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정류장은 '대구의 강남' 수성구에 있다.
이 곳의 위치는 '수성구 만촌2동'으로 심지어 동부정류장보다도 동쪽에 있다.
대구의 버스터미널이 대체로 이름과 지명이 맞지 않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갭이 큰 곳이다.
맞지 않는건 이름 뿐만이 아니다.
대구의 여러 터미널 중에서도 가장 열약한 환경인데, 이 곳이 위치한 수성구는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이다.
아무리 남부정류장이 수성구가 개발되기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지만,
깔끔하게 정비된 수성구 시가지를 보다가 남부정류장에 오면 가히 '충격과 공포'라는 말도 아깝지 않다.
예전부터 대구에서도 여러가지로 말이 많았던 버스정류장인데,
오죽하면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미관이 안 좋다'는 이유로 가림막을 칠 정도였다.
쌍팔년도 시절이나 베이징 올림픽에서나 들었을 법한, 후진국 이야기인줄 알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대구의 천덕꾸러기 신세로 거의 골칫덩어리 취급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가장 관심이 가던 곳으로 예전부터 계속해서 가보고 싶었던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없이 지나가겠지만 몸소 발을 내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수성구는 대구시내의 동쪽에 위치한 부촌이다.
'대구의 강남'이란 이명처럼 도시 구획이 반듯하니 잘 되어있고 높은 건물과 넓은 주택이 많은데,
시내 동쪽 끄트머리인 만촌네거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앞의 10차선 달구벌대로에는 수많은 차가 지나다니고, 밑으로는 지하철 2호선이 나란히 지나간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 있다.
만촌역 4번출구로 나와 신호등을 건너면 인도 옆으로 낮은 건물이 몇 개 있는데,
버스 두 대가 나란히 서있는 것이 어찌 의미심장하다.
인도와 주차장을 가르는 곳엔 아직도 가을인듯 붉은 낙엽이 떨어질 줄 모른다.
이제 겨울도 다 지나가는데 아직까지 가을인 마냥 붉은 자태를 한없이 뽐내는 낙엽처럼,
그 옆으로는 '시외버스남부공동정류장'이 우두커니 서 있다.
높은 건물과 번화가가 옆에 있는데 여기만 보면 영락없는 시골 간이정류소 꼴이다.
시골의 비료창고 같이도 생겼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오롯이 느껴진다.
말로만 듣던,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것을 직접 보니 느낌이 더 새롭다.
어디론가 갑작스레 공간 이동이라도 한 것만 같다.
덩치있는 '시외버스'는 간데없고 시외 팻말을 달아놓은 '좌석버스'만 여기저기 서 있다.
고래떼 사이에 몸을 잔뜩 웅크린 새우 한마리를 보는 듯,
커다란 숲 속에서 홀로 조심스레 햇빛을 쬐는 이름모를 풀잎마냥, 그렇게 서 있었다.
여기가 250만 인구가 사는 대도시의, 그것도 제일 잘나가는 부촌에 있는 버스터미널이 맞는가?
도저히 보고 또 봐도 체감이 나질 않는다. 승차장에 직접 서서 주변을 바라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니 한동안 가림막에 막혀 바깥 세상과 떨어져 있었던 암흑의 시절이 왜 생겨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해도, 원래 이 모습으로 생겼는데 불합리하게 가리워버린 운명이 참으로 야속하다.
대구의 다른 동네와 마찬가지로 남부정류장 역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처음 생겼을 당시엔 주변엔 논밭과 허허벌판만 있는 평범한 시골이었다.
시지가 경산 땅이었을 시절 동쪽 끝 관문과도 같은 땅에 일종의 '환승센터'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대구가 커지고 지금의 수성구가 개발되면서 비교체험 극과극을 실시간으로 찍는 곳이 되었다.
한창 시골이었을 당시 지어져 오래되고 낡고 좁은 건물이 최고의 부촌과 붙어있으니 이질감이 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군생활을 할 당시에도 내내 가림막에 가려져 자주 지나갔어도 정작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주워온 우등석이 나무의자와 나란히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정작 이 의자를 사용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 이용객이 고작 150명 뿐이기 때문이다.
번듯한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공간이 떡하니 놓여있는 것이다.
맞이방 한 구석에 있었을 매점은 언젠가부터 문이 굳게 잠겼다. 그리 오래되어 보이진 않는다.
수많은 노선들로 북적였을 승차장도
그들을 안내하는 시간표도
표를 팔아주는 매표소도 빈자리가 더 눈에 띄었다.
시간을 되돌린 듯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매표소엔 쥐구멍만한 창구 하나만이 뚫려있을 뿐이었다.
얼기설기 얽히고 구겨진 조그만 A4 용지 한 장에 모든 시간표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여기서 안내되는 노선이 남부정류장을 들어오는 버스의 전부다.
주로 연결되는 지역이 청도, 밀양, 울산(언양), 창녕으로 확실히 대구의 남부 지역만을 연결하기는 하는데,
이서/풍각을 제외하면 각각 대체제가 너무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어 영업이 잘 되지 않는다.
창녕은 서부정류장에서, 나머지는 동대구역에서 각각 수시로 오가고 있으니 굳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특히 청도까지 기차는 30분에 2,600원, 버스는 1시간~1시간 30분에 4,600원.
언양까지 KTX로는 고작 25분에 10,500원이지만, 버스로는 3시간 30분에 10,100원이다. 배차간격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구간수요를 잡고 싶어도 비교적 단거리인 경산에는 시내버스마저 발달했고, 여기가 기점이어서 그마저도 힘들다.
하루에 고작 150명이 이용하는 시골정류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2014년 2월 25일부로 경산버스 완행이 변경되었다.
사실상 남부정류장의 주력 노선으로서 가창-(정대리)-풍각-이서 구간은 유일하게 경쟁자 없이 독점 운행하고 있다.
덕분에 아예 따로 시간표를 써 놓았으니 여기를 가려면 이 시간표를 보아야 한다.
아마 남부정류장의 마지막 시간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전체 시간표처럼 낡아보이는 또다른 A4용지 시간표에는 나머지 구간이 붙어잇다.
사실 청도, 밀양, 운문사를 제외하고는 처음 들어보는 동네들로 굉장히 생소하다.
그나마 남부정류장-언양행 노선은 워낙 유명한 쪽으로 유명해서 알고 있고 한 번 타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는 노선이지만,
가격과 소요시간, 그리고 언제 찾아갈지 모르는 동네들이라 손가락 빨고 바라보고만 있다.
맞이방의 매점이 문닫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요금표를 보니 이해가 된다.
최근들어 급격히 국도요율이 오르면서 버스값이 팍팍 올라갔는데 그 사이 시내버스는 환승할인을 시작했다.
자가용의 보급을 떠나서 최근 10년간의 상황이 남부정류장을 더욱 구석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국제대회 개최하면서 이미지 떨어진다고 막아놓기까지 했으니... 충분히 서러울 만도 하다.
대구한진터미널과 마찬가지로 승차장이 대로변에 붙어있고, 반대편은 원래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이다.
두 터미널이 대구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쩌면 70년대 이전의 옛 구조를 보여주는 마지막 남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노선이 많지 않은 남부정류장은 꽤나 한산해서 이미 자가용이 점령해버렸다.
정류장 부속공간으로 쓰였을 것 같은 옆 건물은 렌트카가 들어와있고, 저 앞의 공터는 관광버스 주차장이 되어버린 모양새다.
뒤에서 바라본 남부정류장. 차라리 앞에서는 표시라도 나지 여기서 보면 어떤 건물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다른 곳에선 맡을 수 없는 진한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시골의 정취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향기인지, 곰팡이 냄새 가득한 그런 향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
사람에 따라, 각도에 따라 풍기는 향취가 다른 것만 같다.
같은 장소 다른 공간은 마치 4차원의 세계로 넘어온 듯 묘한 느낌을 준다.
복합환승센터가 완공되면 여기 노선들도 전부 이사를 할테지만, 대부분의 대구시민들은 잘 모르고 조용히 넘어갈 것이다.
워낙 찾는 사람도 없고 존재감도 없기에 그저 비게 될 이 땅의 개발에만 목숨을 걸고 덤빌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잃게 될 것이란 생각에, 조금은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루빨리 이사가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아쉬움이 많은 곳.
낯선 외지인이 바라보는 어느 겨울날의 남부정류장은 이랬다.
첫댓글 남부정류장... 80년대 후반, 저의 고등학생 시절에는 경산버스의 시내버스터미널 역할이 더 컸던 곳입니다. 여기서 출발하여 경산시외터미널을 거쳐 경산시(당시 경산군)내 여러 곳을 누비고 다니던 버스들. BF101 또는 BF105를 주력차종으로 했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시외버스는 경산버스와 성남여객(당시 사명) 두 업체 뿐이었는데 BS105 보다 더 나은 차종이 전~혀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몇 십년 전의 기억을 마치 한 손에 잡히듯 설명해주시니 당시 모습이 생생해지는 것 같군요. 저도 꽤 오랜 시간동안 경산가는 시내버스들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BS105는 주로 시내버스로 투입된 차로 알고 있는데... 그때도 지금과 대략 비슷했나보군요. 차는 물론 더 많았겠지만요.
터미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불편할듯 한데 두곳정도로 통합을 하는것이 효율성면에서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계획만 잡혀있다가 최근에 삽을 펐고 이제 곧 있음 통합이 되지요. 이제 대구에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속 경산버스 일부차량에 스티커식 행선판이 붙어있는것이 눈에 띄네요. 차량 사정상 다른 노선으로 이동할경우 어려움이 있을것으로 예상되네요.
경산버스에서 스티커를 붙여놓은 차량이 그렇지 않은 차량을 상회하는데, 굳이 차량이동을 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신경 안써도 될듯 한데요..밀양에서찍은 경산버스 입니다
남부정류장 보면 정말 안습입니다. ㅠㅠ
그러게요 ㅠㅠ
작년에 가보았지만 다시 사진보니
기억이 또 나네요~~^^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경산버스 도색잉 예전 광주고속과 인천 신인천광광 도색과도 비슷해 보이네요
그렇군요 ㅎㅎ
대구남부정류장(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은 홈페이지가 없습니다.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완공되면 대구남부정류장이 그 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신세계동대구복합환승센터 =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대구동부정류장(대구동부시외버스터미널)+대구남부정류장(대구남부시외버스터미널)
대구의 터미널들이 두곳 정도로 통합을 하면 나머지 대구서부정류장+북대구터미널+서대구고속버스정류장으로 통합을 하나요???
서부정류장은 화원으로, 북부와 서대구터미널은 서대구역에 환승센터로 통합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문제로 지금까지 이야기만 나오는 단계죠.
울산요금이 언양보다 더 비싸게 받는군요
언양 지나서 울산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