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아침을 맞이한다. 그래도 킬리만자로는 정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단 번에 본 모습을 보여주면 신비감도 없고 영산일 수 없다. 개울을 건너서 밋밋한 초원을 걷는다. 살짝 고개를 지나서 선인장 군락이 있다. 뿌리에서 기둥처럼 한줄기가 올라와 여러 갈래로 파생하여 가분수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세네시오 킬리만자리.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면 어떻게 견뎌낼까? 보고 있는 내가 안타깝다. 눈가를 스치는 마른대 사이로 나온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는 이름 모를 식물, 자세히 보니 죽은 잎들을 뚫고 새순이 나왔다. 무한한 생명력을 보면서 머리 아픈 거쯤이야 하는 위안을 삼는다. 숲 사이로 홀로 우뚝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Lobelia deckenii 선인장. 눈앞의 초원은 마웬지봉까지 연결된 운무와 함께 어울려 몽환적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누군가 “Look at That"을 외친다. 가히 환상적이다. 이 분위기에 조선기녀 황진이가 여기 와 서 있다면 ‘동짓달 기나긴 밤’ 시라도 읊으면서 한 허리 베어내어 뭇 남정네를 울리기에 충분하다.
개울을 건너 숲으로, 숲을 지나 고개로, 고개를 지나 평원으로 이어지는 길. 포터와 등산객이 두 길로 나뉘어 걷는다. 어느 쪽을 택할까 하다가 사람이 많이 가는 쪽을 택했다. 쉼터에서 물으니 우리가 가는 길이 정상 코스라고 한다. 합류지점에서 보니 다른 길로 간 사람들이 먼저 가고 있다. 힘이 빠진다. 고개를 드는 것 마져도 탐욕이다. 정상이 비정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샛길이 갓god길이 되고 갓길은 지름길인 셈이다. 살짝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우위를 꺼내 입고 걷는다. 일행들은 기능성 옷과 스틱, 우의 등 완전 무장을 하고 왔다.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떨어진다. 사실 킬리만자로 등정을 출발하면서 체력만 믿고 별다른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동네 뒷산 가는 기분으로 와서 내심 후회도 했다. 그래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우산을 챙긴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준비성은 비를 덜 맞았다는 결과의 최적성으로 나타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로 한발 짝 한발 짝 내미는 이 순간,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험하고 위태로운 강을 건너는 것만큼 위험한 짓인지 모르겠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5천고지 이상을 체험한 사람의 말을 듣고 몸으로 느끼면서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비는 내리고 쉼터의 공간은 겨우 6명 남짓 앉을 수 있는데 테이블위에는 우산, 우의, 배낭이 놓여 있다. 10여명이 몰아닥치니 어쩔 수 없다. 틈을 비집고 겨우 엉덩이를 부치니 배식요원이 점심을 가져온다. 나무토막 같은 튀김 닭, 빵, 음료수와 바나나를 제공하지만 음식에 온기와 정성이 별로지만 시장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다. 중간에 보니까 그마져도 챙기지 못한 사람이 있어 나눠 먹었다.
해발고도를 높이면서 몸은 지치고 내 발로 걷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현실. 뚜벅뚜벅 한 걸음 나아간다. 친구는 무리 하지 말자는 취지로 “산은 내년에도 그곳에 있다.”라는 말을 던진다. 키보산장이 눈앞에 보인다.
잠시 쉬어가기로 마음먹고 등산로를 벗어나 편안한 지점에 앉아서 물과 초콜렛으로 수분과 당분을 보충한다. 저만치 마치 원숭이 형상의 고목이 있다. 손을 내민 것이 “나도 초콜렛 하나 줘요” 하는 것 같다. 조삼모사이야기가 생각났다.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 수고를 하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을 ‘아침에 세 개’라고 말한다. 무엇을 ‘아침에 세 개’라고 하는 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라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다시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라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서 달라진 것이 없는데 원숭이들이 기뻐하고 성내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 또한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자기와 만물 양편에 다 통하는 것’이라고 한다.
努神明爲一 而不知其同也 謂之朝三 何謂朝三 狙公賦芧曰 朝三而暮四 衆狙皆怒
曰然則朝四而暮三 衆狙皆悅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
而休乎天釣 是之謂兩行
노신명위일 이부지기동야 위지조삼 하위조삼 저공부서왈 조삼이모사 중저개노
왈연칙조사이모삼 중저개열 명실미휴이희노위용 역인시야 시이성인화지이시비
이휴호천조 시지위량행<제물론>
문제를 제시하는 방법에 따라 사람(동물)들의 선택이나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프레이밍효과라고 한다. 환자가 암수술을 하고 생존율이 70%인 경우 의사의 답변은 두 가지다. 사망률 30% 와 성공률 70% 라는 답변. 둘 다 모두 결과는 같지만 환자는 성공률 70%에 호응한다. 원숭이 또한 마찬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먼저 많은 것, 좋아 보이는 것, 긍정적인 내용에 환자는 안도감을 갖게 되고 원숭이는 기뻐하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 원숭이와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절충점을 찾아 옳다고, 긍정적이라고 믿는바에 맞춰 조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게 하는 천균天鈞이라 한다.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의 주장만 내세우지 않고 원숭이가 의도하는 방법도 받아들이며 자기와 만물의 양편이 다 통하는 양행兩行이 절실하다.
강한 자가 혼자 차려먹는 밥상은 갈등을 부른다. 맞이하는 타자를 인정하고 조화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욕망의 극대화와 균형, 평등을 실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