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토요일 출근길이 가벼웠다. 콧노래마저 나올 판이다. 며칠 전에 지난 달 영업회의도 끝났겠다, 부장님만 없으면 열 두 시만 되면 나갈 판이다. 그러나 오늘은 결혼식도 없는지 왼 종일 책상을 지키고 있다. 열 한시 반이 넘어서부터 나도 모르게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흘금거리며 본다. 그러나 우리 부장님이 언제 또 회의 소집을 할지는 미지수. 그저 회의 소집이나, 밥이나 같이 먹지 라는 말만 떨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내는 아침에 배웅을 하면서 오늘 점심엔 아이들과 삼겹살을 구어 먹자고 했다. ‘늦어도 한 시엔 나가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데 다이어리를 뒤적거리던 부장님이 나를 부른다.
“팀장들 다 있어요? 간단하게 회의 좀 합시다.”
다이어리를 뒤적일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별로 중요한 안건도 아니어서 월요일 오전 티타임에 해도 될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한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옆구리에 찬 삐삐는 벌써 세 번이나 으르렁거렸다. 얼른 전화를 걸어서 부장님 퇴근하는 대로 출발하겠다고 소리 죽여 말한다.
다른 부서는 잔무가 남아있는 한두 명만 드문드문 보일 뿐 사무실은 정적에 싸여 있다. 내 뒷모습을 보는 자리에 앉은 부장님은 다이어리를 뒤적이고 있다. 빨강, 파랑, 검정색 플러스펜을 나란히 놓고 다이어리에 뭔가를 꼼꼼히 적어 넣는다. 저게 끝나면 소변, 손 씻기로 이어질 것이다. 꼼꼼한 부장님은 손 씻는데도 많은 시간을 쓴다. 손에 물을 적신 후, 몇 바퀴씩 비누를 굴려 손을 정성껏 씻는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맞 끼워 씻고 또 씻는다. 결벽증인가? 다시 돌아 와서 일곱 개의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이젠 미련 없이 퇴근해도 될 텐데 뭔가 아직 미진한 모양이다. 제발 ‘점심이나 같이 하지.’라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을 씻고 돌아 와 자리에 앉은 부장님은 뭔가 골똘히 생각 중이다. 회전의자가 삐걱대는 소리가 난다. 저 소리는 부장님이 깍지를 낀 손으로 뒷머리를 받치고는 몸을 뒤로 젖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기 위해 사모님과 통화를 할 것이다.
그 때였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뭔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으윽'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휙 돌아보니, 이게 웬일인가. 책상 위에 고통스러운 표정의 부장님의 대머리가 동그마니 놓여 있다. 여포가 베어내 쟁반에 놓은 동탁의 수급이 저러했을까? 온 몸을 실어 그렇게 빙글빙글 의자를 돌리며 못살게 굴더니 유압식 외다리 지주대가 뚝하고 부러진 것이다. 그리고 80킬로그램에 가까운 그 체중이 그대로 밑으로 ‘쑥 ‘ 떨어지면서 턱이 책상 턱에 '턱’ 하고 걸린 것이다.
내가 짐짓 "아이고 어떡해요? 부장님!" 이라고 외치며 쫓아갔고 박과장과 이계장이 뒤따라와 부장님을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부장님은 턱 주변의 안면근육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점검을 하느라 턱을 안쪽으로 바짝 붙이고는 좌우로 연신 돌린다. 지엄하신 부장님의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다면 나는 불경스러운 부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환청처럼 여기저기서 뻥, 뻥, 뻥하고 가슴이 뚫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불경스러운 부하는 나뿐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짐짓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다.
"물, 물, 누가 빨리 찬물을 떠와!"
찬물을 마신다고 강하게 충격을 받은 턱이 좋아지진 않겠지만 넘버 투 맨으로서 그래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김대리는 차라리 고개를 책상에 쳐 박고 웃음을 참고 있다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척, 사무실을 뛰어 나간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최 측근인 나로서는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나를 비롯해 서 너 명은 부장님을 둘러싸고 어느 표현이 가장 그 예기치 못한 재난을 충성스럽게 표현하는지 경연대회라도 하듯이 떠벌린다. 2~3분? 아니면 4~5분? 쯤 수습을 하고서야 나는 슬그머니 복도로 나간다. 임과장과 김대리가 이미 나와 낄낄대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뚝 그친다. 나는 그들이 마음 놓고 웃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웃어야 마땅한 일을 근엄한 표정으로 참아 내야 한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이중으로 받는 일이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들처럼 어정쩡한 두 친구의 표정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두 친구가 비로소 마음껏 따라 웃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나와 웃음에 합류한다. 모두들 얼굴이 시뻘개 지도록 웃는다. 눈물을 질금거린다. 그 눈물은 적어도 부장님의 고통을 함께 하는 그런 눈물은 아니다. 우린 곧 이성을 되찾아야 했고 웃음을 억지로 꾸겨 넣고는 다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꾼 후 사무실로 들어간다.
나는 그들을 대표해서 부장님을 위로한다. 억눌린 소리로.
"턱 괜찮으세요? 병원에 안 가보셔도 되겠어요?"
그리곤 박과장에게 지시한다.
"월요일 오전에 총무과에 얘기해서 부장님 의자 교체하도록."
"넷! 차장님, 알겠습니다."
박과장의 대답이 조금 과장되게 들릴 정도로 힘차다.
몇 년 치의 스트레스가 뻥튀기기계가 폭발할 때 연기가 산화하듯 풀풀 날아간다. 그깟 삼겹살 조금 늦게 먹으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