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호스피스 병동의 나날
송고시간2021-10-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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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호 기자기자 페이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중환자 병동은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생사가 갈리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닌,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문장이 이곳보다 더 어울리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중환자실보다 더 암울한 공간이 병원 내에 존재한다. 말기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있는 곳, 더는 치료가 불가능해 죽음을 대기하는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서성이는 곳, 바로 완화 병동이다.
영국 공중보건 의사이자 완화의료 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쓴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메이븐)는 완화 병동을 중심으로 죽음에 다가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남겨진 가족에 대해, 그리고 죽음 앞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해 말하는 에세이다. 또한 병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의 사부곡(思父曲)이기도 하다.
책은 자신의 아픈 심장보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혼자 남겨질 것을 걱정하는 마이클,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지 게임을 하겠다는 도로시, 손자의 여섯 번째 생일까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먼, 80년간 숨겨 온 비밀을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고 생애 종지부를 찍은 아서,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잘해야 몇 주밖에 살지 못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아델 등 완화 병동에서 일어나는 여러 죽음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 전문의로서 다양한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최선의 치료를 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의사 선배이자 정신적 멘토인 아버지가 암에 걸리자, 충격으로부터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암이 대장에서 간으로 번져 항암치료를 한다고 해도 얼마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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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아버지의 미래가 자꾸 떠올랐다. 황달, 통증, 종잇장처럼 얇은 살가죽 등 온갖 증상이 아버지에게도 곧 나타날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선 환자들을 볼 때면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중략) 사적인 감정과 전문적인 이성이 지저분하게 충돌하면서 양쪽 모두에 타격을 입혔다."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층 성숙한 의사로 거듭난다. 그런 점에서 이 에세이는 저자의 성장 이야기로도 읽힌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추상이 아니라 구체적 삶과 경험 속에 농축돼 있어 이야기로서의 힘이 느껴진다.
책은 이 밖에도 대형 병원의 관료주의와 환자를 인간이 아니라 연구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비뚤어진 일부 의료진의 행태를 비판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폐소생술의 양면성도 조명한다.
박미경 옮김. 376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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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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