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노크 성모발현 성지
개요
노크 성지는 세계 3대 발현 성지와 비교해 규모와 시설 면에서 손색이 없는 아일랜드 최고의 가톨릭 성지이다. 아일랜드는 무려 8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지로 온갖 핍박과 종교적 박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가톨릭 신앙으로 견뎌 왔으나, 감자 기근을 두 차례 겪으며 나라가 붕괴하여 미래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절망적인 순간에 노크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시어 하느님께서 아일랜드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심으로서 다시 가톨릭 신앙이 회복되었다. 성모님을 아일랜드의 모후로 칭할 정도로 아일랜드에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은 그 어떤 가톨릭 국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성모님의 발현
1879년 8월 21일 목요일 아일랜드 동쪽 메이요 카운티의 작은 마을 노크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저녁 7시부터 비가 쏟아져 대 부제 카버나는 흠뻑 젖은 채로 사제관에 돌아왔다. 저녁 8시경, 사제관 가정부인 45세 메리 매클로플린이 친구인 68세 마거릿 번 부인을 만나기 위해 사제관에서 나와 교구 성당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성당의 남쪽 벽에서 환히 빛나는 아름다운 형상과 제단을 보았다. 메리 매클로플린은 대부제 카버나가 더블린에서 주문한 성상을 빗속에 그대로 세워 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거릿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는 마거릿의 딸 29세 메리 번이 동행해 주었다.
메리 매클로플린이 교구 성당 앞을 지나는데 아까보다 더 환한 빛이 나서 메리 번과 함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았다. 교구 성당의 남쪽 벽에 세 가지 형상이 땅에서 60001 정도 공중에 떠 있었는데,비가계속 쏟아지면서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형상들과 그 아래의 땅,성당 남쪽 벽은 젖지 않은 상태였다. 메리 번은 형상이 약간움직이는 것을 보고 성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특히 가운데에 있는 형상이 다름 아닌 성모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깜짝 놀라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머니 마거릿 번과 여동생 21세 마거릿 번, 오빠 36세 도미 닉 번 사촌 8세 캐서린 머리에게 성모님이 계시니 빨리 가보자고 재촉했다. 메리 번은 가족 모두를 성당으로 데리고 갔으며 이웃에게도 알렸다. 세 형상은 사람과 크기가 비슷했고 가운데는 성모님, 그 오른편에는 성 요셉, 왼편에는 사도 성 요한이 있었다.
사도 성 요한의 왼편에는 아무런 장식 없이 평범한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는 십자가와 어린양 한 마리가 있었으며, 발현이 진행되는 동안 6명의 천사가 날개를 펄럭이며 십자가가 있는 제대 위를 돌고 있었다. 생후 8주 정도로 보이는 어린양으로부터 나오는 빛이 가장 밝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어린양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성모님은 횐색 겉옷에 횐색 망토를 걸치셨고 머리에는 황금 왕관을 쓰고 계셨다, 그리고 두 팔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시선은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는 모습이셨다. 성 요셉은 백발노인의 모습으로 긴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성모님을 향해 합장한 채 고개를 숙여 공경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주교 복장을 한 사도 성 요한은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나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놀라운 소식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14명이 동시에 성모님의 발현을 직접 목격하였다. 이들은 성모님이 발현하시는 동안 쏟아지는 비에 옷이 흠뻑 젖은 채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발현을 지켜보았다. 특히 11세 패트릭 힐은 아주 가까이에 서 있어서 성모님이 쓰신 왕관 한가운데 한 송이 장미가 박혀 있는 것과 성모님이 앞으로 내딛고 계신 오른쪽 발목, 성모님의 눈동자까지 자세히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15번째 목격자인 65세 패트릭 월시는 성당에서 800km 떨어진 자신의 집 뜰에서 성당 벽에 생긴 둥근 황금빛을 보았다.
노크에서 일어난 성모님 발현은 다른 발현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먼저 성모님이 어떠한 메시지도 남기지 않으셨다. 따라서 침묵의 성모님으로 불리기에 우리는 발현의 정확한 의미를 추정해야 한다. 그리고 유일하게 성모님이 성 요셉, 사도 성 요한등 성인들과 함께 나타나신 발현으로, 발현 시 제대와 어린양, 복음서가 나타난 것과 6명의 천사가 날개를 펴고 날아다닌 것도 특이하다. 성모님의 발현은 마거릿 부인의 딸21 세 마거릿 번이 성당의 문을 닫으면서 건물의 반대편이 환하다고 느꼈던 7시 30분부터 빛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완전히 모든 것이 사라진 9시 30분까지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다른 자료에서는 저녁 7부터 9시까지 진행되었다는 설명이 있으며, 노크 성지 홈페이지에는 정확한 시간은 없고 저녁에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는 설명만 있다. 메리 매클로플린은 대부제 카버나에게 달려가 자신이 본 형상에 대하여 전달하였다. 이날 이후 1880년 1월 2일과 5일, 6일에도 성모님의 발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받지는 못한 상태이다.
발현 장소
노크(knock)는 지명은 아일랜드어로 언덕을 뜻하는 크노크에서 온 것으로, 예부터 이곳은 마리아의 언덕으로 불렸다고 한다. 실제로 노크 마을은 주변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노크도 아일랜드 전역을 휩쓴 제2차 감자 기근을 피해 가지 못하고 큰 타격을 받았다. 감자밭은 쑥대밭이 되고 허름한 농가만 남아 빈촌 중 빈촌이 되었다.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고 다른 곳으로 다 떠나 버린 1879년, 노크에는 단 열여덟 가구만 남았다. 이 작은 마을이 곤궁과 고립 속에서 더 존속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이때 성모님은 21년 전 프랑스의 가장 가난한 산골 마을인 루르드에서 발현하셨던 것처럼, 그보다 더 가난한 데다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던 노크에서 발현하셨다. 마을 이름 노크처럼 삶에 지친 아일랜드인들이 믿음과 기도로 하느님이 계신 하늘에 노크를 하였고, 하느님은 성모님의 발현이라는 선물로 아일랜드에 응답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모님 이 발현하신 정확한 장소는 교구 성당인 세 례자 성 요한 성당의 외부 남쪽 벽이며, 교구 성당 내부에서 볼 때는 제단이 있는 쪽의 벽에 해당한다. 성모님의 발현 이후 수많은 순례자가 교구 성당 남쪽 벽 앞에 모여 축복을 기원하며 기도를 드렸다. 지팡이 없이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기도 끝에 치유되어 걸어 놓은 지팡이가 남쪽 벽에 한가득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날로 더 모여들고 남쪽 벽의 의미가 중요 해지자 교회는 성모님의 발현을 기념하는 경당을 이 남쪽 벽에 연결하여 새로 만들었다.
아래에 있는 사진과 같이 우측 부분이 기존의 교구 성당이며 여기에 덧붙여 만든 좌측 부분이 새로 건립된 발현 기념 경당이다. 교구 성당 제단의 바로 건너편에 발현 기념 경당의 제단이 있어 하나의 벽을 놓고 두 제단이 위치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전 세계에서 이러한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교구 성당의 남쪽 벽과 만나는 발현 기념 경당 제단 부분의 외벽을 유리로 처리하여 경당 제단을 외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경당 제단에는 발현 당시 성모님을 비롯하여 성 요셉, 사도 성 요한, 제단 위 양과 천사 등 주위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재현하여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또한, 발현 기념 경당은 교구 성당의 삼각형 지붕을 그대로 연장하여 건축하였기에 정면에서 보면 삼각형 건물로 보이며, 경당 전면도 유리로 처리하여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시현자
노크에서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통상 성모님의 선택을 받으면 영안이 열리고, 그 영안을 통해서만 성모님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성모님을 목격한 시현자 수는 과달루페 1명, 레자이스크 1명, 파리 뤼뒤박 1명, 로마 프라테 성당 1명, 루르드 1명, 필리포프 1명 등으로 매우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노크는 특이하게 집단으로 성모님을 목격한 사례이다. 노크의 시 현자들은 남성 4명, 여성 6명, 10대 소년 3명, 어린아이 2명으로, 최소 5세 존 커리부터 최고령 74세 브리짓 트렌치 까지 매우 다양하였다. 대성당의 대형 벽화에는 19명의 시현자가 그려져 있는데 자료에 따라 시현자 수는 14〜19명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성당 내부 기둥에는 시현자 15명의 이름과 나이가 적혀 있기때문에 시현자를 15명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시현자 중에는 번 가족이 제일 많다. 어머니 마거릿, 딸 메리와 마거릿, 아들 도미닉과 패트릭, 친척 캐서린 등이 발현 장소에 같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발현에 부정적인 사람들로부터 번 가족이 담합 했거나 집단 환각 증상을 보인 것으로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성모님이 시현자 중 누군가를 지정하여 메시지를 남기시지도 않아서 주목할 만한 시 현자가 없다는 것도 통상의 발현과 다른 점이다. 두 달 후 시현자들은 발현을 조사하는 위원회에서 자신이 본 내용을 자세히 증언하였으며 서면으로도 제출하였다. 시현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는 성모님이 발현하셨을 때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데, 그 증언 문서가 현재 노크성지 내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지 소개
노크 성지는 면적으로 보면 성모님 발현 성지중 가장 넓으며, 세계 3대 발현 성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일랜드 내 최고의 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성지에는 5곳의 성당과 경당을 비롯하여, 사목 센터, 박물관, 서점, 카페, 숙박 시설, 대규모 묘지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5 곳의 성당과 경당은 아일랜드의 모후 노크의 성모 대성당, 교구 성당과 발현 기념 경당, 성체 경당, 지하에 만들어진 화해 경당이다. 발현 기념 경당 제단에 설치된 성모상은 1960년 로렌초 페리 교수가 이탈리아산 흰색 카라라 대리석으로 조각한 것이다.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성지를 방문하자 1976년 몬시뇰 제임스 호란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성당을 완공하여 축성하였다. 정면에 인상적인 첨탑 솟아 있는 대성당은 정육각형으로 생긴 독특한 평면으로 되어 있어 대형 모자이크 벽화가 있는 면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면에 신자들이 앉을 수 있다. 모자이크 벽화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150만 개의 개별 모자이크로 구성된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화해 경당은 1988년 건축공모 때문에 설계되고 건립되어 땅속에 있는 지하 경당이다. 여기서 화해란 다름 아닌 인간이 고해를 통하여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행위이며, 이는 성지 순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화해 경당으로 진입하면 모든 벽이 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 문이 모두 다고 해실로 들어가는 문이다. 세계 어느 성지에서도 이렇게 많은 고해실은 없는데, 고해실마다 많은 사람이 주님과의 화해를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5곳의 성당과 경당을 순례한 다음에는 많은 조각물과 함께 조경이 잘되어 있는 뜰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좋다.
대성당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단층 건물의 박물관을 만날 수 있는데, 많은 자료가 소장되어 있어 노크의 발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성지 입구 쪽에는 십자가의 길이 잘 만들어져 있으며, 바로 옆에 사목 센터가 있으니 여기도 들러서 관련 자료 등을 받아 보자. 하루 이상 머물 때 성지에서 운영하는 노크 하우스 호텔(68개 객실 보유)이 인근에 있으니 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성지 외곽에는 대규모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시현자들의 안장되어 있다. 성지를 나오면 성물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있으니 둘러 보기를 권한다.
[자료: 세계의 성모발현 성지를 찾아서. 분도출판사. 최하경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