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落鄕)
변상구
3월, 부산은 봄바람이 불지만 내 고향 삼척에는 눈이 내렸다.
팔월 추석이면 일교차가 커졌고 상강(霜降)이면 겨울이 시작된다. 입동(立冬) 전에 시작한 눈은 소설(小雪)과 대설(大雪)을 거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좁다란 골짜기는 눈으로 가득하다.
거기에 집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분명 사람이 사는 집들이 있다. 부락과 부락 사이, 집과 집사이로 토끼 발자국 같은 사람의 발자국이 나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큰집, 작은집, 외진 골짝의 아재 집으로도 이어지고, 돌아 나온다.
사람들은 이른 새벽부터 개울로 이어진 물길을 낸다. 삽이나 가래로 눈을 치우고 길을 내야만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물도 마신다. 밤새 내린 눈은 길 위에 수북하다. 매일 쓸고, 퍼내고, 밀어내도 눈은 계속해서 쌓인다. 한낮 햇볕을 받은 눈밭은 해가 지면서는 얼음으로 변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삽이나 가래를 내던지고 길 내기를 포기한다. 그냥 눈 위를 걸어 다닌다.
그쯤 되면 아이들은 신이 났다. 하늘과 땅과 나무들이 온통 새하얗게 덮이면서 계곡의 물조차도 눈 속에 파묻힌다. 백설 공주가 살았다는 동화의 나라에 동화 되는 것 같다. 검정 고무신에 귀마개를 덮어쓰고 눈썰매를 타거나 동굴을 만들면서 눈장난을 친다. 밖에는 찬바람에 폭설이 내리지만 굴 터널인 이글루로 들어가면 토굴처럼 아늑하고, 고요하다.
그 추억을 먹고 산 게 오십년이 다 됐다. 각박한 도시에서 어린 날을 회상하며 힘들어도 악착같이 살아왔다. 이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이따금 무보수에 손을 내밀기도 하지만 경이원지(敬而遠之)다. 필요할 땐 써먹고 배부르면 토사구팽(兎死狗烹), 쫓아내기 일쑤다. 학교에서 배운 더하기 빼기 수학적 공식처럼……. 몇 번 당하고 났더니 사람이 무섭다.
이제 여기를 떠날 때가 됐다. 유년의 텃밭으로 돌아가 흙과 함께 쉬는 게 좋겠다. 오랜 생각이고 모든 게 준비되어 있다. 사람과 도시의 상처들을 자연에서 치유 받고 싶다. 지구 환경의 변화로 그때만큼 겨울이 길거나 많은 눈이 내리지도 않는다. 삽으로 퍼낼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 빗자루면 가능하다는 게 그쪽의 분위기다. 세상이 변한 만큼 집도 없고 사람도 줄어들어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함께 자라 친구 같은 소나무가 있다. 척박한 땅에다가 뿌리내린 나무들은 인고의 세월만큼 건강하고 튼실하다. 금강송(金剛松)이 울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내 고향 삼척에는 모든 소나무가 일등 금강송이다. 십몇 년 전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로 불타고, 복구공사를 할 때였다. 문화재청이 건축 자재에 필요한 금강송을 구하려고 전국을 뒤지다가 결국 삼척에서 찾았다니 정일품 소나무로 증명된 셈이다.
나는 무지해서 외유를 했다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꿋꿋이 살고 있다. 힘든 환경에도 배반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들이다. 깊은 골짝의 농경지 사회에서 같은 시대에 같이 태어나, 마음 나누면서 뿌리 내렸던 나무들……. 지금껏 붙박이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제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용서를 구해야 한다.
어제는 이삿짐을 꾸릴 박스 몇 개를 주워왔다. 분명 계절은 3월인데 예전처럼 따습지가 않다. 어깨와 허리에 찬바람이 돌아 꼼짝을 할 수 없다. 보일러의 온도를 높여놓고 이불을 덮고 있다. 어서 일어나 짐을 꾸려야 하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다. 이불 밖에는 얼굴과 두 팔이 나와 있다.
손에는 두 시간째 휴대폰이 들려있고, 볼륨이 높아지고 있다. 귀농해 살고 있는 젊은 부부와 나이든 남자의 유튜브에 시간을 보낸다. 젊은 부부는 커다란 하우스에 고추모를 심고 있고, 나이든 남자는 산에다가 버섯 농사를 하고 있다. 휴대폰에서 눈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2020.3.15(일) 약간 흐림 / 백운산(1228m)
전남 광양의 '백운산(1222m)'을 찾아갔다.
출발은 '진틀' 마을에서 시작했다.
장사익 '봄날은 간다'의 노랫말처럼
연분홍 치맛자락은 없었지만
산제비 넘나드는 성화당 길처럼 화사한 봄 볕은 최고 였다.
신선대에 오르면서 기온이 떨어졌고,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는
급 하강한 기온과 휘몰아치는 바람에 눈발까지 날렸다.
엄동설한은 아니어도 바람에 날아갈까 겁났다.
또 하나의 명산을 추가하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 같은 산 길을 올랐던 하루였다.
- 전남 광양 '백운산 등산로 제2코스' 입니다.
들머리는 진틀마을에서 시작합니다.
마을 이름이 봄 날 만큼이나 예쁩니다.
3월도 절반을 넘어가는 셋째주 휴일입니다.
- 그렇게 포근하던 날씨가
이곳 '신선대'에 다다르자 골바람이 불었습니다.
해발 천 미터가 넘으니까 역시 날씨의 변덕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정도 올랐으니 정상은 멀지 않습니다.
완전 겨울 복장이 아니어도 견딜만한 날씨에 힘을 냅니다.
- 신선대에 올라 이런 포즈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아쉬운게 사진에서 발목이 짤렸습니다.
고산이라 나무들도 키가 낮습니다.
이런걸 보고 태어날 때부터 잘 타고 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생명있는 모든 물체는 말입니다.
나처럼 산골에서 태어나면 항상 촌스런 글만 씁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다를 것도 같습니다.
왠지 인격 높고 도시스런 글들로 꽉 채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도 있었던가 봅니다.
그렇다고 후회는 없습니다.
이 나이에 후회해봤자 나만 손해일 뿐더러, 서울 강남에 산다고 다들 행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보다 훨씬 힘들고 고달프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서울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퇴근 길 직장인 남자들이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파김치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가장이란 자리가 쉽지는 않다는 걸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서울의 도시에서 말입니다.
- 백운산 정상으로 가는 하늘 계단입니다.
공기가 맑으니까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내가 행복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을 오를 수 있다는 건 더더욱 축복이라 여깁니다.
물론 이런 축복도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릅니다.
다닐 수 있을 때 다니고, 놀 수 있을 때 노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어떤 신앙교처럼
죽은 뒤에 천당일지 극락일지, 지옥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갔다 온 사람도 없을 뿐더러
육신이 불타고 없어졌는데 그 말은 언어도단일 뿐입니다.
모든 게 자연에서 생겨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것 역시 나만 믿는 교인데 '나홀로 교'?가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제 정상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게 최고로 중요한 봉우리가 내 몸에 가려졌습니다.
- 저곳이 정상인데 가느다란 눈발에 바람과 추위로 몸을 가누기가 힘듭니다.
다들 웅크리고 조심 조심 걷습니다.
- 드디어 해발 1222m, 백운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인증 사진을 찍으려고 정상석에 바싹 붙었습니다.
워낙 쎈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위해 한참을 기다렸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바위틈 사이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과 겨울 또는 겨울과 봄을 동시에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 '배골집'으로 통하는 셋째와 막내, 동생들입니다.
- 다시 원점회귀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도 약간의 눈발과 빗방울이 바람에 날렸지만 금세 녹으면서 사라집니다.
또 하나 해냈다는 기쁨과 행복이었습니다.
[섬진강 매화마을 사진 감상]
- 곧 바로 섬진강 '매화마을'을 찾았습니다.
자치단체에서 마련한 축제는 없었지만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왕복 2차로는 정체된 차들로 가득합니다.
도저히 이곳까지 올 수 없어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었습니다.
적어도 1킬로는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걷는 게 훨씬 빠르고 좋았습니다.
가족 단위의 다른 분들도 다 함께 걸었습니다.
- 그 복잡하고 힘든 길에서도 여기까지 온 차들이 있었습니다.
참 인내심에 존경을 표합니다.
진짜 대단한 분들입니다.
- 매실 액기스를 담갔는지 마당에는 큰 항아리가 빼곡합니다.
우리 고향에는 항아리를 '단지'라고 불렀는데 저 단지에는 숙성되는 매실들이 가득하지 싶습니다.
이렇게 유명세를 타기 까지 선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마치, 유명 메이커의 오래된 브랜드처럼 말입니다.
작가가 글을 쓰고, 시인이 시를 짓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글을 쓴다는 게 하나의 창조이기 때문인데,
이곳 매화마을도 창조에서 성공한 케이스라 보입니다.
- 정상적인 축제가 없는 관계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왔던 것 같습니다.
-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는 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위주의 생각에선 여기가 최고라고 보여집니다.
-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이렇게 다닙니다.
3월은 꽃의 계절이라 젊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많습니다.
- 건너편에서 본 모습입니다.
- 소 마굿간입니다.
'매화마을에 소 마굿간?'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 소 마굿간이 있었습니다.
제법 여러 마리의 소들도 보였고요,
바닥도 깨끗하고 새끼 소들도 복스럽게 생겼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들도 저 때가 제일 착하고 예뻐 보입니다.
저기서 조금만 크면소나 사람이나 말도 안 듣습니다.
옛날처럼 산에다가 풀어 놓는다면 온 산이 자기 세상처럼 뛰어 다닐 겁니다.
그래도 키워보고 싶지만
내고향 지구렁이 마을은 수자원보호구역이라 가축을 사육할 수 없습니다.
이것 또한 억울한 일이지만 국가에서 시작한 일이고,
법률로 정해진 것들이니 따를 수 밖에 별 해결책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요즘 '불공평'을 외치지만 정말 불공평 한 곳은 이런데 있습니다.
이것 역시 군부정권의 발로였고,
그때 도시민들을 위한 댐이 생겨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오지 사람들에게 왔습니다.
- 개구쟁이 소년과 얌전히 앉아 있는 소녀상 입니다.
우리들 세대는 저렇게 놀았습니다.
특히, 시골에서는 흙과 나무와 개들과 아이들이 한 몸처럼 뒹굴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학교와 학원을 보내면서도 개별 고액 과외를 시킵니다.
어린 아이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그게 아이들의 잘못이겠습니까?
나는 어른들의 그릇 된 욕심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과욕에서 생겨난 잘못은 고스란히 아이들 몫으로 돌아갑니다.
요즘 청소년 문제가 이슈로 떠오릅니다.
그런 부작용이 어릴 때부터 생겨났다고 보여집니다.
한창 정서가 아름다워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또는 개인 과외에서 병들어 간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성격도 난폭하고 사나워진 게 아닐까 하는 걱정입니다.
물론 그래야 좋은 대학도 가고 좋은 직장도 얻을 수 있는 것 맞습니다.
행복의 수치를 따지자면 그런 게 행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자연과 어울리고, 뛰놀면서 자라야만 건강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귀촌을 각오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손자 손녀가 방학 때 만이라도
장작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밭에서 캐온 감자도 삶아 먹고,
갓 따온 강냉이를 가마솥에 찌는 것도 보여주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것도 욕심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 벌써 뒷산은 산그림자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도 일정이 끝나간다는 예고 입니다.
- 담장에는 예쁜 항아리가 줄지어 있습니다.
- 해거름에 이런 사진도 찍어 봅니다.
- 바위에 꽃잎인가 했더니 가짜 꽃잎 입니다.
하나 하나 망치로 두들겨서 새겨 넣었습니다.
요즘은 워낙 가짜가 많아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여기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뒷 맛은 씁쓸합니다.
- 이 자리는 포토존입니다.
기다랗게 줄서 기다렸다 이렇게 찍었습니다.
춘삼월이 춘삼월 답지 않은 요즘입니다.
그렇다고 집안에 웅크리고 있을수만 없어 잠깐씩 외출도 하면서 삽니다.
예전 같으면 마라톤대회가 시즌일텐데 요즘은 전국적으로 취소되고 없습니다.
앞으로 언제 대회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먹고자고 몸에 살만 찌우는 중입니다.
다들 슬기롭게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한 편의 글과 사진으로 즐거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각적인 힐링과
잠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면 감사한 일이고 또 고맙기도 합니다.
*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드립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