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선화동 호수돈여고 날맹이집에서 명절을 맞았다.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진 거기서 살았기에 자연스레 그럴 수밖에 없었고, 서울에서의 대학생활과 직장생활 때에도 명절 연휴가 되면 늘 귀성을 했다.
결혼 바로 전 해에 아버지께서 하늘로 가셨기에 장자(長子)로서, 서른 갓 넘은 나이 때부터 명절이면 나는 제주가 되었고, 나와 아내는 명절전날부터 차례음식을 준비하고 명절제사를 올려야 하기에 항상 최소한 1박2일 일정으로 선화동 집을 찾아야 했다.
관행이 원칙이 되고, 가족불문법이 되는지, 그러다보니 나의 명절 선화동행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몇 안 되는 원칙이 되었고, 워낙 오래된 원칙이라 내 스스로 웬만하면 깨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원칙은 비단 설날과 추석 명절에만 해당되지 않았고, 집안의 제삿날 전체로 자연스레 확대되었다.
1995년 설부터 시작된 어른들 제사까지 포함하여, 나의 대전행은 설날과 추석,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제사까지 1년에 6차례는 기본이었다. 여기에 추석 전 주말의 가을 벌초가 추가되면 7차례가 필수다.
내가 제주였기에 불행히도 아내는 때마다 음식을 총지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명절과 제사 전후면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미안하지만 꼭 함께 해야 했고, 이를 함께 해주었기에 늘 아내가 고마웠다.
나는 ‘그래 너 잘 났다’, ‘꼰대 같은 친구’ 소리를 들을지언정, 한 번도 빠지지 않은 나의 제사에 대한 소신을 중년 들어서 술자리 자랑거리로 늘어놓는 오버의 극치를 달리기도 했다.
의례적인 말일지라도 지인들이 “그거 대단한 건데... 쉽지 않은 일이야”로 말할 때마다,
나는 “한번 거르면 계속 빠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 듯싶어. 그래서 원칙을 지키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네.”라고 답하곤 했다.
실제 이 마음은 진심이기도 했다. 요즘이야 교통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그렇지 40대 초반까지의 대한민국 명절은 교통대란, 그 자체였다. 차편 때문에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빠지면 계속 반복될까봐 귀성 개근을 이어갔다.
2015년 어머니께서 하늘로 가신 후엔 더더욱 명절과 제사를 챙기려 마음먹었다. 6남매 자손들이 그래도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특별한 애경사가 있을 때만이 아니라 어른이 없더라도 명절과 제삿날을 가족이 함께 하는 날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만 준비하는 사람들이 덜 피곤하게끔 시간과 음식을 현대식으로 조정한 가족모임방식으로 바꾸었다. 손위, 손아래 분들이 특별한 불만이 없었고 오히려 참석률은 더 높아져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작년의 추석. 나는 집안 어른들께 ‘코로나로 인하여 부득이 이번 추석차례는 지내지 못합니다’라는 문자를 처음으로 보내야만 했다. 설날 차례를 시작으로 조부모, 부모 제사도 각각 제대로 모셨는데 우리집안 마지막 행사인 추석차례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코로나 때문에? 아니다. 코로나가 중요한 취소 이유이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이유가 있다. 딸아이와의 편지 대화 때문이다.
“아빠 추석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떡해? 코로나 때문에 예전 같지는 않더라도 올 사람은 와서 제사를 모셔야지. 함께 식사도 하고..”
“그래 알았어, 나는 꼭 전날 갈께”
“그래야지. 보고 싶다. 딸램”
먹고 싶은 음식이나 여러 추석관련 과거 이야기를 카톡으로 나누다가 딸아이가 보낸 한 내용이 나의 머리를 강하게 때린다.
“그런데 아빠. 이번 추석엔 작은엄마는 오라고 하지 말고 작은집 식구들끼리 쉬라고 그래라”
“엉? 왜?”
“작은엄마도 결혼하고 계속 명절과 제삿날에 와서 음식 만들었잖아”
“그렇지 거의 안 빠졌지. 특히 명절 연휴엔 꼭 와서 음식하고 상차림 했지”
“그러니까 이번에 코로나도 있고 아빠가 휴가를 줘”
“휴가? 혹시 작은엄마하고 통화했었어?”
“아니야. 엄마생각도 나고, 작은엄마 보니까 시집와서 한번 빠짐없이 제사상 준비하는 것을 보니 너무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은엄마까지 생각하는 걸 보니 우리 딸 철들었네. 아빠가 고민해볼게”
이런 카톡 대화가 발단이 되어서 처음으로 명절제사를 취소했다. 원칙을 깨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깨짐에 아쉬움도 컸지만, 딸아이의 조언이 가족간의 관계가 더 편안해지고 좀 더 배려할 수 있는 계기가 된듯해서 흐뭇했다. 딸아이가 얼마 후 카톡을 보내왔다.
“아빠, 작은엄마랑 한 시간 가까이 통화했어. 내가 아빠한테 카톡으로 한 얘기 작은 엄마에게 했어. 조카딸 때문에 휴가 받았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시며 좋아하셨어.”
“그래? 다음 설 때엔 두 배로 고생시킬까? ㅋ"
지난 추석 때 한참 딸아이와 나눈 이야기다.
며칠 후면 설날이다. 이번 설에도 어른들께 ‘코로나로 인하여 설 차례를 부득이 취소합니다.’는 문자를 또 보냈다. 동생에게도 이왕 휴가를 주려면 안식년제도처럼 1년은 쉬어야 한다고 말하며 설 때 오지 말라고 전했다.
이번 설 때엔 내가 상차림을 해볼까 한다. 딸아이도 오고 대전에 사는 누이들도 온다고 하니 멋진 상을 준비해야겠다. 비록 제대로 된 상차림엔 미달이겠지만 하늘에 계신 어르신들도 좋아하실 듯하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만나고 웃을 수 있어 자주 찾는 집안의 영원한 제주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