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기도란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오늘날 많은 성도들은 삶에 위기가 닥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습니다. 병이 들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자녀의 문제로 고민할 때 간절히 주님께 매달립니다. 물론 이런 기도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데 있습니다.
1. 성령 충만의 의미
‘충만’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플레로우(πληρόω)입니다.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영향을 미치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어떤 것이 양적으로 많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4장 28절을 보면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다 분노가 가득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득하여’에 해당하는 단어가 바로 플레로우입니다. 이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마음이 분노로 채워져 사고를 압도하고 결국 행동까지 지배하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분노에 이끌려 예수님을 회당 밖으로 끌어내어 낭떠러지에서 밀쳐 죽이려 했습니다(눅 4:29).
이처럼 플레로우는 단순히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 상태를 넘어, 사람의 사고와 행동 전체를 지배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술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고 했습니다. 여기서 술에 취한 상태와 성령 충만은 ‘무언가에 의해 지배되는 상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셨다는 의미를 넘어, 술의 영향 아래 놓여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이 술에 지배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성령 충만은 단순히 성령을 많이 받은 상태가 아니라, 성령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죄악과 유혹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2. 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가
첫째, 성령 충만은 영혼 구원을 위해 필요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복음 전도는 마귀의 손에 붙잡힌 영혼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보다 강하고 교활하며, 사람의 힘만으로는 대적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단 한 사람도 마귀의 손아귀에서 건져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기에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을 받고’란 단순한 힘이 아니라,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실제로 오순절 날,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자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쳤고, 그날 삼천 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행 2:37~41). 성령의 권능이 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역사였습니다. 만일 성령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완고했던 유대인들이 하루아침에 예수의 제자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고린도전서 4장 20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아무리 말을 잘하고 설득력 있는 언변을 가졌다 해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면 영혼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회개시키고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구제와 친절한 말, 따뜻한 위로가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묶인 영혼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이 임할 때,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의 구원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날마다 성령의 권능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되라”가 아니라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증인의 삶이 사람의 노력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열정만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권능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둘째, 성령 충만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맡기신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목사에게는 말씀을 전하는 사명이, 장로에게는 성도를 돌보는 사명이, 권사와 집사에게는 기도와 섬김의 사명이, 찬양대에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명이, 전도팀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명은 인간의 힘이나 재능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정이 넘치고 실력이 뛰어나도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여기서 ‘힘’은 군대나 조직, 외적인 영향력을 의미하고, ‘능력’은 개인의 재능이나 실력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한 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합의 병거보다 먼저 달려간 사건(왕상 18:46)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원래 구제 사역을 맡은 집사였지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자 말씀과 표적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성령 충만은 사역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하는 목회자나 찬양하는 찬양대뿐 아니라, 교회 주방에서 섬기는 성도,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 주차를 안내하는 봉사자까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 섬김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사명을 오래 감당하는 사람은 단순히 열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열심만으로 사역하면 쉽게 지치고 낙심하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감당할 힘과 지혜, 사랑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수록 더욱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작은 섬김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셋째, 성령 충만은 원수 마귀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베드로는 마귀가 사람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며 성도를 시험에 빠뜨리고, 교회 안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경고합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가족을 통해 성도를 흔들기도 하고, 교회 안에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기도 합니다(벧전 2:7-8, 4:17).
마귀는 도둑처럼 우리의 믿음과 생명을 빼앗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도둑’에 비유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역시 마귀가 세상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역사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마귀가 교회를 결코 가만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조차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고(마 4:1),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작은 말 한마디와 작은 오해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면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용서가 흘러나오고, 믿음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엡 5:14).
기도하지 않고 성령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잠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은 깨어 있어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냅니다.
성령 충만은 단지 뜨거운 감정이나 일시적인 체험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3.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
첫째, 성령 충만은 기도로 받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성령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명의 제자가 성령 충만을 받은 것도 기도의 결과였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그들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고, 마침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 2:4).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여!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을 원합니다!”
이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둘째, 성령 충만은 회개를 통해 임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성령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붙들고 있는 마음에는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반드시 먼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회개는 성령 충만으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슬퍼하고 돌이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응답하십니다.
성령 충만은 한 번의 특별한 체험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헬라어 현재형 명령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끊임없이 성령을 사모하며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마귀의 공격 속에서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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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