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상인들의 대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무기는 인터넷이다. 정부에서도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첨단 디지털로 재무장하고 있는 재래시장, 과연 변신에 성공할것인가. 지난 1월19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이름도 낯선 '뚝도시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마트 성수점 맞은편에 위치한 뚝도시장은 쇠락해 가는 최근의 재래시장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아직 영업시간이었음에도 불 꺼진 점포가 여럿 눈에 띄었다.
'완도건어물'이라는 간판을 단 상점에 들어섰지만, 점포 주인인 김준한(50)씨의 아내 박덕자(48)씨는 한편에 마련된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주로 건어물과 건과류를 판매하고 있는 김씨는 아들 김성호(22)씨의 권유로 지난 2003년부터 옥션에 인터넷쇼핑몰(아이디 baboms)을 열었다.
김씨는 "인근에 할인점이 들어서고 난 뒤부터 매출이 급격히 떨어져 살 길이 막막했는데, 인터넷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김씨는 컴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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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상점에서 월 매출이 1,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보다 세 배인 3,00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인터넷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하루 평균 80명에서 100명의 고객들로부터 인터넷 주문을 받는다. 30대 주부들이 핵심 고객층이다.
고객 주문에 즉각 반응하기 위해 건어물 장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창고 두 곳도 마련했다. 김씨의 부인은 "우린 전국구"라며 "인터넷 단골만 3,000명 이상이 된다"며 웃었다.
내친 김에 이 부부는 아들의 도움으로 독자적인 인터넷쇼핑몰인 하양마트(www. hayangmart.co.kr)를 추가 개설했다. 옥션을 통해 발굴한 단골들은 요즘 하양마트를 더 애용한다.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옥션에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단골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이상 더 할인해 주고 적립금도 얹어주며 고객몰이에 힘쓰고 있다.
2009년까지 1만8,000개 오픈
김씨의 경우처럼 재래시장 상인들이 옥션·인터파크·다음 등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이용해 인터넷쇼핑몰에 직접 진출하는 사례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불황에다 할인점·슈퍼마켓 등 대형 유통기업들의 공세가 겹쳐 재래시장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파크·다음·옥션 등 인터넷쇼핑몰 업계도 재래시장의 판매자 확보를 위해 상인연합회 등을 대상으로 꾸준히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대문시장이다. 이미 인터넷쇼핑몰들은 동대문 의류 유치 경쟁에 불이 붙은 상태다. 자사에서 상인들이 쇼핑몰을 열 경우 수수료 수입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KT몰은 최근 동대문 의류 브랜드 전문매장을 새로 열고 패션 의류 상품을 위주로 모두 7,000여 품목을 구비했다. G마켓에도 최근 1,000개 정도의 새로운 동대문표 상품들이 매일 등록되고 있다.
옥션도 오래 전부터 '제2매장 내기 캠페인'을 통해 인터넷 판매를 설명해 주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월 평균 1,000명의 재래시장 상인이 판매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 중 동대문시장 상인의 비율은 70%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한 인터넷쇼핑몰 업체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를 추산할 수는 없지만, 동대문 패션타운의 경우 한 집 건너 한 집이 직간접적으로 인터넷쇼핑몰과 연계돼 있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라고 말했다.
재래시장 개개인이 온라인으로 새로운 유통활로를 개척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의 재래시장육성 방침에 힘입어 올해부터 재래시장 정보화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국비 8억5,000만원과 지방비 8억5,000만원 등 총 17억원을 투자해 오는 8월 말까지 재래시장에 기반을 둔 인터넷쇼핑몰 3,000개를 구축해 9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또한 6개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 재래시장 홍보를 위한 홈페이지 205개도 구축할 계획이다. 올해만 재래시장 상거래 선진화에 총 40억원을 투여한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청은 또 오는 7월경에는 전국 재래시장을 총괄할 수 있는 인터넷 메인게이트 페이지도 개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전국 재래시장 각각의 홈페이지와 상품별·카테고리별 검색을 쉽게 해 대형 인터넷쇼핑몰과 본격 경쟁체제에 진입시킨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청은 이를 바탕으로 2009년까지 총 1만8,000개의 재래시장 인터넷쇼핑몰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사업의 실무진행은 중소기업유통센터가 맡게 된다. 이미 센터는 쇼핑몰 구축 사업자를 모집하는 입찰공고를 낸 상태다. 2월부터 전국을 돌며 재래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순회 사업설명회를 가질 계획이다.
7월 전국 재래시장 단일 홈페이지 개설
중소기업청 재래시장소기업과 엄진엽 사무관은 "정부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물리적인 단초를 마련해 나간다는 취지"라며 "기존의 대형 유통업체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우림시장(www.urimsijang.com)의 경우 최근 인터넷 상거래 시 세금 문제 보완을 위해 외부에 용역을 준 상태다. 우림시장진흥조합 윤두중 상무는 "택배 시스템을 직접 운영해 1시간 내 배달도 가능할 정도로 빠른 배송을 추구할 것"이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인점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재래시장의 대명사인 남대문시장도 지난해 9월 인터넷쇼핑몰(www.enamdaemun. com)을 열었다. 서울시와 중구가 각각 3억원씩 공동 투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일반회원 가입자 수가 10월 말 1만5,000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두 달 만인 12월 말 1만7,194명으로 늘어났다.
윤치훈 디지털남대문 대표는 "현재 700여 개의 점포가 등록돼 있고, 올해 들어 가입추세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대표는 또 "현재 매출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도매 위주의 인터넷쇼핑몰로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망했다.
온라인화가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재래시장의 인터넷쇼핑몰이 순항하고 있는 건만은 아니다. 서울 중부시장의 경우 인터넷쇼핑몰을 개설했다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중부시장의 한 관계자는 "2002년부터 사이트를 운영했지만, 적자 폭이 커져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재래시장의 근본적인 혁신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서울시 재래시장대책반 박현호 반장은 "정부의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재래시장의 요청이 들어오면 금전적인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한 형편"이라며 "그러나 재래시장 스스로 인터넷으로 활로를 개척하려는 자구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억지로 변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변명식 장안대 교수는 "판매수단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바꾼다고 해서 내수불황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온라인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이 수반돼야 재래시장의 디지털화는 최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넷타임즈 2005년 01월 01일 114호 / 2005.01.26 10:41 입력 / 2005.01.26 18:48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