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에 스며든 시간
김금자
가을이 깊어 갈수록 덜컹거리는 창문 “틈새”에 스며드는 바람 소리는 사라의 눈길이 따라간다. 그 차갑고 얇은 바람은 마치 시간을 눌러 담듯 느리게 흐른다. 그 바람이 건드리는 것은 피부가 아니라 마음에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층이다. 문이 활짝 열려 있을 때는 기억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틈새를 만나면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틈새는 새로운 느낌의 역사를 만든다.
1960년대 내가 살던 시골 마을은 공동 우물을 이용하여 살던 시절이다. 공동 우물은 지금의 부엌 개수대도 되고, 세탁소도 되고, 마을 잔치 있을 때는 돼지도 잡는 도축장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작업 공간의 역할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우물가에 모여들던 많은 소리 들이 있다. 물 긷는 소리, 빨래 두드리는 소리, 비밀의 말로 속삭이는 소리 그리고 어른들의 수다가 뒤섞인 그 풍경이 바람에 실려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다. 인생의 기억들은 거창한 무엇들이 아니라 아주 작은 “틈새” 하나로도 바람 소리 따라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공동 우물은 마을의 심장과 같았다. 우물가는 단순한 물을 긷는 장소만은 아니다. 그곳에는 마을의 하루가 모였다가 흩어지고 사람들의 비밀마저도 우물의 물처럼 한데 뒤섞이기도 한다. 이불 속에서만 머물러야 했던 이야기들마저 어느 “틈새”로 새어 나왔는지 우물가에선 모두의 아침 소식이 된다. 우리가 먹는 식수가 끝없이 솟아 나오듯이 모든 소문은 우물가에서 솟아나 피어나간다. 때로는 헛소문으로 다툼이 일어날 때도 있으나 작은 마을에도 질서와 규칙은 있었다. 그 규칙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든든한 어른이 있으니 하루 이틀만 지나면 쉽게 해결되는 신기한 우물이다. 우물가는 마을의 숨결이 모이는 중심이었고 일상의 이야기가 흐르는 작은 강 같은 곳이었다.
김장철이 되면 여러 집이 공동으로 한데 모여서 한다. 한집당 거의 백여 포기 정도는 한다. 배추가 작은 산처럼 쌓이고, 아저씨도, 아이들도 심부름꾼으로 함께 도와야 하는 일터이다. 처마도 없고 사방이 트여 있는 우물가에서 다듬고, 소금에 절이느라 아주머니들의 손동작은 마치 춤을 추듯이 빠르게 움직인다.
매서운 찬 바람을 맞아 아주머니들의 얼굴은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예뻐 보였다. “엄마, 화장했나?” 나의 말에 “야가 지금 무슨 말을 하노?” 천진한 나의 말에 엄마는 핀잔을 주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엄마가 이뿌다 는 말이네요. 형님! 이제 잘하는 소리나 한 가락 뽑아 보소~” 모두 들 같이 요구한다. 그러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쿵 짝!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성화를 바쳐서 무엇하나~” 태평가를 시작하면 우물가는 금세 작은 마당극이 된다. 아주머니들은 추임새를 넣고, 나도 어린 목소리로 “좋다~!”를 넣어 가면서 우물가 하루의 꼬마 가수가 된다.
손 시리고, 허리 아픈 노동 속에서도 틈새로 스며드는 그 웃음과 노래는 작은 쉼표가 되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바람도 잠시 우물가를 비켜 가고 조용한 햇볕만이 시린 손끝을 따뜻하게 녹여 준다.
우물가 옆에는 성인 네다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큰 가마솥 목욕탕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김장으로 굳은 몸을 녹였고, 그다음은 우리 아이들의 차례이었다. 뜨거운 김이 자욱한 가마솥 안에서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며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하였다. 쇠솥은 바닥에 나무판자가 깔려있고 벽 둘레에도 나무가 붙어 있어 살갗이 직접 쇠에 닿지 않게 만들어져 있다.
그날도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데 나무문 틈새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야! 거기 누구고? 대답해라!” 우리가 호기롭게 외치자 틈새 밖에서 “비밀이다~안 가르쳐준다~” 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우린 짐작이 간다. 솔직히 밖에서 틈새로 보면 김 서린 탕 안은 희미하고 보이는 것이 없음이다. 동네 개구쟁이들의 순진한 호기심일 뿐이었다. 우리는 허겁지겁 물속으로 몸을 숨겼고, 다음 날 그 녀석들은 어른들께 크게 혼이 났다. 어쩌면 춥고 우울할 겨울을 김장 준비로 이런 사소한 장난이 소중한 온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어느 날, 그중의 대표 개구쟁이었던 한 친구를 만났다. 한참 옛 얘기를 하며 웃다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야, 그때 목욕탕 틈새로 들여 다 본 거 너 맞지?” 그러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허리를 부여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우리가? 아이고야, 우리는 뒤에서 구경만 하다가 같이 붙잡혀서 혼난 것이었다.! 진짜 들여다본 놈은 우리보고 조용히 있으라 하고 갑자기 도망갔다!” 나는 어이가 없어 “아니 그럼 범인은 누구고?” 그러자 그는 속삭이었다. “기억나나? 우물가에 맨날 돌아다니던 복실 강아지, 우린 그놈이 시킨 줄 알았다니까!” 우리는 둘 다 배를 잡고 쓰러지듯 웃었다. 그 시절에는 억울함도 오해도 엉뚱한 변명도 모두 마을의 풍경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양념이었다.
이제 그곳에는 우물도없고, 가마솥 목욕탕도 없고, 그 틈새 장난을 치던 개구쟁이들도 모두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나 창문 틈새로 흘러드는 바람만은 여전히 그 시절의 냄새를 실어 온다. “낡은 틈으로 빛도 새지만 소문도 새어난다.” 바람이 드나들어야 시간이 움직이고, 비로소 그 안에 기억들도 스며든다. 그 안에는 세월이 데려온 온기와 조심해야 할 말의 무게, 그리고 잃어버릴 뻔한 우리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따뜻한 “틈새” 덕분에 오늘도 어느 바람 부는 오후에 다시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