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년 고도' 경주, 제2의 부안 되나 "원전이든, 방폐장이든 무조건 반대한다."
경주시가 전국 최초로 방폐장(중저준위 방사선폐기물 처분시설) 유치대상 지역으로 신청한 양북면 봉길1리 주민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양북면 봉길 1·2리는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에 인접해 있다. 이 곳은 원전 신월성 1·2호기 착공을 앞두고 있는 이주대상 지역으로 3·4호기 건설도 예정돼 있다. 전국 핵폐기물의 51.6%가 보관돼 있는 원전 가동지역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해 부안사태 이후 고준위와 중저준위 핵폐기물을 분리 처리하기로 하고, 유치지역에는 3천억원의 특별지원과 양성자 가속기 건설을 약속했다. 그러자 경주를 비롯해 포항, 영덕, 울진, 삼척, 군산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유치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그런 가운데 16일 경주시가 첫 유치신청서를 산업자원부에 제출했다. 유치지역 주민들 불신 깊어.. "방폐장 유치하면 모두 망한다"
19년간 표류 중인 국책사업, 방폐장 부지 선정이 |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방폐장 유치신청 지역 1호로 주목을 끌고 있는 경주 양북면 봉길리. 현지 주민들은 경주핵폐기장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정준호)와 함께 경주시가 유치신청을 한 날부터 경주시청 앞에서 유치신청 철회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범대위는 경주지역 13개 단체로 구성돼 있다.
<오마이뉴스>가 17일 봉길리를 찾았을 때 주민들의 한결같은 첫 마디는 "무조건 안 된다"였다.
30년간 이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박모(53)씨는 "내가 비록 월성 원전에 근무하지만, 방폐장이 들어서는 것은 안된다"며 "횟집 등 식당은 물론 어촌계나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반대"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박씨는 "원전이 들어서고나서 주민들은 지금까지 3차에 걸쳐 보상을 받았으나, 보상기간이 10년으로 너무 길어 아무 활동도 못했다"고 한전(한수원)측을 비난했다.
박씨는 원전에 근무하며 불안감은 없었냐는 질문에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전국 핵 폐기물이 집중되면 문제"라며 "그 양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박씨는 "방폐장이 들어서면 경주 시내만 발전되지 이 지역은 발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60년 전 이 마을에 시집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김화(77) 할머니는 "원전이 들어서기 전 30년간 하루 2∼3차례 고기도 잡고, 농사도 지고 오히려 살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공장이 들어오면 일자리도 주고 잘 살게 된다는 한전 사람들 말만 믿고 논밭 다 내놓고 조상 묘까지 팔았는데 모두 거짓말이었다"며“원전이든 방폐장이든 다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 원전에서 2km쯤 떨어진 봉길 2리 이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만난 방석찬(71)씨는 "방폐장이 들어오면 양북면은 물론 양남면과 감포읍 사람들도 다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수욕장, 어업,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쫓겨 나가야 할 판"이라며 "원전에다 방폐장까지 있는 곳을 누가 찾겠냐"고 반문했다.
노부부와 며느리, 손자 둘과 함께 산다는 방씨는 "경주 사람들은 80리나 떨어져 있어 위험을 별로 못 느낄 것"이라며 "나는 곧 이곳을 떠나지만, 방폐장은 절대 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역주민, 대책위 "정부가 지자체 경쟁 부추겨... 주민투표 보이콧할 것"
이재근 경주핵폐기장 반대 범시민대책위 사무국장은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주민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국장은 "유치찬성측에 12억원의 예산이 지원되고 전체 공무원이 동원되는 상황에서 공정한 투표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며 주민투표 자체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 국장은 "경주의 지식인, 교수, 문화예술인 등이 참여하는 100인 선언과 유네스코에 항의서한 발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방폐장 유치시도에 대응할 것"이라며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에 방폐장이 웬말이냐"고 개탄했다.
산업자원부는 오는 31일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장의 유치신청서를 접수받은 뒤 부지 안전성과 사업추진 여건 등 적합성이 인정된 지역에 한해 다음달 15일 해당 지자체에 주민투표를 요구하게 된다. 이어 11월 22일까지 주민투표를 실시, 투표권자 3분의 1이상 투표와 과반수 이상 찬성해야 최종 부지선정이 결정된다.
현재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지역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경주시가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경주시민의 55.4%는 방폐장 유치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 의견은 33%에 그쳤다.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그동안 유치운동을 관망해 오던 백상승 경주시장은 11일 경주시의회에 방폐장 유치신청 동의안을 제출했고, 경주시의회는 시의원 22명의 만장일치로 동의안을 가결했다. 경주시는 16일 전국 최초로 산자부에 유치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러나 정작 유치신청 예정 부지인 양북면 주민의 찬성률은 22.2%로 경주시 25개 읍·면·동 중 가장 낮았다. 지역 주민 대다수 및 경주핵폐기장 반대 범시민대책위는 '투표거부'의 배수진을 치고 유치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양북면장 "주민들 유치반대 높은 건 '님비현상' 때문"
하지만 지역 반대여론에 대한 해당 지자체의 해석은 다르다.
부임한 지 보름쯤 됐다는 방종관 면장은 "양북면민의 반대가 높은 것은 님비현상 때문"이라며 "아직 유치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가 대세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 면장은 "부임한지 얼마 안돼 파악이 덜 됐지만, 자생단체들을 중심으로 홍보를 넓혀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면 경주시는 유치홍보에 보다 적극적이다. 경주시와 유치추진단은 12억원의 홍보예산을 들여 90% 이상의 주민찬성을 이끌어내겠다고 장담하고 있다.
서용봉 경주시 기획공보과장은 "시의회 주도로 유치운동이 추진돼 왔으나, 여론조사 결과 찬성의견이 높아 시장이 적극 나서게 된 것"이라며 "원전지역 안에 방폐장이 들어서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했다.
서 과장은 "경마장·태권도공원 유치실패 등 그동안 경주는 국책사업에서 소외되고 홀대받았다"며 "방폐장과 양성자 가속기가 경주에 오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방폐장 유치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국책사업 경주유치추진단의 최병한 기획팀장도 "90% 이상의 찬성을 얻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시청에서 파견된 최 팀장은 "양북면 등 일부 지역에서 반대가 높은 것은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팀장은 "2천∼3천명으로 구성된 읍·면·동 추진위원회를 활용해 호별 방문에 나서고, 임시 홍보관 설치, 케이블TV 광고, 여성홍보팀 운영 등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면 찬성률은 점차 높아질 것"이라며 기대했다.
과거 안면도와 부안사태를 계기로 지역여론의 중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원전센터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유치지역에 대한 경제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또 일방적으로 후보지를 선정하던 것과 달리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를 최종 선정하도록 지역사회 합의를 우선하도록 했다.
그러나 방폐장 유치신청 지역 1호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모습은 지난 86년 이후 핵 폐기물처리장 후보지 선정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경북 울진 영덕·영일, 충남 태안 안면도, 인천 굴업도, 전북 부안 위도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 |
첫댓글 나쁜 넘들 별 짓거리 다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