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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 태백 준령의 강원이나 경북 못지않은 험한 산세 탓에 아직까지 손이 덜 탔다. 기억속 아스라한 ‘고향’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땅이다. 지난 계절 포도 향 짙게 드리웠던 영동. 지금, 노랗게 익은 감들이 뿜어내는 여유로운 빛으로 아늑하다. 감나무 가지 끝 까치밥으로 남아 주렁주렁, 농부의 낡은 집 흙벽에 곶감으로 매달려 주렁주렁…. 영동의 가을은 그렇게 익어 간다. 본래 황간현 남상촌면 지역으로 지형이 활처럼 생겼으므로 활골, 궁촌이라 하였는데 1909년 황간군 상촌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의 폐합에 따라 상궁촌리·하궁촌리·가경리(佳景里)를 병합하여 영동군 상촌면에 편입되었다 영동에서도 오지의 분위기 가장 물씬한 상촌면과 용화면으로 늦가을 드라이브. 차가운 바람 맞아 자꾸만 허무해져 가는 가슴 한 켠을 따스한 기억으로 가득 채워주는 산골마을 여행. 경북 김천시 구성면과 영동군 상촌면이 경계 짓는 고개 우두령에서 영동 방면으로 내려와 처음 맞는 마을 흥덕리. 하늘 위의 동네다.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 위로 가느다란 황톳길이 구불구불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 구름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곳. 마을 마당에는 여느 시골 마냥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아름드리 그늘을 드리웠다. 행여 질세라 그 옆에 곧게 뻗어 우뚝 솟은 전나무가 이채롭다. 300년 넘었다는 40m 높이의 이 나무는 영동군 내에서 가장 높다는, 그래서 주민의 자랑이 된 나무다. 아들 없는 이들이 치성을 드리면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신령함까지 덤으로 갖췄다. 마을 안팎으로 감나무 천지다. 나무에 걸린 감도, 곱게 깎인 채 줄에 매달린 감도 무너진 흙벽집 사이로 불어 오는 서늘한 바람을 쐬고 있다. 흥덕리에서 좀 더 내려오면 바로 몇 해전 예상치 못한 흥행을 일으켰던 영화 ‘집으로’의 촬영 무대가 됐던 궁촌리다. 심술이 잔뜩 난 서울 손자의 비위를 맞춰주던 할머니의 체취가 금세라도 살아 와 바람에 일렁인다. 유곡리를 지나 상촌에서 49번 지방 도로를 갈아타면 산 굽이를 돌아 용화면에 이른다. 중간에 큰 산자락을 넘는데 그 이름이 민주지산(해발 1,214,m)이다. 충북 전북 경북을 가르는 산줄기로 소백산 줄기가 추풍령에서 내려 섰다가 다시 꿈틀 일어서는 형국을 하고 있다. 충청 경상 전라의 삼도가 만나는 곳이다. 민주지산 정상과 각호산, 석기봉, 삼도봉 등에서 흘러 내린 물이 한데 모이는 물한계곡은 국내 최대 원시림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다.
첩첩산중인 영동은 그 첩첩마다 아름다운 경치들을 꼭꼭 숨겨두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황간IC에서 2km 가량 떨어진 월유봉도 비경 중 하나. 금강으로 흘러 드는 맑은 물줄기 가에 깎아 세운 듯 세모난 봉우리가 우뚝 서 있다. 그 절경에 달님도 쉬어간다는 월유봉은 이국적 풍경 덕에 TV 드라마 ‘해신’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우암 송시열이 이 곳에 한천정사를 짓고 강학을 했었다고 한다.
첩첩산중 물들은 단풍이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루기 때문에 꽤나 인기 있는 단풍코스로 통한다. 이 첩첩산중에 사람이 사는 오지의 마을이 있으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자동차도 지프나 겨우 오를 험한 비탈진 산길을 한참 오르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워낙 지대가 높은데다 외진 곳에 자리한 탓에 주민들이 조금씩 도회지로 빠져나가 지금은 빈집이 더 많고, 젊은 사람들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