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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정신명상 스크랩 글,그림 수행원리II - 가을우주와 증산도
♣도깨비♣ 추천 0 조회 38 08.04.19 19: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수행입문-5] 수도가 잘안되는 영적인 두가지 이유

수도가 잘 안되는 2가지 영적 이유

 (망신참법이라는 전무후무한 방법으로 참회를 하여 미륵존불을 친견한 진표율사. 진표율사는 미륵존불로부터 후에 도솔천에 대법왕의 몸으로 태어나리라는 약속을 받았다.)

 

* 태모님께서 일곱 항목의 계율(戒律)을 내려 주시니 이러하니라.
(1) 남에게 척짓지 말라. (2) 거짓말하지 말라.
(3) 자존심을 갖지 말라. (4) 도적질하지 말라.
(5) 간음하지 말라. (6) 무고히 살생하지 말라.
(7)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고 자기의 허물을 생각하여 천지에 사죄(謝罪)하라. [도전 11:130]

열심히 수련을 해도 수련이 제대로 진행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신집중이 안되어서, 마가 끼어서, 수행할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등등...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생과 현생을 통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업장' 때문입니다. 그 업장이 들러붙어 당신의 영혼을 뱀처럼 휘휘 감싸고 있기 때문에 영적 성장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정말로, 업장이 두꺼우면 수행을 해도 영적인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자칫 잘못된 길로 빠져 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두껍게 쌓인 업장을 어느 세월에 얇게 하고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느냐라는 망연자실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그 길이란? 바로 '업장소멸 수행'을 같이 첨부하여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츰차츰 업장이 얇아져서 당신의 수행이 차츰 차츰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법이죠. 그렇다면 업장 소멸 수행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진실로 된 반성'입니다. 반성을 해도 그냥 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닦지는 않고 죄만 지으면

*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닦지는 않고 죄만 지으면 도가니 속에 무쇠 녹듯 하리라. 어리석고 약하고 빈하고 천한 것을 편히 생각하고 모든 죄를 짓지 말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덕(德) 닦기에 힘쓰라.” 하시니라.

끌러 버린 허물은 생각지 말라

차경석이 지난날의 허물을 생각하여 근심하거늘 일러 말씀하시기를 “일찍이 ‘내 앞에 낱낱이 생각하여 풀어 버리라’ 하였거늘 어찌 지금까지 남겨 두었느냐. 이 뒤로는 다시 생각하지 말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허물이 있거든 다 풀어 버리라. 만일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신명(身命)을 그르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9:58]

 

무엇을?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그리고 전생에 저지른 당신의 잘못에 대하여 생각나지 않더라도 뉘우치고 또 뉘우치며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실로 언젠가 당신이 눈물을 많이 흘리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편안해 졌던 것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한 현상도 바로 이러한 이치가 있어서 이죠.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명상이나 참회의 배례를 통하여 하루를 반성하세요.

반성할 것이 없으면 일주일 동안의 일을 반성하고요, 그것도 없으면 한 달 동안의 지나갔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반성하고, 다음엔 일년 다음엔 지금까지 살아오면 잘못했던 것을 반성, 회개하고, 그 것마저 다 이루었으면, 전생에 자신이 행했던 일들에 대하여 간절히 반성하세요.

(기억도 나지 않는 일들을 어떻게 열과 성을 다해 반성하느냐고요? 자신의 현 생애에 대하여 진정한 반성이 이루어져 업장이 얇게 되면 그만큼의 당신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 전생에 것도 자연스레 기억날 것입니다. 단 수행을 꾸준히 계속한다는 조건에서요.)

이렇게 진실된 참회를 겸해서 당신이 추구하는 수행을 해야한다. 그래야만 수행을 통한 영적인 진화를 이루기가 수월하고, 두꺼운 업장에 의해 잘못된 환상과 허령에 빠져 수행을 망치는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수도의 진전을 보려면 혈통줄을 바로 세워라

 

(좌: 조상 선령신은 내 생명의 뿌리임을 말할 것도 없고 제 1차적인 나의 보호신명이 되신다. 조상님은 후손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가호를 해주시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이시다.)

실제로 수련을 해보면, 조상과 스승의 도업(道業)을 잇는 것에 대한 뿌리 의식이 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그 진전 상황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신 세계, 즉 신명계(神明界)에도 우리 인간의 부자 관계, 조상과 자손의 관계가 그대로 준수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육체의 혈통줄은 그대로 정신의 혈통줄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핏줄을 통해서 조손(祖孫)의 정이 흐르고 있는 것과 같이 신명에게도 엄연히 이 핏줄을 통해서 기(氣) 즉 생체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이 혈통줄을 제대로 붙잡지 못한다면 수련도 어느 한계 이상은 진전을 기대할 수 없다. 바로 이 혈통줄을 통해서 우리 몸에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이다. 이 법칙을 거스르면 결국에 가서는 파멸밖에 없다. 혈통줄의 문제를 강조하는 소위가 바로 여기 있다.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는

 

*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영(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 남기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수행은 항상 자신의 본성(本性)을 되찾는 것이다. 바로 원시반본의 이치를 몸으로 찾는 것이다. 어릴 때 잃어버렸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원시반본'(原始返本: 천지만물이 생명의 근원으로 되돌아감)이요, 자신의 조상의 뿌리를 찾으면서 한없는 감사를 올리게 되는 원시반본이다.

후천개벽의 시간대에 살수 있는 제1의 원칙도 역시 원시반본이다. 그 첫 시발처가 바로 조상에 대한 뿌리의식을 찾는 혈통줄을 바로 세우는 일인 것이다.

우리가 수행을 하다보면 나 자신의 내면을 보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내 몸의 소중함과 부모에 대한 한없는 감사, 자손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기(氣)는 마음에 따라 이동한다. 자신의 혈통줄을 바로 세우면 조상의 기를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더 고양된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나는 데는 첫 출발점을 조상님이 그 인연을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서 첫 공부는 조상님이 시켜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행 중에 자신을 지켜주는 조상님을 본 사람이 너무도 많다.

우리는 혈통줄을 바로 세워야 한다. 내 몸에 대한 혈통줄의 원시반본, 내 본성에 대한 혈통줄의 원시반본, 내 조상에 대한 원시반본.

원시반본(原始返本)은 곧 보은(報恩)이며, 보은은 곧 가을정신인 의(義)이다. 고로 뿌리와 바탕에 대한 보은의 정신-원시반본의 정신이자 가을의 정신인 의(義)야말로 천지 모든 기운이 근원으로 돌아가 성숙하는 가을의 때에 나와 우리가 열매를 맺게 되는 도통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

 

환부역조하는 자는 다 죽는 때

* 이 때는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잡히는 때니 환부역조(換父易祖- 부모와 조상을 바꾸고 배신하는 자)하는 자와 환골(換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수행입문-6] 수련 시 지켜야할 다섯가지 사항  

수련 시 지켜야 할 다섯가지 사항

1. 바른 마음 자세(正心)

 

바른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을 하려고 하는 순간만큼은 티없이 맑은 어린이가 되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있기 때문에 먼저 '참회'를 하여야 합니다. 참회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수행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행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결코 남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시기·질투하지 마십시오. 결코 교만하지 마십시오. 남에게서 장점을 배우려고 하십시오. 먼저 남을 잘되게 하려는 상생(相生)의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리고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이 마음이 일상생활로 연장이 되면 당신의 수행생활은 성공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처음으로 추종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평생에 지은 허물을 낱낱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사하여 주기를 빌라.” 하시고 반드시 그 몸을 위하여 척신과 모든 병고(病故)를 맑혀 주시니라.[道典3:167]

* 도통천지보은(道通天地報恩)이니라. [道典6:82]

 2. 앉은 자세(正坐·靜坐)

수행의 정법은 앉아서 하는 것입니다. 꿇어앉는 자세가 가장 좋은 자세입니다. 이 자세가 어려우므로 반가부좌나 평좌를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앉은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를 곧게 세우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바로 앉아 보십시오. 손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눈은 지긋이 감고, 턱은 약간 아래로 당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허리를 곧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 외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들어가면 됩니다.

이제 한번 앉았으면 결코 움직이지 마십시오. 호흡을 하면서 아랫배가 들락날락 하는 것 이외 결코 움직이지 마십시오.

* 상제님께서 이따금 성도들을 태좌법(胎坐法)으로 늘어 앉히시고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명하시며 만일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비록 벽을 향하여 누워 주무실 때에도 갑자기 꾸짖으시니라.[도전 3:95]

3. 호흡

 

호흡에 대해 많은 책에서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보는 순간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호흡하는 법은 한가지만 알면 됩니다. 편안하고 깊은 호흡입니다. 이런 호흡을 하기 위해서는 아랫배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아랫배로 복식호흡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자세를 바로 잡으셔야 합니다. 그리고서 숨을 코로 들이쉬면서 천천히 아랫배를 내밀고, 숨을 내쉬면서 아랫배를 천천히 집어넣으시면 됩니다. 호흡은 몸과 마음의 자세를 바르게 해줍니다. 몸과 마음의 자세가 바르면 호흡은 쉽게 됩니다.

 

 4. 의식은 어디에?

호흡을 위주로 하는 수련을 할 때에는 먼저 호흡을 하면서 아랫배가 들고 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연습을 해보십시오.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호흡과 아랫배의 들고남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의식은 자연적으로 배가 들고 나는 것에 두게 되는 것이지요.

주문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도 의식을 하단전에 두면 됩니다. 그러면서 내가 내는 태을주 소리를 똑똑히 듣도록 하십시오. 그러다보면 기운이 내려와 나의 몸을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온 몸과 세포 하나하나에 소리의 진동이 느껴지면서 나의 몸과 저절로 하나되어 순환하게 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중,하단전 모두에 저절로 의식이 집중이 되면서 취정(聚精: 정단)- 기화(氣化: 기단)- 신화(神化: 신단)이 개발되어 점차 광명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주문을 읽는 방법은 마음을 바르게 갖고 단정하게 앉아 성경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공부할 때 몸을 떨고 허령(虛靈)에 빠지는 것은 마음 속에 부정한 생각이 있고, 척을 많이 지어 그러하니라.” 하시니라. [도전]

 5. 수행 중에 일어나는 온갖 잡념들을 어떻게 물리치나?

수행을 시작하면 어김없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잡생각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수행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이때에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내 버려두고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나의 마음을 조용히 객관적으로 바라다보면(觀) 생각이 점차 정리되어 정심(正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론, 생각은 호흡에 타고 일어나는 것이므로 깨어있어 의식을 아랫배에 두고 호흡이 들고 나가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러면서 나의 태을주 소리를 한 자 한 자 똑똑히 듣도록 노력하십시오. 잡생각에 몰입되어 버리면 그 시간들은 수도의 의미가 없는 시간이 되어버립니다. 잡념에 빠져있다고 생각될 땐 곧바로 호흡을 하단전에 두고 주문 소리에 집중하면 됩니다.

마지막 방법으론, 일어나는 잡념을 바로 끊어 버리고 정신을 다시 차리면 됩니다^^; 이것도 계속해서 하다보면 숙달이 되어 일어나는 잡념들이 점차로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집중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지게 됩니다.

*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정심(正心)하라.” 명하시고 방심하는 자가 있으면 마음속을 들여다보시고 일깨우시며, 혹 주무실 때를 타서 방심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환히 들여다보시고 “마음을 거두라.” 명하시니라.  [道典5:118]

 

(두루미의 비상: 누구든지 잘 닦으면 학으로 상징되는 완전자인 신선의 경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자 뜻을 세운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을 잘닦고 공덕도 또한 많이 세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도를 하여 혼자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수행자는 결과적으로 소승의 도를 얻게 될 뿐이다.)

다음이 수행을 방해하는 마(魔)입니다. 이놈들과 자주 어울리면 수행을 성공적으로 행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놈들을 물리치려면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졸거나 사된 생각을 품으면 이놈들의 밥이 되어 버리지요. 이럴 땐 관운장주를 읽어 복마와 척신을 물리치거나 참회의 기도 또는 배례를 드리면 됩니다. 그런 후 다시 수련을 지속하시면 됩니다.

* 하루는 태모님께서 이르시기를 “대업공부를 하자면 수마(睡魔), 마신(魔神), 척신(隻神)을 먼저 물리쳐야 하느니라. 오장육부 통제공부니 제 몸에 있는 것도 못 찾고 무슨 천하사란 말이냐! 소천지가 대천지니라.” 하시니라. [도전 11:62]

- 수마(睡魔): 잠이 오게 만드는 마
- 마신(魔神): 일상적으로나 수행 시에 온갖 잡념과 환상으로 의식을 혼탁하게 하여 사(邪)된 기운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을 정(正)과 선(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마신
- 척신(隻神): 원한관계가 있는 신
- 오장육부 통제공부: 수도 공부란 먼저 몸의 오장육부를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왜냐하면 보통 인간의 정신은 오장육부 기운의 허실과 혼탁 그리고 부조화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먼저 오장육부를 바르게 하는 몸의 정화 과정을 통해 정신의 정화(淨化)를 함께 이루어 나아가면서 전인(全人)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하튼 수련 중에 일어나는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개의치 않는 무심(無心)으로 수행을 계속하십시오. 이렇게 계속 수련하면 점점 집중이 이루어지면서 일심(一心)의 경계로 차차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하면 우주심(宇宙心)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

 

[수행입문-7] 주문수행전에 꼭 가져야할 바른자세

주문 수도(修道) 전의 바른자세란?

수도는 어디서 하는가?

 

태을주는 도장(道場)에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도장은 항상 태을주 기운으로 충만되어 있고 수행을 위한 기본적인 분위기가 잡혀있기 때문에 가장 수행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물론 가정이나 기타 어떤 곳에서도 태을주를 읽을 수 있지만 깨끗이 정돈되어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수행에 임할 수 있는 장소로 도장만한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외에 가정이나 기타의 장소에서도 태을주 수행 전에는 항상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 정돈하고 충분히 환기를 시킨다음 조용하게 앉아서 태을주를 읽으면 됩니다.

수행을 하기 전에 간단한 맨손체조나 기타 스트레칭을 하여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몸이 아픈 곳이나 지나치게 긴장되어 불편한 곳을 우리가 알고 있는 맨손체조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어주면 몸이 안정되고 생각도 맑아 져서 여러모로 편안한 마음으로 이어져 정신집중도 잘되고 잡념도 잘 생기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수행후에 몸과 마음이 훨씬 좋아지고 가벼워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도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주문을 읽기 전에는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사배심고를 드린 다음 증산 상제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주문을 읽어야 합니다. 먼저 대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과 태모님께 자신의 마음자리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내면의 고백과 다짐을 심고(心告- 마음으로 고함)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깊이 참회하고 나름대로의 바램을 상제님과 태모님께 구체적으로 심고하는 것이 수련에 임하기에 수행자의 기본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그리고 공선사후(公先私後- 공적인 것을 먼저 심고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에 고합니다)의 순서로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하는 시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보통 새벽 3시에서 7시 사이가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는 하루중의 양기(陽氣)가 태동하는 시간대로 하루중 가장 기운이 맑은 시간대입니다.

조명은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명이 너무 밝으면 마음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고, 또 너무 어두우면 졸거나 엉뚱한 생각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이나 반대로 추운 겨울에도 에어콘이나 온풍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수행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에어콘이나 온풍기는 소음도 크고 호흡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선풍기를 사용하고 겨울에는 옷을 따듯이 입고 수행에 임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수도修道 전에 가져야할 몸의 자세

* 상제님께서 성도들을 공부시키실 때 각기 청수를 모시고 글을 읽게 하시니 성도들이 청수그릇을 보듬고 와서는 깨끗한 물을 떠다가 제각기 앞에 두고 글을 읽는데

이때 턱은 앞으로 살짝 당기고, 겉눈은 감고 속눈을 뜬 채로 청수그릇을 응시하며 읽으니라. 공부할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앉게 하시고, 먼저 칠성경을 읽고 후에 개벽주를 읽게 하시는데... (하략) [도전 3:244]

태을주 수행에 관한 많은 내용의 글을 읽어 보면 대부분 허리를 꼿꼿이 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허리를 바르게 펴는 자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허리를 바르게 편다는 것은 몸의 기혈이 잘 통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인데 허리를 바르게 펴기 위해서는 각 내장기관이 튼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허리와 단전에 어느 정도 힘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경우 대부분 허리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으므로 허리를 곧바로 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허리를 바르게 펴고 앉아서 수행에 임할 수 있다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주문수행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와 어깨는 일직선이 되게 하여 어께에서 목과 머리를 연결하는 기혈이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하며 우리 몸에서 가장 긴장하기 쉬운 목과 어깨를 편안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어깨는 몸이 피곤하거나 병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온갖 탁기가 쌓이는 곳이므로 어깨를 잘 주물러 주거나 긴장을 완전히 풀도록 해야 합니다.

또 주문수행의 초보자나 아직 자세가 완전히 잡히지 않은 사람 중에 정신을 너무 인당에 집중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꼭 감고 머리와 턱을 자꾸 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기혈의 흐름을 막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턱을 되도록 가슴 쪽으로 당기고 뒷머리를 들어서(고개를 숙이라는 뜻이 아니다) 척추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눈은 처음에는 살짝 눈을 뜨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기본자세입니다(위 도전성구의 '겉눈은 감고 속눈을 뜬다'는 의미. 또한 수행 중 눈을 살며시 감고 하다보면 일정한 때가 되고 나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는 눈을 억지로 감으려 하지 말고 반쯤 열어 음양이 조화되도록 하면 됩니다). 눈을 완전히 뜨면 외부 물체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며, 완전히 감게 되면 어둠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므로 눈을 살짝 열어 내면과 외부 사이의 중(中)자리에 마음이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 의식이 저절로 몸전체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문의 파동효과가 온몸의 세포와 여러장부에 울리게 되어서 율려의 효과가 드디어 내 몸과 하나되는 첫과정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초보자가 주문수행 시 반드시 지켜야 할 세가지 조건
    첫째, 소리와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心聲一體). 그러면 저절로 잡념은 사라지고 집중이 된다. 처음 주문수행을 하는 사람은 글자를 상념으로 그리면서 천천히 읽어도 된다.

    둘째, 바르게 자세를 잡으면 최소한 40~50분은 절대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혈이 온몸을 한번 순환하는데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기가 흩어져 버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옛말에 '정을 모아(聚精) 기화(氣化)시키려면 먼저 몸을 움직이지 말라'고 한 것이다. 무릎을 꿇게 되면 허리가 절로 반듯해지고 무게 중심이 하단전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리가 좀 아프더라도 금방 숙달되면 1시간은 가뿐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셋째, 눈을 살짝뜨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정법안장(正法眼藏)'이라 했다. 눈에 정법의 도가 있다는 뜻이다(매우 중요하므로 아래에 자료보충). 위의 세가지만 잘지킨다면 공부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 참고: 눈의 자세(대원출판사 '대단환'참고)

- 도가에서는 수행 중의 눈의 자세를 가장 중요시하여 반쯤 감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형태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칫하면 감겨 버리기 십상이고 너무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되지 않습니다. 눈을 반쯤 감는 것은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갖추기 위해서 이며 너무 밝기만 해서는 산만해 지고 어둡기만 하면 환상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눈의 형태에 대해서는 많은 가르침들이 전해져 오는데 보통 초보적인 훈련 단계에서는 '평시(平視)'를 말합니다. '평시'라 함은 눈을 뜨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훈련법인데 이는 상당히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대단환에서 말하기를 '평시의 상태를 지속하면 반드시 마음은 맑아지고 정신은 원만하게 된다.'고 하였으며,

'눈과 마음이 모두 안정되면 규(竅)들이 상호 응하는 듯한 묘한 상태가 되며 이때에 비로서 음양이 조화하여 '반조(返照)' 공부가 시작된다.'하였습니다. 즉, 눈의 시선이 자신의 내부를 깊게 향하게 되는 현상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 나가는 공부의 시작이 여기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태을주 수행 중에 일정한 때가 되면 저절로 살짝 눈이 떠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상태를 계속 지속하여 안정되게 되면 저절로 '반조(返照)'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단계가 되어 눈이 떠지게 되면 억지로 다시 감으려 하지 말고 눈을 반쯤 열어 '평시(平視)'함으로써 점차 닦아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을 반쯤 뜬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눈을 꼭 뜨고 있으라는 것도 아니고 감고 있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문앞에 발을 늘인 것처럼 바람이 불면 눈이 떠지기도 하고 바람이 잠잠해지면 감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요는 반드시 감거나 떠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임하다 보면 눈이 살짝 떠질 때도 있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눈의 자세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눈의 묘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수행을 계속해야 이러한 눈의 자세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손은 계란을 쥔 것처럼 가볍게 말아 쥐고 무릅위에 올려놓으면 되는데 때에 따라서 양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놓아도 되고 손을 펴서 그대로 올려 놓아도 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하던 가장 중요한 것은 온 몸의 긴장을 가장 잘 풀수 있는 자세를 취하면 됩니다.(참고적으로 남자의 경우 오른손 바닥은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위를 향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자는 반대)

 

다리는 초보자의 경우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좋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는 자연스럽게 허리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허리가 곧게 펴질 수 있으며 주문수행의 숙련자라고 할지라도 구도자의 기본자세인 무릎 꿇은 자세가 좋습니다. 다만 무릎을 꿇을 경우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오래 버티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다리에 기혈이 뚫리게 되면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다리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또 책상다리(평좌)를 하여도 무방하지만 방석을 엉덩이 쪽으로 접어서 허리가 앞으로 숙여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자세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유의할 것은 허리를 곧게 펴고 얼마나 같은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한번 앉으면 최소 50분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온몸의 기혈이 한번 순환하는데 걸리는 시간)고 하나 계속 노력하여 3시간 이상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단 몸의 긴장을 풀고 한번 자세를 취하면 절대 움직이지 않아야 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몸에서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을 수 있는데 이 때 몸을 움직인다든가 해서는 안되며 그 외에 외부자극(소리, 빛, 냄새 등)에도 되도록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름에 태을주를 읽다가 보면 모기가 와서 물기도 하고 파리가 얼굴에 날아와 앉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도 몸을 움직이지 말고 계속 태을주에 정신을 집중하고 수행을 계속해야 합니다.

한번 움직이게 되면 그 때까지의 수행의 결과를 제대로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눈도 떳다가 감거나 하지 말고 그야 말로 바위가 된 듯이 앉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이며 궁즉통(窮卽通)입니다. 쉽게 말해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고 지극함 속에 통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극한 고요함을 견지한다면 곧 새로운 생명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누가 보면 마치 땅에 붙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말고 앉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다리가 처음에는 아주 고통스럽지만 일단 어느 정도 수행에 이력이 쌓이고 나면 마음이 흔들려서 수행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수행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수행입문-8] 견성을 이루면 나타나는 징후들

견성을 이루면 나타나는 현상들

견성(見性)한 사람, 삼매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징후를 나타내는 것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부크는 순수의식, 곧 삼매상태의 절정에 도달되었을때에는 다음과 같은 징후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첫째, 그런 사람은 눈을 감고 있어도 눈 속에 환한 빛이 보이고 마음 속에도 항상 빛이 보인다.

둘째, 성품이 고도로 연마되어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하느님을 봤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도독과 윤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여, 남에게 감화를 줄 수 없다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금전에 욕심을 부린다든가. 여신도들을 온갖 감언이설로 농락한다든가, 제멋대로 분노를 터뜨린다든가 식언을 하든가 하면 일반 속인과 다를게 없게 된다.

셋째, 지혜가 나타난다.

지혜는 지식과는 다르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훌륭한 학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지식은 없어도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가 보아도 어딘가 침착한 데가 있고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잘 밝혀서 판단한다.

넷째, 살고 죽는 생명의 실상을 잘 알고 있으므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어진다.

이 세상의 생명은 생겨났다가 없어지지만 그 뒤에는 영원불멸하는 우주의 실상에 합류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실상이 바로 신(神)이며 불(佛)이며 도(道)이며 한이고 원리이다. 따라서 사람이 한평생 살다가 죽는 것을 일장춘몽 정도로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다섯째, 죄악감이 없어진다.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전 인류의 조상적부터 숙명적으로 원죄가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에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 죄에서 풀려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아무리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도 속마음으로 자기는 정말 예수의 보혈로 죄에서 벗어났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그 원죄에서 벗아날 수 없다는 숙명 속에서 오직 신앙에만 매달리다가 한평생 보내기가 일쑤다.

바로 이러한 죄악감에 매어 있는 사람은 항상 자책에 빠져 위축되거나 자포자기하거나 이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이 되어 언제나 죄의 중압감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본성을 찾은 사람, 본성에 불이 붙은 사람은 자기자신이 바로 하느님 자신이 되므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지낼 필요가 없게 된다.

 

여섯째, 영성(靈性)이 밝아진다.

일곱째, 풍모가 바뀐다.

이것은 자기 자신보다도 남이 더 잘 알게 된다. 자기자신은 조석으로 거울을 대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변모를 잘 모른다. 가족 역시 항상 같이 지내고 있으므로 그 변화를 뚜렷이 감지하지 못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친지들은 그 변모를 금방 알아차린다.

이 밖에도 본성을 찾은 사람은 의통(醫通)이 열리는 수가 있다. 환자의 눈을 주시하거나 병이 나았다고 말만 해도 병이 낫는가 하면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난치병이 낫는 수가 흔히 있다. 예수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눈면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 나병환자를 낫게 해 준 것은 바로 이 의통이 열렸기 때문이다.

또 깊은 경지에 들어 견성한 사람에게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고,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도의 요기들 중에도 이런 사람은 허다하다. 인도 빈민구제에 일생을 바쳤던 저 유명한 테레사 수녀같은 분도 거의 식사를 안하거나 해도 극소량밖에는 안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승 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적어도 우리의 생리구조가 이 정도로 변하지 않고는 함부로 견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전연 자지 않고 먹지 않는다는 것이 힘이 든다면 하루에 세시간 정도 수면으로 만족할 수 있고 밥도 하루에 한끼 정도로 지낼 수만 있어도 상당한 경지에 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수면과 식사를 취하고도 정상인 이상으로 건강해야 할 뿐 아니라 초능력까지도 원한다면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이쯤은 되어야 한다.

* 증산 상제님께서 하루는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사람이 3년 동안 공부하고 집에 돌아갈 때 길에서 사람을 대하면 그 성명이 알아지므로 낱낱이 말하였더니  집에 돌아간 뒤에는 지각이 막히어 도로 어두워졌다 하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도전]

그렇지 않고는 함부로 수련정도를 자랑할 수 없는 일이다. 자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막상 이 정도에 이른 사람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구태여 남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혹 후배 수련자들에게 교육을 시킨다는 입장에서 잠시 자신의 초능력을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이 세상에 명성이나 치부를 해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아직 수련이 덜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세속적인 명예나 부는 진정한 수도와는 하등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련인들은 생명이 위급하거나 그 밖의 어쩔 수 없는 필요에서가 아닌 이상 절대로 자신의 초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초능력자가 스푼을 구부리고 배추씨의 싹을 틔우고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것과 같은 초능력을 과시하는 행위는 진정한 수도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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