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너는 어릴 때보다 더 예뻐진 거 같다. 보톡스 맞았니? 주름이 안 보이네.'
'응, 이마에 맞았어. 야, 너도 보톡스 좀 맞아 봐. 훨씬 젊어보여.'
'나 최근에 ooo화장품에서 파는 콜라겐 먹고 있는데, 효과 있더라. 피부가 맑아져.'
'그래? 가격이 얼만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첫 대화가 이렇게 물꼬를 텄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돌아와서도 단톡방에선 콜라겐 정보가 이어졌다.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느새 내 손은 친구들을 따라 주문까지 클릭해 버렸다. 며칠 동안 비싼 콜라겐을 얼결에 사버린 걸 자책했다. (이미 샀으니 일단 잘 먹자. 그리고 열심히 벌자. ^^;)
김미희 시인의 <폰카-시가 되다>를 읽으며 엉뚱하게도 곱게 늙어가는 비결이 뭘까 생각해 봤다.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에게 얼굴 관리받는 얘기를 들으면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하며 예뻐지는 비결은 없을까.
동시를 읽다 보니 착시가 떠오른다. 착하고 밝은 사람은 예쁘다. 예뻐보인다. 그런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일상이 즐겁다. 내가 그렇게 예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래,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착하고 개구지고 발랄한 아이의 마음으로. 그럼 김미희 선생님처럼 얼굴도 마음도 투명해지지 않을까? 선생님도 관리 받고 계신 거 아니죠? ㅎㅎㅎ
자, 오늘의 콜라겐입니다. 소리내어 읽어보세요. ^^
하늘바다 물고기
하늘바다 물고기는
제 소리에 놀라
꽁지 빠지게 도망간다
왼편에 찍힌 비행기 옆 날개가 물고기처럼 보인다. 비행기 꼬리가 물고기같다라는 생각은 쉽게 한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보통 거기서 멈춘다. 작가는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비행기 날개를 물고기 꼬리로 보는 순간 하늘이 바다가 된다. 상상은 깊이를 더해 물고기가 제 소리에 놀라 꽁지 빠지게 도망간다니...평소에 마음을 맑게 쓰지 않으면 이런 장난스런 발상이 마음 안에 자리할 수 있을까. 동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버스 정류장 친구
내가 같이 기다려줄게요
버스 곧 올 거예요
무슨 일로, 어디로 가세요?
하기 싫으면 굳이 얘기 안 해도 돼요
무슨 얘기를 하든 난 다 들어줄게요
내 입 무거운 거 알잖아요
버스 저기 오네요
잘 가요 아무튼 행복해야 해요
자신을 지지해줄 누군가가 늘 그리운 사람들에게 하루방의 입을 빌려 작가는 따뜻한 말을 건넨다.
잘 지내고 있니?
힘든 일 있으면 다 얘기하렴. 내가 응원해 줄게.
걱정 말고, 아무튼 행복하길....
어느 지친 하루, 따뜻한 시 한 편이 우리를 위로한다. 시는 무용하지 않다. 시에는 이런 따뜻한 힘이 있다.
춤추게 하는 배
각오해
부부부붕 엔진 소리 드높게
경고음 날리며 간지럼을 태우자
못 참고 바다는 춤을 춘다
그만해 그만해
배가 지나가고서도
간지럼 춤은 멈추지 않는다
웃음을 참느라 새하얗다
배의 엔진소리는 바다를 간지럼 태우기 위한 경보음이란다. 바다는 참지 못해 춤을 추고 '그만해'를 외친다. 시인은 배가 지나간 자리마다 하얗게 이는 포말을 두고 '간지럼 춤은 멈추지 않는다/ 웃음을 참느라 새하얗다' 라고 말한다.
배를 타는 동안 수없이 보았던 풍경에 그저 아~시원하다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배의 엔진 소리를 듣고 배가 지나며 만드는 포말을 보고, 바다 내음을 한껏 맡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는 시인의 마음을 따라가 본다. 상상만으로 즐거워지는 그 순간을.
오감을 열고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 - 시인은 우리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
빨대 굴뚝
굴뚝에서 뿅뿅뿅
탄산 방울이 오릅니다
여름 산타가 동그란 보따리를 들고
굴뚝을 오릅니다
.
여름 카페에서 시원한 에이드를 앞에 두고 시인의 질문은 시작된다.
빨대는 무엇을 닮았을까요?
빨대에서 굴뚝을 떠올리는 순간 시는 탄생한다. 더운 날 시원한 에이드 한 모금은 여름 산타가 주는 선물. 작가님, 이런 상상은 어떻게 훈련하시나요? 언제 어디서든 상상을 장착하고 사시나요? ㅎ 멋져요.
첫댓글 오호, 이건 정말 비싼 콜라겐 서평인데요.
이 글을 읽고 피부가 막 탱탱해지는 착각에 빠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