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어렸던 15살 소년이 어느새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21살의 청년이 되었다.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의 곁에는 언제나 휠체어럭비가 있었다. 박우철 선수를 만나 휠체어럭비와 함께한 8,760시간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Wheelchair Rugby
소년, 휠체어럭비와 만나다
경기를 시작하는 휘슬이 울리자 8명의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선수들은 패스를 하며 결승선을 향해 속도를 내며 점점 다가간다. 공을 쫓으며 속도를 올리던 공격수와 수비수의 휠체어가 부딪치자 ‘퍽’, ‘쿵’ 큰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그 충격에 선수들이 넘어지거나 바퀴를 교체하는 일도 다반사다. 하지만 선수들은 큰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에만 오롯이 신경 쓰며 상대방이 득점할 수 없도록 휠체어를 방패삼아 골라인에서 방어하거나, 방향을 틀어 눈앞에 수비수를 순식간에 제쳐버리며 득점을 올릴 때까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높은 집중력을 유지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며 경기장 끝에서 끝을 오가는 선수들 사이 유독 어린 얼굴의 선수가 눈에 띄었다. 인천광역시 휠체어럭비팀 인천가스트론 소속 선수이자 국가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박우철 선수다.
1999년생으로 올해 21살이 된 박우철 선수가 휠체어럭비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5살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집에만 있었던 박우철 선수에게 누나는 휠체어럭비를 보러가자며 권했고, 그렇게 누나를 따라나선 경기장에서 휠체어럭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15살 때 처음 누나의 권유로 휠체어럭비 연습하는 곳에 갔는데, 실제로 경기를 한 번씩 해보고 자주 접하다보니 휠체어럭비만의 격렬한 몸싸움과 스피드에 빠져버렸고, 정말 재밌는 운동이란 걸 알아버렸어요. 그때부터 계속 휠체어럭비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어떤 종목보다 격렬하고 스릴 있는 휠체어럭비
휠체어럭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놀라고, 선수들끼리의 격렬한 부딪침에 또 한 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휠체어럭비는 럭비 전용 휠체어를 타면서 휠체어끼리 유일하게 접촉하고 부딪칠 수 있는 경기다. 휠체어럭비는 휠체어농구와 아이스하키, 럭비의 특성을 조합해 만든 종목으로, 장애인 스포츠에서 소외되어왔던 중증장애인들이 근력 강화, 기초체력 증진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5살 때 발생한 희귀난치성 신경질환 중 하나인 척수근육위축증을 앓고 있는 박우철 선수는 팔다리에 점차 근육이 약화되어 운동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휠체어럭비가 너무 격렬한 운동이라 처음에는 어머니의 반대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휠체어럭비를 하려고 하는 박우철 선수의 노력하는 모습에 이제는 어머니께서 가장 좋은 조력자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휠체어럭비를 하기 전에는 체형도 왜소하고 성격도 소심했었는데, 운동을 함께하는 형들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밝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휠체어럭비를 하면서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저 스스로가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들이 많이 생겼어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꽃피우다
운명적인 만남처럼 휠체어럭비에 빠져버린 박우철 선수는 휠체어럭비에 입문한지 3개월 만에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그전까지 없었던 초고속 발탁으로 박우철 선수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영준 前 국가대표 감독(現 대한장애인럭비협회 전무이사)은 박우철 선수를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선수’로 평가했다. 하 감독의 말처럼 박우철 선수는 짧은 시간동안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휠체어럭비 국가대표팀은 2014년 10월 41개국이 참가한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휠체어럭비 종목에서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다.
우리나라 최초 휠체어럭비 메달이자 본인의 첫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박우철 선수에게 유독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국제·국내대회를 통해 여러 나라 휠체어럭비 선수들을 만나고 경험하다보니 휠체어럭비의 세계는 점차 더 넓어져갔다.
“운동을 시작한 초반에는 집에서 제가 한 경기 영상을 보면서 고쳐야 될 점을 돌려보고, 제가 좋아하는 롤모델 이케자키 다이스케 선수의 영상을 보면서 스킬이나 모션을 이미지화해서 따라 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실제 경기를 할 때 적용해보는 식이었죠. 여러 선수들과 경기를 하고 부딪쳐가면서 배우는 것도 많아지니 점점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커졌고요.”
박우철 선수는 2017년 8월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IPC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달의 선수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서 선정하는 상으로 한 달 동안 세계 각국에서 펼쳐진 장애인스포츠 이벤트에서 가장 인상 깊은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사격의 심재용 선수, 2009년 파라 아이스하키 정승환 선수에 이어 박우철 선수가 세 번째로 선정되었다. 총 4명의 후보 중 6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만큼 박우철 선수는 2017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선수권대회에서 인상 깊은 경기를 보여주었다. “뉴질랜드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쉽게 3점차로 패했어요.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과가 아쉬워서 아직까지도 많이 기억이 남는 경기에요.”
그 대회에서 MVP를 받기도 하고, 이달의 선수까지 선정된 박우철 선수는 여러 대회에서 눈에 띄게 활약하며 우리나라휠체어럭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박우철 선수는 같은해 SRC병원의 김형빈 부원장의 후원협약을 통해 약 4년간 지원을 받게 되었고, 앞으로의 의지를 더욱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땀으로 일궈낼 빛나는 미래!
도쿄 패럴림픽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박우철 선수 또한 도쿄 패럴림픽 진출을 위해 어느 때보다 굳은 의지로 연습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대표 팀 선수들에게는 올해 9월 달에 오세아니아 챔피언십이 있는데 뉴질랜드를 꼭 이겨서 도쿄 패럴림픽에 진출하자고 말하고 싶고, 인천팀 선수들에게는 체전을 앞두고 있는데 몸 컨디션 잘 유지해서 꼭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휠체어럭비를 알게 된 이후 돌아보지 않고 한길만을 걸어온 박우철 선수에게 얼마 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열렸다. 일본 후쿠오카 단데라이온팀에서 팀 합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후쿠오카팀에서 같이 뛰어달라고 연락이 와서 지금도 일본에 가서 연습하고 있어요. 오는 8월달에 예선 대회가있는데 그 대회에서 1, 2등하면 챔피언십에 나갈 수있는 기회가 생기거든요. 세 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연습하는 게 바쁘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뛰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영광스럽습니다.”
1년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훈련에 쏟으며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박우철 선수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휠체어럭비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함께, 부족한 면을 채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지금보다 휠체어럭비가 앞으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특히 중증 장애인이나 경추장애인분들은 휠체어럭비에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휠체어럭비를 시작하신 분들이거나 특히 선수들에게 전용 휠체어와 장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외국 같은 경우는 사기업에서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지금 현재로서는 후원과 종목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게 많이 아쉽죠. 지금보다 많은 분들이 휠체어럭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의 모든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과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박우철 선수 수상 경력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은메달
2015 제35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금메달
2016 제3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금메달
2017 제3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금메달
2017 IWRF 휠체어럭비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선수권 대회 4위
2018 제3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금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