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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자기가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인 ‘이교(異敎)’의 관계에 있으며, 한 종교에서 분파한 ‘이단(異端)’까지 다른 종교로 구분하면 종교의 수는 2023년 기준 약 4000여 종 이상에 달한다. 종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종교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데, 일부 종교들은 모든 타종교를 배척하는 태도를 가진다. 이번『세계종교탐구』에서는 종교들이 타종교를 배척함으로써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이들이 이교를 배척했던 근거들에 대해 검토해 볼 것이다.
▣ 이교를 규정하다
종교의 역사에서 이교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중요하지는 않았다.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된 초기 종교들은 대부분 다신교의 형태로 발달되었다. 다신교에서는 자연물이나 행위, 현상 등을 하나하나 신격화하여 여러 명의 신을 섬겼고, 이들은 새로운 종교나 외래 종교를 받아들일 때, 그들의 신도 이름만 다른 자신들의 신이라고 생각하거나 여러 신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이교간 대립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신교 세계에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의 유일신교가 전파되기 시작하며 기존 종교와의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일신교는 유일신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교리 하에 자신들만을 진리의 종교라 여기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죄악시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과 이교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유대교는 유대 경전에 근거해 굳은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다. 선민사상은 특정 민족이 신이나 신적 존재에 의해 선택되고 구원된다는 종교 사상으로, 유대교의 경전을 보면 이러한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 그 때 너희는 그들을 전멸시켜야 한다. (…) 너희는 그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그들의 제단을 허물고 석상들을 부수고 아세라(가나안족의 여신) 목상을 찍어버리고 우상들을 불살라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 몸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세상에 민족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너희를 뽑아 당신의 소중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 그러므로 너희는 알아야 한다. 너희 하느님 야훼 그분이야말로 참 하느님이시다. (…) 그러나 당신을 싫어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려 멸망시키는 분이시다. 당신을 싫어하는 자는 바로 그 본인에게 지체 없이 벌을 내리신다.”
– 신명기 7장 2~10절에서 발췌
선민사상을 지닌 유대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교는 인간인 예수를 신격화해 분파한 이단으로, 자신들은 선민사상을 넘어 예수가 흘린 피로써 ‘모든 인류’를 구원했다 주장하는 집단이었다. 그리스도교의 경전 사도행전 24장 5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교의 사도 바울을 “몹쓸 전염병 같은 놈으로서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이며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표현했다는 내용에서 그리스도교를 ‘나사렛 이단’이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를 거부한 유대교를 이단이라 부른다. 그리스도교에선 무엇이 이단이고 이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교’에는 ‘자기가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라는 정의 외에도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라는 정의가 있다. 그리스도교 사이에선 후자의 의미로써 이교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이 개념은 로마제국시대에 형성된 초기 그리스도교 때부터 사용되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대다수가 여러 신을 믿는 다신교도였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아브라함의 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페이건(pagan)’, 우리말로 ‘이교도’라고 불렀다. 이교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교에서 인류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적 언어 체계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학적 진실에 기반한 유일신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다신교 신자들을 개종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경전에 따르면 자신들의 신 이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은 우상숭배로서 분명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교라는 용어는 단순히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를 구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당시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을 제외한 모든 신들은 가짜 신, 신을 가장한 악마라 생각했는데, 이교라는 단어의 사용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종교와 미신적 우상 숭배를 구분하는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사고방식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즉 그리스도교 외의 종교는 거짓 종교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이 용어가 부정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으며 탈식민 국가들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에 적절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여, 종교학 같은 학문 분야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용어인 이교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리스도교 사이에선 여전히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스도교는 발달 과정에서 수많은 이단들이 형성되었다. 교리의 모순이나 교회의 타락에 맞서 별개의 종파로 갈라져 나온 것이다. 1022년, 프랑스 오를레앙 지역에 등장한 이단은 십자가를 조롱하고, 성직자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교회의 성사 전체를 부정했다. 세례는 죄를 사하지 못하며 성체성사는 무용지물이고 성인이나 순교자에 대한 숭배도 무용하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서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인간을 위해 수난을 당하지 않았고, 무덤에 묻히지도 않았으며, 부활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동정녀 출생을 부정하는 이유는 “자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은 신의 질서에도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성이나 경험에 맞지 않는 일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못 믿겠다고 주장했다.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이들을 공격하자 그들은 “너희는 동물 가죽(양피지)위에 써 놓은 인간이 만들어낸 날조된 이야기를 믿지만, 우리들은 성령이 우리들 가슴에 써놓은 것만 믿는다”고 반박했다. 1077년, 프랑스 캉브레 지방에서는 라미르두스의 주도하에 막대한 성직록을 받는 성직자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고위 성직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성직 매매를 행한 부패하고 죄지은 성직자는 성사를 집행할 수 없으며 그들이 집전한 성사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경철,『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생각의힘, 2016., p.101.; 김동순,「중세 이단의 성격에 관한 소고: 1000-1150」,『서양중세사연구』, vol.7., 2000., p.126~128; Lambert, M.D., Medieval Heresy, Popular Movements from Bogomil to Hus, Edward Arnold, 1977., p.26,27.)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거대 분파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 개신교로 나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이 정통 그리스도교라 주장하고, 동방 정교회는 서방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를 이단으로 여기며, 개신교는 성모 마리아와 교황, 갖가지 성인들을 추앙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이교도적 요소로 변질된 이교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교를 개종시키거나 박멸하라는 경전의 가르침을 실천했다는 것이다.
▣ 이교를 탄압하다
이교를 탄압했던 역사적 사건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사건들에는 원주민 학살,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등을 들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집단 광기의 역사 중 하나로 꼽히는 위 사건들은 어떠한 근거로 일어난 것일까?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이래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앞다투어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은 그들만의 문화와 종교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고, 개종을 거부하자 아메리카 대륙에는 피바람이 불게 되었다. 청교도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이후 포로로 잡힌 원주민 중 남자는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눠가졌다.
<자료1> 히스파니올라 섬의 추장 하투아이(Hatuey, ~1512)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가톨릭 사제
히스파니올라 섬의 추장 하투아이는 피신을 하다 스페인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했다는 ‘죄’로 그는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화형대 위에 섰을 때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프란치스코 교단의 사제가 그에게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면 영생을 보장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투아이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천국에도 스페인 사람들이 있는가?” 사제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투아이는 말했다. “그 잔인무도한 종족이 한 명이라도 살고 있는 곳에는 나는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화형대의 연기로 사라졌다. (출처: alamy)
히스파니올라 섬의 추장 하투아이는 피신을 하다 스페인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했다는 ‘죄’로 그는 화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화형대 위에 섰을 때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프란치스코 교단의 사제가 그에게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면 영생을 보장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투아이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천국에도 스페인 사람들이 있는가?” 사제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투아이는 말했다. “그 잔인무도한 종족이 한 명이라도 살고 있는 곳에는 나는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화형대의 연기로 사라졌다.<자료1> (thinking a little, asked the religious man if Spaniards went to heaven. The religious man answered yes… The chief then said without further thought that he did not want to go there but to hell so as not to be where they were and where he would not see such cruel people. / Luis N. Rivera, 『A Violent Evangelism: The Political and Religious Conquest of the Americas』, 1992., p.260.)
종교인들이 이와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었던 배경은 다음 인디언들의 연설문에서 알 수 있다. 다코타 족의 원주민 오히예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교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라고 우리를 몰아세웠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신은 전부 가짜이니 빨리 내던지고 자신들의 성스러운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우리가 자신들의 믿음과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자료2>
<자료2> 다코타 족의 원주민 의사 오히예사(Ohiyesa, 1858-1939)
다코타 족의 원주민 오히예사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교도라는 딱지를 붙이고, 악마를 숭배하는 자들이라고 우리를 몰아세웠다. 우리가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신은 전부 가짜이니 빨리 내던지고 자신들의 성스러운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지어 우리가 자신들의 믿음과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출처: https://www.mngoodage.com/voices/mn-history/2020/02/the-soul-of-an-indian/)
<자료3> 세네카 족의 원주민 빨간 윗도리(Sagoyewatha, 1750-1830)
세네카족의 원주민 빨간 윗도리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당신은 말한다. 당신들의 종교는 옳고, 우리의 것은 틀리다고. 당신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위대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중략) 당신은 말한다. 당신이 따르는 그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식으로 단 하나의 종교만 존재한다면, 왜 당신들은 종교에 대해 그토록 의견이 다른가? 당신들 모두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왜 서로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가?” (출처: http://allencbrowne.blogspot.com/2016/02/sagoyewatha-red-jacket.html)
세네카 족의 원주민 빨간 윗도리(사고예와타)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당신은 말한다. 당신은 신의 마음에 들도록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진 사람이라고. 그리고 당신들의 종교를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척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또한 당신은 말한다. 당신들의 종교는 옳고, 우리의 것은 틀리다고.”<자료3>
원주민을 학살한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빨간 윗도리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위대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중략) 당신은 말한다. 당신이 따르는 그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이 길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식으로 단 하나의 종교만 존재한다면, 왜 당신들은 종교에 대해 그토록 의견이 다른가? 당신들 모두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왜 서로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가?”(시애틀 추장 外,『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더숲, 2017., p.42,56,77,78,288.)
십자군 전쟁은 역사상 최악의 살육과 만행을 저지른 종교 전쟁으로 알려져있다. 1099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십자군은 이교도들을 색출하려고 온 도시를 이 잡듯 헤집고 다녔다. 십자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날 하루 7만 명을 죽였다. 무슬림과 유대인을 구분치 않고 학살했다. 예루살렘에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홍익희,『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 행성비, 2019., p.524.) 이런 무자비한 학살이 가능했던 것은 상대가 이교도였기 때문이다. 십자군은 이교도와 싸우는 것을 그들의 신이 원한다고 믿었고, 십자군에게 이 전쟁은 이교도로부터 그리스도교를 구원하는 성스러운 일이었다.
<자료4> 중세 시대 마녀를 화형시키는 모습
(출처: www.republicain-lorrain.fr)
마녀 사냥도 악으로부터 그리스도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학살이었다.<자료4>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를 인용하면서 ‘신이 아닌 것과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모두 마귀’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주장했다. 종교개혁을 주창하며 등장한 개신교도 마녀에 관한 견해는 구교와 많은 부분이 비슷했다. 종교 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는 마녀는 동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마귀와 사랑도 나누고 성적인 관계를 하는 존재라고 믿었고, 출애굽기 22장 18절을 인용하여 “마녀는 살려두어서는 안된다. 마귀와 교접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자는 죽여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교는 마녀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가 종말까지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며, 마녀의 활동은 말세에 벌어지는 사탄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악마의 하수인으로 밝혀진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극형에 처하는 것은 더 이상 정의로울 수 없는 일이었고, 재판관들은 자신이 악마의 세력에 대항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지켜내는 정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마녀사냥은 유럽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현상 중 하나라고 한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알고 보니 오랫동안 악마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렇게 하여 얻은 마법의 힘으로 사방에 병을 퍼뜨리고 폭풍우를 일으킨 마녀였다고 하는 주장을 믿은 것이다. 검은 염소 모양으로 변신하여 밤중에 산으로 날아가 마녀들 모임에서 어린아이를 잡아먹었다는 혐의로 누군가를 기소하고 그녀를 화형에 처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박사의 저서『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유럽 문명은 악을 필요로 했고, 악을 구현하는 존재로 마녀를 발명한 것이라 설명했다. 예수, 마리아, 성인들은 확고하게 선의 편으로, 그 외의 온갖 초자연적 존재들은 일괄적으로 악마의 편으로 만들었다.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지극히 사악한 존재는 교회를 지고의 선으로서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다. 악마 없는 신이란 그림자 없는 존재처럼 성립하기 힘들었고, 중세 국가와 교회의 정당화 과정에서 악을 재정립하는 데에 악마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현대까지도 이어진 것이 사실이나, 악마 역할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인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험에 떨어뜨리는 마녀를 창안하고 동원한 것은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었다고 한다.(주경철,『마녀: 서구 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생각의힘, 2016., p.30,306,307,312,313.)
▣ 사교(邪敎)를 탄압하다
종교가 박해를 받은 역사 중에는 ‘이교’여서가 아니라 ‘사교’로 판단되어 박해를 받은 경우도 있다. 1~2세기 초 로마에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들이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로마의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예수를 신처럼 찬양했던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에게 정치적으로 위험한 집단, 로마의 신들을 부인하는 무신론자, 영아를 살해하여 살을 먹는 집단, 근친상간하는 부도덕한 무리들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비밀리에 모여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성만찬’을 가지고, 성만찬 후에는 깊은 사랑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가지는 공동 식사인 ‘애찬(愛餐)’과 ‘거룩한 키스’를 나누었기 때문에 생긴 판단이었다.
<자료5> 161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발표한
가톨릭 금지령 제1조
1612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톨릭 금지령’을 발표했다. 제1조를 보면 ‘가톨릭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다. 몸을 베고 피를 내어 죽는 것을 구원으로 여긴다.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자료5> 가톨릭 금지령과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발표한 ‘가톨릭 선교사 추방문’에는 “가톨릭 선교사는 의(義)가 없고 선(善)을 파괴한다. 형인(刑人, 순교자)을 보면 기뻐하며 달려가 절을 한다. 순교를 종교의 본질이라 여기는데, 사법(邪法=사교)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伴天連追放之文 … 残義損善、見有刑人、載欣載奔、自拝自礼、以是爲宗之本、非邪法何哉)”라는 내용이 있으며, 후칸사이 하비안의 책『하데우스(破提宇子, 가톨릭의 신을 파괴하다.)』에는 “순교는 가톨릭을 위해 몸과 생명을 먼지처럼 버리는 것이니 무서운 일이다. 가톨릭은 군대를 파견해 다른 나라의 탈취를 도모하는데, 천 년 후에도 가톨릭이 일본을 탈취할 생각을 갖지 못하도록 우리 골수에 가톨릭의 사악함을 새겨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가톨릭 금지령 이후 일본은 가톨릭 신도를 색출하기 위해 마을 곳곳에 표지판을 걸어 가톨릭 신도를 당국에 신고하도록 했다. 일본은 이후 250년 동안 가톨릭 금지 정책을 펼쳤고 이는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가톨릭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종교’라는 사실을 뿌리 깊이 각인시켰다.
우리나라 조선도 천주교를 사학(邪學)이라고 규정하고 천주교도를 사학을 좇는 죄인이라 하여 ‘사학죄인’이라 불렀다.
조정은 유교 문화권인 조선에서 제사를 금지하는 천주교를 자신을 낳아준 부모도 공경하지 않으려 하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무리, 인륜을 저버린 금수(禽獸)의 무리, ‘통화통색(通貨通色)’, 곧 신앙을 돈으로 매수하고 남녀가 집단 혼음(混淫)하는 패륜아들의 집단으로 단정하였다.(출처: 경향잡지, 1989년 3월호, 김진소 대건 안드레아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 가톨릭대사전「사학」) 조선 후기의 천주교도 황사영은 중국 베이징교구 주교에게 조선의 박해상황을 알리고, 중국 황제에게 청하여 조선도 서양인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것을 요청하였고, 왕이 말을 듣지 않으면 조선을 중국의 만주에 소속시켜 중국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시켜 감독하게 하거나, 서양 군함 수백 척과 군대 5만∼6만 명을 조선에 보내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조정을 굴복하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는 내용의 밀서를 보내려다 체포되었다.<자료6> 이를 증거로 천주교는 매국의 종교로 낙인되었다.
<자료6> 황사영과 황사영 백서 내용의 일부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유배 18년, 정약용 새로운 조선을 꿈꾸다」,
KBS 역사스페셜.「정약용 3형제, 과연 신(神)을 버렸나」,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지금까지 살펴본 사례들은 단순히 신흥종교나 외래종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교라는 판단에 의한 탄압이었다.
<자료7> 영국 도심을 가로질러 행진하는 종교적 소수자들
미국, 영국 등지에서는 주류 종교인 그리스도교에 의해 이교도라 불리게 된 종교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교도의 자존심(Pagan Pride)”이라는 구호가 쓰여진 현수막을 들고 도심을 가로질러 행진하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 (출처: https://calendarcustoms.com/articles/nottingham-pagan-pride-festival/)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자신들의 종교에 자부심이 있었고, 그리스도교와 이교인 것을 기꺼이 여겼다. 미국에서는 주류 종교인 그리스도교에 의해 이교도라 불리게 된 종교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이교도의 자존심(Pagan Pride)”이라는 구호가 쓰여진 현수막을 들고 미 도시를 가로질러 행진하는 운동을 하기도 한다.<자료7> 자신들이 그리스도교와 다르다는 것을 광고하고 이교에 대한 긍정적인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교임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이교나 이단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자신이 속한 종교는 선하고 다른 종교는 거짓 종교나 악한 종교라는 주장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선한 종교와 악한 종교, 진리를 가진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나뉘어야 할 것이다.
<자료8>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로마 가톨릭 교황 프란치스코
지난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성체가 주님의 현존과 사랑의 실재라기보다 상징이라고 믿는다”며 “그것은 상징 이상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실제적이고 사랑스러운 임재입니다”라고 말했다. (출처:catholiccourier.com)
지난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성체가 주님의 현존과 사랑의 실재라기보다 상징이라고 믿는다”며 “그것은 상징 이상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실제적이고 사랑스러운 임재입니다”라고 말했다.<자료8,9>
2014년에는“여러분 가운데 누군가는 ‘교황님, 21세기에 악마에 대해 말하다니 옛날 사람이시군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강조합니다. 조심하십시오. 21세기에도 악마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복음에서 악마를 물리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얘기했고, 2014년 교황청은 국제 구마 사제 협회를 공식 기구로 인정하였다.
현대인들은 마녀가 없다는 것을 안다. 증거 없는 믿음보다는 과학과 이성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신의 살과 피를 먹고, 악마를 퇴치하는 종교가 있음에도 과거처럼 피바람이 불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것일까?
<자료9> 예수의 피를 성찬식 잔에 담는 그림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성체란 살아 있는 예수가 빵과 포도주 형태 안에 참으로 실재로, 실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현실로는 빵과 포도주이지만 실제로는 예수의 살과 피라고 한다. (출처: https://tgpsaigon.net/bai-viet/loi-kinh-dem-dac-biet-cua-dgh-phanxico-63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