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
김춘수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 어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순결한 순수시이다. ‘꽃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김춘수 시인의 ‘나의 하나님’이란 이 시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향해 모든 이미지가 집중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에 나오는 하나님은 '늙은 비애, 푸줏간의 살점, 놋쇠 항아리, 어린 순결, 연둣빛 바람'이다. 이 시에서는 은유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미를 강조한다. 'A는 B이다'의 구조로 되어 있다. A는 하나님이고, B는 하나님에 비유된 이미지들이다. B는 늙은 비애, 묵중함, 순결함, 연둣빛 바람으로 비유되어 있다. 또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에서 유사한 병치가 발견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어서는 하찮은 푸줏간의 살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화자의 진정한 속 뜻은, 하나님을 놋쇠 항아리처럼 묵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화자의 인식은 대낮에도 옷을 벗을 만큼 순결성을 지닌 존재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연둣빛 봄바람의 이미지는 언제나 순결한 존재로 맑고 신선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