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부류의 사람들
어떤 스승들은 법을 듣기만 해도 열반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 당시에 명상을 수행하지 않고 단지 법을 들음으로써 아라한이 되었던 몇몇 분들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첫 번째 부류, 욱가띠딴누(ugghatitaññū)는 매우 짧은 게송을 들음으로써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앗사지 존자로부터 매우 짧은 게송을 들은 후 수다원이 되었던 두 명의 상수제자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게송을 듣고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들어보세요.
Ye dhammā hetuppadhavā,
Tesam hetum tathatāato āha
(예 담마 헤뚯빠다와, 떼상 헤뚬 따타가또 아하)
도와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으신 분이 있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반떼, 도와 과의 지혜를 얻는 것은 제쳐두고 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상수제자들의 경우, 둘 다 게송이 ‘아하(āha)’라는 단어에 도달하기도 전에 수다원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1아승지 10만 대겁 동안 윤회하며 바라밀을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수한 생들에서 깊은 삼매와 신통력에 기초해서 위빠사나를 수행했고, 무상, 고, 무아를 수없이 관조했습니다. 그리고 ‘형성된 것들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상수제자가 되려는 원대한 서원 때문에 ‘형성된 것들에 대한 평온의 지혜’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때가 이르러 그들이 부처님을 만났을 때 상수제자가 되었고 오직 상수제자가 되려는 자신들의 서원을 채운 후에야 ‘형성된 것들에 대한 평온의 지혜’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얀마에서 우리가 ‘Me-dn-yin, me-du-neh’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것의 의미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매우 짧은 게송을 듣고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 위빤짜딴누(vipañcitaññū)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법에 대한 긴 설명을 들은 후,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첫 번째 법문은 「초전법륜경」입니다. 그리고 이 법문을 들은 사람은 단지 다섯 고행자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비구가 될 사람들이었지만 아직 비구는 아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첫 번째 법문 「초전법륜경」을 자세히 설하셨을 때 몇 명이나 수다원이 되었나요? 나중에 꼰단냐 존자가 된 그 고행자가 그 당시 인간단계에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초전법륜경」을 듣거나 보신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었는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 중 이 경을 들었거나 읽었던 적이 없는 분들은 집에 돌아가 이 경을 찾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에 수다원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을 다 읽은 후에라도 여러분이 수다원이 아니라면 그것을 100번이 아니라 1000번 읽어도 첫 번째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Me-dn-yin, me-du-neh
세 번째 부류의 사람 네이야 뿍갈라(neyya puggala)는 단지 대략의 말이나 자세한 설명만 들어서는 깨달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설해진대로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삼학을 체계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계율을 준수한 후 두 번째 수행인 선정 수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삼매에 든 자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고 압니다. 삼매를 계발한 후에 세 번째 수행인 통찰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과거에 심은 업과 현재의 노력이 만나면 그들은 이번 생에서 도와 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은 이 세 번째 종류에 속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수가 이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생에서 도의 지혜나 과의 지혜를 획득하고 도를 깨닫기 위해 삼학을 체계적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수행해야만 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은 빠다빠라미(padaparmi)입니다. 이번 생에 그가 열심히 수행하고 많은 시간을 명상한다 해도 그는 이 현재의 삶에서는 본삼매를 얻거나 도의 지혜나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의 수행은 단지 바라밀을 채우고 다음 생에 바라밀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부류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든,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바로 이 생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합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바로 이 생에서 법을 깨달을 것입니다. 네 번째 부류의 사람이라면 우리의 수행은 다음 생에 법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우레와따 반떼 지음/ 혜정스님 옮김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감사합니다. 사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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