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 11. 인연) 천생배필 - 신근식

[신근식(나무뿌리)]

주제 : 인연

천생배필

신근식

   산을 두루 다니며 청운의 꿈을 펼쳤다. 산 중에 가까운 구미에 가면 “천생산(天生山, 407m)”이 있다. 사방에서 보거나 드론타고 내려본다면 하늘 천(天)자처럼 지맥이 고루 퍼져있다. 그 이름 또한 여럿 있다. 구미에서 보면 함지박 엎어 놓은 모양이라 “방티산”이요, 병풍 둘러쳤다고 “병풍산”이라 부른다. 장천면에서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성을 쌓았다고 “혁거산”이라 한다. 천생산은 하늘이 내어 놓은 산이다. 원래 낙동강 바닥이었는데 지각변동으로 돌출되어 산이 되었다. 그 흔적은 강돌이 보인다. 내 생애 총각으로 천생산에 올랐다가 꽃같은 처자를 만났으니 이 또한 천생배필이 아니겠는가?

  나는 사남매 장남이고 장손이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 6.25전쟁 후에 토지개혁에 따라 가지고 있던 논, 밭이 모두 실제 경작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만 화병에 돌아가서 그 후로 기억이 없다. 언제 때부터 눈먼 할머니는 아흔 살을 넘겨 살고 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가자마자 부모님은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 결혼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부모님과 같이 맞선을 몇 번 보았다. 그러나 성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판 남이 만나서 일평생을 같이 사는데, 빨리 짝을 찾으려는 일은 행운이 더딜 수밖에 없다. 아버지가 수차례 선 보고도 결혼을 어렵게 했듯이 나도 그 틀에 벗어나지 못했다.

  직장에 유독 또래총각이 열여덟 명이나 되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잘 어울려 곧잘 놀았다. 한번은 친구 중 자기학과 후배 일곱 명과 미팅을 하자고 하여 남자 7명, 여자 6명이 동성로 아카데미극장 뒤 돌체다방에 모였다. 남녀 숫자가 맞지 않아 짝을 짓지 못 하고 놀았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서 마음속으로 찜해놓았다. 사실 미팅 주선자는 지금의 아내(이××)이다.

  며칠 지나서 친구에게 지난번 미팅 때 나온 정××를 정식으로 소개 시켜달라고 하였다. 돌아온 이야기가 “지금 한창 열애 중이라”고 하였다. 그럼 그렇지 ‘내 마음에 들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안 들 리가 없겠지’, 이미 사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되돌릴 용기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뇌리에 부모님 서두르는 모습이 영화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올해 안에 꼭 해야 한다고’압박감을 주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급해진 나는 친구에게 이번에 미팅 주선자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였다. 또 돌아온 말에 “미쳤나 다른 사람을 찜해 놓고 내가 꽁 대신 닭 이가?”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나도 염치가 없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드는데 한 사람은 쾌활하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한 성격인 것 같다. 내 성격이 활달하여 조용한 것에 마음이 먼저 갔을 뿐이다. 모든 것이 어긋나서 결혼은 점점 멀어져 가고 말았다.

  2년 지난 뒤에 중매쟁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토요일 오후 3시로 약속하였다. 직장에서는 토요일 오전 근무마치고 앞산 근처에 있는 식당에 모여 고스톱을 쳤다. 그때는 고스톱이 유행처럼 눈만 뜨면 고스톱을 즐기며 놀았다. 오늘 선보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고스톱에 열을 올리다가 약속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 승용차를 갖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시간이 급하니 좀 태워 달라.”고 하였다. 태워준다고 해서 고스톱을 한 판,  또 한 판치다가 약속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부랴부랴 나섰지만 가는 길 승용차에 기름이 엥꼬(えんこ)되었다고 기름 넣고 약속 장소인 로얄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약속 시간 30분이 지났다. 혹시 갔을까 싶어 대충 둘러보았는데 창가 쪽에 두 모녀가 앉아 있어서 안심은 했지만 공교롭게도 중매인도 아직 나오지 않아 많이 어긋나고 있었다.

  중매인이 도착하여 ‘아 미안하다고’하고 인사를 시킨다. 나는 예비 장모 분한테 약속을 어겨서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연신 숙이면서 사죄하였다. 중매인은 얼른 자리 비켜주자고 예비 장모님 손을 잽싸게 잡으며 일어났다. 예비 장모님은 가면서 “빨리 집에 오너라.”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딸한테 일침을 놓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선을 하찮게 보는 사람이라 믿을 수 없다)  그때서야 상대편의 얼굴을 보았다. 어째 낯이 익어 보인다싶더니 눈을 마주치자말자 두 사람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2년 전에 미팅을 주선하고, 내가 사귀자고 하였던 바로 그녀였다. 참 묘한 인연이다 싶어 둘은 마음에 들고 말고는 제쳐두고,  중앙파출소 뒤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 6층에 가서 생맥주를 실컷 마셨다.

  아내 될 처자와 데이터를 하기 시작했다. 28살 장남이고, 처자는 24살에 딸 넷의 막내였다. 나는 아직 부모님과 약속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결혼 해줄 것을 재촉하였다. 그때는 사랑 고백이나 결혼 고백 같은 이벤트가 없었다. 처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당장 결혼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렇다고 내 욕심대로 하다가는 어렵게 인연을 만든 끈을 놓치기 싫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고 하여 기다렸다. 잘 못하면 올해 또 해를 넘기나 싶어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드디어 연락이 왔다. “엄마가 한번 보자고 해요.”하여 처음 만났던 로얄호텔에 예비 장모님이 외손주 둘을 데리고 나왔다. 예비 장모님을 처음 보는 순간 ‘그 엄마의 딸이 구나’를 느꼈다. 기품이 있어 보이고, 연세가 있어도 한복차림으로 곱다. 예비 장모님이 “우리 딸은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시골생활에 익숙하지 못하니 어려운 일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다른 말이 없었다. 사위로서 합격이었다.

  부모님이 동생들 잘 보살펴 달라고 아파트(달서시영 18평)를 마련해 주었다. 처자도 아파트에 와 보고, 나도 예비 장모님 집에도 가고 하여 결혼이 잘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처자는 동생들이 아파트에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선 듯 내키지 않아 결혼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고지가 코앞인데 또 어긋나는 듯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비 장모님이 막내딸을 빨리 시집보내고 삶의 가장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어서 끈질긴 설득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우여곡절 끝에 우린 웨딩마치를 울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늘 같을 수는 없다. 젊은 날의 돈키호테와 같은 좌충우돌에 섬세하면서도 결백증이 심한 아내와 시간이 지날수록 아귀가 맞지 않고, 삐거덕거릴 때도 많았다. 이제 반백이 지난 지금에야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렇게 춥지 않았다면 봄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혼인치레 말고, 팔자 치레하랬다.”했듯 꽃같은 처자 만나 행복한 삶 누린 것은 두 번 인연이 천생으로 얻은 기회였다. 수레바퀴 둘이 함께 구르듯 천생산을 하늘이 내어 놓은 것처럼 우리 두 번의 인연은 천정배필(天定配匹)로 이어졌다. 남남이 하루, 이틀 지나 새록새록 꿈같은 신혼에서 어느 누가 질투하랴. 천생산 천생연분으로 우리는 하늘이 감동하는 배필로 맞았다.

(20230214)

[곽선희]

어머~ 너무 잘 쓰셨습니다.
언제나 미사려구 없이 진솔함이 독자를 사로잡습니다.
행복한 가정에 축복을 보냅니다~

[신근식(나무뿌리)]

감사합니다. 아직 사유수필밖에 쓸수 없으니
많은 지도를 바랍니다.

[청림/이영백]

수고 하셨습니다.
청림숲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