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W교회 주일예배 <고쳐주소서>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왕하5:1-8)
부탁을 잘하세요? 부탁을 어려워하세요?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바넷사 교수의 실험. 2그룹을 나누어서 도움을 청하는게 부끄럽고 무능력해보일지라도 개의치말고 청하라/ 한그룹은 도움을 청하는게 더 생산적이니 청하라/ 누가 더 많이 청했을까? 첫번째 그룹이었다. 부끄러워서 청하지 않는다. 부탁도 마음이 겸손해야 잘할 수 있다.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라고 부탁하러 간다. 고쳐주소서해야 고침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 고쳐주소서 부탁하여 모두 고침 받으시길 바란다. 고침을 받으려면
1.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1절) 아람은 다윗왕이 점령한 뒤 오랫동안 힘을 쓰지 못함. 이스라엘이 분열된 뒤 남유다왕 아사와 아람이 동맹을 맺음. 그 뒤로 아람은 북이스라엘의 적국이 되고 여러차례 전쟁을 치룸. 이스라엘은 오므리 왕조때 가장 강성한 때. 지금의 시리아인 아람은 더 강성해서 조금도 물러설 수 없을 때. 그럴 때 아람이 이기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 나아만도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음을 암시. 고칠 수 없는 질병에 사로잡힌 나아만.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다. 부자는 몸을 치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쌓아놨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밑동 잘린 나무다. 2절)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어린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계집종. 크고 존귀한 나아만과는 반대. 나아만은 강자. 어린 소녀는 약자. 누가 누구를 동정하고 도와야 할까요. 누가 더 불쌍한가? 그런데 어린 여종이 나아만을 생각한다. 힘들 때 딱 한 사람을 생각했을 것. 이스라엘의 선지자. 죽은 사람도 살리는 선지자인데 나병환자를 못고치겠는가? 만난 적이 없어도 한 성령이기에 구속사가 믿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아만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을 납치해온 원수. 부모가 다 아람군대에 의해 죽었을 수도 있다.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내가 주님을 알게 되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알게 된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원수사랑 이야기이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되면 내가 가장 극형을 당할 사형수이다. 그러니 경범죄자를 용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늘 이 땅에 옳고 그름으로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한다. 이 땅에는 용서 받은 죄인과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이 있을 뿐이다. 주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이 말을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온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으로 설교를 듣기에 니가 나를 알아, 온 나라가 상대진영을 죽여라!한다. 우리나라의 주적은 북한인데 모두 상대진영을 죽여라 한다. 박수문 집사님. 6.25.용문산 전투 영상의 주인공. 소총도 한 번 쏠줄 모르는 18살 때 학도병으로 지원해서 생생한 그 당시의 전투 장면이 희귀하게 남아있다. 우교 오신지 20년 되었는데 몰라뵈었다. 죄송하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직접 보니 기가 막힌다. 70년을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는데 이번 정부에서 처음으로 유공자로 초청을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은인을 몰라본다. 말씀을 나누다보니 우교 초반에 오셔서 90이 넘은 나이에 싸이클을 타시고 아내를 모시고 다니시고 병수발 하시고 장보고 밥하시고 유공자모임에 직책을 맡으시고... 너무 바쁘시다. 다들 얼굴이 훤하시다. 자식들을 다 장로 권사 만드시고... 학도병을 지원하실 정도로 애국자. 한가지가 열가지이다. 너무 은혜받았다. 하여튼 전쟁은 이겨야 한다. 질 수는 없다.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몸종으로 사로잡힌 소녀가 나아만을 불쌍히 여겼다. 참으로 복된 소식 복음을 전해주었다. 위대한 사람은 원수조차 긍휼히 여겨 살 길을 알려주는 이 무명의 소녀이다.
적용질문. 크고 용사이나 감추고 싶은 나병은 무엇입니까? 나는 사형수라고 생각합니까? 경범죄자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옵니까? 여러분은 내 처지가 초라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2. 나병 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합니다. 3-4절) 어린 여종이 전한 복음을 들은 아내가 나아만에게 복음을 전함. 우리가 아끼는 자녀들의 말도 얼마나 무시할 때가 많은가? 어린 여종의 말을 믿겠습니까? 그 당시 강대국인 아람의 모든 의술을 동원해도 고칠 수 없었던 나병을 빨래방에서 일하던 여종이 고칠 수 있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었을까? *스티븐 호킹. 그렇게 루게릭병에 시달려도 용사라서 예수를 못 믿음. 그런데 나아만 부부가 믿었다. 안해본 것이 없는 이 부부에게 낫지를 않으니 낮고 낮아진 마음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믿었다. 믿음은 그래서 선물이다. 나아만은 왕에게 나아가서 소녀가 전한 복음을 전한다. 5-6절) 벤하닷 2세는 아합과 끊임없이 싸웠다. 아합이 죽은 것도 아람과의 전쟁 때문. 그러니 이 아람과의 관계가 좋았겠는가? 그런데 이 나아만을 보낸다. 나아만도 할 거 다해보니 안되서, 왕도 믿음이 있어서 왕에게 나아만은 너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서. 전쟁에서 이긴 것이 그의 공이기에 아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나아만 때문이기에. 나아만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다. 그러기에 뭐하러 적국의 왕에게 그렇게 부탁을 하겠는가? 사람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수도 지을수도 없다. 인간은 100프로 죄인이다. 여러분들이 속았으면 100프로 잘못이다. 100프로 잘해도 늘 의심을 해야 한다. 의심과 분별은 다르다. 자기가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고 계획이 틀어지고 육이 무너지는 사건이 없으면 고난을 당해야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내 의지와 내 생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가난한 마음이 축복이다. 고난을 당해 낮은 마음이 될 때 말씀이 들린다. 아람왕도 나아만 앞에 서면 작아지는 한계가 있었기에 분에 넘치는 예물을 드려가며 도왔다. 나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이 오면 의심을 해야 한다. 공짜가 없다. 우리도 나병같은 고난이 있을 때 낮은 마음이 될 수 밖에 없는 힘든 사람. 복음에 마음이 열리는 것이 축복이다. 고난이 없이 하나님 믿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은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여기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마음.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평하는 민수기의 이스라엘백성들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다. 다단과 아비람. 그게 우리들의 마음이다. 나보다 위의 리더쉽의 마음을 인정하기 싫다. 모세가 미리암과 아론과의 싸움이 이스라엘 전체를 인도하는 것 보다 더 어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진 것을 원하는 마음이 이기적인 마음이다. 반역하는 마음이다. 생각지도 못한 고난이 올 때 어찌 이런 일이! 하면서 슬퍼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찾아오면 영적인 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고 생각하라. 약먹을 시간. 구약. 신약. 큐티하는 시간. 매너리즘에 빠져서 형식적으로 약을 먹는 척하고 안먹으니까 약 좀 먹으라고 주신 사건이다. 고난이 없으니까 앉아있기도 힘들고 다 너무 힘들어~ 그냥~
3.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5-6절) 아람왕은 여호람에게 고쳐달라고 한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여호람은 아람왕의 말을 하나도 못알아듣는다. 내가 하나님이야 내가 어떻게 고쳐 하며 그 좋은 새 옷을 박박 찢는다. 옷을 찢는 것은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절망과 슬픔을 표현한 행위. 말로 다할 수 없는 마음속 격동을 드러내는 행위. 나아만의 집에서 수종드는 어린 소녀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된다. 여호람은 기적을 봐도 그것만 지나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애굽왕과 똑같다. 끝까지 자기 감정에 휘둘려서 분조장이 고쳐지질 않는다. 그의 눈에는 엘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귀에는 엘리사의 소문이 들리지 않는다. 깊이 생각해서 이렇게 오버센스 하면 안된다. 깊이 오해해서 의심을 하고 이 것을 바꿀 수 없는 집이 너무 많다. 의처증. 의부증. 오직 앉으나 서나 이해타산만 생각하니 의심밖에 안한다. 구원때문에 분별하는 것과 의심은 다르다.
하나님은 이 믿음없는 여호람의 탄식조차 들어주신다. 이 아람의 장관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 불치병을 고치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안 믿고 무시하고 있으니 아람장관을 고치는 하나님을 보이고자 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군대장관이라도 그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다 이렇게 불쌍한 영혼인 것이다. 여호람이 엘리사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그랬다는 소문을 듣는다. 왕에게 관심이 있다.최고 강국 이스라엘의 여호람이 믿음이 없다. 우리가 진영논리로 싸워야 겠는가?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하지 않겠는가? 엘리사가 끊임없이 왕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파악하고 있었다. 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 나아만을 보내라고 한다. 그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는 줄 아나이다! 경험하여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여호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왜 옷을 찢냐? 니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책임지실 일이다. 할 수 없는 일 왜 니가 짊어지고 있냐?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아라. 하나님께 맡겨라. 이런 말씀이다. 이 탄식도 하나님이 귀 기울여 들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며 응답하신다. 이 여호람에게 응답하시는 이유는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오고 목장을 나오고 안 떠나고 있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예화)뭘 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나님 생각만 하면 기쁘다는 아들. 붙어 있어야 깨달음을 주신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위대한 복음가루를 뿌려댄다. 이 것이 우리가 교회에 속해있어야 할 이유다.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다. 그래야 가정도 안 깨고 회사도 나간다. '내 고난은 내 죄보다 약합니다.' 이번 현수막.
적용질문 내 힘으로 하려다가 옷을 찢으며 절망하고 있는 일은? 나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동체에서 탄식했을뿐인데 응답받은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