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우리 민족은 의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그래서 의.식.주 이 세개 중에 의.를 맨 앞에 둔 것이다.식.이 먼저가 아니라 왜 의.를 먼저 두었을까?아내의 친구 중에 한 명은 미국에 살았던 친구가 있다.그 친구가 미국에 살 때에는 아무런 의식 없이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부담없이 사람들을 만났단다.그러다 한국에 와서 느낀 것이,한국은 어떤 사람을 어느 장소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의복이 달라서 매우 신경이 쓰인 다는 것이다.외국에 살 때는 그러한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는데 한국은 옷 값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젊어서부터 구호 물자 장사를 하셨다.6.25전쟁 후 기반 사업이 무너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강냉이 죽과 구호 물자인 옷으로 외국 사람들의 큰 체격에 맞았던 옷을 줄여서 수선하여 입었고,무료로 배분된 구호 물자들을 기관 단체장들이 배분하며 윗 돈을 받아 팔았다.그것을 관할하신 분이 고모 할아버지셨고 아버지는 그 분 밑에서 일을 배우셨다.그렇게 구호 물자 장사로 기반을 잡아가며 옷 장사를 하시다,더 이상 구호 물자가 나오지 않았고,군 제대 후 1969년 가을에 아버지는 부산으로 구호 물자를 갖으러 다니시며 장사를 시작하셨다.그러던 중 일이 일어났다.미국 원조가 끊어진 것이다.
국수 공장으로 돈을 번 삼성 그룹의 초대 회장 고 이병철 회장이,섬유 공장인 제일모직을 만들고 옷을 만들기 무렵의 우리 나라이다.구호 물자를 더 이상 받지 못한 아버지는 동대문 시장과 평화 시장을 돌아다니시다 생각하신 것이 바로 남성복 전문 가계이다.그래서 제일복장이라는 남성복 전문점을 여셨다.장사가 어느 정도 될 무렵 서울로부터 날아온 한 통의 문서를 받는다.제일 복장의 간판을 쓸 수 없다는 제일 모직으로 부터의 통보다.간판을 바꿀 돈이 없으셨던 아버지는 고민 끝에 아버지의 이름을 따 제일을 정일로 바꾸신다.그래서 탄생한 것이 정일복장이며 최초의 남성복 전문점으로 1972년도에 탄생하였다.
대학을 졸업 한 나는 갈 곳이 없었다.그 때 숙부님께서 어머니를 설득해 LG패션 공주점을 1997년도11월 16일에 인수 하셨고,나는 그곳에서 1년간 점장으로 근무하며 옷 장사의 경험을 쌓았다.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나는 같은 장소에서,폴햄이라는 브랜드 옷 가계 점주가 되어 직원을 둔 경영주로의 경험을 3년간 추가로 쌓았다.
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옷 값 논란이 한 창 메스컴을 달군다.여성이 옷을 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옷은 여자의 날개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이 도를 넘어 사치로 이어지고,국비를 탕진하는 사욕으로 까지 번진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초대 대통령이셨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생전에 두벌의 옷을 남기셨다.목 부의의 덧땐 옷고름은 헤어진 것을 바느질로 꽤매어 다시 쓰셨으며 역사에 기록되었고,더 이상 여사가 바느질을 해가며 옷을 수선해 입은 영부인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스승님께 감사드리며,오늘 글을 마친다.
첫댓글 우리 집의 역사가 고스란히 설명되었네요.아버지의 노력으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것이 감사하고 ~나도 나이드니 아버지의 그 정신력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해가 되니 고마운 마음이 더 커지는것 같아요.우리 가족이 서로의 힘들었던 것을 이해하면 더욱 돈독한 가족이 될꺼라 믿어요.이제 아드님이 건강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치며 살기를 아버지와 엄마는 바라고 기도 할께요.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꺼라 믿으며~아드님 오늘도 화이팅~~♡♡
예 알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