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륜은 어떻게 정도전을 이길 수 있었을까
조선 초에 나타난, 일급 참모를 꼽으라면 정도전과 하륜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승리자는 하륜이었습니다. 통치자와의 관계 설정, 그리고 그에 따른 여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이들의 목숨까지 좌우했습니다.
의정부서사제로서 정국 전반을 본인이 주도하려 했던 정도전이었습니다. 조선왕조의 실질적인 설계자로서, 막대한 권한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부분은 태조 이성계의 전처 소생 5형제의 공도 막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판에, 채 20살도 넘기지 않은 후처 소성의 막내 아들을 세자로 책봉했으니, 반발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그 당시 왕자들이나 장성들은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중심으로 세울 왕자에 장성 몇만 뭉치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사건이 왕자의 난입니다.
정도전은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것에 만전을 기울이면서, 사병을 빼앗음으로써 그 반발을 무마시키려 했지만, 왕자들의 역량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소문난 마키아벨리스트 태종 이방원마저도 주의깊은 판단을 기울이고 나서야 몰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사병이었습니다. 이미 후처 소생의 막내 아들을 왕세자로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명분마저 특출나게 내세우기 어려웠던 상황, 난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이때, 태종 이방원과 급격히 가까워져 명참모로 역사에 남은 사람이 바로 하륜입니다. 백과사전의 무미건조한 설명에서 드러나는 하륜은, 고려 말에서부터 그 당시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부침이 극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도전과 반목하거나 대립한 부분이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1388년 최영(崔瑩)의 요동정벌계획을 극력 반대하다가 양주(楊州)에 유배당했으나, 그해 여름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이 제거되자 관직을 회복했다.'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권근(權近) 등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함으로써 초기에는 조선 왕조 건국에 반대했다. 그러나 곧 권근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변신을 하여 1393년(태조 2) 경기좌도도관찰출척사가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정도전(鄭道傳)과의 불화로 그다지 비중 있는 직책을 맡지 못했다."
"1396년 예문춘추관학사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명나라와의 표전시비(表箋是非)로 정도전과 정면으로 대립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조선에서 명에 보낸 외교문서에 명나라를 모욕하는 언사가 있다고 하여 문서 작성자인 정도전을 압송하라는 명나라측의 강경한 요구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 그는 정도전을 보낼 것을 주장했으며 1396년에는 계품사(計稟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이에 정도전의 미움을 사게 되어 1397년 계림부윤으로 좌천되었다."
<대왕 세종> 10회분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반대하는 세자 양녕이 일부 성균관 유생들의 '정도전 연구 모임'에 출석한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요동 정벌을 위해 출병했다가 군사를 되돌린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 그리고 그가 세운 조선왕조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정도전이 다시 그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것, 다들 기억하실 듯합니다.
그런데, 그 요동정벌에 애초부터 반대 의사를 표방했으며, 명나라에 적대적이었던 정도전의 표전으로부터 불거진 외교문제를 수습하고 돌아온 사람이 하륜이라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특히나, 사람들이 많이 몰랐을 부분이 눈에 보입니다. 애초에는 조선왕조 개국을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종 대의 명재상 황희도 조선개국을 반대하며 두문동에 거주했던 전적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선비에게 있어 정치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 그래서 하륜은 다시 세상에 나왔고, 기왕 나온 김에 정치적 승부수를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도전과 불화를 겪고 있던 이방원에게 던짐으로써, 승리자가 됩니다. 그가 태종 대에 누릴 수 있었던 정치적 승승장구는 정도전을 이길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일국에 뛰어난 참모가 둘이 존재하고, 그 입장이 이렇듯 극명하게 엇갈린다면 그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원소가 몰락한 이유 역시, 인재는 많았지만 그 인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파벌을 구성했고, 그 파벌 싸움이 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오왕 부차도 오자서와 백비의 내분에서, 백비의 편을 들어 스스로 몰락을 자처했던 일면도 있습니다.
실천적인 도덕과 고상한 인격을 보여줬다는 정도전과는 달리, 하륜은 금전적 욕심이 대단해 부정부패에도 자주 연루됐지만, 대인관계가 원만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아이러니한 이유입니다. 고상한 인격도 좋지만 거기에 고집이 더해지면 적으로 가득차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야심 추구와 인간관계에 대한 테크닉의 결정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에 적응하며 처세를 펼치기에는 하륜의 성격이 더 맞았다는 일면도 있는 것입니다. 고상한 인격에 원만한 대인관계, 정도전과 하륜의 장점이 하나씩 어우러진다면 훌륭한 정치가, 그리고 훌륭한 참모가 될 수 있는걸까요?
|
임혁과 최종원의 차이
'하륜'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10여 년 전의 인기사극 <용의 눈물>과 최근 방영되는 <대왕 세종>을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의 눈물>에서의 '하륜'은 임혁이 맡았고, <대왕 세종>에서의 '하륜'은 최종원입니다. 연기 스타일이 분명한 중견연기자들입니다.
굵직한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선이 굵은 외모, 임혁의 '하륜'에서는 하륜의 세속적인 면모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이 많지는 않지만, 그 굵직한 음성에서의 카리스마는 확고했으며, 태종 이방원의 절대적 신임 하에 일인지상 만인지하로서의 품위를 보여줍니다.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두경승'을 기억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두경승'과 '하륜'의 인간적 차이는 분명하지만, 임혁은 자신이 선보일 수 있는 연기의 장점을 차용해 두 캐릭터의 분명한 차이에 대한 이견도, 쉽게 제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새로 창조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좋아해 부정부패에도 자주 연루됐으며 인간관계는 원만했다는 '하륜'이라는 인물의 실질을 감안하면, 보다 사실적으로 '하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최종원의 '하륜'입니다. 얼핏 보면, 뒷방 노인입니다. 하지만, 능란한 처세와 뛰어난 조정 능력, 역사적인 마키아벨리스트 태종 이방원에 대한 대처도 능수능란 그 자체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왕년에 최종원이 격찬을 들은 바 있던 <영원한 제국>에서의 '심환지'와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느릿느릿한 말투 속에 핵심을 담아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경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원의 '하륜'은 역사적으로 기록된 하륜의 실질에 접근하는데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임혁의 '하륜'과는 달리 원만한 대인관계와 아들뻘되는 중신들과의 농도 예사로 보여주는 등, 보다 편안한 이미지를 비춰줍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 더 압도적인 일면도 있습니다. 마치 뒷방 노인네같은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이야기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화법이 일품이며, 그 뒷방 노인네같은 이미지야말로 뛰어난 조정 능력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그 허를 찌르는 능청 화법이 태종 이방원에게도 미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대왕 세종> 9회분에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좀 쉬라고 불렀어. 요즘 동궁전에 나가 정치를 가르치고 있다고? 의정부 일로도 바쁜 그대가 너무 무리한 것 아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줄 아옵니다만?"
"그대는 세자사가 아니라 일국의 영상이야."
"영상은 소신이 아니라 전하시옵니다."
"뭐라?"
"영상의 주무, 전하께서 다 하고 계시질 않사옵니까?"
"그래서 국본을 끼고 후일을 도모해보기라도 하겠다는겐가?"
"전하와 같은 국왕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 뿐이옵니다. 독주하는 군왕은 신하들의 신망을 얻을 수 없는 바, 신하 없는 국왕을 어찌 군왕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래서 기껏 가르친다는 것이 군무에나 골몰하고 되지도 않을 정책 조성이나 하는겐가. 서연까지 모조리 작파하고 있다고 하더군. 알고 있나?"
"그는 신 등을 탓하실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중신들의 뜻을 무시로 꺾는 부왕을 보고 자란 저하께서 서연관을 꺾어 넘기는 일 쯤이야 일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사옵니까?"
"허면 이번 서연관은 그대가 직접 골라보는 것이 좋겠군. 성군의 자질을 기본부터 가르칠 수 있는 인사를 골라봐. 그래야 국본이 그대처럼 방자하게 대서는 신하를 거느리지 않아도 될 것이니 말이야."
|
이는 과거 <용의 눈물>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훗날, 태종 이방원이 병권을 잡고 있는 상왕에게 병무에 관련된 사안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조참판 강상인을 날려버린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혹시 이 대화가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하륜 정도나 되기에 저런 대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각하도 이제 나이가 드셨으니 좀 쉬시고 그 후계자로는 이후락이 맡아야 한다"는 말을 남긴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을 날려버린 사례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잘못 이해한 마키아벨리스트들은 저렇듯, 자신에 대한 부정적 거론 자체를 '역모'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제국>에서 최종원이 보여준 심환지도, <대왕 세종>에서 보여주는 하륜과 같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와 수염, 그리고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 속에서 정조와 일전을 벌인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아이러니가 흥미롭게 보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륜'에는 특유의 원만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로 십수년 전에는 개혁군주와 일전을 치르는 보수세력의 수장을 보여줬기 때문에 아이러니입니다.
'하륜'을 맡은 두 연기자 모두, 자신만의 뚜렷한 연기 스타일을 상황과 설정이 다른 인물에 일정부분 개입시켰음에도,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역량을 겸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하륜'으로부터 판단해보는 참모와 행정가의 자질
'부정부패' 연루를 제외하면, <대왕 세종>이 그리는 '하륜'은 비교적 많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강력한 스타일의 통치자와 그에 반발하곤 하는 관료들 사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중재하는지, 진정한 행정과 조정의 능력, 그리고 상황 대처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최종원 특유의 능수능란한 연기가 개입돼 있는 일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스타일이 뚜렷한 대통령과 각 장관 및 공무원, 그리고 반발하는 국민 사이에서 총리가 어떤 역할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일급 참모의 대처란 어때야 하는지, 역사 속 인물 '하륜'과 능수능란한 연기자 최종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승수 총리 내정자에 대한 많은 이견이 돌출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정치적 이력이 지나치게 자주 변경된 점과, IMF사태에 결정타를 날린 한보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역량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던 측면이 자주 거론됩니다. 행정 능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프로필로만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고해야 할 사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대 총리는 대통령을 거스르지 않는 허수아비형 총리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정치적 스타로 부각된 결정적 계기가,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이견을 사직서로서 맞받아쳤다는 점이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의 최근 10년과 현재가 옳든 그르든, 그 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연 우리는 한승수 총리 내정자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많은 의문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왕 세종>에서의 총리의 자질은 최종원의 '하륜'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의 사극과, 어느 능수능란한 중견연기자가 선보이는 연기가, 한승수 총리 내정자에게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