만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 피가 나게 허공을 긁어본 / 보기 좋은 나무들은 손목이 없다
시인의 시「환지통」中에서
선생님께 시를 배운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시원시원한 지도와 책임감 강하고 빠른 일 처리가 나는 좋았다. 몇 개인가의 시 창작 교실을 운영하고 계셨고, 시평과 시 쓰기, 블로그 (“내 영혼의 깊은 곳”) 운영 (선생님의 블로그는 문청들 사이에 아주 유명하다.) 등 하루하루 고되고 빡빡한 일정에도 수강생들에게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과 나는 코드가 잘 맞는 편이었다.
내가 모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디에 등단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더 오래 쓰느냐” 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현재의 나는 기대에 못 드는 시 쓰기를 하고 있지만, 나에게 불어 닥친 혼란을 내가 다 포용하고 긍정하게 되는 어느 날 나는 다시 소박한 시 쓰기에 매진할 수 있게 될 것을 믿는다.
언젠가 황인숙 시인의 옥탑 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긴 머리의 황인숙 시인은 연신 줄담배를 태우며 ‘인생 총질량의 법칙’에 대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지금 내게서 부족했거나 혹은 내게서 넘쳐났었던 인생의 질량을 채우거나 겪거나 비우는 시간을 처절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별 기대 없이 조심스레 인터뷰 의사를 타전했을 때, 넉넉한 품으로 선뜻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선생님께 시를 배우던 시절로 돌아가 스승의 고독하고 치열했을 문학 여정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대표시 모음》
얼음의 죽음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 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 시집『사물의 입』)
그녀의 외로움은 B형
앞집 렌지후드에서 빠져나온 저녁메뉴와 반쪽 창문에 걸린 거실 표정을 책상위에 올려두고 잠을 설쳤다
프라이팬과 여자의 관계는 우호적이다. 닭다리튀김, 소시지볶음, 햄, 생선튀김…여자는 늘 프라이팬을 의지한다. 팬은 지나치게 입이 크다 뱃살이 늘면 외로움도 품을 넓힌다.
먼저 ‘마른 A형’과 ‘비만 B형’으로 외로움을 분류한다.
소파나 여자의 무릎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오는 고양이 울음도 B형이다. 두 마리 고양이와 비만형 여자는 24시간 서로를 의지한다. 주방에서 맴도는 고양이의 허기는 여자의 우울증과 비례한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가면 여자는 프라이팬과 고양이를 붙잡고 있다.
간간이 끼어드는 기침소리, 그 음습한 소리는 주방 반대편에 산다. 문턱을 넘지 못한 누군가 그 방에 단단히 밀봉되어 있다. 여자는 가끔 방문을 향해 프라이팬을 던지며 소리를 지른다. 기침소리에 그녀는 왈칵 고등어통조림처럼 쏟아진다.
마당 늙은 살구나무가 창문을 가리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외로움’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로움과 프라이팬, 폭식과 허기는 사랑과 동일한가? 리포트는 아직 미완성이다.
(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
환지통
잘린 나무는 어떻게 긴 밤을 견디는 것일까
없는 가지가 사무쳐 온몸으로 벅벅 허공을 긁는다는 말, 허공이 욱신거려
손목이 돋는 봄을 기다린다는 말
이것은 손톱에 때가 낀 나무들만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피가 나게 허공을 긁어본
보기 좋은 나무들은 손목이 없다
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마취제일까 진통제일까
교통사고를 당한 사내도 다리가 아파 못살겠다고
없는 다리를 만지며 엉엉 운다
의사가 말했다
사라진 다리를 기억하는 것은 뇌라고
걷고 달리고 걷어차던 습관을 뇌는 아직 붙잡고 있는 거라고
오래전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홀아비도
없는 자식이 그토록 아프다고 한다
살아있는 것처럼,
없는 다리가 아프고
없는 자식이 또 아프다
치장을 마친 정원의 나무들이 동쪽 허공을 문지르며 우는 밤이다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
• 잘 지내셨죠! 선생님. 다시 뵙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연말이라 많이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몹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의 근황을 알고 싶습니다.
• 코로나로 인해 휴강이 되고 지금은 온라인 강의와 글 쓰는 일로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제 반경은 늘 똑 같아요. 집과 작업실, 그리고 교회를 오갑니다. 가능한 단순하게 살려고 하지요.
• 선생님의 시「환지통」에서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모두는 환지통을 앓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날 신혼인 언니 집에서 잠깐 기거하셨는데, 선생님께선 한겨울에도 차가운 툇마루에서 잠을 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참 고단한 시절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시인이 되기 위한 견습공 시절을 혹독하게 담금질 하지 않으셨나 싶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시절의 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버지가 파산을 하고 서울 언니네집으로 무작정 상경을 했지요. 어린 동생들이 줄줄이 있어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언니가 첫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중이어서 아기를 돌보며 당분간 그 집에 묵기로 했지요. 부엌 하나가 딸린 단칸방, 난곡동 산 아래 그 집은 응달이어서 봄이 와도 마당의 얼음이 녹지 않았지요. 우물가에서 얼음물에 기저귀를 빨 때면 손가락이 곱고 아렸지만 그것은 참을만했어요. 저녁이 되면 잠자리가 문제였지요. 신혼부부가 자는 그 방에서 함께 잘 수는 없어 주인집 마룻바닥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우면 하염없이 눈물이 솟았지요. 마룻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보다도 마음이 더 추웠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이었지요. 그때 저는 제 운명에 절대 지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신발論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
•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되고자 하셨나요? 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고 싶습니다.
•어릴 적 동시를 써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긴 했지만 시인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 한국문학전집을 비롯해 여러 가지 잡다한 책이 많았어요. 책을 좋아해서 소설, 만화, 동화 가리지 않고 다 읽었어요. 사실 전 만화가가 되려고 했어요. 초등학교 때 노트에 그린 만화가 다섯 권이었어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서울이 배경이었죠. 그려놓은 그림 뭉치를 엄마가 아궁이에 태우지만 않았어도 전 만화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교 졸업하고 소설이나 콩트 산문을 써서 상을 여러 번 받았지만 시는 쓰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딸이 엄마가 잘하는 글을 써보라고 해서 백일장에 나가 우연히 짧은 시를 쓴 것이 장원을 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놀란흙
뒤집힐 때 흙도 놀란다
쟁기 삽 괭이 호미 쇠스랑 포클레인… 누가 제일 먼저 괭잇날에 묻은 비명을 보았을까
낯빛이 창백한, 눈이 휘둥그런
겨냥한 곳은 흙의 정수리거나 잠든 미간이거나,
흙의 표정을 발견한 누군가의 첫 생각, 그때 국어사전에 놀란흙이라는 명사가 버젓이 올라갔다
흙의 살붙이, 지렁이 땅강아지 개미 두더지
그것들이 가랑이를 헤집어 집을 짓고 길을 내도 놀라지 않는다
나무뿌리, 바위뿌리에도 덤덤한 흙이
사람만 보면 왜 그리 놀라는지,
흙의 나라
태초에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을 닮은 흙의 심장은 사람을 잘 알고 있다
공사장 주변, 포클레인이 파헤친 땅
매장된 산업폐기물을 껴안고 까맣게 죽어 있었다
싱싱하던 흙빛은 흑빛이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버지는 흙집으로 들어가
더는 놀라지 않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래서 자주 놀란다
(시집 『사물의 입』,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
벽시계
벽에 목을 걸고 살던
그가 죽었다
벽은 배경이었을 뿐, 뒷덜미를 물고 있던 녹슨 못 하나가
그의 목숨이었던 것
생전에 데면데면 바라본 바닥은 그를 받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시간의 실핏줄까지 환히 꿰더니 정작 벽과의 관계는 풀지 못하고
그는 추락했다
드러난 벽의 속살, 뒤편
직사각형 족적 하나가 필생의 흔적이었다
바닥은 허공을 받치는 기둥
조각조각 이어붙인 시간이 바닥으로 흩어지고
심장이 멎으려는 찰나, 시간은 뼈를 맞추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손목으로 옮겨 와 태연히 흘러갔다
밤낮없이 분류하고 조합했던 하루들
심장을 관통하던 전율과 초를 다투던 치열함은
벽을 놓치는 순간 사라지고,
그가 평생을 섬겨온 시간은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묵직한 추를 만져본다
시간이 빠져나간 빈 몸
한 번도 몸 밖으로 나온 적 없는 제 몸이 무덤이다
관처럼 기다란 나무상자가 죽은 몸을 담고 있다
(시집『글러브 중독자』)
물의 입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둥근 입 하나 떠올랐다
파문으로 드러난 물의 입
잔잔한 호수에 무엇이든 통째로 삼키는 거대한 식도食道가 있다
물밑에 숨은 물의 위장
찰나에 수면이 닫히고
가라앉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물가에서 몸부림치던 울음을 지우고 태연한 호수
계곡이며 개울을 핥으며 달리다가
폭포에서 찢어진 입술을 흔적 없이 봉합하고
물은 이곳에서 표정을 완성했다
물속에 감춰진 투명한 찰과상들, 알고 보면 물은 근육질이다
무조건 주변을 끌어안는
물의 체질
그 이중성으로 부들과 갈대가 번식하고 몇 사람은 사라졌다
물의 얼굴이 햇살에 반짝인다
가끔 허 우적거림으로 깊이를 일러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잔잔한 물의 표정을 믿고 있다
(시집『사물의 입』)
집들의 감정
이제 아파트도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푸르지오, 미소지움, 백년가약, 꿈에 그린, 이 편한 세상…
집들은 감정을 결정하고 입주자를 부른다
생각이 많은 아파트는 난해한 감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타워팰리스, 롯데캐슬베네치아, 미켈란, 쉐르빌, 아크로타워…
집들은 생각을 이마에 써 붙이고 오가며 읽게 한다
누군가 그 감정에 빠져 입주를 결심했다면
그 감정의 절반은 집의 감정인 것
문제는
집과 사람의 감정이 어긋날 때 발생한다
백년가약을 믿은 부부가 어느 날 갈라서면
순식간에, 편한 세상은 불편한 세상으로 바뀐다
미소는 미움으로, 푸르지오는 흐리지오로 감정을 정리한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무궁화 아파트는 제 이름만큼 꽃을 심었는가
집들이 감정을 정할 때 사 람이 간섭했기 때문이다
금이 가고 소음이 오르내리고 물이 새는 것은
집들의 솔직한 심정,
이제 집은 슬슬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시집 (『그녀의 외로움은 B형』)
• 기자) 선생님의 시집『사물의 입』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통찰력에 탄복했었고, 왠지 모르게 시를 읽는 내내 전율이 돋았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시를 읽을 때면, 어떤 크고 무거운 존재가 쿵. 쿵. 박자를 맞추어 또박또박 낮고 깊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그 음성은 제가 느끼기에 마치 무녀의 몸짓처럼 큰 산이라도 옮길 듯이 섬뜩하고 그 울림 또한 굉장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이필 시인은 이것을「페르소나」라는 시로 노래한 적이 있는데요. 선생님의 페르소나는 누구일까요? 이필 시인은 시인의 ‘몸 안에 늙은 여자가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마경덕) 아마도 제 안에 제가 담당할 수 없는 ‘외로움’이 살고 있나봐요. 그 외로움이 불쑥 찾아와 시를 쓰게 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죽음은 저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늘 내 편이었고 저를 끔찍이 사랑해주셨지요. 곁이 사라지고 바람 부는 빈 들판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제게 있습니다. 시 쓰기는 '내 안의 떨림'을 만나는 일이지요.
• 기자) 문예지를 통해서 해마다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시창작 강의를 통해 많은 문인들을 배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문예지에서 선호하는 시적 경향은 어떤 시들일까요? 그리고 시 창작교실에서 시를 가르치시다 보면 일찍이 감(感)이 오는 학생이 있으신가요?
• 마경덕) 시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의무”이지만 독자는 “읽지 않을 권리”가 있지요. 그런 불리한 조건에서 시 쓰기는 시작됩니다. “야구는 당신의 심장을 부수기 위해 디자인 되었다.”고 했듯이 “낯선 발상”을 찾아야 합니다. 생각이 새롭지 않으면 선選에 들기 어렵습니다. 시를 가르치다 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제자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 보석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금방 지치고 말더군요. 그러나 느리고 답답한 사람들은 지치지 않아요. 시 쓰기는 기다림이기에 포기하지 않은 제자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는 시를 사랑하는 열정이라고 봐요.
슬픈 저녁
저녁에게는 누가 저녁밥을 지어주나
찬 밥 한술 뜨고 담배 한 대 태우고
한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가 와글와글 몰려드는 저녁들
야근을 마친 새벽
어디에 자리를 펴고 누울까?
저녁에게 눈부신 아침이 저녁이라면,
한 올의 빛과 소음도 뼛속에 스미지 않도록
두꺼운 커튼을 치고
잠을 눕히고 귀를 틀어막는,
시끄러운 대낮을 저녁이라 부르는 슬픈 족속들
저 불안한 잠에게 누가 이불을 덮어주나
번번이 코피를 쏟는 저녁에게
굶지 말라고, 밤일에 몸이 축난다고, 누가
차디찬 저녁의 등을 만져주나
다시 떠오를 수 있을까?
아무데나 등 기대면 깊은 어둠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피가 마르는 저녁들
오늘 밤 졸지 말자고
빈속에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고 박카스도 마시고
검은 작업복을 걸치고, 우르르 일하러 나오는 저녁들...
(시집『그녀의 외로움 은 B형』)
우물
눈물이 다만, 슬프다는 이유만으로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마른 몸에서 물이 솟는 건 내 몸 어딘가에 우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 깊은 곳에 영혼이 물처럼 고여 있는 것이다. 흐르는 눈물은 내 영혼의 하얀 이마이거나 지친 발가락이거나 슬픔에 퉁퉁 불은 손가락이다. 영혼은 고드름이나 동굴의 석순처럼 거꾸로 자란다. 이것들은 모두 하향성이다. 근원을 향해 생각이 기울어 있다. 내가 나에게 찔리는 것, 슬픔이 파문처럼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석순처럼 자란 영혼을 손수건으로 받으면 발간 핏물이 든다. 나는 피 젖은 손수건 석 장을 가지고 있다. 그 오래된 손수건을 차곡차곡 접어 냉동실에 두었다. 꽁꽁 얼어붙은 냉동고의 영혼들은 더 많은 우물을 만들고 영혼을 생산한다. 고드름처럼 자라 맹물처럼 날아가 버린, 그것들은 대개 일회용이다. 나는 쉰밥처럼 변해버린 가벼운 영혼에 대해 속눈썹이 떨리도록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찌르고 들쑤시고 사막처럼 메마르게 할지라도, 젖은 영혼을 사랑한다. 상처 많은 이 우물에서 詩를 꺼내고 밥을 꺼낸다. 두레박이 첨벙 떨어지는, 서늘히 두렵고 캄캄한 우물. 내 머리칼이 쉬이 자라는 것도 질척한 슬픔에 뿌리가 닿아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다만 슬픔만으로 오지 않는 걸 이제는 안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소시집에서
• 기자) “석순처럼 자란 영혼을 손수건으로 받으면 발간 핏물이 든다.”, “찌르고 들쑤시고 사막처럼 메마르게 할지라도, 젖은 영혼을 사랑한다. 상처 많은 이 우물에서 詩를 꺼내고 밥을 꺼낸다. 두레박이 첨벙 떨어지는, 서늘히 두렵고 캄캄한 우물. 내 머리칼이 쉬이 자라는 것도 질척한 슬픔에 뿌리가 닿아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다만 슬픔만으로 오지 않는 걸 이제는 안다.” 저도 선생님처럼 “젖은 영혼을 사랑”합니다. 모든 시인들은 박완호 시인의 시집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의 시인의 말에서처럼 “ 슬픔의 슬하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이 낳은 형제들이란 생각입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은 이 슬픔이란 감정이 의외로 고차원적이고 고급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시인의 슬픔은 모든 약자를 향해 있다는 것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가령, 먹고 살기에 급급한 어떤 청년의 경우에는 각박한 현실로 인하여 슬프다기보다는 당장 내일 일거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슬픔도 현실적인 여유가 있어야 생길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삶을 슬퍼할 여력도 없는 이 땅의 모든 약자들에게 선생님께서 전하고 싶은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 일까요?
•마경덕)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어요. 어느 처지에 처해있던 자신은 소중합니다.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행복의 절반”은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긍적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시련은 사람을 더 단단하게 합니다. 까뮈는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있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고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야 합니다.
• 기자) 시를 공부하는 문청들에게 특별히 권하고 싶은 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마경덕) 저는 시집만 읽지 말고 다양한 책을 잃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도 좋고 수필집도 좋고 성경책도 좋지요. 무엇보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는 게 중요합니다.
• 기자) 시인들은 대체적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통과하였거나 삶의 기복이 심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데 세상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해 냉가슴 앓다 그것이 곪고 터져 백지에 각혈한 꽃이 시라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실제 성격은 어떠하며 그렇게 다작하시고 많은 일을 하시는 원동력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요?
•마경덕) 전 털털하고 정리에도 서툴러요. 상처도 잘 받는 성격이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아요. 긍적적이고 명랑한 성격 때문이지요. 제가 오래 겪었던 고된 시집살이나 아버지의 파산에 의기소침해 있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겠지요. 어머니가 ‘여장부’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제가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요. 김현 평론가는 “꿈을 꾸지 않는 자처럼 불행한 자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지요.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어두운 습지를 독자에게 고백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슬픔은 ‘시의 밑절미’가 됩니다. 어떤 불행을 만나던 꿈을 놓지 않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빈둥빈둥 늙는 집
지지난 봄, 집 앞에 들어선 연립 한 동, 분양을 알리던 현수막은 바람에 시들었다. 해를 넘겨도 팔리지 않는 집. 빈방에 어둠이 살고 있다. 빛바랜 만국기를 붙들고 집이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어둠이 야금야금 집을 뜯어 먹는다. 하수구를 막고 지붕을 걷어내고 벽에 금을 긋는다. 어둠은 난폭한 세입자, 뒤꼍에 모여 이곳에 뼈를 묻자고 소곤대는 소리에 벽지가 풀썩 무너져 내렸다. 빈둥빈둥 집이 늙고 5층 꼭대기로 벽돌 을 져 나르던 늙은 여자는 노임을 포 기하고 떠났다. 어둠이 옥탑으로 올라간 뒤 목을 뽑고 내려다보던 건달같은 사내도 보이지 않는다. 뒤꼍으로 꽁초를 던지고 가래침을 뱉던 사내마저 치우고, 집은 덩그렇다. 마당에 그림자를 내려놓고 잠든 빈집. 창문은 서랍처럼 닫혀있다.
(시집 『신발論』)
꽃병
온몸이 입이다
한입에 욱여넣은 붉은 목 한 다발 부르르 꽃잎이 떨린다 잘린 발목에서 쏟아지는 비린 수액 입안 그득 핏물이 고인다 소리 없이 생피를 들이켜는 저 집요함 허기진 구멍으로 한 아름 허무를 받아먹는,
식욕과 배설뿐인 캄캄한 구멍은 입이고 항문이다
시한부 목숨들
물컹물컹 썩어 가는 발목을 담그고 일제히 폭소를 터뜨린다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
• 기자) 시를 쓰시면서 선생님께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 마경덕) 시도 밥을 짓는 것과 같아요. 설익거나 타면 제맛이 안 나겠지요. 시도 맛있게 지으려고 해요. 시인의 주관적 체험이 모두의 체험으로 치환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감력이 높아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쉬운 언어로, 누구나 맛볼 수 있게 나만의 시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 기자) 시를 쓰시면서 권태기는 없으셨나요? 이를 극복하는 선생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 마경덕) 권태기를 느낄 시간이 없었어요.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고 하는데 그런 셈이지요. 오히려 시는 고단한 삶을 위무하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다행히 등단 이후 한 번도 청탁이 끊어진 적이 없어서 그 책임감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 기자) 대체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신 적은 없으신지요?
• 마경덕) 시 쓰기는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간절함을 전하거나” 견딜 수 없는 간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간절해지는” 작업입니다. 시에게 어떤 기대나 대가를 바래서는 안됩니다. 저는 삶에 대한 절망이 많아 그 힘으로 시를 쓰고 있어요. 시는 권력도 아니고 아무 힘도 없기에 그 쓸모없음이 오히려 쓸모가 되는 것이라고 하지요. 시는 삶에 찌든 우리의 영혼을 정화淨化시킨다고 믿어요.
• 기자) 이제 새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시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 마경덕) 노력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시를 사랑한 만큼 시는 가까이 와 있을 것입니다.
• 기자) 내년(2021년, 신축년) 선생님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소망은 무엇인지요?
• 마경덕) 내년엔 시집과 평설집 출간을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에 대한 소망은 사랑과 믿음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기자) 외국은 등단제도라는 것 자체가 없고 누구든 책을 출간하면 작가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등단제도는 무척이나 빡빡하고 유교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현 등단제도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을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외국처럼 누구나 책을 내고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을 때의 곤란한 점은 무엇일까요?
•마경닥) 우리 문단에도 외국처럼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집을 상재(上梓)하신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1949년 첫 시집 출간을 시작으로 53권의 시집을 낸 조병화 시인도 그런 케이스지요. 누구나 시집을 낼 수는 있지만 과정을 생략했기에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등단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개인의 역량을 평가 받기 위해선 신춘이든 문예지이든 등단제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단 후 어떤 시를 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유명 문예지나 유명 출판사를 선호하는 시인들의 생각도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기자) 109명의 현역시인이 뽑은 ‘최고의 시구’ 중 선생님께서는 손순미 시인의 시「담벼락 속에 집이 있다」중 “집은 벽 속의 곳간에서 제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간다 집은 저 벽을 부수고 나와야 한다”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집은 담쟁이덩굴 속에 갇혀 있다. 고집이 센 덩굴은 스스로 손을 풀지 않는다. 덩굴은 담벼락을 옥죄며 더 깊이 뿌리를 묻는다. 나는 그때 그 담쟁이 속에 갇혀 있었다. 담쟁이는 날로 그늘을 넓히고 오래된 몸은 자주 삐걱거렸다. 낙심이란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바닥을 친 마음은 좀처럼 일어설 수 없었다. 나를 포기하고 나니 어느 날 그늘이 되어 있었다. 하릴없이 나이를 꺼내 먹으며 늙어 가는 그때 이 시구詩句가 내게 왔다. 벽을 부수고 나오라고 했다. 덩굴을 걷어내는 일은 벽을 부수는 일, 생각을 깨뜨리지 않고는 나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붙잡고 늘어지던 덩굴손의 마디가 툭툭 끊어지고 벽 속에서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나는 오랫동안 나에게 갇혀 있었다.)
기자) 선생님의 시에서 ‘최고의 시구’를 뽑아주시겠어요?
• 마경덕) 시 쓰기를 모두 마친 후에야 ‘최고의 시구’를 뽑을 수 있겠지만 전 아직 시 쓰기를 진행 중입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지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해마다 울음을 업어 키운 향나무는 Y자 새총으로 새들을 높이 쏘아 올렸다
잠든 새 울음을 흔들어보며 밤늦은 골목을 드나들었다
십년 넘게
나는 외상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향나무의 소유권」중에서
• 기자) 해외에서 시작에 열중인 동포 시인들에게도 국내 문예지에 시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지면을 할애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 마경덕) 맞습니다. 며칠 전 해외에서 활동 중인 시인을 만났는데 지면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셨어요. 이제 글로벌 시대에 맞춰 문학도 폭을 넓혀 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든 인터넷으로 소통할 수 있으니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 기자)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문청이 선생님의 강의를 요약,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을 보았습니다. 불러오겠습니다.
1. 언어를 배설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시, 소통이 안 되는 시는 문제가 있다.
2. 시는 서민의 것이다. 시장에 가봐야 한다.
3. 젊은 시인들이 쓴 시들은 비슷한 시가 많다. 자기만의 개성이 중요하다.
4. 숨겨진 것을 찾아 써라.
5. 제목이 중요하다. 호기심을 끌어내야 한다. 제목은 시로 들어가는 문이다. 궁금증을 짓게 하라.
6. 시어 선택이 중요하다.
예) 비가 온다. 매미가 울다 그쳤다.(이것은 시어가 아니라 그냥 현상일 뿐이다.)
- 비 그친 틈으로 젖은 날개를 내다 말린다.
7. 시는 재미있어야 한다.
8. 아무도 안 쓴 소재로 나만의 시를 써라. 뒤에 쓰는 것은 이삭줍기다.
9. 평범함 속에서 시를 발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10.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생각해보라.
11. 사물의 입장에 들어가서 쓰되, 던져만 주고 결론은 내지 마라.
12. 울고 싶어도 울지 말고 독자를 울려라.
13. 시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아껴둔 것으로 마지막에 힘을 줘라.
이 중에서 선생님께서 백 번 강조해도 부족한 세 가지를 든다면 어떤 것일까요?
• 1. 언어를 배설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시, 소통이 안 되는 시는 문제가 있다.
8. 아무도 안 쓴 소재로 나만의 시를 써라. 뒤에 쓰는 것은 이삭줍기다.
9. 평범함 속에서 시를 발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 기자) 선생님의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 마경닥)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거나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결이 고운 시를 써보고 싶어요. 언어의 위대함을 만나고 싶습니다. 다음에 나올 시집이 다른 핏줄로 태어났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선생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 면 들려주실까요?
•마경닥) 문학은 ‘없음에 대한 있음을 꿈꾸는 건강한 힘’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생각이 좋은 시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래척추
평생 누워있는 사막
바람이 불 때마다 와르르 척추가 흘러내린다
모래 척추는 사막의 고질병,
수렁과 유사(流砂)는 살아있는 뼈를 삼켰지만
사막의 등뼈는 자라지 않았다
척추가 무른 아비 어미도
그렇게 평생을 뒹굴며 늙어가고
흙바람이 불 때마다 낙타의 무릎만 단단해졌다
만년설에 목을 축이고
미라가 된 천년 묵은 호양나무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이나 걸었나
물결처럼 건너간 바람의 발자국을 신어 보아도
모래의 유전자는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무릇, 등뼈는 수직이어야 한다
수평이 되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회오리를 붙들고 돌아눕는 사막
욕창 난 등이라도 말려야 한다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
무릇, 등뼈는 수직이어야 한다
스승의 시에 대한 열정이 매번 놀랍기만 하다. 선생님께 시를 배운 문하생들이 등단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선생님의 노력과 수고가 연상되어 존경심이 앞서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번뜩이는 직관과 통찰력으로 빚은 시가 많은 독자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혜안을 밝혀줄 것을 나는 안다. 수많은 블로그에 선생님의 문하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선생님의 강의에 밑줄을 긋고 긋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 번 스승은 나의 영원한 스승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더 많은 시인들이 노력의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모든 시 쓰는 시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선생님께서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을 받으셨을 때의 수상소감을 끝으로 선생님과의 긴 인터뷰를 마치고자 한다.
시를 쓰는 일은 피를 바치는 일
오랫동안 시에게, 잠을 먹이로 던져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각조각 흩어진 밤은 내 몸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의 피를 다 말리고 시는 비로소 시가 된다고 믿습니다. 그동안 무딘 칼 한 자루가 전부였습니다.
알고 보니 바깥에 세워둔 어둠도 시의 혈족血族이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저를 위로해 준 시에게 뒤늦게 변명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음지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것들을 이제 볕 쪽으로 옮겨 심습니다
이제 어떻게, 더 피를 말려야 할지 알 것만 같습니다.
마경덕 시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신발論』『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그녀의 외로움은 B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