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1차 상담받고.필요한 서류증거들을.제출.해야하는데.큰.도움이,된것은.시모가.결혼 초부터.가계부.쓰라고해해서.쓴게. 이혼에서의.남편의.귀책사유로.일등 공신이였다.
필요할때마다.꿈에.나타나는.시모의계시가.백발 백중맞았고.이웃지인들의.연락으로 .집이 비었을때에 가서.들어가서 .이미 대문키는
교채했었지만.주택이라.이웃집을 통해서.들어가.첫째 가계부와.필요한 .물건들을.이웃지인들과 .007 작전에다 릴레이식으로.이웃집으로.옮기고.나서뒤돌아보니.내연녀의.명품옷들이 들어왔다.남편은.명품으로.도배하고.심지어 속옷까지.입었지만.아이들은.옷하나로.세명이.물려받고.나는주의에서.얻어.입었었는데.그걸보는순간.재판보다.일순위는.이거다 싶퍼 부엌가위로,갈기갈기.찧었다.
몇칠후.절도.공문서위조.재물손괴.등등7가지로 경찰에 고소.TB에서.보던 .범인 수사를 받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는.다음부터는.그 집에. 가지마시라면서 .나를 위로했다.그날 .흘린눈물은.나를.더. 강하게 .만들었다.그리고는.검찰에서 까지.조사를 받게만들었다.오즉하면.
나를 아는.이웃 지인들과.단체봉사자들.심지어.
집근처 .가계하는 사람들까지.약 300명이 탄원서까지.지인이 .받아와서.법원과.검찰에 제출했다,나는 지인에게 챙피하게 왜 이렇게.까지했냐고.했더니.너가 당하는게 .너무 억울해서.조금의.
도움이라도되게.했는데.주의에서.
모두가 .흥쾌히.응했단다.길에서.만나는 사람마다.힘내라고.
생각만해도.고맙고 눈물겹다.
.검찰조사.때도.장남을.대기 시키고.조사끝나고.저 사람들이랑.마주칠까봐 .무섭다했더니.검사가.당신 퇴근할때까지.기다리면.같이 가자고해서.차를타고 친구집까지.가면서.2중생활까지.이해해주는데 .아버지가.넘하시네 하면서 .노후에.혼자.행복하길.바란다고.위로도해 주었다.나의.이혼서류도.재출됐으니.나의 사정도 충분히 감지했을것이다..그래서.나는.지금도.검사님들을 존경한다.변호사는.상대방이.아닌것임을.알면서도.의뢰인의.편이지만.검사는.옳고.그름으로.판단하니까~~~~
이혼 1차판결이 나왔는데도.항소.
그럼에도 이혼은 절때 안. 해주겠다며.항소 재항소.그때마다.
위자료와 재산분활은.나에게.ㅇ 유리하기만했다.
재산분할 당시에.별 안좋은.조건의 땅만 주겠다고.해서. 망서렸는데.주의에서.앞을봐서는.주는땅을.받으라는.조언으로.받은게 .15년지니고.보니 노령연금은.못받고.의료보험은.내는.노인이.되었다. 지인들에게.돈을.빌려.두아들 결혼도.시꼈고.땅
담보로.아이들에게.거름도.주었다.
2005년10월.마지막날 부터2008년 10월까지 .긴
가시밭.여정이.재산분할.
55대.45로..위지료도.대법원.항소까지 갈때마다.천만원씩.추가하니. 생활이.그시절로.치면.
100%승리였다.
2008년경에서. 서민으로서는.
.최고의.판결에.감사할 뿐이다.대법원판사ㅇ ㅇㅇ은 지금도.메스컴에.등장해서.항상감사해한다.
죽을때까지.참고.가정을 .지키려했지만' 남편의.허황한 .욕심과.방탄한.생활로.나는 아이들에게.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주지.못한게.많은.미안함을.가지고.있었다.
판사님의.최종판결과 일반인의.주부로서는.최고의 승소라고 주의에서.나보다.더 기뻐했다.이 모두가 주의분들의.
덕분이기에.항상감사.
기도하며.봉사도.
힘든재판3년기간에도 .계속.꾸준히 하면서 .봉사상도.받고.글도.쓰면서.마음을 다스린결과.36년의.압박과.설움에서.해방되였다.아이러니하게도.우리나라가.36년.일본의.압박과.설움에서.해방된. 민족이.아니던가~~~
내가.나에게, 고생했다하고. 잘했다고. 위로도했다'
.23살에 .4.3사건으로.남편과,
생이별하고.딸 하나.키운 어머니.가슴도.갈기. 갈기 찢어졌을텐데도.노후에.딸과.같이.7여년.사시다.증손자.손녀까지.보시고.요양병원에서.3년지내면서.이렿게좋은데가.없다며.
95세에.세상을.떠나신 .어머니에게도.덜 .미안하기도해서.장례식장에도.부의금도받지않고.장거리.분들에겐 .교통비도.주었더니.의료원.100년 역사상 부의금.안받는.이는 처음 본다는.이야기도.들었다.
모두에게.
감사할뿐이였다.그래도,
단체모임에서는. 부의금을 .모아서.두고가서..
평생.값아.나가며.받는사람보다.
주는 사람이.되리라.다짐한다.
남편시집안.친촉들도.
나에게,용기와 .고생의댓가가.있을거라면서.
판결후에도.
벌초.경조사에도.연락오면.다 참석했다.시집 형제들과.마주칠일은.전혀없다.평생.자기중심들이라.친촉들과는.왕래가.전혀 '무. 였기에 ~~~그후로도.남편의.전화는.
가끔왔다..남편은 내가.이렇게 .이혼까지.할거라.생각.안.했다구. 끝까지.쥐어짜면. 용서.하라면서.돌아올줄.
알았던것같다.
속담에.쥐도.코너에.몰리면.고양이에게.덤빈다는것을.난 몸소,경험했다..
이혼후.두 아들 결혼식도.많은 지인들의.축복으로.자기들의.가정을.만들고. 나도 홀가분하게.봉사를 .이어갔다.
지인들에게도.편안하게. 집을 제공하니.가끔 .방문해서.동백섬과.해수욕장 .산책하면서.이혼.잘 했다고.웃으면서.농담도.한다.
그렇게.판결후 15년지난.어느날 ~~~(10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