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날】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2024년은 4월 5일)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음력 2월 또는 3월에 드는데,
2월에 한식이 드는 해는 철이 이르고,
3월에 드는 해는 철이 늦다.
그래서 “2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고
3월 한식에는 꽃이 핀다.”는 말이 전한다.
★한식은 24절기와는 달리
단오, 초복, 중복, 말복 등과 함께
속절俗節(또는 잡절)로 분류를 함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 바로 다음 날 이거나 같은 날에 드는데,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다.
▣한식날 불을 쓰지 않는 풍습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유래가 있다.
◉중국의 옛 풍속으로
이날은 풍우가 심하여 불을 금하기 때문에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또한, 개자추介子推 전설이 있다.
▬중국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이 국란을 당하여
개자추 등 여러 신하를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할 때,
배가 고파서 거의 죽게 된 문공을
개자추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구워먹여 살린 일이 있었다.
▬뒤에 왕위에 오른 문공이 개자추의 은덕을
생각하여 높은 벼슬을 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벼슬을 마다하고 면산에 숨어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으므로
개자추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면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죽고 말았다.
▬그 뒤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또 타죽은 사람에게 더운밥을 주는 것은
도의에 어긋난다 하여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도 한다.
★한편 개자추가 면산에 숨은 이유에 대해
자신이 벼슬을 고사했기 보다는
“문공”을 19년을 섬긴 자신에게
봉록俸祿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숨었다고도 전하여 진다
▣동국세시기 청명조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개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밥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 민간에서도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날 문에 버드나무를 꽂기도 하고
들에서 잡신제雜神祭인 야제野祭를 지내
그 영혼을 위로하기도 한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또한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이날 성묘 습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 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 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한식 날 진달래꽃을 거두어 술을 담그어 먹으면
기침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약밥이나 찬밥을 지어 먹었고,
쑥을 뜯어 쑥떡을 만들거나 쑥국을 끓여 먹었다.
이날 먹는 메일국수를
“한식면寒食麵”이라고 하여 별미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