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시아권 신인감독들의 경쟁부문(관객상) 이었던 플래쉬포워드 섹션의 성격이 올해부터 바뀌었다. 그 동안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프리미어 또는 자국 외에 처음 공개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만 이 경쟁 섹션에 출품이 가능했지만 올해부터 그 기준을 아시아 프리미어로 낮추었다. 신인감독들의 작품을 월드 또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소개 한다는 것은 신인 발굴의 취지가 가장 크다. 하지만 베니스, 토론토, 선댄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상대로 비아시아권 신인감독들의 프리미어 작품을 두고 경쟁 하기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권 영화 같은 경우 다른 이야기지만).
또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다 보니 인지도가 낮아 경쟁부문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관심도가 다른 섹션들의 작품에 비해 떨어진 것도 올해 플래쉬포워드 성격을 바꾼 이유 중에 하나다. 이미 다른 수많은 영화제에서 소개 하고있는 비아시권 작품의 신인감독 발굴 보다는 실질적으로 관객들이 더 보고 싶어하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플래쉬포워드 섹션의 프리미어 기준이 완화되면서 이미 다른 영화제에 소개되어 상을 받았거나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섹션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 프리미어 여부를 두고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프로그래머들의 부담도 많이 줄었지만 무엇보다도 그해 화제를 모았던 신인 감독들의 작품들을 모아서 상영하기 때문에 관객들의 관심을 훨씬 더 많이 끌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댄스를 사로잡은 <매스>, 그리고 <자키>
올해 영미권 작품 중에 플래쉬포워드에 선정 된 작품은 2편으로 모두 미국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소개 되어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첫번째로 <매스>라는 작품이다. 미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프란 크랜즈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미국의 한 총기 사건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와 가해자의 부모가 오랜 세월 후 서로 대면한다는 이야기로 작품이 공개 된 후 미리 떠들기 좋아하는 미국 유튜브 리뷰어 사이에선 벌써부터 내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조연상을 거론 할 정도로 뛰어난 네 배우의 연기력이 볼거리다.
두 번째 작품은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자키>다. 평생 경마 기수로 살아온 한 남자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그린 <자키>는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첫번째 장편데뷔작이다. 잭슨역을 맡은 클리프튼 콜린스 Jr. 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미 90년대부터 수많은 TV 시리즈와 장편에 출연 했지만 인지도가 그리 높진 않았다. 아마 이 작품으로 그의 연기 세계가 재평가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칸과 베를린을 주목 시킨 일곱 작품
올해 플래쉬포워드에 선정 된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 작품은 총 7편이다. 조지아 출신의 알렉산드르 코베리체는 데뷔작 <그 여름은 다시 오지 않으리>에 이어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감독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FIPRESCI(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연출 경력이 풍부한 멕시코의 타티아나 우에소 감독의 <잃어버린 것들을 위한 기도>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특별언급의 영광을 안았으며 동명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잇는 흥행이 기대되고 있다. 5년전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로 칸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한 핀란드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은 두번째 작품 <6번 칸>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해 명실상부한 차세대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나머지 유럽 작품으로 선정작 중 유일한 아프리카 영화인 이집트 오마르 엘 조하이리의 <깃털>은 칸 비평가주간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수작으로, 남편이 마술에 의해 닭이 돼버린 후 아이들의 엄마가 사회적 시스템에 맞서 분투하는 내용의 영화다. 올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의 개막작이었던 프랑스 아서 하라리 감독의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000일>은 베르너 헤오초크의 계보를 잇는 모험극으로, 종전 후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섬에서 홀로 싸우다 29년이 지나서야 투항한 실존했던 일본 군인 오노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가브리엘 마니에티 감독의 <프릭스 아웃>은 서커스 일원들이 전쟁 중에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이탈리아 장르 영화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다. 올해 부에노스아이레스영화제 감독상을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엘 플라네타>는 이미 본인의 인스타그램과 설치 예술 분야에서 스타로 떠오를 여감독 아말리아 울만의 첫 장편으로, 짐 자무시의 초기작을 반추하게 만드는 흑백영화다.
이렇듯 올해 플래쉬포워드 섹션에 비아시아권 신인감독들의 쟁쟁한 작품들이 포진하고 있다. 다른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거나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만 골라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들에게 재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 된다. 아마도 2021년 비아시아권 신인감독들의 ‘왕중왕’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작품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을지 더욱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