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O년 O월 O일 오늘은 철수와 싸웠다. 나쁜 자식. 지가 뭔데 나를 놀려. 철수가 때린 주먹에 내가 먼저 한 대 맞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내가 실컷 패주었다. 결국 철수가 코피를 흘리면서 울고 불고. 선생님께서 오셔서 나는 교장실까지 불려갔지만 기분은 좋다. 내가 더 때렸으니까. 다시는 여자라고 놀리지 않겠지. 한 번 만 더 그랬다간 봐라.
★...위에 있는 그림을 보면 뭐 이런 일기가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이 그림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보았거나 경험했을 것 같은 일을 그려서 굳이 미술평론가가 나서서 심각한 이론을 들먹이며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그림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고 가볍게 보이는 기법으로 그린 화가가 미국의 놀만 록웰(Norman Rockwell. 1894~1978)입니다.
록웰은 1894년 뉴욕 시티에서 태어났는데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보여 20세가 되기도 전에 잡지사의 삽화를 그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으로 그렸던 300여 장의 그림들이 유명합니다. 그것 때문에 록웰을 정통 화가가 아니라 삽화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상업적으로 대량 제작된 복사품이 아닌 그의 오리지널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구나 그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요?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예술은 결국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 의미에서 록웰 역시 훌륭한 예술가의 한 사람입니다.
1923년 이미 삽화가로 자리를 잡은 록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활동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초기의 열정이 사그라들고 자신의 모습과 예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록웰은 예술의 수도 파리로 가서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본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도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록웰은 오히려 더 의기소침해졌죠.
★...그러던 어느 날 록웰은 갑작스런 발견을 합니다. 일상적인 풍경과 사람들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는 것이죠. 문제는 우리가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그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면(Scene)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viewpoint)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후 록웰은 더욱더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20세기 초반 미국 중산층의 모습을 그림으로 전합니다. 록웰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는 사람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요
★...1954년 작품 ‘거울 앞의 소녀(Girl at Mirror)’입니다. 가지고 놀던 인형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거울 앞에 앉은 소녀의 무릎에는 잡지가 한 권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잡지 속에는 화려한 여배우의 사진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진을 보며 소녀는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나 봅니다.
‘오고 가고(Going and Coming)’라는 1947년 작품입니다. 아마 가족끼리 여름 휴가를 떠났나 봅니다. 두 장의 그림을 같이 두고 보면 휴가 떠날 때와 돌아올 때가 확실히 구분이 되지요? 휴가 가는 기쁨에 들떠 차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개구쟁이 아이들. 이에 비해 귀가 때의 차안은 조용합니다. 심지어 딸이 불고 있는 풍선껌이 부풀어오른 크기조차 줄어들었군요. 그런데 할머니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두 그림에서 사람들 이외에도 달라진 것들이 있는데 한번 찾아보시겠습니까?
★...“있지. 이거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라면서 시작되는 소문은 결코 비밀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버리는데요. 그러다가 최초에 발설한 사람과 소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양자 대면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1949년 작품인 ‘소문(Gossip)’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듯 왼쪽 상단에부터 시계방향으로 읽어(보아) 가시면 됩니다.
예전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항구마다 울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사실이 아니겠지만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항구마다 한 사람씩의 연인을 두고 있다는…. 1944년에 록웰이 그린 ‘문신하는 사람(Tattoist)’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형은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이지요.
여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있는 이 수병의 우람한 팔에는 Rosietta. Ming Fu. Mimi. Olga 등등 다양한 국적의 여인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지워졌습니다. 대충 이 친구가 돌아다닌 항구들을 알 수 있겠군요. 이제 마지막으로 베티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보니 미국으로 돌아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