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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르단강변 원문보기 글쓴이: 이관수
사람만난 이야기들
어떤 종교, 어떤 교리, 어떤 종파냐에 따라 사람 사는 양상이 달라진다.
그 어떤 종교든지 그 주류는 자기가 신봉하는 종교가 최고라 생각한다.
선교나 전교, 포교 혹은 전도 활동은 그 자부심과 확신에 근거를 둔다.
대변혁이 없는 한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그 대변혁이란 종종 전쟁을 통해서 벌어진다.
기독교가 흥왕하게 된 옛날의 역사나 이슬람이 세워지고 번창하게 된 이유도
전쟁 혹은 투쟁에서의 승리를 통해서다. 종파끼리의 다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흔히 ‘영적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만약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한다면 이겨야 하는 건 재론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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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모하메드의 비련?
여행에서 사람 만나는 재미를 뺀다면 무미건조(無味乾燥)할 것이다.
더구나 말상대도 없이 혼자 다니는 여행이라면 더욱 그렇다.
호텔 카운터에서 만난 모하메드(Mohamed Ismael Mahmoud 26세)는 잘 생겼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과 검은 머리, 잘 다듬은 수북한 턱수염자국은 전형적인 아랍인상이다.
그는 아랍어와 영어 사이에 떠듬떠듬 한국어를 섞어 이야기를 풀어 갔다.
- 한국대사관에서 무료로 가르치는 한국어강좌를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여자 애인이 있었다. 연상의 여인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간 후 소식을 끊었다.
그녀 집안의 반대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많았다.- 그의 표정은 서글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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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배낭여행자 중에는 아랍현지인 남성들의 친절에 현혹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외국여성들이 현지인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무슬림들은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기 때문에 유부남일지라도 외국여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외국부인을 둔 게 영웅담이 되기도 한다.
미국 간 아들이 미국인며느리를 얻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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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히람에서 만난 ‘티토’라는 젊은이가 있다. “터키식 이름이냐?” 했더니
“아니, 이태리 이름이다.” 자기 아버지가 이태리 여인과 결혼을 해서 자기를 낳았고,
두 번째는 이집트 여인, 세 번째는 프랑스 여인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고, 기독교인들은 한명의 부인만 둔다고 설명해 준다.
여기서는 국제결혼이라는 말이 쓸데없는 표현이다. 그냥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는 거다.
만약 무슬림과 결혼 할 거라면 언어소통과 문화충격에 따르는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기독교인 여성일 경우는 더 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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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친절한...
아침에 타흐릴 광장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즈대즈(통자루 스타일의 전통의상)를 입고 머리에는 흰색빵떡 모자를 쓰고 흰 수염을 흩날리는
교통안내인에게 다가가 ‘아히람’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느냐 물었더니,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방금 도착한 버스에 타라며 동승한다. 가르쳐 주겠다는 거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선과 친절을 베푸는 일은 무슬림이 신을 경외하는 표현방법이다.
그래서 베드인의 인내(忍耐) 못지않게 친절(親切)은 이들의 큰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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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정거장 지나서 나일강변의‘라고자’마을에서 갈아타게 되었다.
안내판에 아히람으로 가는 버스 981번이 기록돼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타흐릴광장의 나일강가에서 집단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교통이 차단되고 있었는데
그 여파가 교통흐름에 장애가 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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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20E£(4불)에 이용했다. 버스는 1.5E£면 되는데 13배가 넘는다.
택시(러시아제 RADA) 기사 아흐마드는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그는 한국산 자동차가 좋다며 앞서가는 한국산 자동차마크를 가리킨다.
여기저기서 빵빵대는 차량들을 비집고 위험하고 복잡한 도로를 잘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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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경찰 아하메드 에마르
피라밋 입구에서 내리니 젊은 베드인 몇이 우르르 다가온다.
낙타를 타라! 마차를 타라! 아주 싸게 해 주겠다. 이건 공짜다!
유명관광지에 들어가려면 거쳐야하는 통과의례다.
국적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중국인이냐? (=씨니?)” “그렇다! (=나암!)” “니하오마!”
“일본인이냐? (=자바니?)” “그렇다!” “오하이오 고사이마스!”
“한국인이냐? (=꼬리?)” “그렇다!” “감사합니다!”
외양이 거의 비슷하니까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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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시위의 여파가 가라앉지 않아 관광객이 현저히 감소한 것이 눈에 보인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는 사람이 서너 명 정도였는데, 아주 천천히
경내를 걷는 동안 드나드는 관광버스의 숫자를 보니 더 확연히 느껴졌다.
이집트경제가 살아나야 하겠지만, 강경 원리주의자의 출현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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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은 이들을 따돌리고 피라밋 전경(全景) 촬영을 위해 멀리멀리 돌았다.
접사나 광각렌즈 혹은 망원렌즈가 부착된 카메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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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의 대(大)피라밋이 가장 크고 맨 먼저 들르는 곳이다.
가운데 벽을 헐어낸 입구가 개방되어 있고, 유럽인 몇 명이 들어가고 있었다.
따라 올라갔다. 그러나 현장에서 입장권을 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경내 입장료(60E£)보다 더 비싸서(100E£) 포기했다.
컴컴한 구석에 누워있을 미이라(mummy)를 보는 게 내키지도 않았다.
점점 더 멀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래도 낙타를 몰고 달려오는 친구들이 있다.
나를 태우겠다고? 당연히 허탕이지^^ 걷기로 작심한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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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카푸레의 피라밋’은 크기로도 2번째다. 뒤편 시가지 쪽으로 스핑크스가 있다.
땡볕을 받으며 스핑크스까지 도착했다. 사람들이 북적여야 할 곳인데 거의 텅 비었다.
아시아나 유럽 그리고 중동에 스핑크스 조각상들이 있는데,
테베의 날개달린 스핑크스의 유명한 전설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목소리는 같지만, 발이 4개였다가 후에 2개가 되었다 나중에 3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를 내고 틀린 답을 하면 잡아먹었는데, 오이디푸스가 정답(유아기에는 4발로 기고 자라서는 2발로 걷고
노년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을 맞추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이집트의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는 카프레 왕(BC 2575경~2465경)때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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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막내 ‘멘카우르의 피라밋’ 뒤편으로 돌았다.
주차장에는 너댓의 크고 작은 관광버스들이 오고간다. 낙타나 마차를 탄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한가한 것이다. 모서리를 돌아서자 구석진 곳에서 관광경찰 두 명이 잡담을 하다가
반갑게 환영인사를 한다. 그리고 손짓을 하며 카메라를 달란다.
몇 개의 포즈를 취하게 하고는 찰깍! 찰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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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경찰인 아하메드 아메르의 작품이다.
대피라밋 (입구를 어떻게 알아 냈을까?)
관광객이 현저히 줄었다.
현장답사 나온 학생들
고맙다며 돌아서는데 손을 벌린다. 음료수를 사먹겠다나 어쨌다나.
웃으며 10E£(2불정도)를 박시시(팁)로 내주었다. 옆에 친구도 손을 내 민다.
이 녀석들이 구석진 곳에서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이거였나?
그럼에도 밉지 않은 것은 깍듯이 예절을 지켜 인사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런 지킴이가 있으므로 안전여행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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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사람 만나는 일 빼면 감동이나 이야기꺼리를 얻는 게 없을 것이다.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고대 건축물은 해설서나 사진으로 보는 게 훨씬 좋다.
부득이한 경우 외에 택시를 타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여행방법이 아니다.
걸어서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될수록 많은 사람을 접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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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모하메드 후리덤
피라밋을 다 돌아보았다. 이제 다시는 안와도 된다. 충분히 둘러보았기 때문이다.
성지순례 팀에 어울려 왔을 때는 수박 겉핥기식이었는데...
천천히 주로 현지인들이 드나드는 후문을 통해 피라밋경내를 빠져 나왔다.
여기도 낙타와 마차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렵사리 람세스 정류장으로 가는 미니버스 종점을 찾아왔다.
미니버스는 15인승인데 인원을 다 채워야 출발하는 시스템이다.
운전석 옆에 자리를 잡았고 내 옆자리에는 중년의 잘생긴 신사가 올라왔다.
아니 나에게 먼저 자리를 양보하고 뒤따라 탄 것이다.
한국인임을 밝히며 수인사를 하고 도착할 때까지 내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은 그가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한국산 자동차들을 가리키며 매우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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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가 지금 불안정하다. 그러나 3개월 후에 선거가 있는데, 앞으로 두 달 정도
지나면 모든 게 정리가 될 것이고, 앞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길 것이다.
무바라크보다 더 좋은 지도자 깜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훨씬 나은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이집트는 자유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도 바꾸겠다. ‘모하메드 후리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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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나은 지도자’는 희망사항이고 확신을 못하는 것 같았다.
“이집트에서 지금 한국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한국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한국이 부럽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IT의 천재들이다. 이집트도 그걸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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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다른 젊은이 아흐마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아직도 팔레스타인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희망은 있다.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라는 낙관론을 피력했다. 그러나 확실하냐? 라는
질문에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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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돌렸다.
“왜 한국인들의 이름에는 ‘이’(LEE)가많으냐?”
“그래 한국에는 김, 이, 박이란 이름이 많다. 대부분 옛 왕가의 성씨이다.
아랍의 무함마드, 아흐마드, 모하메드가 많은 것과 같다.
한국에서 돌을 들어 뒤로 던지면 이 성씨가 맞을 확률이 높다.”했더니
“아니, 돌이 아니라 꽃을 던지면...”이라고 정정해 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니버스는 어느새 람세스구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모하메드 후리덤’과 헤어졌다. 그의 소원대로 이집트가 자유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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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냐? 하나님이냐?
“내일 이스칸다리아(알렉산드리아)를 갈 건데 여기서 버스를 타면 되나?”란 질문에
운전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일까지 살 수 있을까요?”반문한다.
순간적으로 “인샤알라!”(=하나님의 뜻이라면!)라 대답했더니
“당신 무슬림이요?”하는 게 아닌가.
“아니, 나는 기독교인이다!” 라고 대답은 했지만 속마음은 영 개운치 않았다.
중동에서는 무슬림이나 기독교인들 모두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런데 ‘알라’라는 하나님의 호칭은 이슬람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인들이 사용했던 호칭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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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데,
이슬람 국가에서는 성경의 하나님을 알라로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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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름은 같은 ‘알라’라고 말하더라도 내포된 의미는 전혀 다르다.
꾸란의 알라는 유일신이자 단일신이고, 성경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유일신을 일컫는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성자를 인정하지 않고, 성령이라는 단어조차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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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인 문구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if it is God's will.” 행18:21
하나님의 뜻일진대 “if it is God's will,” 벧전3:17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If it is the Lord's will,” 약4:15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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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문구가 기독교 후기에 나타난 이슬람의 전용어인 듯 여겨지는 게 이상하다.
어쨌거나 무슬림 운전자에게 한방 얻어맞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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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에서 타흐릴 광장은 멀지 않았다. 호텔까지 걸었다.
“오늘 저녁은 뭘 먹나?” 육식이 내키지 않는 식성이라 호베즈, 무화과잼,
계란2개, 치즈, 오렌지쥬스와 미네랄워터를 사들고 방으로 들어섰다.
미숫가루와 말린 누룽지가 보태지면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식단이다.
오늘 밤엔 모기가 없겠지?
-관-
첫댓글 이집트 여행담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옮겨봅니다.
좋은 자료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